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내는 것이 삶이다

 

디어 라이프

앨리스 먼로 지,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2013 

 

2013년 겨울, 또 한 명의 먼로가 내 삶에 들어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문학상 작가로 평생 단편소설을 써온 캐나다 여류작가인 엘리스 먼로를 선정하면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단편은 우리 인생의 독립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안정적인 형식미 속에 담아내야 하기에 직관과 섬세함이 요구되는 장르다. 먼로 역시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단편이 장편소설을 쓰기까지의 습작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예술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엘리스 먼로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는 발효를 마치고 막 오븐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배인 빵반죽 같은 소설이다. 단어들이 넘치지도 덜하지도 않게 어울리며 문장이 담백하면서도 팽팽한 긴장을 놓지 않는다. 여든이 넘은 노작가가 쓴 글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노회한 시선이나 인생의 지혜를 설파하려는 시도를 찾기 힘들다. 배경도 주로 캐나다의 작은 타운을 벗어나지 않고, 다루는 인물은 평범하고 벌어지는 사건도 일상적인 소소한 것들이다. 작품마다 가출, 불륜, 배신, 죽음 같은 사건이 하나씩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감정의 파고나 극적인 동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심히 지나쳐 읽다가 앞쪽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읽는 수고를 해야 할 때도 많다. 대신 미세한 사건이나 사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런 작은 일들이 삶에 어떤 진동과 균열을 내며 우리 삶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를 보여준다.

 

<자갈>의 주인공은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그 일이 있고도 한참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을 떠올리지만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억은 제 자리에 앉지 못하고 머리 속 어딘가를 여전히 서성거릴 뿐이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 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이제, 안녕.(142)

 

올 한 해,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상실은 상심으로 이어졌고 책 안에서 모든 걸 찾고 해결하려던 평소 방법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금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불안하고 무력했던 현실의 남루한 습관을 뒤로 하고 한 달 동안 인도와 네팔로 여행을 다녀왔다. 꿈은 도망가지 않는데 늘 도망치는 건 자신이었다는 걸 아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렇게 살아온 삶이 온통 못 미덥고 불안해 어쩔 줄을 모르던 올 겨울에 나를 찾아온 것이 앨리스 먼로였다. 먼로는 우리 삶이 그래서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야 하는, 온통 비밀로 둘러싸여 있는 것임을 말해 주었다. 그저 지키고 남아있고 바라보고 돌아오고 기다리는 것들로 인생이 채워져 있다며, 너무 많이 흔들리지 말라고 낮게 속삭인다.

 

시인의 시에 대해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히.

그가 나를 팔로 감싸안고 의자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싸울 여력이 없어.” 그가 말했다.

참으로 그렇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늙었는지 잊고 있었다. (330)

 

디어 라이프에 담긴 총 열 편의 단편소설과 네 편의 자전적 이야기는 손목으로 쓴 글이 아니다. 먼로가 지나온 여든 두 해를 온 몸으로 복기하며 팔꿈치로 써 내려간 소설이다. 어떤 책들은 이렇게 삶 속으로 무찔러 들어와 균열을 내곤 한다.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매번 세수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먼로는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디어 라이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416) 난 그 아래 여백에 이렇게 적어 넣었다. “용서하라, 사랑하려면! 사랑하라, 용서하려면! (There is no love without forgiveness, and there is no forgiveness without love)”지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지우지 못한 그 사람에게 올 해가 가기전에 전화를 걸어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의 안타까움성
디미트리 베르휠스트 지음, 배수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수컷들의 웃픈 세상사는 이야기

 

사물의 안타까움성

디미트리 베르휠스트 지, 배수아 옮김, 열린책들, 2011

 

지난 월요일, 매주 나가는 정기모임을 그만 깜빡 잊을 정도로 한 책에 푹 빠져 버렸다. 5분 단위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집으로 장소를 옮겨서야 맘놓고 뒹굴어 가며 포복절도하며 읽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 뒤쪽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워 수시로 남은 쪽의 두께를 재며 읽은 책이다. 맥주병 위에 사람얼굴을 얹은 표지부터 인상적인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장편소설 사물의 안타까움성이다.

 

육담肉談으로 써내려 간 블랙코미디 같은 야성적인 이 낯선 벨기에 소설에 누군가는 "자전소설이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라는 헌사를 붙이면서, 거칠게 압축하여 젊은 수컷이 기록한 진정한 수컷들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열세 살 소년 디미트리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 자전적 성장소설은, 무위도식하며 술로만 일관하는 막장 인생을 살면서도 ''처럼 군림하며 거칠 것 없이 야생마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와 삼촌 세대의 폭죽같은 인생에 대한 따뜻한 회상이다.

 

쥐꼬리만 한 할머니의 연금을 파먹으며 술과 여자에만 탐닉하는 4형제가 있다.(영화로도 만들어진 천명관 소설 고령화 가족이 얼핏 떠오른다) 그나마 우편배달부라는 정규직을 가진 아버지를 제외한 3명의 룸펜 삼촌들은 루저 중의 루저이고 더 갈 곳 없는 하층 인생들이다. 그러나 디미트리 눈에는 생강빛 수염을 가진 제임스 본드의 더 멋진 이복동생만큼이나 영웅이며 전설같은 남자들로 비친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재능(이들에게 이런게 있긴한지 의심스럽긴 하지만)을 좋아하는 술과 도자기 몸매를 가진 여자들에게 바치는 데만 온통 써버리는 벨기에인 조르바같은 존재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미래가 없는 이들 가족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박하고 식물적인 삶 대신에, 도시에서 오토바이 엔진소리같은 동물적인 삶을 선택한다. 가난에 기죽지 않고 일상에 폭죽을 쏘아올리며, 매일매일을 불꽃놀이 같은 축제의 삶으로 바꾼다. 그야말로 도시에서 유목하고, 세속에서 출가하는 삶의 귀재들이다.

 

작가는 곳곳에서 존 레논이 존경한 미국 싱어송 라이터인 로이 오빈슨Roy Orbison에 대한 오마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법원 집행관에게 TV를 압류당한 뒤 그날 밤 예정된 로이 오비슨의 컴백 공연 중계를 보기 위해 마을에 살고 있는 이란 이민자의 집에 맥주 한 박스를 들고 쳐들어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난장亂場이 펼쳐지는 4오직 외로운 이들만이는 압권이다. (난 로이 오빈슨을 이정재가 지금보다 더 젊은 남자였던 20여년전 출연했던 영화 젊은 남자에서 처음 알았다. 그의 노래 꿈속에서In Dreams’와 함께) 아버지가 갓 태어난 디미트리를 자전거 앞에 싣고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을 돌아다니며 믿기 힘들 정도의 비상식적인 탄생 축하를 벌이는 대목(254-259) 역시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읽기에는 아까운 장면 이다. 누군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어떻게 눈물과 정액 중 하나만을 골라 바칠 수 있겠냐고 한것처럼, 이 소설 역시 지뢰처럼 곳곳에 묻어 놓은 눈물과 웃음을 골라 딛는 것은 불가능하다.

웃음인가 하면 금새 눈물인 이런 괴물같은 소설을 옮긴이가 누군가 들여다 봤더니 배수아 그녀다. 1990년대 한국소설의 새로운 문법을 개척했다고 알려진, '배수아 소설은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봐도 알 수 있다'는 정평을 받는 그녀가 자신의 문체를 숨기고 능청맞게 풀어냈다. 예컨대 이런 대목에서는 밑줄을 긋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어느 정도의 불행을 자기 운명에 허용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불행에 버리고 말지 뭐. 그게 더 쉬우니까.”(243) “시인 한스 안드레우스를 떠올렸다. 그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다음과 같은 말로 아내를 임종의 침상에서 물러가게 했다고 한다. <이만하면 됐으니까 가줘. 이제부터는 나 혼자서 치러야 하는 일이니까>”(270) 또 남자들만의 말 없는 교류가 이루어지는, 긴장과 애정이 씨줄과 날줄처럼 묘하게 겹치는 순간에 대한 묘사도 있다. “지금 우리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암묵적인 경쟁은 모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는 원초적인 일이다. 누가 강자인지 가려내고야 말겠다는 이 끈질진 승부는 결국 나이에 의해서 판가름 나는 것이 보통이다. 아버지들은 아들의 손에 친부 살해의 무기를 직접 쥐여 주게 된다. 그러면서 아들이 자신을 능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버지를 무찌르기 위해 주먹 부대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그의 자식이 어느덧 이렇게 늠름한 사내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 주어 만족감을 안겨 주기만 하면 그것은 곧 그 자신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고통스러운 깨달음과 동격이 되니 말이다.”(228-229)

 

전세계 애주가들에게 복음같은 이 소설은 갓 끓여 내온 커피와 폭신한 케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맥주를 병째 들이키며 읽는 게 제격이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사람은 신을 믿고 악마는 아직은 우리를 믿는한 가끔은 마셔줘야 한다는 걸. 금주협회(정말로 이런 단체가 있다면)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이 소설의 절판을 위해 써야 할지 모른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아쉬운대로 냉장고에 있던 체코 맥주로 대신했는데, 마지막 318쪽 읽기를 마쳤을 때는 필스너가 한 병도 남아있지 않았다. 벨기에 맥주 호가든을 사러 츄리닝 바람으로 슈퍼로 향했다. 눈발이 마지막 남은 은행잎을 위협하던 지난 월요일 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 1인가구 시대를 읽어라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도 혼자 살지 모른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안진이 옮김, 더퀘스트, 2013

 

구약성서 첫머리를 보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루에 한 가지씩 만들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담을 만드시고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 그래서 하느님은 이브를 만드셨고, 아담은 더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혼자살기’가 인류의 새로운 실험으로 등장했다. 1인가구는 고령화와 더불어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현대사회의 현상 중 하나다. 미국 성인들의 50퍼센트 이상이 독신이며 7명 중 1명이 혼자 산다. 미국에서는 전체 가구의 28퍼센트 정도가 1인가구고, 스웨덴에서는 이 수치가 47퍼센트로 뛰어 오른다. 스웨덴 스톡홀롬에서는 주거 시설의 60퍼센트를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가구 비중이 이미 25퍼센트를 돌파했으며, 2035년이면 34퍼센트에 이를 전망이다. 사실상 1인가구 급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베이비붐 이후 가장 큰 인구 변동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혼자살기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적게 논의 되고 가장 이해가 부족한 주제 중 하나다. 혼자살기의 급증은 사회적 생활양식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혼자 살기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도시를 형성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우리가 성인이 되는 방식과 나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일으킨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저술가인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는 혼자 사는 것이 새로운 표준이 된 세상을 보여준다. 대학교육과 취업을 위해 세상으로 나온 20대 젊은이들, 자유로운 사생활 보장을 위해 기꺼이 더 비싼 집세를 지불하는 직장인들, 쉽게 아무하고나 결혼하지 않고 자기 경력과 생활방식을 고수하려는 청장년 독신자들, 낭만적인 사랑이나 축복받은 결혼이 행복과 안정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환상을 경험을 통해 탈출한 이혼한 남녀들, 친구 또는 자녀와 함께 살기보다 혼자 사는 편을 택하는 노인들이 그들이다. 책은 뜻밖의 통계와 1차 자료를 제시하고 300명이 넘는 혼자 사는 사람들과의 생생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전통적 상식과 고정관념에 반박한다. 혼자 살기가 늘어가는 이유와 혼자 살기가 현대 도시인들의 경험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또 혼자 살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혼자 살 것인지,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함께 제시한다. 혼자 살기에 대한 편견들을 해체하고, 장점을 재조명하며, 그 어려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1인가구가 증가하는 것에 대하여 여성의 지위 상승, 통신혁명, 대도시의 형성, 엄청난 수명연장(고령화)이라는 네 가지 사회 변동을 이유로 삼는다. 20세기 중반 이후에 일어난 이러한 네 가지 거대한 사회적 변동은 개인이 활약하기에 좋은 여건을 창출했고, 이들 요인들이 서로 맞물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1인가구의 비약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사는 것을 가장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길까? 혼자 살기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혜택은 바로 고독을 되찾을 시간과 공간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혼자 살기는 우리의 자아 발견을 도와주고 의미와 목적을 찾는 일을 도와준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혼자 살기야 말로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대상인 셈이다. 책에는 혼자 살면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사례와 증언이 가득하다. 단, 여기서 혼자 사는 것과 외롭게 사는 것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며,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에 있기를 좋아한다는 뜻도 아니다. 사회적 고립과 신기술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오히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자주 친구를 찾고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넓고 다양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낯선 사람들과 엮이는 공적인 자리에 자주 나갔고, 자원봉사 단체에 참여하는 비율도 더 높았다. 독신자들과 혼자 사는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들보다 술집이나 댄스클럽에 가는 횟수가 2배 많았다. 그들은 외식을 더 자주 하고, 음악이나 미술 강좌를 더 많이 듣고, 공적인 행사에 더 자주 참석하고, 친구들과 쇼핑도 더 자주 다녔다. 독신이지만 누군가와 동거하는 사람들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도 있다.

 

인류가 집단생활을 해온 지는 20만 년에 달하는 데 반해 수많은 사람이 혼자 살기에 도전한 기간은 50년에서 6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인류의 혼자 살기 실험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혼자 살기가 우리의 삶에, 가족과 공동체와 도시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지구상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으며, 부와 안전에 대한 염려가 해소될 경우 앞으로 혼자 살려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여자들은 더 이상 아버지 집에서 살다가 남편 집으로 들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 노인들 역시 그전과 다른 생활방식을 배워서라도 혼자 사는 노년을 택한다. 이렇게 1인가구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상관없이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는 현실이다. 궁극적인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혼자 사느냐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산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우리 중 누구라도 언젠가 혼자 살게 될 수 있으며,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이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남는다. 혼자 살기를 사회적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1인가구의 급증이 다양한 삶의 형태와 공존하는 사회제도 및 제품과 서비스 개발 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니 가정적 결합을 촉진하는 무익한 캠페인에 에너지를 쏟을게 아니라, 이미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잘살도록 돕는 데 정책을 집중하고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혼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기업 경영자들이 혼자 사는 사람들의 수요에 맞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려고 애쓰는 여러 노력들이 바로 그것이다. 유비쿼터스 미디어와 초연결성hyper-connectivity의 세계에서 혼자 살기는 새로운 인생을 창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1인가구의 생활상과 욕망과 미래가 그려내는 지형도가 곧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다. 지금 이들이 사는 세상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라니 허투루 읽어 넘겨서는 안 될 책이 분명하다.-끝- (기획회의 343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맹신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중운동의 본질을 파헤친다

  『맹신자들』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궁리, 2011
 

<맹신자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기성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한 요즘 읽기에 맞춤한 고전이다. 저자인 에릭 호퍼는 이력이 독특한 미국의 사회철학자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15세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뒤 미친듯이 독서에 몰두한 에릭 호퍼는 18세때부터는 금 시굴자, 레스토랑 웨이터, 떠돌이 노동자 등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부두 노동자로 일하면서 집필한 첫 번째 저서가 바로 이 책이다.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황페화된 직후에 나온 이 책은 집단 동일시에 관한 심리 연구서로 그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 주었다.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과 독학을 통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10여권의 사회철학서를 남겼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레이건 대통령은 그에게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호퍼는 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모두 벗어던지고 국가・교회・정당 따위의 집단에 광적으로 매달리는가?에 의문을 갖고 종교운동, 사회혁명운동, 민족운동 등 여러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속성을 밝히기 위한 시도를 했다. 모든 운동이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들의 본질을 이루는 특징 가운데 가족처럼 닮은 점이 있다는 뜻이다. 대중운동은 어떤 것이 되었건 어떤 교조를 주창하건 어떤 계획을 제시하건 광신과 열광, 간절한 희망, 증오와 편협을 낳는다. 또 신빈곤층이 늘면 대중운동이 폭발하기 마련인데, 이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지식인의 몫이다. 지식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여건이 무르익어도 대중운동은 일어나기 쉽지 않다. 비판적 지식인이 끈질기게 웃음거리로 만들며 비난을 퍼부으면 기존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초기 기독교에서 현대의 공산주의, 나치즘, 민족주의까지를 아우르며 광신 현상과 대중운동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이 책에는 개인이 광신자가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는데, 이후 종교적・이념적 근본주의자, 테러리스트, 자살폭탄자의 심리를 규명한 고전이 되었는데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논의거리를 던지고 있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강신주 지음, 동녘, 2011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의 저자 강신주씨는 원래 노장사상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을 중심으로 한 대중 강연으로 이름난 철학자다.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접촉해야 관계가 형성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곳에서 활발한 대중강연을 해왔다. 삶의 고민과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철학 강의를 찾아 듣는 사람들과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나누고 공감한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들의 목마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최근 <철학 대 철학> <철학이 필요한 시간>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 인문서 여러권을 비슷한 시기에 쏟아냈는데,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된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의 후속편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 제목처럼 우리 시인과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사유를 탐구하며 철학을 통해 앎의 즐거움을 말했다면, 신간은 앎의 괴로움을 말한다.우리 시인과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사유를 탐구한 책이라면, 이번 책은 앎의 괴로움을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을 접목시켜 철학적으로 시를 읽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이성복의 시를 읽으면서 그 속에 담긴 히스테리와 강박증의 징후를 자크 라캉의 사유와 연결시켜 풀어내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최승호와 게오르크 짐멜, 문정희와 뤼스 이리가레이, 한용운과 카를 바르트, 김정환과 카를 마르크스, 백석과 나카무라 유지로, 함민복과 기 드보르 등 14명의 시인과 14명의 철학자를 일대일로 대응시켰다. 다루는 주제도 사랑, 돈, 타자, 자유, 역사, 글쓰기, 감각 등 다양하다.

저자는 우리 삶이 권력이나 자본, 관습이 강요하는 세계에 갇혀있다고 지적하며 자기만의 사유방식을 찾는 괴로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즐거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최승호의 시 '자동판매기'에서 오렌지주스를 마시려던 시의 화자는 무심코 커피 버튼을 누르고 만다. 저자는 현대인이 흔히 겪는 이 장면을 '습관의 무서움'이라 일컬으며 짐멜의 문화론과 연결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문정희의 시 '유방'을 여성의 몸과 감수성의 차이를 말한 뤼스 이리가레이의 사유에, 채호기의 시 '애인이 애인의 전화를 기다릴 때'를 맥루한의 미디어론에 연결시킨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통해 난해한 철학 개념을 문학 작품을 통해 쉬운 대중언어로 둔갑시킨다. 철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얼핏보면 쓸모없는 것 같지만 철학은 내가 나중에 알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힘이 있으며,시인이나 철학자들은 자기 몸에 맞는 자기만의 옷을 만들어 입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특히 김수영은 단순히 시인이기보다 인문정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라며, 우리에게 김수영 이라는 시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행운이라고 노골적인 헌사를 보낸다. 김수영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거움이 배가 될 대목이다. 보너스처럼 14개의 매 chapter마다 달려있는 ‘더 읽어볼 책들’ 역시 반갑기 그지없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것만으로도 본전은 이미 뽑았을터, 제목은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이지만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기 그지없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