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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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렌즈로 바라본 인간과 자연

 

생물학 이야기

김웅진 지음, 행성B이오스, 2015

 

 

현재 지구상에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 종이 수천만 종이나 있고, 4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생존했던 생물 종들은 수천억 종에 달한다. 현대 생물학은 거대한 인큐베이터였던 원시해양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44억 년 전 지구 표면에 형성된 바다는 맑은 유기물의 수프상태였다. 최초의 생명체는 거기에 있던 자기 자신을 꼭 닮은 복제물을 만들 줄 아는 유기물 분자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온갖 분자들이 만들어지면서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분자가 물속에서 생겨났고, 그것이 생명의 기원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분자적 자연선택으로 시작된 생명체의 발생은 세포생물과 다세포생물의 출현, 그리고 유성생식 기제에 의한 생물진화의 과정으로 이어졌다. 진화야말로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성질이라 할 수 있는데, 세포의 발생은 진화 사상 매우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에너지 대사, 세포의 기본 구조, 유전, 변이, 다양성 등의 다른 특징들은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파생적인 성질에 불과하다. 이렇듯 생명의 진화과정은 진부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흥미롭고 일관성 있는, 우연과 필연의 장엄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생물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은 공부하기에 만만한 분야가 아니다. 특히 순 오리지널 문과출신임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김웅진 미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가 쓴생물학 이야기는 과학 문외한이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4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에서부터 최신 뇌과학의 성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생물학의 얼개를 일목요연하게 짚어준다.

 

현존하는 생물들은 몸속에 과거 생물들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인간에게는 육체적, 심리적으로 동물로부터 유래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이 있다. 동물적인 행동이 인간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까닭이다. 특히 생존과 번식에 관한 원리는 인간과 동물에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부분이 많다. 20만 년 전 인류가 등장한 이래 인간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진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왔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대략 3만 년 전의 환경에 적응되어 있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여전히 수렵채취인이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문명사회에서 살게 된 것은 멀리 잡아도 수천 년에 지나지 않고, 현대사회는 길어야 100년이다. 반면 뇌에 각인된 무의식의 역사는 수억 년이 넘는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뇌는 현대사회가 아니라 대부분 문명 이전의 삶, 수렵채취인 사회에 적응된 상태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인류는 지구의 시계로 보면 지극히 최근에 나타났다. 우주 시간의 스케일로 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생물들은 거의 얼마 전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1년 치 달력으로 표시하면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600만 년 전을 110시라고 한다면, 인류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시점은 1231일 오전 6시가 된다. 도시가 형성된 것은 같은 날 오후 3시이고, 1140분이 되어서야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이렇게 인류는 대부분 기간을 원시인처럼 수렵채집을 하며 지냈고, 우리의 유전자와 뇌는 그 환경에 잘 적응하게끔 진화해 왔다. 1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계통분화와 가지치기를 하며 진화적 발생을 시작한 인류는 어느 날 직립보행을 하며 언어와 불을 사용하는 전대미문의 종으로 등장했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6만 년 전 북부아프리카에서 중동지방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유인원에 속한다. 사람과 침팬지는 약 600만 년 전에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친척이고, 사람과 침팬지와 보노보는 700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종이었다.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체는 매우 흡사하다. 사람의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 중 30%는 침팬지의 단백질과 동일하다. 분자생물학을 이용하면 침팬지가 해부학적으로 원숭이보다 인간에게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침팬지의 두뇌 구조가 그 크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두뇌를 매우 닮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동물과 인간의 심리와 행동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의 지능은 확장된 대뇌피질의 산물이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도 두뇌가 수행하는 일련의 기능이다. 누가 착한 아이고 나쁜 아이인지는 산타클로스가 알겠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뇌가 안다.

 

우리 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복제물질, 즉 유전자(DNA)의 입장에서 보면 세포나 생물이란 자신(DNA)을 운반하고 영속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생물이라는 것 자체가 그 생물체 속에 기생하는 유전자의 숙주라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라고? 맞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줄곧 주장했던 말이다. 우리의 외모와 기능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유전자의 지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유전자 자신을 위해서다.(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아니다.) 진화의 간계는 교묘하다. 자의식이나 자아도 이기적 유전자가 자신의 영속화를 위해 인간 개체의 두뇌 속에 투사하여 나타내는 일종의 신기루와 같은 것일 뿐이다. 인간은 유전자가 지시하는 본능과 무의식을 마치 자신의 의지인 것처럼 착각한다. 유전자는 인간과 생물들이 쏟아 붓는 모든 노력이 모두 자기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믿게 하고, 삶과 번식을 위해 전력투구하도록 만든다. 결국 이 모든 분투의 궁극적 수혜자는 영속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이기적 유전자이다. 그러니까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 삶의 정의는 유전자에 의해 움직이는, 유전자를 위한 대리전쟁인 셈이다. ‘라는 개체는 번식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죽고 없어지지만 유전자는 새로운 운반체, 즉 후손을 통해서 보존된다. 재주는 운반체들이 넘고 영속하는 것은 유전자, DNA인 것이다.

 

과학의 본질이자 최대 공로는 과학적 사고이며,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과학, 특히 생물학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생물학은 직관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생명현상의 실체를 밝혀냈고,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길을 열었다. 인간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생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 속에는 문명사회 이전의 본성이 밑바탕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무의식적 행동은 인간 행동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존재는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윤리는 무엇인가?’ 등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적 물음에 대한 사실적 탐구를 위해서는 철학이나 심리학보다 생물학에 기대는 것이 유용할 때가 많다. 그러나 생물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솔직히 세포 하나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생물학의 현주소다. 가령, 사람의 유전자는 2만 개가 넘는데, 40%는 아직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은 생명과 인간을 둘러싼 지상 최고의 드라마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을 제공한다. 생물학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유전과 진화에서 상당부분 진척을 일궈내면서 생물의 본질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 증거다.

 

20세기가 찬란한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의혹과 질문으로 가득 찬 생물학의 시대다. 생물학은 탐구의 주체가 바로 탐구의 대상이 되는 특별한 학문이다. 그리고 그 맨 앞줄에는 진화생물학이 자리 잡고 있다. 생물학은 인간의 본성과 정신현상을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그런 지적 호기심이야말로 과학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귀중한 자산이 된다.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더욱 정교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프로이트가 아니라 다윈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지막 쪽을 덮을 때쯤이면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의문과 궁금증이 들지 모른다. 그러면 책을 제대로 읽은 셈이다. 생물학 이야기좋은 과학책이 늘 그렇듯이 대답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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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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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몸과 우주'를 키워드로 잡고 우리 사회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진단한 인문 비평 에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입문서쯤으로 해석해도 좋다. 저자는 의역학醫易學을 현대의 삶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고전평론가라는 고유한 직업을 만들어냈다. 고전평론가는 오래된 고전을 우리 시대의 첨예한 문제와 사선으로 연결하는 글쓰기를 하는 그가 만든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직업이다. 남산 밑에 자리한 공부공동체 감이당坎以堂은 '몸/삶/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곳이다. '생명의 원리(醫)와 우주의 물리적 이치(易)는 하나!'라는 것이 의역학의 기본테제이다. 이 오래된 지혜를 21세기 인문학의 화두와 접속시켜 생명과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여 삶의 윤리적 기술로 변환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문의역학'이다.

 

이 책은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으로, 동아시아 2000년의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동양의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조선조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허준이 장장 14년에 걸쳐 완성한 책으로, 25권에 달하는 엄청난 스케일로 목차만 무려 100쪽이 넘는다. <황제내경> 이후 송, 금, 원, 명대까지 의학의 정수를 추려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등 조선의 의학 전통을 잇고 있다. 특히 중국에선 30여 차례 간행될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한의학의 표준적 모델이 되었다. 인체를 대우주의 여러 형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소우주'로 바라보며 생명의 원천인 정精, 인체의 생리적인 운용을 담당하는 기氣, 정신활동의 주체인 신神을 기둥으로 삼고 있다. 다른 의학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담론의 질서를 갖추고 있는 실용서이며 양생서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주목하는 키워드는 '몸'이다. 저자는 몸, 여성, 사랑, 가족, 교육, 정치·사회, 경제, 운명 등 총 8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기존의 보수/진보 등과 같은 이분법적 틀에 갇힌 사회비평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평을 선보인다. 몸을 탐사하는 길에서 정치와 양생이 마주치고, 여성성과 지혜가 결합하며, 교육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가 교차하고, 삶의 비전과 우주의 충만함이 드러난다.

저자는 유행이 되다시피 한 성형중독에 대해서도 미추와는 다른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못생겨서 무시당했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싶어 성형을 했다."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무시한 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이 이미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데 남들이야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가 먼저 자신을 업신여긴 다음에라야 비로소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길 수 있는 법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타인들의 이목구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목구비가 만들어 내는 전체적인 표정과 생기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타인들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기운의 배치를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성형은 미친 짓이다. 보톡스만 맞아도 표정이 사라지는데 전신을 다 헤집어 놓으면 대체 무엇으로 소통을 한단 말인가? 결국, 성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우월감이다. 타인과의 교감이 아니라 인정욕망이다. 전자는 충만감을 생산하지만, 후자는 결핍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선 상처와 번뇌만이 반복된다. "성형천국, 마음지옥!" 본문에 나오는 말이다.

저자가 몸공부의 일환으로 강력 추천하는 것이 낭송이다. 낭송은 텍스트를 소리 높여 읽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낭송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그야말로 원초적인 공부법이다. 낭송은 노래와 춤과 달리 날마다, 오랜 시간 계속해도 해가 없다. 오히려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 우리 몸의 오장육부 중에서 신장腎臟은 목소리의 뿌리다. 소리훈련을 하면 신장과 뼈를 단단히 할 수 있다. 뼈가 튼튼하면 웬만한 외부 충격이 와도 끄떡없다. 그러니 낭송은 생명력을 기르는 좋은 양생법이자 수행법이기도 하다. 고로 낭송은 힘이 세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 신체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소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체성에 바탕 하지 않는 공부는 공허하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이 되지 못하고, 사람을 찌르는 창槍이 되는 시대에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기술이 본질을 억누르는 시대, 검색이 사색을 앞서가는 시대에 삶의 본질과 우주의 비전을 보여주는 책이다. 특히 5장 '몸과 교육'에는 수능을 막 끝낸 이 땅의 고3 수험생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어깨를 다독이며 밑줄을 그어 안겨주고 싶은 구절이 가득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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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경제학 - 경제력이 불끈 솟아나는
스티븐 레빗.스티븐 더브너 지음, 한채원 옮김, 류동민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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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세상물정의 경제학

스티븐 레빗스티브 더브너 지음, 한채원 옮김, 위즈덤하우스, 2015

 

괴짜 질문에 괴짜 대답

 

대부분 사람들은 경제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쉽지 않은 개념과 온갖 수식, 그리고 복잡한 그래프 등으로 인해 난해하고 복잡한 과목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도 결국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논리 정합적으로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0년 전쯤 괴상한 제목을 달고 나와 인기를 끌었던 괴짜경제학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 책의 주제는 경제도, 금융도, 주식도 아니었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통해 우리의 상식과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 낙태의 합법화와 범죄 발생률 간의 관계,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의 닮은 점처럼 아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저런 얼토당토않은 질문들이 경제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괴짜경제학'이 사회현상의 진짜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 올바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그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쳐 새로 낸 책이 세상물정의 경제학이다. 스티븐 레빗은 40세 미만의 미국 경제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젊은 경제학자의 노벨상인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다. 또 스티븐 더브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영향력 있는 지면에 다양한 글을 기고해왔다. 이 책은 저자들이 10여 년 동안 운영하던 홈페이지(http://freakonomics.com)에 올라온 8000개의 괴짜질문과 그에 못지않은 괴짜답변 중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한 내용을 추려내 엮은 것이다.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골치를 싸매게 하는 복잡한 도표나 그래프 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대신 테러리스트가 가장 효율적으로 테러를 하는 법에서부터 자동차를 가장 싸게 사는 협상비밀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문제들에서부터 알토란 같은 요긴한 정보까지 경제학적 논리를 들이댄다. 원제가 언제 은행을 털어야 할까(When to Rob a Bank)'인 점만 봐도 내용이 얼마나 엉뚱할 지 상상이 된다. “돈 버는 눈을 기르려면 치열하게 관찰하라, ‘경제학을 무기로 상대의 허를 찔러라, 지적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 지식을 갖춰라같은 소제목만 들여다봐도 어떤 책인지를 금세 알 수가 있다.

 

거의 모든 세상물정의 경제학

 

코카콜라 직원이 콜라의 비밀 제조법을 훔쳐내 펩시에 팔려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펩시는 그 직원들을 경찰에 넘기고 함정수사에 협조했다. 라이벌인 코카콜라에 손해를 입히는 동시에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펩시 경영진은 왜 그런 판단을 한 걸까.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 아니다. 코카콜라의 제조법을 아는 것이 펩시에게 별다른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펩시가 코카콜라와 같은 맛의 콜라를 시장에 내놓고 그 방법을 공개한다고 가정하자. 너도나도 같은 맛의 콜라를 만든다면 코카콜라의 가격이 급락하겠지만, 이는 펩시를 먹던 사람까지도 코카콜라를 먹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비밀 제조법을 공개하지 않고 그들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펩시가 만든 새로운 버전의 코카콜라는 원조 코카콜라와 동등한 경쟁력을 지니겠지만, 동시에 완전 대체재가 되면서 극심한 가격경쟁이 벌어져 수익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 모두 망하게 된다는 결론이다. 펩시 경영진은 도덕성이나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저 훌륭한 경제학자였던 셈이다.

 

현대사회에서 비만처럼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도 없을 것이다. 비만관련 시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다이어트와 운동 업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준다. 그러나 비만만큼이나 비만에 대한 두려움도 큰 문제다. 이를 악용하여 비만 논란에 대한 거짓말과 그릇된 정보가 횡행한다. 비만은 대체 누가 규정하는 걸까. 제약사와 다이어트 업계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소수의 의사들과 정부 관료, 보건 연구원들이 비만의 위험을 부풀린다. 그 결과로 6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을 과체중으로 잘못 분류해 관리를 받아야 할 캠페인 대상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비만이 최근에 발생한 어떤 사고에 원인이 되었음을 밝혀졌다. 지난 201410월에 47명의 노인을 태우고 뉴욕 주 북부의 조지 호수를 항해하던 관광 보트가 가라앉아 그중 20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보고서는 심각한 과적 상태가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여행사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예전의 승객무게를 기준으로 보트에 안전하게 태울 수 있는 승객수를 산출했다는 것이다. 승객수 제한을 어기지 않았지만 중량 제한은 심각하게 넘긴 상태에서 관광객들이 풍경을 보기 위해 보트의 한쪽으로 몰려서 일어난 재난이었다. 여행사가 승객당 63.5킬로그램이라는 과거의 표준을 사용했는데 이 기준은 이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경고했던 참이었다. 사고 책임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며 법정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군가 나서서 애초에 승객들의 체중이 불어나도록 원인을 제공한 맥도날드를 고소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다.

 

은행을 언제 털 것인가?

 

은행강도 범행을 수익률로 분석한 글도 흥미를 끈다. FBI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간 5000건의 은행 강도 사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요일별로는 연간 1042건으로 금요일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 어느 특정한 요일이 다른 요일보다 더 성공적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범행 시간별로 보면 유의미한 통계가 나온다. 오전에 강도 행각을 벌인 사람들이 오후에 은행을 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훔쳤다. 그런데도, 강도들은 오후에 은행을 터는 경향이 훨씬 더 두드러졌다. 아마도 은행 강도들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그리 유능하지 않은 모양이다. 성공률 역시 그다지 높지 않다. 35퍼센트가 경찰에 체포되기 때문이다. 참고하시라!(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스포츠 경기를 볼 때마다 드는 의문 중 하나가 실제로 홈팀에게 어드밴티지가 있을까하는 것이다. 당연히 있다. 그런데 그것이 홈구장의 특성을 더 잘 알기 때문이거나 관중의 응원 때문이 아니란다. 한마디로 심판들때문이다. 한 연구결과는 심판의 편견이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홈팀이 심판들로부터 조금 더 우대를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정한 심판을 해야 다시 심판으로 뽑힐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스타디움에서의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심판들은 편파 판정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심판들이 홈팀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는 판단을 의식적으로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심판도 사회적 동물이자 인간이기 때문에 홈 관중의 감정에 동화하면서, 가까이에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많은 사람들을 대단히 만족시키는 판단을 어쩌다 한 번씩 내린다는 것이다.(스티븐 레빗스티브 더브너, 세상물정의 경제학, 위즈덤하우스, 2015, 211)

 

관중의 응원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선수가 아니라 심판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해졌다. 그러니 다음에 축구 경기장에서 머리가 터져라 소리를 지를 때, 누구를 향해 소리를 질러야 하는지 확실해진 셈이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실패와 기회비용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스티븐 더브너는 작은 호수에서 모터보트를 타며 낚시를 했던 열네 살 때 기억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경제학의 주요 개념중 하나인 기회비용을 설명한다.(275277)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루는 과정 중에 많은 실패가 요구되는 커다란 목표에 대해 생각해야 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이것은 기회비용에 관한 교훈이야. 작은 물고기를 잡는 데만 시간을 모두 허비하면 큰 물고기를 잡을 시간도 없고 기술도 습득하지 못하고 인내심도 기르지 못하지.(스티븐 레빗스티브 더브너, 세상물정의 경제학, 위즈덤하우스, 2015, 276277)

 

저자는 그 충고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 조언을 따르며 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패와 기회비용은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써먹는 경제학

 

책은 그 밖에도 기상천외한 세상의 별별질문에 대한 살뜰한 대답으로 가득하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야구팀은 저녁 홈경기를 일반적인 시작 시간인 오후 75분이나 735분이 아니라, 711분에 열겠다고 발표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하면 세븐 일레븐편의점 체인으로부터 50만 달러를 받기 때문이다. 기업 스폰서십과 이야기경영이 절묘하게 안타를 친 셈이다. 인터넷 클릭을 해대며 최저가 항공기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면 5357쪽의 비싼 항공권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에 일어났던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항공기 사고를 통해 최저가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경제학은 아이의 성적을 올리는 방법에서부터 섹스에 세금을 매겨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별걸 다 설명해 준다. 이토록 실용적인 학문도 따로 없다. 경제학은 실제로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려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이 책이 돈버는 법을 직접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더 재미있게 세상을 보는 방법은 가르쳐준다. 경제력을 키워주는 합리적 사고의 기술, 부자가 되기 위해 창의적으로 사기 치는 노하우, 지적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 지식 등 돈의 흐름사람에 대한 통찰을 배울 수 있는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이처럼 사람과 세상을 읽어주는 세상물정의 경제학에 눈을 뜬다면,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회 현상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학과 관련된 세상물정의 거의 모든 것을 짧은 호흡을 가지고도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곳곳에 심어 놓은 유머코드가 한 몫 거든다. 특히 주문한 음식이 상했을 때, 이렇게 복수하자’(239243)는 마지막 반전에서 배꼽을 쥐게 만든다. “오후에 레빗과 더브너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저녁에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라는 추천사처럼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책이다. 오후에 이 책을 읽고 저녁모임에 나간다면 분명 당신 주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것이라는 데에 한 표 건다.--(2016.2 월간금융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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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 경제학자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김영사, 2009(개정판)

   

대부분 사람들에게 경제학은 어려운 학문으로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쉽지 않은 개념과 온갖 수식, 그리고 복잡한 그래프 등으로 인해 난해하고 복잡한 과목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방법론을 익히는 데 많은 기간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현실 문제에 대한 해답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답답하고 잔인한 학문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학생들과 일반인에게 경제학의 난해함과 현실 문제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입문용으로 맞춤한 책이다. 애덤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의 이론부터 카너먼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연구까지 위대한 경제학 대가들이 펼치는 300년 경제사상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아버지 조지 부시(조지 허버트 워크 부시를 말함) 행정부 시절에 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을 지낸 관록과, 직접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특유의 입담과 어우러져 방대하고 난해한 경제학 및 경제사상사를 쉽고 재치 있게 풀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애덤 스미스(17231790)를 경제학의 창시자로 떠받들지만 그는 경제학을 가르친 적이 없다. 심지어 경제학 자체를 배운 적도 없다. 경제학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이미 도덕감정론이라는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다룬 책을 출간한 철학자였다 (하긴 마르크스도 철학자였고, 케인스는 수학자, 폴라니는 역사학자였다). 어쨌든 스미스가 프랑스에 머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200년도 훨씬 전에 쓴 국부론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세상사에 대한 특히 철학정치학상업경제의 세계를 사실, 분석, 예언, 우화 등 명료하고 매력적인 방식을 동원하여 설명했다. 특히 국가의 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라는 원제가 말해주듯이 스미스는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설명해줄 인과법칙을 찾아내는 데 특별히 주안점을 두었다. 그는 인간은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한다는 본성과,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하고, 교역하고, 거래하고자 하는 성향을 갖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래서 국가의 부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런 인간의 자연적인 충동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야 하며, 인간의 이기심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제사상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다음 구절이 그것이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66) 주류 경제학자들이 앵무새처럼 늘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바로 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은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먼저 언급했고 두 책 모두 한차례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모두 이런 보이지 않는 유령에게 맡긴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적 조화를 이끌어내는 진정한 지휘자, 즉 자유시장을 상징한다. 비록 애덤 스미스가 자유무역과 상인의 동기를 칭송했지만, 그는 부르주아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 않았다. 부자들을 옹호하거나 변론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탐욕스런 상인들을 비판했다.

 

비운의 혁명가이자 경제학계의 이단아인 카를 마르크스(18181883)도 빼놓을 수 없다. 마르크스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과 더불어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며 역사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르크스의 논리대로라면, 자본주의는 계급 제도에 의존하기 때문에 혁명은 불가피하고, 노동자 계급의 승리 또한 자명한 것이 된다. 마르크스는 강한 어조와 선동적인 문체로 무덤을 파는체제로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지만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노동가치설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마르크스는 상상력과 기업가 정신 같은 역동적이고 관념적인 수많은 요인들을 논의 과정에서 간과했다. 현대의 급진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정신적 스승인 마르크스의 유물에 맞서 많은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들이 이겼다는 승전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미국의 실업률이 3%에서 25%까지 치솟았고, 국민소득이 반토막이 났던 대공황기에 많은 사람들이 집과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온종일 직업 알선소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무료 급식 시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자유방임주의에 뿌리를 둔 시장경제학자들의 고전경제학은 대공황시기에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 그 때 대안을 제시하며 경제학계의 구원투수로 나선 사람이 존 메이나드 케인스(18831946)이다. 케인스는 공황 발생의 원인을 경제 전체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가계와 기업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유효수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시장의 합리적 조정 능력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부지출을 늘려서 대공황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처방을 제시하며 경제학계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경제사상사를 관통하며 정부와 시장을 등에 업은 경제학자들 간의 끊임없는 대리전을 보여준다. 개정판에서는 제목과 달리 존 스튜어트 밀, 앨프리드 마셜, 밀턴 프리드먼, 제임스 뷰캐넌 등 죽은 경제학자는 물론 로버트 루커스나 대니얼 카너먼 같은 살아 있는 경제학자들도 만날 수 있다. 저자의 표현대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세기에 걸친 명화들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다닥 둘러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모른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제대로 감상하고 음미할 시간도 가져보지 못한 채 빠르게 달리는 격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경제사상사의 맥락과 진수를 살아있는 언어로 흥미롭게 전해주는 매력을 선사한다. 위대한 경제학자들 사이의 불꽃 튀는 비판과 논쟁을 통해 지성의 향연은 물론 굽이치는 열정의 파도를 엿볼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좋은 경제 정책이란 철수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아 영희에게 주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라는 것과, 경제사상의 역사는 종종 배고픈 사람들, 누추한 사람들, 그리고 재빠른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다 읽고 나면 경제사상사의 거대한 흐름을 꿰뚫는 명강의를 들었다는 포만감이 저절로 들게 되는 책이다. 1994년에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 이후 사람들 입에 그토록 자주 오르내린 이유를 알게 된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기획회의 405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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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도 망하지 않아 - 프랜차이즈는 따라할 수 없는 동네카페 이야기
강도현 지음 / 북인더갭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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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지 않는 착한카페 이야기

 

착해도 망하지 않아

강도현 지음, 북인더갭, 2012

 

홍대앞을 지나다가 한 카페 앞에 세워진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회사 때려치우고 카페 차렸소!’ 순간 웃음이 났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절반 이상이 자영업을 한다면 카페를 생각한다. 음식점 차릴 만한 요리 솜씨는 없고, 술장사는 뭔가 복잡할 것 같아서다. 반면 커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수요층도 충분한 데다 아기자기한 맛도 있으니 카페야말로 직장인들의 로망이요 퇴직자들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자영업 생존율은 20%가 안 된다.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적자 안 나는 카페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는 사람만 안다.

 

착해도 망하지 않아프랜차이즈는 따라할 수 없는 동네카페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프랜차이즈에 치여 거리 구석구석에 숨은 동네카페들을 찾아 그들의 착한 경영방식을 밝힌 책이다. 대한민국 자영업의 적나라한 생태계를 고발한 화제작 골목사장 분투기의 저자 강도현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경영 컨설턴트를 거쳐 외국계 헤지펀드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트레이더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돈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심각한 폐해를 느끼게 된다. 결국 3년 만에 트레이더 일을 그만두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감하게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했다. 소셜 카페의 기획자로 카페바인을 운영하며 자영업자의 삶을 사는 한편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활발한 사회참여를 하고 있다.

 

저자는 2009년에 작은 카페의 무덤이랄 수 있는 홍대 중심가에 카페바인을 열었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비자본주의적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보고 싶은 꿈을 안고 시작한 일이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평범한 직장인 등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고 작은 공간이지만 큰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출발했다. 그러나 상권이 좋으면 그만큼 임대료도 비싼 법. 홍대근처는 1층에서 장사를 하려면 하루에 커피를 2백잔 팔아도 임대료조차 못내는 곳이다. 열심히 일해서 땅주인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연 지 얼마 못 가 적자에 허덕였고 개인적으로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결국 희망제작소 컨설팅그룹 연구원들로부터 임대료가 비싼 홍대에서 빠져나오라는 것과 소셜카페로서 본연의 목표를 정하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지역에 완전히 밀착된 공간을 만들라는 컨설팅을 받기에 이른다. 이미 착한 카페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동네카페들을 벤치마킹하라는 조언도 함께 들었다. 저자는 미련 없이 홍대를 뒤로 하고 동교동으로 카페를 옮겼다. 그때부터 전국의 착한 카페를 찾아 순례의 길을 나섰다. 큰길가의 좋은 상권에 버티고 앉아 세련된 인테리어로 폼 나게 장사하는 프랜차이즈 틈에서 과연 동네카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떠난 카페 기행에서 저자는 놀랍고 감동적인 사례들과 마주친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그 유명한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카페작은나무. 200명이 넘는 출자자가 함께 운영하는 작은나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곳이다. 카페를 통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카페가 마을공동체의 각종 행사와 회의의 장소는 물론 편한 쉼터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공간 자체가 개인적 사건이 될 정도로 생활과 깊숙이 밀착되어 있다. ‘작은나무는 마을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체제에 굴하지 않고 공동이익을 감당해 나가며 어떻게 대안적 카페를 꾸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협동조합 모델이다. 카페신길동그가게는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윙W-ing센터에서 운영하는 동네카페다. 윙센터 최정은 대표는 사회복지단체를 중심으로 해오던 자활 프로그램에 회의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인문학 공부였다. 공부공동체를 지향하는 수유너머등의 도움을 받아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다. 강요된 자활 프로그램에는 반응하지 않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책을 읽기 시작했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책에는 그 외에도 행복한 카페’, ‘동네변호사카페’, 카페이로운등 착한 경영이 빛나는 여섯 곳의 카페가 더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비자본적으로 살아남겠다는 야심을 품은 저자의 카페바인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저자가 착하게 살아남은 카페들을 돌아보며 밝혀낸 비밀은 바로 스토리이다. 커피는 마케팅이 아니라 관계다. 입지나 인테리어보다 소통의 자산이 되는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람이 고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객은 언제든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프랜차이즈가 따라하지 못할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스토리는 함부로 따라할 수 없다. 스토리는 마케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결국 스토리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이것이 가장 비자본주의적 발상으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지역에서 살아남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먹고 마시는 장사는 대개 3년이 지나면 결판이 난다. 자본주의 계산법으로는 망했어도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카페바인6년이 지난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그동안 카페바인이 큰 수익은 내지 못하지만 공동체의 삶이 살아 있는 실천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 동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페라는 공간을 재해석하여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그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스토리를 쌓아가며 삶과 밀착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결과다.

 

착해도 망하지 않아는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실무자들을 만난 현장기록을 바탕으로, 착한 경영이 카페 경영에 실제로 어떻게 유용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경영탐구서에 가깝다. 자영업으로서의 카페날것의 모습과 카페 운영자들의 희로애락, 무엇보다 사회를 향해 강력하고도 착한 힘을 발휘하는 카페라는 위대한 공간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한다. 카페도 커피머신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성공의 기준은 돈을 벌었느냐 못 벌었느냐가 아니라 도전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느냐에 달려 있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파고 속에서 이러한 착한 공간이 우리 주변 곳곳에 꿋꿋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 지속 가능한 카페 운영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꼭 읽어야 할 지침서이다. (기획회의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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