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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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 <적절한 균형>을 알게 된 건 어느 블로그에서였다. 그 블로그에서 읽은 소설에 대한 극찬은 내가 이 책에 궁금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이름 그리고 만만치 않은 책 두께. 하지만 글 말미에 있던 꼭 읽어보라는 추천은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없으면 결코 쓰지 못하는 말이다. 대체 어느 정도기에 이렇게 입소문이 대단한건지  작년에 읽은 <6인의 용의자>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로 안해 생긴 인도소설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솟아나는 듯 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적절한 군형>을 읽는 데에 꼬박 5일이 걸렸다. 8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께 때문은 아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틀정도 만에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건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 졌기 때문에, 또 자꾸만 한숨이 입술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책 읽기를 멈추고 다른 즐거운 일을 했다. 괜히 인터넷 기사를 뒤적거리고 만화책도 보고. 책 표지 뒤에 있던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플 것이다" 라는 글은 허언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시간 동안 가슴이 여러번 찢어졌다. 이렇게 비참하고 괴로움만 가득한 내용인데 또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수가.


소설은 1975-1977년 사이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시바와 옴, 디나와 마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작가가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인지 딱히 주인공을 누구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저 네 명을 큰 줄기로 하는 건 틀림 없다. 카스트 계급 중 낮은 계급에 속하는, 가죽세공일을 하는 차마르 카스트 소속 이시바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동생과 함께 재봉일을 배우게 된다. 그 일이 성공해 동생 나라얀은 고향에 돌아가지만 고위 카스트 계급에게 살해당하고 이시바와 나라얀의 아들 옴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몰살 당하고 만다. 그 후, 재봉일로 돈을 벌고자 도시로 나간 이시바와 옴은 고생 끝에 디나를 만나 고정적인 일을 맡게 되고 디나의 집에 하숙생인 마넥이 찾아 오면서 나이도 성별도 성장배경도 다른 네 사람 사이에 점차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렇게만 끝났다면 읽으면서 가슴이 찢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히 이시바와 옴에게는 끊임없는 불행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행복한 가운데서도 언제 또 불행한 일들이 찾아 올지 불안했다.


삶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 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P. 633


그들의 삶에 딱 맞는 글귀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집주인이자 고용주인 디나가 재봉사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 그들이 가족처럼 변해 갈때엔 - 그 기간이 잠깐일지라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시바와 옴, 디나, 마넥이 비로소 같은 집에 살게 되어 함께 요리를 만들거나 함께 고양이를 돌보는 이야기는 비록 그들은 서로에 대해 낱낱이 모를지라도 앞으로는 다를 거라는 희망이 엿보인 대목이기도 했다. 또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독자로선 세세히 알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된다는 걸 알기에 뿌듯해지기도 했다.


이 책 제목인 <적절한 균형>은 무엇일까? 이 책엔 적절하기엔 한참 모자라는 행복과 적절하기엔 넘치는 불행들이 존재한다. 큰 권럭 앞에 모든 것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사람들, 가난의 고통 , 그들을 둘러싼 부조리한 상황들. 작가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것이나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만 함을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책을 다 읽고서도 그들 네 사람이 함께 요리를 하고 고양이를 키웠던 부분을 돌아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만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계속 행복하게 가족처럼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 책은 그냥 괜찮은 소설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꼭 읽으란 말이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와닿을진 모르겠다. 읽고나서의 괴로움은 있을 망정 이 책이 훌륭한 책임은 틀림없다. 또 거대한 권력 앞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계속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책이 될 것도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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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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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고3이었을 때는 요즘처럼 인터넷 사용이 그리 활발하지 못할 때였다. 지금이야 개봉영화 정보는 검색 몇 개로 얻을 수 있었지만 예전에는 신문광고를 보고 개봉관과 시간을 확인한 뒤에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어느 날, 신문을 휙휙 넘기다 발견한 영화 광고가 내 눈을 확 사로잡았는데 바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리턴>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날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넓은 포스터 공간 중 하필 귀퉁이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이었을까? 아님 쉽게 접하지 못한 일본영화라는 이유였을까? (내가 학생이었을 땐 아직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직전이라 음반과 영화, 애니메이션까지 용산에 가서 구해볼 때였다) 어쨌거나 친구들을 꼬드겨 대학로까지 달려가 본 <키즈리턴>은 대만족이었다. 수험생활에 지쳐있기도 했고 끝없이 정체된 기분이 들 때였다.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다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린 두 주인공이 그렇게 탈출하려했던 학교로 돌아와 예전처럼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일어서려는 그 모습이 자꾸 내 수험생활과 겹쳐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3은 인생고난의 서두에 불과했지만-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키즈리턴>의 주인공 마사루와 신지의 대화는 그 이후로도 내가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날 위로해준 명대사였다.

  <키즈리턴>을 좋아했다 해도 감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영화를 보며 막연하게 아,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좌절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기타노 다케시를 발견한 건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과 <자토이치>를 통해서였다. 무뚝뚝한 인상의 아저씨라는 것이 솔직한 첫인상이었지만 어느 샌가 일본배우하면 떠오르는 일 순위가 되어있었다. (인기 코미디언에서 영화배우로 그 뒤 영화감독으로 전향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성찰하다.

개인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타인의 방에 주인 없이 앉아 있는 낯선 느낌이랄까. 설령 그것이 쓰인 글일지라도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썼다는 이<죽기 위해 사는 법>이라는 책은 1994년 그가 오토바이 사고를 겪은 후에 쓴 자전적 에세이다. 병상에 누워 힘든 재활치료를 받으며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들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글들을 모아놓았다. 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새삼 느꼈다든지 소설처럼 극적인 감동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의 무뚝뚝한 얼굴처럼 하나같이 독한 글들을 뱉어놓았다. 아마 병상에서의 여러 가지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료의 어려움과 홀로 견뎌야하는 고독함, 재기에 대한 불안, 초조함 등이 아니었을까. 독자로선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고 토해낸 그 감정들이 당시 저자의 급박한 상황을 이해하기에 더 좋지 않았나 생각된다. 

 혼자 누워 있다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물며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병상에서는 오죽할까. 책에는 저자가 과거의 자신과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 들어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더 건강해지면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한다. 보통 큰 사고를 겪고 나면 그 원일을 피해야 정상인데 배포가 큰 건지 아님 겁이 없는 건지 걱정할 찰나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사고를 일으키고 잠시 멈추었다가 한동안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평소대로 돌아가면 다시 원래의 빠르기로 달린다. 그것이 삶이고, 다른 방향을 향해 다른 속도로 달리게 되면 그것은 이미 그의 인생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다. p.70

나도 과연 인생의 큰 굴곡 앞에서 저자처럼 생각 할 수 있을까? 완전히 끝내려면 사고를 당한 장소에서 오토바이에 올라 넘어지지 않고 조심히 커브를 도는 것이라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를 두고 따로 애인을 뒀다는 일화나 일부일처제 망국론 같은 글들은 상당히 나와 맞지 않았다. 뭐, 사람이 백이면 성격도 생각도 백일 테니까 이해는 못해도 받아들일 순 있었지만. 또 일본의 현주소에 대해 쓴 글과 연예계에 대한 비판은 그의 독설과 함께 재밌게 읽혔다. 독특한 사상도 한몫했고.

사실 이 책은 인간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참 불친절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포커스> 밀회사진이나 <프라이데이> 습격사건도 나에겐 생소했기 때문이다. 일본 연예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인지 그 일이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지 잘 모르겠다. 간단한 개요라도 있었음 했지만 뭐, 인터넷 검색이 이럴 때 필요하지 언제 필요하겠는가.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기타노 다케시가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가 만들거나 출연한 영화는 그 강렬함 때문인지 한번 보면 다시 찾지 않는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토록 피해 다니던 <피와 뼈>에 도전해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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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음악은 책만큼이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줍니다. 음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힘든데요. 그래서인지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여러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음악을 들을 때 공통된 감정을 느끼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이끌림이 음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번에 개봉할 한국영화 <하모니>도 그렇지요? 진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 구조는 탄탄하지만, 그 매개체로 음악이 없었다면 그 감동은 조금 깎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모니

 <줄거리>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온 정혜. 합창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아이와 특박을 나갈 날을 꿈꾸지만 현행법상 18개월이 된 아이를 입양 보내야하는 처지에 놓이고 마는데.
정혜와 아이는 함께 할 수 있을까? 단 하루를 위해 4년간 준비한 그녀들의 합창공연은 성공할 수 있을지. 교도소 담장 아래 각자의 상처를 안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울려 퍼진다.  

결말만 보자면 뻔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과 함께 울고 웃는 영화는 드물지요. 또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영화기도 하구요. 이번 구정 때 꼭 부모님과 같이 보러가기로 약속했답니다. 
 

 

 밴디트 

<줄거리>

여자죄수 네 명의 탈옥기. 밴디트는 그녀들의 결성한 밴드이름이다. 교화 프로그램중 일환으로 밴드를 결성한 네 명의 여자죄수들. 우발적으로 일어난 탈주에 결코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간다. 경찰의 추적 속에서도 밴디트는 라이브를 하며 점점 인기를 얻게 되는데. 세상과 그녀들, 또 그녀들 서로를 이어주는 건 역시 음악이다. 죽음과 분열의 위기 속에서도 음악은 언제나 그녀들을 위로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몇 년 전 주말 밤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밴디트>. 새벽까지 넋놓고 본 기억이 나네요. 당시 더빙판으로 봐서 유럽영화인지 몰랐다가 최근에 다시보고자 했을 때 알게 되었답니다. 죄수이자 탈옥수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운 네 명의 여자들과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이 정말 좋아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물론 여운이 남는 결말도 좋았지요. 저처럼 뒤늦게 빠져 OST와 DVD구입에 실패한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시스터액트

<줄거리>  

삼류가수인 들로리스는 우연히 암흑가 거물의 범죄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죽음의 위기 속에 경찰에 도움을 청한 들로리스는 보호를 약속받지만 그 장소는 바로 세상과 단절된 수녀원이었다. 엄격한 원장수녀 아래 자유가 없어진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들로리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성가대 지휘봉이 넘겨지게 되는데.  

말이 필요 없는 영화지요. 나온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영화지만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 우피 골드버그의 신화를 만든 영화! 찬송가하면 엄숙하고 조용할거란 편견을 확 날려버린 영화지요. 고요했던 수녀원을 확 바꿔버린 들로리스와 수녀님들도 너무 웃기고 노래도 어찌나 신나던지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 역시 명작은 음악과 함께 오래 남는가 봅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시스터 액트에 나오는 I'm follow him을 듣고 있는데 참 좋네요.

글을 쓰고 생각해보니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이 음악 말고 하나 더 있었네요. 바로 여자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다음에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음악영화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느낌이야 다르겠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 구요? 우리 사이엔 음악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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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 2010-01-2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모니> 또한 예고편이 너무 재미있겠더라고요
오랫만에 극장에서 울수있나? 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ㅎㅎ

그리고 <밴디트>. 제가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아직도 배경음악을 흥얼거리기도 하죠^^

좋은 영화 정보 감사합니다

삶의향기 2010-01-25 11:17   좋아요 0 | URL
하모니 예고만 봐도 눈물이 찔끔나오려고 하더군요.
가족과 함께 볼 영화가 개봉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대오님도 밴디트 재밌게 보셨군요~ 배경음악을 아직 흥얼거리실 정도면 정말 팬이신가봐요^^ 글 쓰고 나서 찾아봤더니 유료음원사이트에 밴디트 음악이 있더라구요. MP3에 옮겨서 뿌듯하게 들으면서 출근했답니다.
 
정치적으로 왜곡된 과학 엿보기
톰 베델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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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 겨우 올라갈 만한 빙하 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북극곰의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사진은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빙하가 녹고 있어 북극곰이 익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나 서식지가 없어진 펭귄들이 멸종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도 같이 들려온다. 극지방에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언론에서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동물들은 이 펭귄과 북극곰이다. 펭귄이나 북극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들의 사진을 싣는 것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사나운 수컷 북극곰이 북극곰 새끼를 죽이는 사진이 어느 샌가 지구 온난화로 먹이가 없어 동족을 잡아먹는 사진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만 요즈음 들어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라는 것이 그 원인이 된 화석연료가 쓰이지 않았던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온 현상이라는 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긍정설과 부정설 중 무엇이 진실이며, 우리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할까?

사실 이 주장들 중 어떤 것을 딱 집어 믿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 같은 일반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전문가들의 주장도 언론이라는 여과지에 걸러 나와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과학 엿보기>란 책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에 반대편에 서있다. 지구 온난화, 핵, 방사능, DDT, 다이옥신 등 우리에게 유해하다고 알려진 것들과 황우석 박사 사태로 유명해진 줄기세포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들을 모두 뒤엎고 있다. 저자인 톰 베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과학적 상식들은 정치화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돈과 명성을 쫓는 과학자와 연구의 자금제공원인 정부와 기업들(무언가 목적이 있는)이 만났을 때 과학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몇 가지 살펴보자면, 우선 핵발전소를 들 수 있다. 핵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 가장 강력한 살상무기로 알려져 있다. 내가 핵에 대해 알게 된 건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고나서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즐기던 사람들이 강력한 빛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장면은 어린 나에게 핵의 위험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계기였다. 핵은 존재해서도, 만들어내서도 안 되는 살상무기라는 것이 지금까지 핵에 대해 변하지 않는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은 조금 달랐다. 핵은 단연코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핵이 위험물질로 분류된 데에는 영화와 언론의 힘이 가장 컸고 핵에 관한한 가장 유명한 사고인 체르노빌 핵반응로 폭발은 건물 내부에서만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 외부에서의 사망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핵발전소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석탄발전소에 비하면 없거나 현저히 낮았다. 미 해군이 핵 동력을 계속 사용하면서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고 사병들의 발병사례도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즉,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에너지가 핵무기와 혼동되면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다음으론 에이즈가 있다. 에이즈가 우리에게 알려진 지는 채 몇 십 년 되지 않았지만 체감으로는 암보다도 무서운 질병처럼 느껴진다. 둘 다 정복할 수 없는 질병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로 에이즈가 ‘전염’된다는 사실, 아프리카에 수 백 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존재한다는 언론보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 검사장비가 미미한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환자를 구별해내기 위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었는데 그 기준엔 HIV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서구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기침, 설사, 발열, 체중감소 등 간단한 증세만으로 아프리카에서는 하룻밤 새에 수 백 만 명이 에이즈 환자로 구분되었다. 병원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의 증세가 그러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확하지도 않고 적용될 수도 없는 정의로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가득한 죽음의 나라로 묘사되었다. 서구 특유의 우위에 선 관점으로 아프리카의 ‘성관계’나 ‘미신’, ‘사회적 태도’ 등을 꾸짖는 칼럼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추정한 만큼의 환자들도 사망자들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재앙을 겪고 있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아프리카의 인구수는 늘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를 뻥튀기한 자들이 감추려한 사실이 무엇인지도 언론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망선고가 아닌 깨끗한 물과 위생체계의 개선일 테니 말이다.

그 외에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호메로스 현상이나 다윈의 진화론 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 온난화의 하키스틱이론 등을 새로이 알게 되어 머리가 뿌듯이 차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엔 과학을 다루는 책이라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문체에 섞여 나오는 재치까지 종종 등장해 과학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파오는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에서는 대중을 통제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음모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조작과 통제를 일삼는 무리들이 있다는 건 믿는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린다. 가장 효율적인 수단, 공포심을 통해서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책에서 말하는 사실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 내게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또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속 내용을 성급히 판단한 것에 대한 반성의 기회도 되었다. 하나의 주장만을 맹신한다면 자연스레 우리의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아마 다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다양한 관점에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장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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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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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엔 동네마다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는 가게가 여럿 있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있으니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신작비디오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수시로 비디오가게에 가서 확인하고 기다려야했다.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도 여러 번, 며칠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가게 주인과 친분을 쌓는 것은 필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빌려온 비디오테이프가 보는 도중 기계에 의해 씹힘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잘못하면 끊어질 수도 있어 자칫하면 비디오테이프 값을 물어줘야 할 상황까지 갈 때가 있었다. 잘 돌아가다가도 필름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정지해버리는 일이 그때 나에게는 참 무서운 일이었다. 그 날도 그랬다. 언니와 비디오를 감상하던 중 어김없이 필름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멈춰버렸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봐도 테이프는 반만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난감한 상황에서 언니가 드라이버를 들고 나타났다. 아예 기계를 뜯어내서 테이프를 꺼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뜯어낸 기계는 참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테이프가 어떻게 재생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지만 기계 뚜껑을 열어내자 신기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계 뚜껑을 열어둔 채 비디오를 재생하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반짝이는 은색 원형모양의 부속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은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때 열어본 비디오 내부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 책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의 주인공 윌리엄 캄쾀바의 호기심도 처음엔 소형 라디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캄쾀바는 아프리카의 말라위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추수를 막 끝내고 몇 개월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만 그 시기가 끝나면 다음 추수 때까지 굶주림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농작물을 망치게 되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나라, 하지만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그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나라다. 캄쾀바는 열 세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형제 중 유일한 남자아이라 새벽에 나가 밭일도 돕고 학교도 다닌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지만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도서관에서 <에너지 이용>이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캄쾀바의 인생은 바뀌어버렸다. 

말라위는 전기를 생산하기 어려운 나라다. 말라위 인구의 겨우 2퍼센트만이 전기를 사용하지만 그마저도 비싸고 단전의 위험이 있어 부자라도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해가지면 하던 일을 내려놔야 하고 저녁 일곱 시 밖에 안됐어도 잠자리에 들어야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전기가 있다면?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른들도 밤까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전기가 생산된다면, 땔감을 하느라 나무가 베어져 매년 홍수의 위험이 있던 숲이 다시 나무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캄쾀바의 희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책 한권에 의지해야 했고 재료 살 돈이 없어 발품을 팔아 버려진 고물을 모아야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 쓰레기장을 뒤지고 다니며 괴상한 것을 만드는 캄쾀바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풍차를 만들어냈다. 주위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고 마침내 캄쾀바의 집에도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중퇴 소년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참 창피하게 느껴졌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던 전기나 물, 음식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또 한 소년이 기적을 만들어 주위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전 세계를 감동시킬 때 나는 나 자신이라도 바꾼 적이 있었을까하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캄쾀바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많은 나라들을 다니며 연설을 한다고 한다. 그가 해낸 일로 인해 가족들은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고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친구에게도 보답했다고도 한다. 환경에 관계없이 재능 있는 사람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그 재능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고 실행해 나간 캄쾀바가 대견하다. 또 왜? 라는 물음을 갖고 결과를 얻으려 노력할 때 답이라는 보상이 찾아온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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