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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 눈꽃처럼 살다 간 소녀, 아야의 일기, 개정판
키토 아야 지음, 정원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1월
평점 :
나는 오늘 아침 알람 소리에 맞춰 또 하루를 시작하였다.
남편에게 "잘 다녀와요!"라고 덜 깬 목소리로 배웅을 하고 어제 저녁에 먹었던 국을 좀 데우고 밥을 꺼내 아이들에게 아침 밥을 먹여 보냈다. 오늘은 빨래를 해야 할까하고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아, 햇살은 참 좋겠구나. 집안 청소를 끝내고는 목욕을 해야지. 아이들이 오기 전에 뭘 해놓을까? 아참, 오늘은 언니랑 점심 약속도 있구나!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사이 해는 더욱 밝아지고 거실의 먼지는 더욱 잘 보인다. 어제 분명 남편이 열심히 청소를 도와주었것만 또 그런다. 나는 청소기를 다시 갖고 온다. 나는 하루가 또 시작되었고 나는 활기차게 이 하루를 맞이한다. 오늘 하루는 좋은 일이 가득할 것 같다. 무슨 특별한 일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전투적으로 뭘 해야 할 목표도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하루가 내게 와 준 것이 고맙다. 내게 이런 고마움을 깨닫게 해준 이는 바로 어린 소녀 '아야'다. 아야는 '1리터의 눈물'을 쓴 소녀이다.
아야는 아주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공부도 곧잘하고 책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런 소녀. 하지만 아야는 어느 날부터 너무 자주 넘어진다. 그 넘어지는 과정이 또 특별하다. 아야는 넘어질 때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팔로 짚어 몸을 보호하거나 다리를 굽혀 아픔을 반감시키지 못한다. 그냥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듯이 그렇게 앞으로 나자빠져버린다. 그래서 앞니가 나가기도 한다. 자주 넘어지는 아야는 병원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큰병원에서 자신이 '척수소뇌변성증'이란 불치병에 걸린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아야의 투병기가 시작된다.
아야는 휘청이며 걷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소년들은 아야 바로 옆에서 속삭인다. "쟨 바보가 아닐까?"라고. 심지어 나이 어린 막내 여동생은 언니는 예쁘지 않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가장 외모에 관심이 많을 그 시기에 말이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아야는 점점 몸이 굳어져 걷기도 불편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을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아야를 부담스러워한다. 수업 시간에 늦는다는 이유로 또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전학을 강요한다. 전학도 가지 않은 아야에게 반 편성표에서 아야의 이름을 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아야는 이 학교에 다니고 싶어 더욱 부지런을 떤다. 하지만 결국은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 친구들은 아야에게 천 마리의 학을 접어 병이 낫기를 기원하지만 아야가 원했던 것은 그게 아니다. 단 한 명의 친구라도 '아야, 가지 마.'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는 없었다.
아야는 힘들었을 것이다. 정상인이었는데 어느 날 병으로 갑자기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버린 엘리스가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런 아야에게 사람들은 냉혹했다. 심지어 어떤 주부는 아야를 가리키며 엄마 말 잘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라는 말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야는 또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니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아야는 지금보다 좀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고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 절대 희망을 놓치 않는다. 너무나 안쓰럽게 희망을 손에 쥐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이 아야에게 가혹하면 할수록 아야는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애쓴다. 쓸모 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또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고마워한다. 뒤뚱거리긴 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걷지 못할 때는 휠체어를 탈 수 있음에 마침내 말을 잘 할 수 없을 때조차도 아야는 괜찮다고 나는 분명 이 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격려를 해준다. 그래서 아야가 중얼기며 내 뱉는 노래가 더욱 아리다.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넘쳐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들의 소소한 아니 자질구레한 일상들에도 감사함에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내가 오늘 이렇게 내 아이와 아침을 먹고 남편을 배웅하고 집안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는 것이, 내 몸을 이렇게 내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일인지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될 것이다.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당신 손에 쥐어져 있다는 흔하디 흔한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아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발음 할 수 있는 말들이 점점 줄어들 때도 하나라도 더 발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까지 글을 써서 자신의 의지를 다졌다. 또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에 감사해하며 살았다.
물론 이제 아야는 없다. 스물 다섯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야는 결코 쓸모없는 삶을 살다가 간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큰 깨달음을 주고 떠났기 때문이다. 아야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현실의 삶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병실에서 보는 푸른 하늘, 나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네."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면 되잖아. 넘어진 김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렴, 푸른 하늘이 오늘도 저 위에 끝없이 펼쳐져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이지 않니, 너는 살아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