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싱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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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솔직히 청소년 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나 <꼬마 흡혈귀 시리즈>, 한국 아동 소설인 <장수골 만세> <나의 마니또> 등에 빠져 있었지만 조금 크고 나서는 어른들이 읽는 책들이 궁금했었나 보다. 서점에 가서도 베스트셀러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당시에 이해하지 못할 책들을 사오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진짜 청소년 문학을 읽은 건 어른이 되고나서 부터였다. 읽으면서 예전의 일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내가 항상 놀라는 건 청소년 문학의 작가들은 어떻게 어른이면서도 아이들의 세계를 이렇게 잘 표현하고 세심하게 펼쳐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암울한 미래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한다.

이번에 읽은 <싱커>라는 소설은 창비 출판사에서 주최한 <창비 청소년 문학상>의 세 번째 수상작이다. 첫 번째 수상작인 <완득이>만 읽어 보았지만 참 즐겁게 읽었었기에 이번 수상작도 기대가 됐다. 거기다가 미래형 S.F.라니 구미가 당겼다.
읽기 전 보도 자료에 의하면 이 소설은 아바타가 개봉되기 전에 이미 심사위원들의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만일 아바타가 먼저 개봉했다면 오해를 살 뻔 했다. 이 소설과 아바타가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생명의 존엄성,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다룬 다른 작품들이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들은 비교를 피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싱커>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조화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때는 미래, 2060년의 제3차 세계대전과 2063년 인류를 공격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몰살지경까지 몰리고 만다. 마침내 인류는 지상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시안이라는 거대 지하도시에서 살아간다. 그 후로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 책의 주인공인 미마는 스마트 약을 구입하기 위해  메이징 타운이라는 암거래 시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난 쿠게오에게 미마가 신아마존에서 가져왔다는 물고기와 싱커라는 게임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게임의 테스터로서 미마는 친구인 부건과 다홉과 함께 신아마존의 동물들에게 접속하여 그들의 감정과 행동들을 습득하고 동조해 나간다. 게임은 널리 퍼지고 접속하는 싱커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여태껏 나고 자라왔던 시안 뿐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해서도 눈 뜨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막으려는 바이오옥토퍼스라는 회사가 게임에 개입하고 아이들이 신아마존을 지키려 대항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책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 놀랍도록 독창적이고 세세하게 시안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이 부러울 정도로. 거기다 유전자 조작으로 부유한 아이들과 평범한 늦둥이들을 계급적으로 갈라놓은 것은 요즘 교육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처럼 느껴졌다. 개천에서 용나는 게 어려워진 요즘, 강남태생들이 공부도 잘하고 명문대도 들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또 이 책은 미래도시인 시안의 현실을 이야기 하지만 꼭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 같은 동질감도 들었다. 평화적인 아이들의 시위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진압대가 나오는 장면에선 2008년에 있었던 촛불집회가 떠올려지기도 했고.
아이들은 어른으로 자라난다. 어른이 늙어가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아이들의 성장에선 희망이 뭔가 희망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어른일지도 모른지만 말이다. 물론 좋은 학교에 가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보편화 된 성공의 기준이 된 요즘 어른으로선 어쩔 수 없이 강요하는 것이지만 획일화된 인간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일 뿐인 유년시절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변화는 다수의 동의이며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책에서 시안은 변화를 맞이했다.  우리도 언젠가 바뀔 수 있을지. 내가 읽은 이 책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의 확인이었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변화의 스위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의 장도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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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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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사이에 책 제목에 산티아고라는 지명이 들어간 책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여행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 책들은 내 목록에서 제외되었지만 말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내가 직접 가서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 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쓴 여행기를 읽는 것이 내게는 별 의미가 없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순례기라면 어떨까. 그저 단순한 여행이 아닌 깨닫기 위해 나를 희생하며 걷는 길이라면. 지금의 나태해진 나로서는 동경하고 상상할 수밖에 없는 고행의 길 말이다.

작가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을 담아낸 책이다. 다른 책들을 눈에 담지 않았기에 이 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순례기라는 것으로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실 천주교 신자라 자처하면서도 산티아고의 의미를 몰랐던 나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할 말이 없지만.

작가는 처음 부분에서 어떻게 산티아고로 가는 방향표가 자신에게 나타났는지 설명한다. 바뀌지 않는 주위 풍경, 내려놓고 싶은 자신의 짐, 벗어나고 싶은 인연의 끈 등 해가 바뀌면서 고독감과 허무함이 어떻게 그녀를 잠식해 들어갔는지를. 그러다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건네진 Y의 산티아고에 가자는 말에 이미 작가는 그 길에 들어서 버렸다. 마치 운명처럼, 어떤 절대자가 있어 그 손으로 그녀를 산티아고로 이끈 것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어왔던 길. 그 길은 너무나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작가는 동행인 치타(Y의 예명)와 함께 산티아고 까지 40여 일을 걸으면서 깨달은 바와 느낀 점들을 책 속에 소상히 적어놓았다. 마치 내가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사진들과 약간의 팁도 함께 담아놓았다.

걷는 다는 것은 인생과도 같다. 걷는 동안에 방향을 바로 잡는 다면 목표한 곳에 도착할 수 있지만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돌아오기도 힘들뿐더러 영영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도 길에 떠있는 노란 화살표들을 보며 그리 생각했을까? 앞서간 누군가가 알려주는 친절한 방향 표시가 있기에 순례자들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길에서 만난 수많은 착한 사마리안인들로 인해 사소한 것도 감사하는 마음과 그들의 삶을 축복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이 길에는 있었던 것이다.

순례는 나 자신을 버리는 고행의 길이다. 걷는 것에 돈도 값비싼 물건도 필요가 없다.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육체와 정신뿐이다. 짐 되는 것은 모두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작가도 걸으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스스로 버린 물건들과 어디선가 잃어버린 물건들로 짐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충만해졌다. 몸은 고되지만 생각은 많아지고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도 생겨났다. 작가의 변화가 글에서 느껴져서 그런지 내 마음도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있는 마냥.

하지만 작가의 깨달음이란 거의 특정 종교적인 것이라 타 종교의 독자들은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작가의 인생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그녀가 언급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너무나 단편적으로 적혀 있어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소설만 읽어 대서 모든 일들을 소상히 알려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문득 내가 서 있는 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길이 어디로 연결 되어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어딘가 노란 화살표가 있어 나를 잘 이끌어 줄 거란 바람을 가지고서. 또 언젠가 모든 것에 감사하며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나에게도 찾아와 주기를 하는 소망도 가져 본다.

++동행인 치타가 말한 “우리 천주교 쪽에서는 적선을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의 자립정신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해요”이란 말은 모든 천주교인들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자에게 자립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작가나 독자들이 그에 대한 오해를 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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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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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장금>을 시작으로 2009년 <선덕여왕> 그리고 올해 <거상 김만덕>까지 여성들을 전면으로 내세운 사극들이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다. 궁궐에서 뒤에 앉아 음모를 꾸미는 악랄한 모습보다 이렇게 시대에 앞서거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이 사극에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남자들의 전유물이라 불리던 사극에 여자 시청자들을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좀 더 풍부해진 이야깃거리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장금과 김만덕은 국사책에도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라 더 의미가 있다 하겠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많은 부분을 채울 수밖에 없는 작업이지만 그로 인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을 테니 말이다.

이번에 읽은 책 <숨비소리>에서 김만덕이라는 여인은 부끄럽지만 내게 생소한 인물이었다.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즉, 이 책이 내게 김만덕이라는 사람을 알려준 첫 번째 선생님인 셈이다. 도대체 어떤 여인이기에 그 엄하다는 조선 사회에서 상인이 되어 거상으로까지 불리게 된 것인지, 책을 통해 다소나마 그녀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설움과 시련 속에 소녀의 꿈이 자라나다.
 

조선 중기에 ‘출륙 금지령’이란 제도가 생겼다. 제주도민들이 살 길을 찾아 유랑하자 군액[軍額]의 감소, 특산물의 감소를 우려한 정부가 제주도민들의 출륙을 금지한 것이다. 육지와의 단절된 고립된 삶, 농사짓기에 부적합한 척박한 땅과 힘든 바다일은 섬사람들의 한을 더욱더 키워갔다.
김만덕은 그런 제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오빠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어린 만덕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 찾아오는 데, 시작은 바다에 나갔던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일이었다. 그 후 전염병으로 어머니를 잃은 만덕은 설상가상으로 오빠들과도 헤어져 월중선이라는 퇴기의 집에 몸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온 가족을 잃고 몸종 일을 하게 되었지만 만덕은 예전부터 꿈꾸던 상인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꿈은 월중선의 수양딸이 되어 관기가 되었을 때에도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만덕은 관기 생활로 모은 돈으로 객주를 열어 육지와 물건을 거래하고 배를 구입해 점차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돈만 벌었다면 거상으로 까지 불리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훌륭한 점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던 제주에 자신이 모은 재산을 선뜻 내놓았던 것. 그 일이 당시 왕이었던 정조에게 알려져 결국 그녀는 ‘출륙금지령’ 이후 제주에서 나가게 된 최초의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김만덕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던 조선 후기였다지만 여인의 몸으로 상인의 일을 훌륭히 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또 다른 매체에서 찾아본 그녀의 삶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참 쉽지 않은 길이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삶을 담기엔 책이 너무 짧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만덕이 상인이 되기로 한 계기와 상인이 되고 나서 거상이 되기까지 좀 더 많은 일화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인물을 되살려 우리에게 보이기까지 많은 자료를 찾아 연구하고 글을 썼을 작가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많은 역사소설을 보여주기를, 또 발굴 되지 않은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찾아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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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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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감정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달콤할 수도 씁쓸할 수도 아플 수도 있지만 공통적인 것도 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결과에 관계없이.

처음 <침묵의 시간>이라는 책을 들고선 좀 당황했었다. 요새 읽었던 책들과는 다르게 가벼운 무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작가의 역량을 확인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려면 이야기꾼 기질을 한껏 발휘해야하기 때문이다. 읽고 나서야 말하지만 책은 쉽게 읽힌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여정이었다.

“우리는 눈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누군가의 추모식. 13학년에 재학 중인 크리스티안은 강당에서 영정사진에서 친숙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슈텔라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그가 사랑했던 사람이다. 책은 추모식과 과거의 크리스티안, 슈텔라 선생님의 이야기가 교차하여 진행된다. 그들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셈이다. 해변에서 채석 일을 하는(독일 학제는 1년이 더 길기 때문에 13학년은 성인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크리스티안과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인 슈텔라. 그 둘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크리스티안의 관점에서만 책이 진행되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선 조금 불친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둘은 소위 선생과 제자 커플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선생과 제자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해 받기 힘든 일인데 그래서인지 둘의 사랑은 은밀하게 진행된다. 부모님도 같은 반 친구들도 모르게.

하지만 처음부터 나왔듯이 스텔라의 죽음으로 둘의 사이는 예정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저 과정에서 크리스티안이 바라본 스텔라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그토록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진 십대의 눈에 비친 스텔라는 온화한 미소를 지니고 우아한 몸짓을 하고 빼어난 수영 실력과 지성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여인이다. 앞서 말했듯 그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충분한 이야기가 없어서 감정이입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예전 추억들을 불러일으켰다고 할까. 아무 계산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스텔라를 좋아하는 크리스티안은 내가 지나왔던 옛 모습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서 말미에 스텔라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상실의 아픔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크리스티안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노천카페에서는 벌써 살아 있는 자들의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종업원들이 음료수와 음식을 식탁으로 바쁘게 나르고 있었다. P. 150

책 뒤편에 역자 후기를 보고나서야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의 영원성이라는 걸 알았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그들이 서로 나눴던 감정들과 시간들은 영원 속에 간직된다는 것이다. 뜬금없지만 후기를 읽고 얼마 전에 종영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떠올랐다. 멈춰 버린 그들만의 시간, 뭔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은 감성적이었지만 드라마는 음산했다는 것?

요 근래에 스릴러 소설만 줄곧 읽어댔었다. 오랜만에 읽은 사랑이야기는 처음에 조금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읽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 감성도 약간이나마 촉촉해졌겠지. 문득 궁금한 점은 스텔라의 동료선생인 쿠글러가 왜 추모식에서 “스텔라 왜,왜,왜 그래야 했어”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던 거야?” 라고 말했냐는 것이다.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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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
박성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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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다. 실제 가질 수 있는 직업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타 직업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은데 그래서 더 신비롭거나 베일에 가려져있는 것같이 느껴지는 직업들이 있다. 나에게 그 중 하나는 매니저라는 직업이다. 그것도 스타를 전담으로 하는. 살면서 스타들을 직접 보기란 어려운 일인데 매일매일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스타와 함께 지내야하는 매니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또 스타들을 보면서 떨리지는 않은지, 반대로 스타와 편한 친구사이가 된 적이 있는지 궁금증이 피어나기도 했다. 그런 내 궁금증을 다소 풀어주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박성혜의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 스타를 부탁해>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저자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위 그쪽 세계에 문외한인 나에게 박성혜라는 이름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맡았던 스타들 - 김혜수, 전도연, 지진희,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등-을 보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맡아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갔다.

여걸 박성혜, 그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4년제 대학의 영문학과를 다니던 그녀는 분명 연예계와 멀어보였다. 하지만 박성혜 본연의 힘이 그 길로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소위 끼가 있었다. 옆에서 보면 무모한 도전이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을 크게 벌이고 좋은 결과로 이끄는 끼가 말이다. 평범한 이력의 소유자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들어간 영화동아리와 그 뒤에 관심을 갖게 된 사진(몇몇 에이전시와 모델들이 단골이 되기도 했단다.) 20년 역사상 재학생을 단원으로 뽑지 않았다던 산울림 극단에 들어간 일, 이벤트 회사,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린 학우를 돕는 초대형 콘서트 이벤트까지.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벌인 일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이었다. 대학생 특유의 열정이었을까, 아님 그녀의 도전이 이루어낸 쾌거였을까.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지금도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나에겐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시련 없이 철이 어떻게 단단해 질 수 있으랴. 그녀에게도 시련은 다가왔다. 먹고 살기 위한 일, 바로 취업이다. 첫 회사였던 논노가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문을 닫고 모아놓은 돈으로 차렸던 학사주점에도 흥미를 잃고서 재취업을 노렸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그러던 중 논노에 다니던 시절 사수였던 팀장님의 전화 한통이 바로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바로 스타 서치라는 대기업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니 어서 지원해 보라는 전화였다.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사람에게 운이 좋다고 말을 한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고도 좋은 일을 겪는 사람이 있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운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다르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초짜 매니저였던 박성혜가 느닷없이 대스타인 김혜수의 개인 매니저가 되긴 했지만 운만으론 15년을 함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함께 일을 해나가면서 쌓아온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매니저로서의 노력.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결과다. 그러면서 그녀의 울타리는 점점 튼튼해져 수많은 스타들을 그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스타가 아니면서 스타보다 매력적인 사람이 인간 박성혜였다.

두툼한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내가 잘 모르는 분야, 또 내가 잘 모르는 인물에 대한 책이라 자칫 지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읽은, 배울 점이 참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초처럼 등장한 스타들의 사생활도 재미에 한몫했지만 말이다. 또 매니저라고 해서 얼마 전 물의를 일으켜 뉴스에 등장한 -여학생 팬들을 때린 아이돌 가수의 매니저- 매니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스타와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매니저가 있다는 사실도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는 책은 언제나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열심히 살았나 하는 자학과도 같은 감정과 함께. 내 이야기는 아무리 쥐어짜도 몇 페이지도 안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남은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열심히 살았다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적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오늘도 한 권의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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