러브크래프트 전집 2 러브크래프트 전집 2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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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작품의 정수라고 할 만하다. ‘우주에서 온 색채‘와 ‘광기의 산맥에서‘는 각각 우주적 공포와 미지에 대한 공포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두 작품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러브크래프트 입문을 마쳤다면, 당장 도전할 만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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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 - 들길을 가는 사내에게 건배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6
잭 런던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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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와 문명'이라는 주제에 맞춰 여러 작가들을 탐색하다가, 나는 다시 잭 런던을 떠올렸다. 그가 남긴 야생의 기록들은 원시와 문명의 대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했다. 그의 단편소설들은 대개 거칠고 감각적이다. 그의 문체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조차 포착하게 만들며 장면들을 생생한 이미지로 남긴다. 그래서 잭 런던의 소설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어렴풋하지만 선명한 인상이 하나씩 남는다. 이번에 읽게 된 『잭 런던』 현대문학 단편선은 '클론다이크 이야기'와 이외의 단편들로 나뉘어 있는데, 각 부분마다 뚜렷한 특징이 있다. 

 

 단편들의 공통점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는 '삶을 향한 의지'라고 뭉뚱그려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단편들은 그 이상의 신념을 담고 있다. 언뜻 보면 '클론다이크 이야기' 속 인물들은 삶을 그저 연명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지금의 삶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더 나은 삶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는 모험을 감행했고, 누군가는 실패했지만, 누군가는 이루었다. 그 의지들이 모여 광기와 모순의 시대를 만들었다. 역자도 인정했듯이, 잭 런던을 이야기할 때 그의 삶을 빼놓을 수 없고, 잭 런던만큼 미국 문학사에서 역동적이면서 모순적인 인물도 드물다. 그것은 그가 시대의 조류에 휩쓸린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하며 유유히 누비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잭 런던의 장편들 위주로, 그리고 원시의 세상에 대한 기록들만 살펴서 그런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의 소재가 무척 새로웠다. 잭 런던과 알래스카의 겨울은 한 몸인 것을 알았지만, 그가 이토록이나 인디언들의 삶과 하와이 원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리고 그의 서술은 어떤 면에서 그들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옹호하고 있다. 비록 백인 문명이 그들을 살육하는 것을 막지도 못했고, 여전히 그는 백인우월주의를 품고 있었지만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자신의 단편을 통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어떤 자들이 더 우월하다고 해서 그들의 악행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쩌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힘의 논리에 의해 유지되었던 것을. 잭 런던 역시 살아남기 위해 강한 자가 되어야 하지 않았나. 


 각 부분(클론다이크 이야기와 그 외)에서 인상적인 단편을 하나씩 꼽자면, 「불 피우기」와 「스테이크 한 조각」이었다. 전자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불이 가지고 있는 상징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면서,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의 처절한 투쟁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긴장감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탁월했다. 이에 반해, 후자는 줄거리가 꽤 긴 편이다. 과거의 챔피언인 톰 킹이 돈을 벌기 위해 샌델이라는 젊은이와 권투 시합을 벌이는 과정을 담았는데, 톰 킹의 육체와 정신을 번갈아 조명하면서 실제로 시합을 관전하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 작가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참 다양하다는 것, 그가 인간에 대한 이야기도 잘 다룬다는 사실을 동시에 느꼈다. 어쩌면 이 책에 담긴 단편들 중 가장 인간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단순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생활의 영역에서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소설을 보며, 잭 런던이 말하려 했던 것은 '삶을 지키려는 의지'였음을 확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삶을 지킨다는 것은 지금의 삶에 만족한 채 편안함을 추구하는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더 나은 무엇인가를 위해 모험을 감행하고, 끊임없이 싸워서 쟁취하는 것을 진정한 수호라고 여겼다. 때로는 그 싸움의 대상이 잘못되어서 등장인물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한겨울에 맨 몸으로 들개와 싸울 용기가 없는 자는 그의 작품에 담긴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삶은 언제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잭 런던이 사회주의자로서 앞장서고, 종군기자로서 조선까지 찾아온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그는 겪어보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다는 격언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불멸의 영역을 상상하거나 인간이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추론하지도 않았다. 영하 45도는 뼛속을 파고드는 혹한이라 장갑, 귀마개, 따뜻한 모카신, 두꺼운 양말로 막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에게 영하 45도는 정확히 영하 45도였다.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 P243

나는 이 생각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몰라. 나보다 앞선 오랜 옛날의 생각이고, 그러니까 진실이야. 사람은 진실을 만들지 않아. 눈이 멀지 않았다면 진실을 보고 알아차릴 뿐이지. 내가 생각한 이 생각이 꿈일까? - P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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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4 러브크래프트 전집 4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류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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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크래프트의 일관성 있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는 처음에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미지의 것은 밝혀지는 순간, 그 의미를 상실하기에 광기라는 이름 아래, 또는 허구라는 이름 아래에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적어도 한 번만 접했을 때는 그렇다. 나는 전집 1권으로 그를 처음 접했고, 2권과 3권을 건너뛰어 네 번째 작품으로 재회했다. 1권을 읽었을 때만 해도 참 뛰어난 상상력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이쯤 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 모든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 밝혀지지 않은 실체들이 서재에 은둔한 어느 미국인의 상상으로만 이루어졌단 말인가? 물론 개별로 파고 들어가면, 하나하나가 허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모든 작품에서 확신하고 있는 믿음, 즉 인간은 세상의 지극히 일부만 이해하고 있으며 거대한 진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는 주제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과거에 신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납득하기 위해 창조된 이야기라면, 현대 신화는 그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전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러브크래프트는 현대 또는 고대의 역사, 익숙한 장소 또는 완전히 낯선 공간을 적절히 비틀어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이것은 단순히 깜짝 놀라서 겁에 질리는, 혹은 분위기에 이끌려 공포에 떠는 그러한 개념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감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이성은 정지한다. 우습게도 인간을 비이성으로 만드는 것이 이성인 셈이다. 그 광기 앞에서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던 인간은 한낱 짐승이요 세계의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4』는 1권에서 다루었던 우주적 존재의 비중은 극히 낮다. 후반부에 삽입된 아자토스에 관한 이야기나 간혹 언급되는 '네크로노미콘'을 제외하면 '나'라는 서술자를 중심으로 단편들이 진행된다. 고대의 존재들보다는 밝힐 수 없는 역사의 비밀과 인간의 변이에 대해 다룬다. 그중 인상적인 단편들 몇 개를 꼽자면, 「신전」, 「아웃사이더」, 「레드 훅의 공포」가 있겠다. 특히 첫 번째 단편은 밀폐된 공간에서 미쳐가는 인간의 심리를 잘 쫓아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과 과정을 전달할 수 없는 광기, 그리고 근원적인 갈망까지, 러브크래프트가 다루는 주제를 모두 관통했다.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대신 암시되는 것도 훌륭했다. 


 물론 소재의 반복으로 인한 피로나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회성의 결여 등은 일부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주제가 어두운 쪽으로만 나아가고, 명확한 결말이 없는 것이 싫증이 날 수도 있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장르 문학의 경우 독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파악하고, 그것이 지금의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비극일지라도 말이다. 혹 모를 일이다. 인간의 지식에 대한 의심이 더 분명한 사실로 이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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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담 잭 런던 걸작선 1
잭 런던 지음, 이성은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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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잭 런던을 처음 접한 계기는 사회주의의 색채가 짙은 『강철군화』였지만, 더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이 대중작가가 심취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자연' 그 자체였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야성의 부름』이라거나 작년에 읽다 말았던 The Mutiny of the Elsinore나 올해 초에 접했던 The Scarlet Plague는 자연의 힘과 놀라움을 보여주는 데에 주목하고, 한편으로는 그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인간을 조명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쯤 되면, '물질은 영원하지 않고, 영혼은 불멸하다'며 유물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별 방랑자』가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요컨대, 잭 런던은 자연주의 작가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잭 런던 걸작선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비포 아담』은 자연주의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편소설이다. 격세유전과 적자생존 등 진화론의 관점에서 원시사회를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나 전생이었던 '큰 이빨'의 이름은 드러나지만, 현재의 '나'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잭 런던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나'의 시점을 빌려 자신이 상상한 원시사회의 풍경을 묘사함과 동시에 그가 생각하는 진화론을 설파한다. <인셉션>에서도 언급된던 '킥', 즉 떨어지는 꿈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본능은 단지 우리의 유전적 형질에 찍힌 습관에 불과하며, 그것이 전부이다. 말한 김에 당신들과 나,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 떨어지는 꿈속에서 우리는 결코 바닥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당신들과 나는 바닥에 부딪히지 않는 자들의 후손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속에서 결코 바닥에 충돌하지 않는다.


 초반부에 제시되는 진화 이론은 실로 흥미롭다. 묘하게 설득이 되는 듯 하다. 하지만 역자도 인정했듯이, 이 소설은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큰 이빨이 속한 동굴 부족과 인근에 위치한 나무 부족과 불부족은 신체의 능력과 지능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특정 인류가 진화하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더 우수한 종족이 무기를 이끌고 다른 부족을 학살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원주민들을 유럽인들이 몰아내는 풍경을 연상케 하는데, 『비포 아담』이 제시하는 최초의 문명이 이러한 비극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자칫하면 더 우수한 종족이 발전하지 않은 종족을 몰아내는 것이 자연의 원리라고 정당화될 수 있다. 아무리 당시 진화론이 완성되지 않은 형태라고 해도, 익숙한 방식으로 과거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에 읽은 『종의 기원』에 제시된 자연 선택이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게만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포 아담』은 흥미로운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큰 이빨과 늘어진 귀의 모험에서 지혜와 협력을 엿볼 수 있고, 재빠른 것에 대한 끌림, 붉은 눈을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 등은 이 회상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상기시킨다. 겉모습은 유인원에 가깝고 언어도 발달되지 않았지만, 단지 생존을 향한 욕구 이상의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불을 보고 기뻐하는 표지의 큰 이빨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문명을 축하하는 최초의 축제이다. 비록 동굴부족은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갔지만, 삶을 향한 강한 의지는 수천 세대를 통과하여 유전자에 새겨졌다. 잭 런던은 자신의 작품에 줄곧 등장한 강한 정신력의 인물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헌사를 바치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생존을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애써야 한다고. 그것이 비극으로 끝난다 해도 갈망은 이후의 세대에게 전해진다고.


 자연주의가 오늘날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진화론은 논쟁 속에서 발전과 동시에 비극을 불렀다. 생존의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생존본능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이들의 죽음을 합리화했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진화론은 완벽하지 않은 이론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선택이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자연주의를 기꺼이 채택한 작가들의 정신이다. 나 역시 잭 런던의 인종차별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문명을 비판하는 태도나 자연관은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하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문명보다 우위에 있기에, 자연이 인간을 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명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자연이 인간을 몰아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의 원리는 무정하므로 한 번 시작된 재해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비포 아담이거나, 영원한 아담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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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 : 마크 트웨인 단편집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3
마크 트웨인 지음, 신혜연 옮김 / 이소노미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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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예상하지 못한 언행과 상황을 제시하거나, 예상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거나. 신기하게도 이 방식은 웃음의 정반대에 놓인 공포의 전달 방법과 동일하다. 현재 내가 읽고 있는 세 명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과 잭 런던, 그리고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각자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그중 마크 트웨인은 웃음에 가장 능통하다. 그가 한 말과 쓴 글들은 언어와 시대의 장벽을 뚫고 독자인 나에게 큰 웃음을 준다. 가벼운 웃음,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책을 읽고 낄낄거리는 웃음 말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 아닌가?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어를 공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주저없이 '좋아서' 혹은 '재미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있다고 해도 처음 대답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업 시간에 분석의 대상으로 접근하다 보니 나는 마크 트웨인이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최면술사』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대부분 그의 자서전에서 추려낸 글로 이루어져 있으며 편집자의 의도가 담긴 두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감기 치료법>과 <우울증 치료제>, 두 단편소설을 제외하면 제목이 없는 글들에 편집자들이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에 대해 나는 만족한다. 대부분의 가제들이 핵심을 짚었다. 

 

 마크 트웨인이 주로 사용하는 웃음의 방식은 비틀기가 아닐까 싶다. 독자가 당연히 이것이라 예상하면, 그는 재치있게 거기서 도망친다. 허를 찔린 우리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곧 복장을 갈아입은 동명의 신사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남기면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 참, 지금까지는 소설이었답니다. 물론 사실도 들어있습니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듯이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한 후, 그것이 허구였음을 밝히는 부분, 그러나 사실도 들어있다고 귀띔하며 마무리를 짓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들려준 일화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가 함정임을 알아채면 무릎을 탁 치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이러한 재치는 빛난다. 너무나 유명한 「뜀뛰는 개구리」는 고사하고, 「이상하고 끔찍한 중세 모험담(원제를 번역해 보았다)」의 마무리는 이렇다. 아버지 때문에 평생 여자임을 숨기고 공작이 된 콘래드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여인 콘스탄스를 거절했고, 콘스탄스는 자신이 콘래드의 아이를 배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콘래드와 그의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쓴다. "사실, 주인공을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하게 해놓기는 했는데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그만 여기서 손을 떼겠다." 세상에, 완결되지 않은, 아니 완결될 수 없는 이야기라니! 얼마나 애간장이 타는가? 그러나 이야기가 원래 그렇다. 끝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아니면 열린 결말이든 이야기는 끝내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그것을 살짝 비틀었을 뿐이다.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인데, 그들이 어떻게 되든 무슨 소용이람? 


 마크 트웨인을 보며 내가 읽는 책과 글을 돌아본다. 그래, 원래 문학은 재미를 추구했지.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계속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문학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그야말로 이상하고 끔찍해진다. 근래에 내가 쓴 글이 지나치게 의미에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의미는 아름답고 희망적이지만, 흥미롭지는 않다. 의미가 재미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원래 문학은 그러했으니, 유머가 담긴 소설이 필요한 순간이다. 세상에 이로운 주제, 고운 우리말로 된 표현이 담겼다 한들, 재치가 없다면 그 책에 생명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기이한 일이죠. 최면술사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서 마을에 최면술을 믿지 않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습니다. - P35

내가 쓴 원고를 아내가 검토할 때면 아이들은 항상 옆에서 돕곤 했습니다. 아내가 농가 현관에 앉아 손에 연필을 쥐고 큰소리로 읽으면, 아이들은 그 오른쪽에 앉아서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왜냐하면 특별히 마음에 드는 구절을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삭제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에요. - P76

그들이 직접 출판사 주주가 되어 저작권과 출판사업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날이 오지 않느 한 그들이나 그 후임자들이나 계속 이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현 지질연대가 지나기 전에 그런 날이 과연 올까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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