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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 AI 시대, 다시 인간의 길을 여는 키워드 8
신상규 외 지음 / 아카넷 / 2020년 2월
평점 :
포스트 휴먼 시대를 사는 법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 신상규 외, 아카넷, 2020
지구의 생태를 파괴하며 살아온 인간들의 삶의 방식이 더는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휴먼 이후에 등장하는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포스트휴먼에 대한 담론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가령 기술적으로 변형된 사이보그 생명체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같은 것을 말한다.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는 최근 인간(휴먼)에게 닥친 새로운 변화 또는 태동하고 있는 미래 환경을 정확히 내다보는데 필요한 이해와 성찰을 돕는 책이다. 기계지능, 사이보그, 인공자궁, 소셜로봇, 가짜뉴스, 기본소득, 마이크로워크, 인류세 등 포스트휴먼의 현상을 가늠할 수 있는 키워드를 8가지로 제시하고 첨단의 기술이 인간과 삶의 방식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8가지 키워드를 통해 일상이나 공동체적 삶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인류가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인간의 신체나 정신적 능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존재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류에게 AI 시대는 인간 삶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당혹스러우면서 낯선 현실로 다가선다. 인간 신체에 기계장치를 연결해 움직이고 생활하는 사이보그는 ‘인간 향상’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대로 진화를 거듭하면 신체 전부를 의체로 대신하거나 온전한 기계로 거듭난 사이보그 인간의 출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실 속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로봇 강아지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장례식까지 치러주는 일이 생기고 있고, 인간의 모습을 한 섹스돌과 섹스를 나누는 일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과 인간 사이에 통용되던 관계가 가까운 미래에는 소셜로봇과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첨단 과학기술은 단순히 삶의 편리를 보장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인간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가치관이나 규범마저도 뒤흔들고 있다. 기술이 낳은 사회적 변화로 민주주의가 위협당하고 불평등이 초래되며 일자리마저도 걱정해야 하는 현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는 실제 인물과 거의 비슷한 목소리를 구현하는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이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를 접할 때면 기술을 통제하던 인간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책은 크게 1부 질주하는 기술, 2부 뒤바뀌는 일상, 3부 흔들리는 세계로 나누어져 있지만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독자의 관심사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다. 나는 ‘고용 없는 노동과 일의 재발명’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기본소득을 다룬 6장을 먼저 읽었다. 아렌트, 시몽동, 스티글레르 등 일치감치 노동의 본질을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사유를 시작으로 요즘 우리시대 화두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기여소득 또한 포스트휴먼 시대를 여는 중요한 사회적 장치라는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포스트휴먼이 몰려온다』는 AI 시대의 기술사회적 변화상을 짚어내고 구체적인 논의의 틀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이미 가까이 다가온 미래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