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이야기
니시 카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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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불러오는 추억, 추억이 기억하는 맛

 

밥 이야기, 니시 가나코 , 생각정거장, 2018

 

밥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위는 추억으로 만들어졌다!"라는 표지가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저자 니시 가나코는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이집트 카이로와 일본 오사카에서 자란 여성 작가다. 2015년에 사라바!로 제152회 나오키상을 받았고 일본서점대상 2위를 차지했다. 밥 이야기운전하면서 조수석 사람이 먹여주는 감자튀김은 어째서 그렇게 맛있는지.”(42)처럼 살면서 겪은 소소한 추억을 음식에 대한 기억과 맛깔나게 버무린 추억 레시피를 담은 밥 일기라고 할 수 있다. 하긴 생각해보면 저자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끓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고 먹고 마시는 것을 습관이라기보다 의식처럼 행하는 경우가 많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니쿠자가버터, 달걀밥, 터키 아이스크림, 맥주, 간장 같은 단어들이 몰고 오는 식욕을 참기 힘들다. 요리 프로그램이나 먹방을 보는 것보다 더욱 위를 자극하는 글들이 책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녀의 식탁으로 호출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 시간이 공복일 때는 위험하다. 추억도 위장만큼이나 민감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책에는 혼자 초밥집에 갔다가 무리해서 어른인 척하는 것보다 아이처럼 행동하는 편이 멋있는 거라고 깨달은 이야기, 혼자 터키 이스탄불로 여행을 갔다가 호텔을 찾지 못해 고생하다 들어간 터키 식당에 대한 기억 등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야기가 가득하다.

 

요리와 추억을 한 그릇에 넣고 버무린 이 가벼운 산문을 읽다보면 입안에 저절로 침이 고이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시선이 주방을 향한다. 살면서 음식과 관련된 추억이 많은 독자라면 매순간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맛과 향과 추억을 불러내는 덕분에 더욱 농밀하게 읽게 될 것이다. 밥 이야기는 미세먼지와 최강한파가 교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요즘 같은 때 방에 틀어박혀 혀로 입맛을 다셔가며 식탁을 통째로 삼킬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읽기에 맞춤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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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다 - 뇌과학과 명상, 지성과 영성의 만남
마티유 리카르 & 볼프 싱어 지음, 임영신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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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있다

 

나를 넘다, 마티유 리카르볼프 싱어 , 쌤앤파커스, 2017

 

크리스마스가 내일 모레다. 누가 착한 아이고 나쁜 아이인지는 산타할아버지가 아는지 몰라도 가 누구인지는 가 알지 않을까. 나를 넘다40년 동안 명상수행자로 살아온 승려와 이 시대 최고의 신경생물학자이자 뇌과학자가 만나 뇌과학과 명상을 주제로 나눈 대담을 엮은 책이다. 세포유전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하다 인도에서 영적 스승을 만난 것을 계기로 히말라야에서 명상 수행을 시작한 마티유 리카르, 400여 종의 신경과학 관련 논문과 저서를 집필한 볼프 싱어. 우리 시대 영성과 지성의 대표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사람이 만나 뇌, 의식, 명상, 자유의지 등을 내용으로 나눈 활발한 질문과 대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이 다루는 질문은 매우 다양하다. 자유의지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아니면 우리 뇌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일까? 의식은 다른 물리적 연결고리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가? 등을 비롯해 우리 일상과 가까운 실제적인 내용도 많다.

 

예컨대, 볼프 싱어는 명상은 매우 활성화된 주의집중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명상은 우선 자기 자신의 주의력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주어진 대상에 대해 주의력의 개입과 분리를 마음대로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 명상이 뇌의 특정 상태와 연관이 있고 그것이 뇌의 작용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오늘날처럼 고도로 상호 연결된 사회체계에서 개인의 변화와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규칙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마티유 역시 명상은 매우 엄격하고 꾸준하며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신과학의 분야임을 강조하며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명상은 지혜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지혜란 정신의 작용과 현실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리킨다. 또 그는 뇌과학이 증명하고 불교에서 옹호하는 인간의 변화 잠재력에 대해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두 사람의 관점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지만 공통된 신념이 앞선다. 바로 우리가 정신의 작용을 잘 이해할수록 스스로 더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변화를 이루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특히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경험적인 방식으로 정신을 연구하는 일종의 정신과학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될 것이다.

 

실생활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는 팁도 알려준다. 명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잠들기 직전이고, 잠들기 전에 우리의 정신에 정확히 질문을 던진다면,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첫 번째 드는 생각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할 때, “하루 더 두고 보자.”라고 말하는 것도 다 근거가 있는 셈이다.

 

다루는 주제가 주제인 만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대목도 많다. 가령 전생을 기억하는 샨티 데비의 일화(394-397)가 그렇다. UFO같은 신기한 사건에 매료되어 일생을 허비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정신의 개방성을 이루는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관심을 가져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쉽지 않은 주제지만 대화 형식이라 가독성이 좋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대화가 반복되다보니 237쪽 마지막 줄의 선생스님의 오타를 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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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나의 주인이다 - "신선은 피와 땀의 결정체이다." 몸이 나의 주인이다 1
우혈 지음 / 일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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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먼저다

                                         

 

 

4개월 전 쯤 지인 소개로 창덕궁 맞은편에 있는 혈기도穴氣道 도장에서 우혈宇穴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흰 수염 사이로 보이는 얼굴빛이 여든이 넘었다고 좀처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고왔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몸 공부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들려주시는데 어떻게 저 연세에 저런 얼굴빛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초면에 대놓고 묻지를 못했다. 안그래도 주위에서 보톡스맞았냐는 질문을 수시로 듣는다는 것이다. 몸 공부와 혈기도 수련의 세계를 안내한 몸이 나의 주인이다를 읽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혈기도는 스포츠가 아니다. 산중에서 수 천 년에 걸쳐 몸에서 몸으로 전해져 온 신선들의 수련법이다. 우주의 기운이 내 몸의 세포 속으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함으로써 몸을 양생하는 수련법이다. 책 전반부는 설악산 입산 수련기를 비롯해 호흡법 등 몸 공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놓고 있으며 후반부에는 혈기도 행공의 여러 자세와 동작들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혈기도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행공 수련에 좋은 지침서가 됨은 물론이고, 혈기도의 세계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협지에서나 읽을법한 산중 수련기와 몸 공부 전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흥미로울 것이다. 저자는 50여 년 전인 20대 후반에 설악산에서 천우 선생님의 내제자로 입문해 수 천 년에 걸쳐 산속에서 이어져 온 신선도神仙道17년 동안 수련했다. 신선도는 본래 말이나 글이 필요 없다. 오직 몸으로만 배우고 깨달을 수 있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직 행으로 전해질 뿐이다. 저자 역시 처음 7년간은 무문무답 수행을 할 정도로 행공에 매진했고, 4950일의 단식으로 몸을 완전히 비운 뒤 새롭게 몸을 만들기 시작해 15년이 지나 단성丹成을 이루었다. 34년 전 하산하여 도장을 열고 산속의 신선도를 인간을 위한 생활도로 바꿔 혈기도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렸다. 스승에게 배운 행공 동작만 해도 350가지나 되지만 속세에 돌아와 지금까지 가르친 것은 불과 100여 개 동작에 불과하다. 무술과 의술은 아직 소개조차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저자는 일주일에 하루는 수련생들의 척추와 허리를 짚어가며 행공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호흡이다. 현대인은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호흡은 소홀히 한다. 혈기도 수련의 기본은 호흡에 있다. 호흡은 대우주 에너지(天氣)를 마시고 몸 안의 객기客氣를 내뱉는 행위이다. 폐로 숨을 쉬는 흉식胸息호흡을 단전丹田으로 숨 쉬는 태식胎息호흡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우주 에너지를 몸의 혈문穴門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흉식호흡을 하면 폐를 3040%밖에 못 쓴다. 실력 있는 마라톤 선수가 50% 정도 쓴다. 단전으로 호흡하면 좌, 우의 폐 기능을 다 살려 100%까지 쓸 수 있다. 행공의 기본은 마음, 호흡, 기운을 단전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단전은 사람의 몸에서 농사를 짓는 자리이다. 기운의 원천이자 무한한 창고이다. 척추脊椎에서 나오는 힘은 유한하지만, 단전에서 나오는 힘은 무한하다. 척추 자체는 힘이 없다. 척추를 받쳐주는 것이 요추(허리뼈)이며, 요추를 받쳐주는 것이 단전이다. 단전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단전의 기운을 몸 전체로 보내는 것이 혈기도의 기본이다. 혈기도는 숨을 참는 지식止息호흡이 없다. 인위적으로 숨을 참는 지식호흡은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을 억지로 끊고 산소 결핍을 불러와 오장육부를 서서히 굳게 한다. 이런 방법은 노화를 촉진하여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혈기도 행공이 다른 수련단체들과 달리 객기와 탁기 배출을 중시하는 토호흡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스런 호흡을 가르치는 혈기도 호흡에는 부작용이 없다.

 

몸은 내가 걸어온 길, 내가 한 일, 나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책이다. 누가 나쁜 아이고 착한 아이인지는 산타클로스가 아는지 모르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내 몸이 말해 준다. 우리 현대인들은 몸을 경시하고 건강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태연하게 범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이 60대까지만 해도 내가 장관을 지냈네, 삼성 CEO였네하며 자랑하지만, 70살이 넘어가면 지팡이 없이 자기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다. 돈이 많아봐야 소용없다. 80, 90살이 되면 쓰지도 못한다. 돈도 똑바로 걸을 수 있어야 쓸 수 있다. 혈기도는 늙어서도 바로 서고 제대로 걷고 내 기운으로 활동하기 위한 행공이다. 현대인들에게 암 다음으로 두려움을 갖게 하는 질병이 치매다. 치매는 머리로 오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온다. 척수脊髓가 고갈돼서 오는 것이 치매다. 모든 건강은 척수에 달려 있다. 의학계는 척추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척추의 핵심인 척수에 주목하지 않는다. 사람의 뼛속에 골수骨髓가 있는데, 척추 속에 있는 골수를 척수라고 부른다. 늙어서 척수가 고갈되면 등이 휘거나 뇌가 작아져 건망증이나 뇌졸중으로 나타난다. 척수를 충만하게 해야 젊음이 유지되고 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선도仙道에서는 우리 몸에 움직이는 기의 흐름을 내관內觀하여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척수의 중요성을 알았다. 혈기도는 행공을 통해 척추를 바로 잡아 척수를 맑고 충만하게 만드는 수련법이다.

 

저자는 몸이 먼저라고 말한다. 머리나 정신은 빌릴 수 있으나 몸은 그럴 수 없다. 머리에 여백이 필요하듯이 몸에는 여력이 있어야 한다. 몸이 돼야 비로소 사람 꼴을 갖추게 된다. 몸의 꼴을 만드는 것이 혈기도 행공이다. 병신病身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데 몸에 병이 든 상태를 말한다. 다리가 하나 없으면 병신이 아니고 불구不具일 뿐이다. 혈기도는 수 천 년 비전된 신선들의 수련법을 현대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신선이란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도 아니고 바둑이나 두고 구름을 타고 붕붕 날아다니는 그런 환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매우 구체적인 실존적 존재다. 한 마디로 신선은 몸을 제대로 만든 사람이다. 행공을 통한 피와 땀의 결정체가 바로 신선이다. 혈기도는 나의 주인인 몸을 되찾고, 몸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수련법이다. 수련 과정은 힘들지만, 그에 따르는 결실은 크다. 책에는 혈기도 수련법 이외에도 음식, 호흡법, 오장육부 다스리는 법, 계절별 양생법 등 기존에 잘못 알려진 내용도 담고 있어 건강서로 활용해도 부족함이 없다. 혈기도는 우리 전통의 수련법에 현대의학이론을 접목한 과학적인 수련체계로 30년 동안 수만 명에게 건강을 찾아준 프로그램이다.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에 있는 혈기도 세계연맹본부 도장에서는 이따금씩 뼈와 뇌파와의 관계처럼 수련에 도움이 되는 특강을 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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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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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저, 박성관 옮김, 문학동네, 2016

 

일본의 대표 지성으로 꼽히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분야를 불문한, 방대하고 깊이 있는 학식으로 의 거인으로 불린다.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알려진 것처럼 건물 전체를 서가로 꾸며 20만 권에 달하는 책을 보관하고 있는 그의 고양이 빌딩은 도쿄의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기쿠치 간 상, 시바 료타로 상을 받으며 엄청나게 많은 책을 썼지만 책벌레들이라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을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할 것이다. 신작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저자가 자신의 고양이 빌딩서재를 완전 해부해 보여주며 책이란 무엇인가, 독서란 무엇인가? 에 대해 친절하면서도 심층적인 답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 장을 펼치면 우선 항공모함 배치도를 닮은 고양이 빌딩 전도가 나타나고 곧이어 각 층의 서가와 서가 사이의 통로에 쌓인 책 군단의 모습이 서서히 위용을 드러낸다.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그 방대한 양에 압도당하는 것은 물론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저자의 박람강기한 지적편력에 기가 죽지 않을 수 없다. 문학, 철학, 예술, 과학은 물론이고 빨간책이라고 불리는 일본 춘화, 중국 방중술, 러시아와 중국 공산당 역사 등 저자의 촉수가 뻗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가 111쪽에서 128쪽에 이르는 부분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나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의 정도가 안이하다는 데 놀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부 1,2세대의 낡은 유형의 핵발전소라서 생긴 것이고, 인간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것은 후쿠시마처럼 구형 핵발전소 정도라는 것이다. 요컨대 나머지 대부분 원전은 안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는 원전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학자나 지식인 그룹이 논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 중차대한 변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 사회의 침묵과 무관심이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소수의 목소리라면 모를까, 대부분 일본 지식인들의 공통된 입장이라면 이는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독서광이라면 부러운 찬탄과 좌절의 한숨을 섞어가며 읽고 보게 될 책이 틀림없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어디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하긴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도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가 있어야 할 곳은 책을 좋아하는 바로 당신의 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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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
김남일 지음 / 워치북스(WATCHBOOKS)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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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

김남일 저 | 워치북스 | 2017

 

마을이 미래다

 

외국 속담에 아이 하나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사람 모두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마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공동체 개념을 아우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와 농촌이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압축 성장을 통해 큰 변화를 겪었다. 도시는 여러 가지 생활편의 인프라가 들어서고 외지 인구가 많이 유입됐지만 도심 마을공동체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농촌지역은 젊은 인구의 유출로 고령화공동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인 공동체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마을 하나가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도심은 도심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각각의 문제 원인과 특성에 맞춘 차별화된 마을공동체 살리기가 절실해졌다.

마을, 예술을 이야기하다마을 만들기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과 구체적인 처방을 담은 교과서이자 참고서이다. ‘마을 만들기란 주민 스스로 또는 주체적으로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주민들이 생각을 나누고 함께 결정한 일을 주체적으로 이뤄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공직생활을 중앙 부처에서 시작했지만 지역 발전에 헌신하고자 경북도청에 자원하여 경상북도 지방공무원으로 일했다.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서 경험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탁월하고 차별화된 글로컬화한 정책을 펼쳤다. 행정도 예술이라는 신념을 갖고, 문화를 통한 지역산업 활성화에 남다른 소신을 갖고 일하다 보니 돈키호테 지방공무원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특별한 공무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마을 만들기 전문가나 마을활동가는 아니다. 전체 공직생활 중 20년을 고향인 경상북도에 몸담고 백두대간, 낙동강, 동해안이 품고 있는 자연마을에서 대대로 터 잡고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기 위해 뛰어 다녔다. 그러나 우리 농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저자는 죽은 보조금이 농촌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을 만들기 사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을에 수십억 원 규모의 개발사업 자금이 난데없이 지원되는 사례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또 지방자치 선거를 비롯한 각종 조합장 선거가 이권처럼 작동하고, 그 잇속을 위해 토건 위주의 개발이 난무하는 경우도 많다. 갈수록 갈등과 반목이 더해지고, 주민들의 행정의존도는 높아지는데 자치의식은 낮아지는 문제가 심각하다. 시골마을에는 이제 사람이 없고 제대로 된 마을 리더는 더욱이 없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어른은 없고 마을정치만 판치는 게 우리 농촌마을의 현실이다.

 

저자는 삼촌三村마을에 주목하고 있다. 삼촌마을이란 생태환경과 마을의 인문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산촌강촌어촌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백두대간의 산촌마을과 낙동강의 강촌마을, 동해안의 어촌마을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오랫동안 전해오는 인문 스토리 마을자원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자원들에 예술성을 보태 창의적이고도 차별화된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지속시킬 수 있느냐이다.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적, 관주도적, 토목 지향적 마을 만들기 전략은 더 이상 안 통한다. 삼촌마을을 살리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의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을 바탕으로 계획 수립 및 집행 과정부터 마을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다. 즉 삼촌마을의 경관과 인문자원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마을주민과 지역전문가가 비전 제시형 기획가(Planner)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마을주민만 가지고는 안 된다. 지역 안의 관점을 이해하며 지역 밖의 시선을 함께 가지고 있는 열정적인 외부전문가가 필요하다. 지역을 사랑하는 예술가와 마을활동가 등 전문가 그룹은 예술 지향형 디자이너(Designer)가 돼야 하고, 지방공무원과 지역정치인은 기반 지원형 정원사(Gardner)가 되어 함께 어우러져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다. 저자는 마을공동체는 경관자원(green), 인문자원(human), 예술감각(artistic)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발전가능하다고 말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5단계 실행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1단계 비우기, 2단계 배우기, 3단계 상상하기, 4단계 디자인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5단계 나누기이다. 특히 비우고, 배우고, 상상하고 난 다음, 예술적으로(Artistic) 디자인하기는 마을 만들기에서 제일 중요한 단계다. Art는 마을을 변화시키고, 마을은 다시 Art를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의 마을 만들기론은 창조적인 경지를 뛰어넘어 혁명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농촌의 마을 만들기는 농림부가 아니라 문체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을문화를 예술적으로 디자인하고 산업화하려면 문체부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과 예술가가 앞장서고 지방정부, 기업, NGO 등의 거버넌스를 꾸려 창의적인 마을을 만들기 위한 휴먼웨어적인 접근방식으로 마을 만들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저자는 한 발 더 나가 자기 고장의 인문자원을 찾아내고 지역적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하기 위해 지역학과 마을학을 배우고 마을아카이브를 쌓고 마을대학을 세우자고 말한다. 일본의 공민관公民館제도나 일본의 마을 만들기인 마치즈쿠리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지역공동체 활성화사업을 가장 먼저 시행한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 등 국내외 다양한 사례도 사뭇 흥미롭다.

 

그런데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지방행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저자가 일선에서 만났던 미친美親(?) 공무원들에 대한 소개가 눈길을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저자를 따라갈 미친 공무원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을 만들기는 마을에 희망을 가진 미친 사람들의 희망 만들기이다. 마을의 공동체 의식과 한국적 정서가 살아 있고, 열정에 찬 공무원이 있는 한 우리네 마을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이 책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 쓴 여타 이론서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저자가 마을현장을 두발로 밟으며 사람을 만나 소통하며 고민한 흔적이 삼촌마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로 역력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선공무원을 비롯해 마을리더, 마을활동가, 마을꾼 등 마을 만들기에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삼촌마을에 어떤 식으로든 빚을 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이다. 삼촌마을의 정원사가 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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