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마켓이 온다
무라타 히로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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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마켓에 주목해라

 

그레이마켓이 온다

무라타 히로유키 지, 김선영 옮김, 중앙books, 2013

 

일본의 고령화율(총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2012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치인 24.1%에 달한다. 일본인 4명 중 1명은 65세 노인으로, 이대로라면 2055년엔 거의 둘 중 하나가 노인인구다. 근로자 1명이 노인 1명 가까이를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일본을 필두로 각국에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가 기업들의 경영전략을 뿌리부터 바꿔놓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성패가 거대한 고령 소비층, 이른바 '그레이 달러'를 잡느냐 놓치냐에 달린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미래경제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레이마켓이 온다는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 분야의 전문가인 무라타 히로유키가 고령화사회의 일본 현실을 진단하고, 실버산업과 시니어 시장에 대해 통찰을 전한다. 저자는 미국 시니어 비즈니스 최대 싱크탱크인 더 소사이어티The Society’의 유일한 일본인 회원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시니어 비즈니스 분야의 일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전문 컨설턴트이다. 일본은 지난 2007, 베이비부머세대의 최연장자가 퇴직연령인 60세가 되면서 노인고객이 만들어낼 유례없이 큰 시장을 기대하며 경쟁적으로 실버 화두를 내세웠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고령사회 최대집단인 노인인구의 씀씀이는 애초 시장기대를 빗나갔다.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덜 쓰고 안 쓰는 노인이 태반이었다. 이 책은 이미 시니어 시장에 진출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에게는 어째서 고전하는지, 어떻게 하면 성공할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힌트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오래도록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수많은 상식이 뒤집히고 있다. 최근 언론에 부쩍 등장하는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가 그 중 하나다. 종이기저귀, 리카 인형, 노래방, 스마트폰, 패밀리 레스토랑, 슈퍼마켓과 같은 시장은 종래의 아동 및 청장년을 위한 서비스에서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로 스타일을 바꾸어 매출을 높이고 있다. 편의점 역시 그간 청장년에게 맞췄던 포인트를 점차 고령손님에게 옮기는 추세다. 진열전략을 바꾸고 노인 입맛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대거 확충했다. 미래시장의 주인공이 누군지 인구변화로 확인했으니 기업전략도 여기에 맞춰 전환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들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시니어 시프트는 대세이고 기다려주지 않는 시대의 물결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두 눈 멀쩡히 뜨고 놓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니어 시프트에 대처할 것인가? 먼저 시장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시니어 자산의 특징은 고자산 빈곤층이다. 자산이 많다고 해서 그 자산을 전부 일상 소비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 시니어층의 소비 행동은 청장년층에 비해 매우 다양하고 다면적이다. 시니어 시장은 매스마켓이 통하지 않는 다양한 마이크로 시장의 집합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니어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적극적인 소비행동을 취하는 스마트 시니어의 등장이다. 2001년 일본의 50대 인터넷 이용률은 30%대였지만 2010년에는 90%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시장은 이전의 판매자 시장에서 구매자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보로 무장한 시니어가 증가하면서 시니어 시장도 종래의 판매자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실버타운 체험 입주를 할 때 디지털카메라를 준비해, 운영 체제가 가장 약해지는 새벽 1시에 긴급신고 버튼을 눌러 직원의 대응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철저한 사전검증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스마트 시니어의 증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시니어 비즈니스의 기본은 ‘3해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니어의 ‘3대 불안은 건강 불안, 경제 불안, 고독 불안이다. 책에는 이런 불안, 불만, 불편의 해소를 통해 비즈니스에 성공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여성 전용 피트니스 클럽 커브스Curves는 여성이 기존 피트니스 클럽에 품고 있던 불만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해소함으로써 7년 사이 점포 수 1200, 회원 수 50만 명으로 성장했다. 게이오 백화점은 고령자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넘어지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일반적인 평균 속도보다 늦추었다. 포화된 것은 시장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머릿속이다. 시니어 시장에서는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사업의 기회를 찾기도 한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 인구 6만 명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2000가구의 대규모 은퇴자 커뮤니티인 윌로우 밸리Willow Valley가 그 예이다. 윌로우 밸리는 플로리다나 애리조나처럼 따뜻하고 편리한 장소가 아니다. 겨울에는 춥고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도 시설 입주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 비결은 입주자가 참가하는 독특한 영업활동에 있다. 견학자가 전미에서 모여드는데, 이때 입주자가 직접 안내를 맡는다. 가령 플로리다 주에서 온 견학자는 플로리다에서 입주한 입주자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온 견학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한 입주자가 안내한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이렇게 추운 시골에서 어떻게 사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망설이던 사람도 자기와 같은 지역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의 실제 체험을 듣고 안도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데 있다. 흔히들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근거는 바로 인구구성이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로 다가서고 있다. 2050년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7%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일본 다음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근로인구 부족과 부양인구 증가로 나타나며 이는 세수 부족으로 이어져 복지 부담과 성장 동력 상실의 원인이 된다. ‘현재 일본미래 한국의 바로미터이다. 오늘날 한국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이러한 암울한 미래 전망은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인구구성을 가진 일본을 연구해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시니어 산업과 고령화 이슈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현장 전문가의 치밀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해법은 내일의 한국을 보는 현미경이자 망원경이다. 우리나라 실버 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디플레가 불가피한 시대에 유력한 대안은 저성장고령화와 맞물린 시니어 시장의 잠재파워다. 향후 우리나라 역시 실버 산업, 노인시장의 경쟁이 더욱 심화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가오는 변화의 바람을 타고 미로에서 탈출해 미래를 주도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저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할 듯 하다. -- (기획회의 361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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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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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13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장편소설 롤리타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비정상적 소아성애증을 뜻하는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까지 낳을 정도로 추잡한 중년 남자가 12살 짜리 여자아이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구역질나는 이야기라고 했다. 반면 충격적이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독창적인 사랑에 대한 연구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후유증으로 사춘기 이전이나 사춘기에 접어든 9세에서 14세에 이르는님펫이라고 부르는 어린 소녀들에게 집착하며 사랑의 욕망을 느끼는 험버트가 주인공이다. 어느 여름날, 37살의 험버트에게 치명적인 매력과 마력을 가진 12살 소녀 롤리타가 나타난다. 롤리타에게 완전히 매혹 당한 험버트는 그녀 곁에 머물기위해 롤리타 엄마와 재혼하여 롤리타의 의붓아버지가 된다. 롤리타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험버트는 롤리타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사랑을 나눈다. 험버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배심원들을 향해 감옥 겸 정신병원에서 길게 늘어놓은 독백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성애적이자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포에로틱한poerotie한 이 소설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읽을 수 밖에 없다. 금지된 사랑을 다룬 이 소설은 1955년에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휩싸이며 20세기 포르노그라피라 매도당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문학적으로 재평가되어, 타임 르몽드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에 포함될 정도로 고전의 반열에 놓이게 된다. 책 표지를 열자마자 흰 목양말에 끈달린 운동화를 신고 눈부시게 빛나는 종아리를 드러낸 짧은 교복치마의 하반신 사진이 눈길을 끈다. 혼자있는 서재지만 혹시나 아내나 딸애가 볼세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만든다. 영화로도 본 적이 있는 소설 은교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롤리타는 이렇게 시작한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 . .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이렇게 압도하는 첫 문장이 있었던가.

 

사랑 혹은 광기에 집착하는 한 사내의 과도한 집착이 시종일관 고른 호흡으로 읽기를 방해하지만, 중간중간 심어놓은 깨알같은 유머코드가 심각한 독서에서 독자들을 끌어낸다. 험버트가 자신들 사랑의 훼방꾼인 극작가퀼티와 맞대결하며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대목이 특히 압권이다. 거창한 서부영화처럼 심각하고 잔인하고 엄숙해야 할 살인장면이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를 닮았다.(471-491) 우리는 프리송frisson(두근거리는 것, 스릴을 뜻하는 프랑스어)에 잘 걸려 넘어지는 존재다.롤리타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전이나 딱딱한 상식 대신 자유로운 정신과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 존재가 가진 비밀스러운 구석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정신의 밑바닥을 훑어야 가능하다.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위대한 스타일리스트인 나보코프는 우아하고 비유적이고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위장한 언어유희와 수많은 중의어들을 작품 곳곳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 지뢰가 터질때마다 독자가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시치미를 뚝 떼고 즐기는 듯 하다. 마치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역자는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문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이 시종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며힘을 주면 금이 갈 것 같고, 조금만 열어두면 향기가 다 날아갈 듯하다고 표현했다. 사족하나. 우연인지 요즘 읽는 소설에서 꼭 한 대목씩 한국에 대한 언급이 보너스처럼 찾아온다. 이를테면 챗필드 부인이 험버트에게 하는 이런 대사. “가엾게도 그 아이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전사했단 말예요.”(466)

 

롤리타는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나보코프가 말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재독자再讀者.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아니면 읽고 읽고 또 읽든지.”롤리타의 주석 및 해설을 담당한 나보코프 전문가인 앨프리드 아펠도 이렇게 단언했다. “전 세계의 속독가들이여, 유념하라!롤리타는 여러분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영국의 소설가 킹즐리 에이미스가 롤리타의 문제 중 하나는, 지나치게 외설적이기는커녕 충분히 외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한 말이 지금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롤리타를 한 번 읽고 쓴 이 리뷰도 무효일수밖에. 그래도 이 말만은 꼭 해야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그렇지 않은가? 미스터 험버트 험버트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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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1-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저도 정말 처음 문장 보고 잠시 멍했죠. 시적이잖아요.
그러면서도 뭔가 쓸쓸한... 정말 첫 문장이 황홀한 소설 넘버 원입니다....

구름을벗어난달 2014-02-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 저도 너무 어리거나 젊었을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쩌면 중간에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책의 감동은 영화로도 이어졌는데, 마지막 장면에 나오던 제레미 아이언스의 허망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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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운명의 북소리를 듣는다

 

위대한 캐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문학동네, 2013

 

캐츠비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캐츠비는 사랑과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다. 에로스는 가장 젊은 신인 동시에 가장 나이 많은 신이다. 캐츠비의 에로스는 결국 비극의 그림자를 택한다. 한순간 캐츠비에게 가까이 있던 그 모든것이 단숨에 멀어졌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의 심장은 더욱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중략) 그의 입술이 가 닿자 그녀는 그를 향하여 꽃처럼 피어났고, 상상의 육화肉化가 완성되었다. ”

 

그렇다. 사랑은 원래 광기다. 우리가 사랑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운명앞에 놓인 그림자를 사랑할 뿐이다. 그렇게 한때를 서로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다. 캐츠비가 그런 경우다.

 

 

캐츠비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캐츠비는 인생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은 파티와 같은 법, 끝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평생에 한번쯤은 운명의 북소리를 듣는다. 그게 쫓는 자이든 쫓기는 자이든. 또는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일지라도. 개츠비는 바로 그 운명의 북소리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 인간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캐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이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우리는 물결을 거스리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활이며 자신들이 쏜 화살이고 동시에 과녁이다. 영화는 묻는다. 그대 운명의 북소리를 들었는지, 또 자신이 쏘아놓은 화살은 지금 어디쯤 날고 있는지.

 

서울에 첫 눈이 내렸던 지난 11월 셋째 월요일 저녁, 정독도서관 가는 길에 꽃집에 걸린 간판을 보았다. “지금 꽃을 사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산단 말인가?” 도서관에 도착해서 캐츠비를 다시 읽었다. “지금 캐츠비를 읽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읽는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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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밥상 - 건강.젊음.활력을 되찾는
방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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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싶다면 당장 밥상부터 바꿔라

 

남자의 밥상

방기호 지, 위즈덤하우스, 2013

 

건강하려면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우리가 밥상머리에서 흔히 듣는 얘기다. 그런데 이는 틀린 말이고, 오히려 잘 가려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채식을 바탕으로 식이의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생각한 방기호 방의원 원장이 쓴 남자의 밥상이다. 저자는 트리플 효소 치료법이라는 획기적인 탈모 치료 프로세스를 개발하여 수많은 탈모증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한바 있는 융합의학자이다. 책에는 같은 나이인데도 누군가는 에너지가 넘치고 누군가는 암,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같은 죽음의 5중주를 앓고 있는 것은 순전히 먹는 음식 때문이라며, 음식만큼 좋은 치료제는 없다고 강조한다. 식탁에서 과감하게 일체의 고기, 생선, 계란, 우유와 인스턴트 식품, 설탕, 소금, 기름을 끊으라고 주장한다. 대신 현미, 과일, 채소, 견과류 등을 매일 먹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인스턴트 식품이 나쁘다는거야 다 알지만 생선이나 계란까지 멀리 하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는 이렇게 우리가 그동안 건강이나 음식과 관련하여 알고 있던 여러 상식들을 여지없이 깨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지난 30년간 병원은 열 배 이상 늘어났지만 암, 심장병,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 환자는 오히려 세 배 이상, 발기부전 환자는 네 배 이상 늘어났고, 우리나라 40대 이상 남성 사망률은 전 세계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직접 관련이 있다. 지금처럼 먹는다면 40대 남성의 생식력은 70대보다 못할 것이며 지금 살아계신 부모님보다 더 일찍 죽는 최초의 세대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몸짱이면 당연히 스태미나도 강할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착각이라는 것이다. 몸짱과 발기력과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몸짱일수록 발기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 몸에 좋지 않은 과단백 식품과 단백질 보충제로 근육을 키울 경우 활성산소가 증가하고, 활성산소는 혈관 내피 세포를 공격하여 발기에 필요한 산화질소의 생산을 억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력을 위해서는 혈관 확장을 돕고 남성호르몬을 증가시키는 마늘, 양파, 부추, 달래 같은 알리신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먹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중 하나인 비만의 주범 역시 고기, 생선, 계란, 우유와 같은 동물성 음식이나 빵, 파스타, 쌀밥과 같은 정제 탄수화물이다. 이런 음식들은 우리 몸에서 마약과 같은 인슐린을 증가시킨다. 인슐린이 한 번 증가하면 혈당을 내리기 위하여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하게 되고, 인슐린 능력이 떨어지면 혈당은 인체 곳곳을 쑤시고 다니다 갈 곳 없는 혈당은 복부에 비계로 저장된다. 이 비계는 변태와도 같아서 망사스타킹 안으로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이 비계가 복부의 망사 스타킹 안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가 바로 내장지방이다.

간 때문이야,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TV CF에 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간은 우리 몸에서 참 많은 일을 하는 기관이다. 간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포도당을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방출한다. 또 간은 인체에서 건축 일도 한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은 헬스클럽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니고 간에서 만든다. 거기다 경찰 업무도 도맡아 하는데, 간은 인체에 들어오는 모든 독소를 혼자서 제거한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간은 하루 2,160리터의 혈액을 배수하는 인체 최대의 장기이다. 워낙 덩치가 커서 웬만큼 나쁜 부분이 생겨도 나머지 부분이 대신 기능을 떠맡아 주기 때문에 간은 완전하게 파괴될 때까지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간은 70퍼센트가 손상될 때까지도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약이 없습니다, 하나는 보약, 두 번째는 감기약, 세 번째는 간장약입니다. 간에 증상이 나타나면 손을 쓸 수가 없어요. 마치 타이타닉 호처럼 물이 새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것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간을 돌보는 수밖에 없어요.”(169) 그러니 간 때문이 아니라 간 덕분에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셈이다. 간 회복을 위해서는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함은 물론 과식을 피하고 특히 동물성 음식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을 하라거나 계란과 유유가 절대로 완벽식품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다른 데서도 들었지만 노화방지를 위해서는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자리잡은 빵과 커피까지 멀리해야 한단다. 그럼 빵 대신 떡을 먹고 커피는 차로 바꾸어야 하나? 당혹감이 들 수 밖에 없다.(지인이 얼마전에 카페를 창업했는데 발을 끊어야 하나?) 저자는 생활 속의 멋과 여유인 커피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나같은 독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안전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인스턴트 말고 원두커피를 마실 것, 로부스터보다 아라비카산 커피가 좋다, 식후에 마시는 커피는 구취를 악화시킨다, 술과 커피를 함께 마시지 마라, 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에 커피를 마시지 마라.(129-132) 저자는 자신의 전공답게 탈모에 대해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고기, 생선, 계란, 우유와 같은 동물성 식품은 탈모 유전자에 착 달라붙는다. 그 결과 모낭 효소를 증가시켜 탈모 스위치를 켠다. 육식은 남녀 모두에게 탈모증을 유발한다. 그 다음으로 탈모 스위치를 켜는 나쁜 놈이 바로 과식이다. 과식을 하면 혈당이 높아지고 혈당은 인슐린을 증가시킨다. 인슐린은 모낭효소를 증가시키고 그 결과 모낭의 저격수인 DHT가 증가하여 탈모로 이어진다. 탈모 유전자의 스위치를 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채식과 소식이다. 여기다 어성초, 자소엽, 녹차엽까지 사용한다면 최고의 탈모 치료제가 된다. ‘먹을수록 독이 되는 단백질’ ‘비타민C 알약에는 비타민C가 없다’ ‘완전히 나쁜 식품 계란과 우유’ ‘문제는 빵이다’ ‘10년 노화를 부르는 커피’ ‘한식은 건강식이 아니다’ ‘비아그라를 이기는 항문 조이기 운동등 목차만 살펴봐도 궁금증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먹지 말고 빵이나 파스타도 먹지 말라면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인가? 저자는 그것 말고도 먹을 게 많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과일, 채소, 현미와 각종 씨앗류, 견과류, 작은 생선들, 녹조류와 해조류 등이 그것이다.

 

음식과 인체의 명확한 관계를 알려 주는 이 책은 풍요로운 식단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일일 수도 있다. 저자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40대 남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단언컨대 책 내용대로 실천하면 30대로 보이는 40대가 될 것이고, 그렇지않으면 50대로 보이는 40대가 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음식이 곧 약이 되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근본 해결책은 오직 밥상을 바꾸는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남자의 밥상은 언뜻 표지만 읽으면 중년남자만을 위한 책으로 보이지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내용이다. 오히려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들이나 다이어트에 목숨거는 여성들이 알아야 할 정보들이 가득하다. (사족) 만약 이 책을 읽고도 육식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면 육류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의 치명적인 문제를 고발한 논픽션인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조너선 사프란 포어)를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장담컨대 전처럼 식탁위에 고기를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침 설날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새해 건강계획 실천이 작심삼일에 그치고 말았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갑오년 말띠 해를 건강 원년으로 삼을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 책에 소개된 모든 내용을 실천한다면 건강 젊음 활력을 되찾는 남자의 밥상이라는 제목처럼 셋 모두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 1/3만 실천해도 셋 중 하나는 되찾을테니 밑지는 장사는 안 될 듯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밥상혁명부터 시작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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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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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겨울, 마를린 먼로에 이어 또 한 명의 먼로가 내 삶에 들어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평생 단편소설을 써온 캐나다 여류작가 엘리스 먼로를 올해 노벨문학상 작가로 선정하면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단편은 우리 인생의 독립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안정적인 형식미 속에 담아내야 하기에 직관과 섬세함이 요구되는 장르다. 먼로 역시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단편이 장편소설을 쓰기까지의 습작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예술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엘리스 먼로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는 표지만으로도 따뜻함이 묻어나고, 제목을 입에 올리는 순간 날렵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책이다. 발효를 마치고 막 오븐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배인 빵반죽 같은 문장들이 담백하면서도 팽팽한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이 여든이 넘은 노작가가 쓴 글이라는 선입견이 끼어들 틈이 없다. 다루는 인물은 평범하고 벌어지는 사건도 일상적인 소소한 것들이고 배경 역시 캐나다의 작은 타운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가출, 불륜, 배신, 죽음 같은 사건이 하나씩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감정의 파고나 극적인 동선은 희미하고, 인생의 지혜를 설파하려는 성마르고 노회한 시선도 찾아보기 힘들다. 허겁지겁 책장을 넘겨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심히 지나쳐 읽다가는 자칫 앞쪽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읽는 수고를 하기 십상이다. 대신 미세한 사건이나 사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작은 일들이 삶에 가져오는 진동과 균열을 말하며 그것들이 우리 삶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를 보여준다.

 

<자갈>의 주인공은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그 일이 있고도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을 떠올리지만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억은 제 자리에 앉지 못하고 머리 속 어딘가를 여전히 서성거릴 뿐이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이제, 안녕.(142)

 

올 한 해,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상실은 상심으로 이어졌고 책 안에서 모든 걸 찾고 해결하려던 방법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금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불안하고 무력했던 현실의 남루한 습관을 뒤로 하고 한 달 동안 인도와 네팔로 여행을 다녀왔다. 꿈은 도망가지 않는데 늘 도망치는 건 자신이었다는 걸 아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 살아온 삶이 온통 못 미덥고 불안해 어쩔 줄을 모르던 올 겨울에 찾아온 것이 앨리스 먼로였다. 먼로는 우리 삶이 그래서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야 하는, 온통 비밀로 둘러싸여 있는 것임을 말해 주었다. 그저 지키고 남아있고 바라보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것들로 인생은 채워져 있는것이라며, 너무 많이 흔들리지 말라고 낮게 속삭인다.

 

시인의 시에 대해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히.

그가 나를 팔로 감싸안고 의자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싸울 여력이 없어.” 그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늙었는지 잊고 있었다. (330)

 

열 편의 단편소설과 네 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디어 라이프는 손목으로 쓴 글이 아니다. 먼로가 지나온 여든 두 해의 삶을 몸으로 복기하며 팔꿈치로 써 내려간 소설이다. 읽는 내내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묻은 이야기들이 스스로 걸어나와 우리가 살아냈던 인생의 어떤 한 장면과 마주치곤 한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매번 세수를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디어 라이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416) 먼로는 삶은 우리보다 강하다고, 그러니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그 아래 여백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용서하라, 사랑하려면! 사랑하라, 용서하려면! (There is no love without forgiveness, and there is no forgiveness without love)”지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지우지 못한 그 사람에게 올 해가 가기전에 전화를 걸어야겠다. --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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