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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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란 원하는대로만 살아지지 않는 것.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운이 좋았던 한 순간'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실수과 좌절을 겪은 결과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돌아보면 그 순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수많은 질문을 하게 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야 말로 개개인을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한 평생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살았던 촌부의 삶이나 대도시에서 성공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삶을 살았다거나 하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라해도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우스 브로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글자 그대로 '인생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1960년대 미국 남부 찰스턴을 배경으로 열여덟 살인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 킹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과 친구들,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레오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와 인자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모든 면에서 형과 비교되는 못난 동생이었다. 어느날 형이 갑작스럽게 자살하고 그 현장을 목격한 레오는 충격으로 방황하게 된다. 부모님 조차도 스스로의 상처때문에 괴로워 하느라 레오를 보듬어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중대한 범죄에 휘말려 누명까지 쓰게 된다. 이어지는 재판과 사회봉사명령, 정신과 상담 등 평범해 보이는 소년에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을 정도다.

 

 이쯤에서 도대체 어떤 점이 아름다운 인생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상 여기까지는 지난 시간에 대한 설명이자 배경이나 다름없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그가 의무적으로 행해야 했던 것들이 거의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친구도 없이 지내왔던 레오가 찰스턴의 명문가 자녀들을 비롯해서 고아 남매, 이웃의 쌍둥이 남매, 그리고 풋볼팀의 흑인 코치의 아들과 같이 다양한 계층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과 그 후의 삶까지 비추고 있다. 

 

 여기서 배경이 되는 시공간이 1960년대 후반 미국 남부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들이 다양한 계층이라는 점은 그들 내부적으로도 많은 갈등의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령 그가 속해있던 풋볼팀에 공립학교 최초로 흑인 코치가 오자 감독을 비롯해서 팀원들이 모두 팀을 떠나버리는 상황이라든지, 학교 내에서도 인종차별과 갈등이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겉으로는 명문가 임을 내세워 자기 보다 못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하거나 경멸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삶 속에는 가식과 거짓,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얼룩진 것을 여과없이 들추기도 한다.

 

  이쯤에서 또 한번 물을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가 아름다운 인생이냐고 말이다. 주인공 레오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울고 웃고 고민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희생하는 모습 때문은 아닐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물론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을 고통속에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묻어버리고 소중한 추억만 간직하게 되는 것 같다.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건 인생을 뒤돌아 보면 '그래도' 좋았던 기억, '그럼에도' 행복했던 순간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비유할 때, 드라마틱하고 소설같고 영화 같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그 의견에 공감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으니 인생에는 예고편이 없다는 사실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을 즐길 줄 아는 것보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주인공이 마지막에 되내인 말처럼 우리 삶에는 일어나지 못할 일이 없다.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모든것이 하나가 되어 인생인 만큼 다가올 미래를 숙연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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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군사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 군사편
탕민 엮음, 이화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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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전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심으로야 그 말에 반박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해묵은 영토분쟁, 이념의 갈등, 서로 다른 종교, 경제적 이해관계, 내분을 피하기위해 전쟁을 일으킨 경우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안타까운 것은 누구나 입을 모아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평화를 부르짖는 가운데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곧 파괴다. 건물이나 집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 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힘을 모아 재건한다. 인류 역사는 그렇게 파괴되고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이름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비극적인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을 만큼 영향을 미친 전쟁이 있을 것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군사편)> 이 책은 전쟁 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계사를 조명하고 있는데 '군사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서술로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내용면에서는 지금까지 정설로 알려져 왔던 '역사의 순간'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이용했다는 내용이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교란작전으로 몽고메리 장군과 똑같이 생긴 인물을 몽고메리 장군인 것 처럼 꾸며 아프리카로 보냈다는 사실, 몽골의 기병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몽골마, 히틀러가 유태인을 그토록 미워했던 이유 그리고 이중 간첩으로 유명했던 마타 하리의 생애도 인상적이었다. 독서를 통해 지금까지 알지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보다 풍문으로 떠돌던 소문들에 관한 내용을 나열한 경우도 많았는데 예를들어 히틀러는 자살하지 않았다 라는 주장이나 잔다르크는 화형된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생존했었다 라는 주장 등이 그렇다. 그리고 한신의 죽음은 억울한가, 쿠바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체 게바라가 왜 콩고에 갔을까 등에 대한 설명에서도 마찬가지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시 못하고 의견만 분분해 산만한 느낌을 준다. 결국은 "이러이러한 소문(주장 혹은 설)도 있다." 라고 시작해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로 끝을 맺는 식이어서 아쉽기도 했다. 

 

 역사란 일어난 사실이 전해는 것인데도 왜곡이나 오류가 많다. 생각해보면 우리 근대사에서 명성황후의 사진을 놓고도 말들이 많지 않은가. 일제의 역사 왜곡이 가장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고대사도 아니고 근대사에서 국모의 모습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기가찬 노릇이다. 그뿐 아니라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면 같은 사건을 놓고도 다른 해석이 나오는 등 역사는 파헤칠수록 새롭기만 한 양파껍질 같은 것이다. 이번 독서를 통해서도 새로운 사실 알게됨과 동시에 새로운 의혹이 생긴만큼 앞으로 비슷한 주제에 관한 글을 보면 예사로이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진실에 좀 더 가까와지는 오겠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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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인디스토리 엮음 / 링거스그룹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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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는데 불확실성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 처럼 보편적인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 뒤늦게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려는 노력들이, 그런 현상이 참으로 흥미롭다. 헐리웃의 영화들처럼 국내 영화 시장에서도 제작사와 감독, 배우라는 삼 박자가 어우러진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지 꽤 되었고 한국영화가 예매순위를 점령한 때에도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는 개봉관조차 잡지 못하는 현실을 겪곤 했다.

 

 영화 <워낭소리>의 경우도 제작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수많은 독립영화들 중 한 편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왠 생뚱맞은 소리냐고, 세상과 타협하려는 자세가 부족한 감독의 고집이 또 시작되었구나 하는 시선으로 비춰졌던 영화였다. 하지만 개봉 직후 부터 꾸준한 입소문으로 독립영화 기록이라는 5만 관객을 가뿐히 넘어 서서 마침내 300만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죽을 각오로 만들었다는 감독 자신조차도 그 정도일줄은 몰랐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결과였던 것이다.  

 

 내 아이의 경우는 소를 직접 보는 것만도 신기해 하는 세대이나 70대이신 아버지는 어린 시절 소꼴을 먹이며 하루를 보내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세대다. 농경 민족에게있어서 소는 재산 목록의 윗부분을 차지하는 가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노동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다른 가축과도 구분되는 위치에 있었다. 예전에는 어린 송아지를 데려다가 늙을 때까지 함께 사는 경우가 흔했고 죽으면 고기를 팔지 않고 땅에 묻어주거나 동네 사람들에게 내어주곤 했다고 하는데, 궁핍했던 시절에도 소와 각별한 인연을 나누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책의 내용은 영화에 대한 메이킹 필름이자 비하인드 스토리인 만큼 영화의 감동을 뒤로하고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상단계의 어려움, 제작비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 했던 일, 현실적으로 계속 상주할 수가 없다보니 젊은 소가 새끼를 낳는 장면이나 축사가 무너지는 장면 등 원하는 장면을 찍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쇼킹한 발언도 있다. 처음에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너무나 늙고 힘없는 소라서 과연 필름의 분량을 채울 수나 있을까 걱정했다가 생각보다 촬영기간이 길어지니 나중엔 왜 빨리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너무한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별하는 모든 것들은 썩어서 다시 나무로 꽃으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저물어갈 수밖에 없다는 게 자연의 일이라면 생이 다해도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자연의 일일 것이다. (p.43)"

 

 연로하신 노부부와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늙은 소의 이야기~ 스토리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일상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이어서 더욱 가슴에 와닿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간과 짐승의 교감을 비롯해서 할아버지와 소, 할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의미, 존중과 배려 그리고 정, 무엇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끔씩 우리의 삶 자체가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상상을 많이 하는데 이 영화의 경우가 정말 그렇다. 비록 영화가 대박난 이후 잡음도 많았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활도 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통해 느꼈던 감동 만큼은 그 모든 것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값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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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퍼즐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4
피터 케이브 지음, 남경태 옮김 / 사계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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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어린아이 스럽다고 해야할지 혹은 너무나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은 이 책이 철학에 관한 책인 만큼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라는 책을 쓴 피터 케이브 라는 저자의 책이다. 결국 두 권의 책은 내용면에서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우선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은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했던 <바이센테니얼 맨> 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 세계, 가사 도우미용 로봇으로 만들어진 앤드류 라는 로봇은 마틴 가족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앤드류는 제조상의 사소한 실수로 인간과 같은 감성을 가지게 되면서 가족들과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는데, 세월이 흘러 마틴가의 후손과 사랑에 빠지면서 인간이 되고자 갈망한다. 그는 위원회가 거부하는 조항들을 한 가지씩 수정해 가면서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마침내 영원한 삶까지도 포기한다.

 

 요즘 울 아들이 푹 빠져있는 '디지몬' 이라는 만화를 보면 인간과 디지몬들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주인공들의 활약이 주를 이룬다. 또한 '액스맨' 이라는 영화에서도 돌연변이들에게 인간과 똑같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들만의 세계를 인정해 줄것을, 그들이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들을 철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정말 로봇은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앞서 읽었던 <사람을 먹으면 왜...> 에서와 마찬가지도 이 책에서도 황당 질문과 궤변도 눈에 띈다. 말도 많고 주장도 다른 "어디부터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서는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잘못이라면 인간을 낳지 않는 것도 잘못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슬람과 서양의 도덕관이 다른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라는 내용과 도덕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사람은 왜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변화를 느끼는 것인지, 모작임이 밝혀지는 순간 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가 하는 질문 등은 분명 반박할 내용이 있다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순간 작가의 의도에 말려드는 느낌이 들어 약이 오르기도 했다. ^^;;   

   

 중요한 것은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특정 현상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고 그 부분에 대한 이설이 없어지면 더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보라. 하늘의 별은 왜 반짝이며, 자신은 어디서 태어났으며, 비는 왜 내리는지, 계절은 왜 바뀌는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의 할머니까지 올라가면 누가 있는지 등 어른들에겐 질문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들이 그들에겐 엄청난 사실이 될 수도 있다. 당연한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명제를 뒤집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도전하는 것이야 말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사상을 발전시킨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다시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다는 것과 '인간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포인트는 바로 그 점이 아닐까?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인간보다 더 따뜻한 앤드류의 마음과 지고지순한 사랑에 그가 인간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면서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을 떨구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과연 그는 로봇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 철학은 정말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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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 주니어랜덤 세계 걸작 그림책
에즈라 잭 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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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들려던 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 눈을 감으면 세상이 깜깜할 것 같지만 사실은 빨갛기도 하고 까맣기도 해." 라구요. 그 말을 듣고는 확실히 아이들의 호기심이랄까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입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른 보다 정확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눈을 감으면 울긋불긋하고 소용돌이치는 것이 보이는데 어른들은 그냥 '깜깜하다'라는 말로 표현해 버리잖아요. 제 말이 이상하다구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살짝 눈을 감아보세요~ ^^
 

 어느날 저녁 로베르토는 친구인 에이미에게 학교에서 만든 종이 생쥐를 자랑했어요. 하지만 에이미는 종이 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냐고 묻고 로베르토는 의기소침해집니다. 잠자리에 든 로베르토는 꿈 속에서 아치네 고양이가 개에게 쫓기는 것을 발견하고 이 때, 창틀에 올려둔 로베르토의 종이 쥐가 고양이를 구하게 된 것이죠. 

 

 사람들은 꿈의 내용을 듣고 좋은 꿈, 나쁜 꿈을 구분하기도 하고 태몽 처럼 길몽으로 여기거나 개꿈이라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하는가 하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지요. 이처럼 로베르토의 종이 쥐가 꿈 속에서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잠들기 직전 로베르토의 소망(종이 쥐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이 꿈이 되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의 경우, 작년 까지만 해도 무서운 꿈을 참 많이 꾸었어요. 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공룡에게 쫓기는 꿈, 날개가 있는데 30센티 정도밖에 날 수 없다든지 하는 그런 꿈 말이에요. 잠에서 깰 때마다 키가 크는 꿈이라고 말해주면서도 은근히 걱정되곤 했는데 올 들어서는 꿈을 아예 꾸지 않거나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성장통처럼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인가 봐요. 

 

 <꿈꾸는 아이>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아이가 말한 '눈을 감았을 때의 세상'이 그림으로 표현되었구나, 하는 것을 바로 느꼈답니다. 작가가 표현한 하늘빛은 어찌보면 고흐의 그림처럼 강열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몽환적인 것이 꿈의 신비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있어요. 특히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시작하면서 창틀의 색을 통해 '꿈'을 표현한 점이 돋보이네요. 전체적인 내용도 흥미롭지만 색감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 그림책입니다. ^^ 

 

 모두가 잠 든 밤에 벌어지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이야기~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한 꿈을 꾸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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