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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
김남일 지음 / 워치북스(WATCHBOOKS)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
김남일 저 | 워치북스 | 2017
마을이 미래다
외국 속담에 “아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사람 모두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마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공동체 개념을 아우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와 농촌이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압축 성장을 통해 큰 변화를 겪었다. 도시는 여러 가지 생활편의 인프라가 들어서고 외지 인구가 많이 유입됐지만 도심 마을공동체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농촌지역은 젊은 인구의 유출로 고령화공동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인 공동체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마을 하나가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도심은 도심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각각의 문제 원인과 특성에 맞춘 차별화된 마을공동체 살리기가 절실해졌다.
『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는 ‘마을 만들기’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과 구체적인 처방을 담은 교과서이자 참고서이다. ‘마을 만들기’란 주민 스스로 또는 주체적으로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주민들이 생각을 나누고 함께 결정한 일을 주체적으로 이뤄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공직생활을 중앙 부처에서 시작했지만 지역 발전에 헌신하고자 경북도청에 자원하여 경상북도 지방공무원으로 일했다.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서 경험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탁월하고 차별화된 글로컬화한 정책을 펼쳤다. 행정도 예술이라는 신념을 갖고, 문화를 통한 지역산업 활성화에 남다른 소신을 갖고 일하다 보니 ‘돈키호테 지방공무원’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특별한 공무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마을 만들기 전문가나 마을활동가는 아니다. 전체 공직생활 중 20년을 고향인 경상북도에 몸담고 백두대간, 낙동강, 동해안이 품고 있는 자연마을에서 대대로 터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기 위해 뛰어 다녔다. 그러나 우리 농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저자는 ‘죽은 보조금’이 농촌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을에 수십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 자금이 난데없이 지원되는 사례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또 지방자치 선거를 비롯한 각종 조합장 선거가 이권처럼 작동하고, 그 잇속을 위해 토건 위주의 개발이 난무하는 경우도 많다. 갈수록 갈등과 반목이 더해지고, 주민들의 행정의존도는 높아지는데 자치의식은 낮아지는 문제가 심각하다. 시골마을에는 이제 ‘사람’이 없고 제대로 된 마을 리더는 더욱이 없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어른은 없고 마을정치만 판치는 게 우리 농촌마을의 현실이다.
저자는 삼촌三村마을에 주목하고 있다. 삼촌마을이란 생태환경과 마을의 인문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산촌강촌어촌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백두대간의 산촌마을과 낙동강의 강촌마을, 동해안의 어촌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오랫동안 전해오는 인문 스토리 마을자원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자원들에 예술성을 보태 창의적이고도 차별화된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지속시킬 수 있느냐이다.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적, 관주도적, 토목 지향적 마을 만들기 전략은 더 이상 안 통한다. 삼촌마을을 살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을 바탕으로 계획 수립 및 집행 과정부터 마을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다. 즉 삼촌마을의 경관과 인문자원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마을주민과 지역전문가가 비전 제시형 기획가(Planner)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마을주민만 가지고는 안 된다. 지역 안의 관점을 이해하며 지역 밖의 시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열정적인 외부전문가가 필요하다. 지역을 사랑하는 예술가와 마을활동가 등 전문가 그룹은 예술 지향형 디자이너(Designer)가 돼야 하고, 지방공무원과 지역정치인은 기반 지원형 정원사(Gardner)가 되어 함께 어우러져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다. 저자는 마을공동체는 경관자원(green), 인문자원(human), 예술감각(artistic)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발전가능하다고 말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5단계 실행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1단계 비우기, 2단계 배우기, 3단계 상상하기, 4단계 디자인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5단계 나누기이다. 특히 비우고, 배우고, 상상하고 난 다음, 예술적으로(Artistic) 디자인하기는 마을 만들기에서 제일 중요한 단계다. Art는 마을을 변화시키고, 마을은 다시 Art를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의 ‘마을 만들기’론은 창조적인 경지를 뛰어넘어 혁명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농촌의 마을 만들기는 농림부가 아니라 문체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을문화를 예술적으로 디자인하고 산업화하려면 문체부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과 예술가가 앞장서고 지방정부, 기업, NGO 등의 거버넌스를 꾸려 창의적인 마을을 만들기 위한 휴먼웨어적인 접근방식으로 마을 만들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저자는 한 발 더 나가 자기 고장의 인문자원을 찾아내고 지역적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하기 위해 지역학과 마을학을 배우고 마을아카이브를 쌓고 마을대학을 세우자고 말한다. 일본의 공민관公民館제도나 일본의 마을 만들기인 ‘마치즈쿠리’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지역공동체 활성화사업을 가장 먼저 시행한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 등 국내외 다양한 사례도 사뭇 흥미롭다.
그런데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지방행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저자가 일선에서 만났던 미친美親(?) 공무원들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저자를 따라갈 미친 공무원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을 만들기’는 마을에 희망을 가진 미친 사람들의 ‘희망 만들기’이다. 마을의 공동체 의식과 한국적 정서가 살아 있고, 열정에 찬 공무원이 있는 한 우리네 마을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이 책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 쓴 여타 이론서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저자가 마을현장을 두발로 밟으며 사람을 만나 소통하며 고민한 흔적이 삼촌마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로 역력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선공무원을 비롯해 마을리더, 마을활동가, 마을꾼 등 마을 만들기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삼촌마을에 어떤 식으로든 빚을 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이다. 삼촌마을의 정원사가 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