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 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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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확실한 거짓말쟁이 입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 천사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늘 진실만을 말하면서 살기는 어렵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네요. ^^;; 좀 전만해도 은행일을 부탁받은 것이 있는데 깜박 해놓고는 업무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고 둘러댔거든요. 그러자 상대방이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어 괜시리 찔렸답니다. 살다보면 실수한 일에 대해 대충 변명처럼 둘러대면서 거짓말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나요? 내가 하면 일종의 처세술이고 남이 하면 뻔한 거짓말이라면서 뒤에서 욕하고 뭐 그런거죠. ㅋ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이 책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혹은 우리 사회에 거짓말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10분에 세 번'은 지나치다 싶다가도 조목조목 짚어보니 의외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내뱉는 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심지어 '천사같은' 아이들조차 대인관계와 사회성을 깨우치는 순간 뻔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할 정도니까요. 거기다 흔히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하는 거짓말이라고 변명하는 '하얀 거짓말'의 실체와 병적으로 거짓말 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중을 속이는 사람들... 이처럼 거짓말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거짓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유명인사들의 '학력 파문'에 관한 것입니다. 아직도 국민들의 기억속에 충격으로 남아있는 신정아 씨 사건 다들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 직후부터 여기저기서 학력을 속였다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연예인은 그렇다 쳐도 대학교수 명함을 가진 사람이나 유명한 스님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충격을 더했지요.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한 사람을 평가할 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경험했는가가 아니라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죠. 

 

 우리 주변에는 학력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이들도 얼마나 많은데... 라고 말하고 싶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오늘도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아가면서 특정 대학에 입학시키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랍니다. 참 씁쓸하지요. 참, 작가가 외국분이던데 신정아 씨 사건을 언급하길래 깜짝 놀랬다지요. 그리고 학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는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니 사람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가 봅니다. 학력에 관한 부분은 정치인들의 헛공약 만큼이나 후에 비난받더라도 당장은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거짓말에 왜 이토록 잘 속을 까요? 그 이유는 남을 의심하고 꼼꼼하게 따지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엄청 많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보통 사람의 경우 상대가 하는 말이 진실일 것이라고 믿고 싶하는 경향을 가지고 실제로도 잘 믿게 됩니다. 사기꾼들한테 당했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들 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심 투성이인데...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속이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당해내기는 정말 어렵답니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근거없는 주장이 사실인 것 처럼 퍼져나가고 그로인해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기도 해요. 예를들어 누군가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라고 글을 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공감합니다. 익명이라는 이유로 쉽게 말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처음엔 심리학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었는데 거짓말에 대한 심리적, 사회학적 분석과 함께 한번쯤 들어봄직한 사건들이 많이 실려있어서 기대이상으로 흥미롭게 읽었어요.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정직'일 텐데,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 살아간다니 정말 우습지요. 거짓말하고 속고 속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거짓투성이라면 너무 극단적인 표현일까요? 설사 그렇다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사람의 입으로 뱉은 말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 세상이 온통 거짓이라해도 그것 한 가지만은 진실이랍니다. 


 

 

"불행히도 착한 거짓말 환상은 본질적으로 헛된 환상이다. '착한 거짓말'이 '진짜' 거짓말보다 나쁜 정도가 덜한 건 사실이지만 속임수가 으레 그렇듯 '착한 거짓말'도 피해자를 낳는다. 거짓말이 성공하면 누군가 속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p.41)"

 

"남이 솔직하게 말하는지 따지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되도록 정신적 에너지를 쓰지 않고 비축하고 싶어 한다. 덕분에 거짓말쟁이들은 우리의 인식 레이더망을 피해 날아다닌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도 우리는 인지적으로 너무나 인색해서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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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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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허삼관 매혈기>의 위화다. 3년 전쯤,처음 그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냈었는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해야 했던 주인공, 몸에서 피가 빠져나갈 때마다 죽음에 점차 가까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위해 매혈 여정을 멈출 수 없었던 주인공의 삶을 대하면서 부모님 생각, 내 아이 생각, 가족이란 무엇인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미치자 허삼관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되었고 그가 더이상 소설속의 인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이었다. 

 

 <딩씨 마을의 꿈> 이 책도 주된 소재가 바로 '매혈'이다. 정책적으로 매혈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되자 낙후된 농촌을 중심으로 피를 파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해가면서 모집인을 구하는 상황이 된다. 딩씨 할아버지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서 동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다. 할아버지는 정부 관리의 요구에 따라 매혈을 위해 동네 사람들을 모으게 되고 딩씨 할아버지의 큰아들은 아예 사설채혈소를 차려 마을 사람들의 피를 뽑는데 앞장선다.  

 

 처음에는 피를 팔아 번 돈으로 가족을 위해 당장 뭔가를 해 줄수가 있었고 비료를 사서 수확을 늘리거나 가축을 키우는 등 마을의 살림도 점차 나아지는 듯 보였다.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들은 남들보다 자주 매혈을 해서 힘든 농사 일을 하지 않고도 편히 살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든 열병으로인해 딩씨 마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매혈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열병의 이름은 바로 에이즈였던 것이다. 

 

 솔직히 책 읽는 내내 너무나 안타깝다, 라는 표현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을 정도로 멍~ 한 상태로 읽었다. 그저 실적에만 관심있는 중앙의 관리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시골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  너나 할 것없이 절망적인 상황,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현실인데도 불구하고 당장 오늘을 위해 아둥바둥 살 수 밖에 사람들을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그 속에서도 열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멸시당하던 두 사람이 만나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아름답게 살려했던 그 마음만은 인간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줄지도 모르기에 죄송하다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움을 원하고 복잡한 사색을 싫어하는 독자라면 결코 권하고 싶은 책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이 없으면 희망도 없고 행복도 없는 것, 딩씨 마을이 조금씩 붕괴되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었지만 이 작품의 결과 또한 비극이라고 단정짓기는 이르다. 더이상 기대할 수 조차 없어 보이는 상황이지만 작은 희망의 씨앗만은 남겨져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은 작가도 장르도 아닌 출판사 때문이다. 작년에 <적절한 균형>이라는 인도 소설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장소와 시기만 다를 뿐 '고통과 희망' 이라는 점에서 이 책과 흡사한 면이 많다. 거기에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위화의 작품을 연상시킨 면도 있고 말이다. 책장을 한장씩 넘긴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잠시 쉬어갈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들에게 '죽음'이란 화두는 성능 좋은 제어장치임에는 틀림없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가장 소중한 내어주면서까지 허망함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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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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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는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다. 고려가 멸항하고 조선이 개국할 시점, 다시말해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데 있어서 국가를 정비할 기본 사상으로 채택한 것이니, 유교를 선택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를 떠올릴 때마다 부패한 정치권과 선비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붕당정치를 일삼고, 반상의 제도를 고집하여 나라를 위해 일할 인재들에게서 기회를 빼앗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외면하는 모습만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책임을 모두 유교라는 이념에 떠넘기게 되는 것을 보면 도대체 그 이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유교는 다들 알고있다시피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인과 의, 예, 선 등 도덕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이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규범이나 법은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고 하지말아야 할 것을 정하거나, 하지말아야 할 것을 행했을 때 벌을 주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되다보면 사람은 자연적으로 피동적인 입장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면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한다', 라는 것을 가르치게 되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알고 능동적으로 법과 질서가 바로 잡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철학적 가르침이 그러한 것 처럼 공자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들이 말하는 내용이 아무리 옳다고 하여도 배우고 익힌 자들이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조선시대가 그 모양인 것은 유교 때문이야!!" 라고들 하지만 실제로 유교의 이념 자체는 너무나도 이상적이라는 사실이다. 단지 공자를 그토록 숭상하고 떠받들었던 자들이 머리 속에 가득 채운 지식들을 오로지 자신들의 성공만을 위해서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문묘 18현> 이 책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묘에 함께 배향된 18인의 성현들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유교의 시조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던 공자의 위패를 모신 곳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유교를 갈고 닦은 선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영광이며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 500년을 뒤돌아 보자면 얼마나 많은 유학도들이 있었을 것이며, 높은 관직에 올라 이름을 떨친 이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문묘에 올릴 성현을 정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고 있던 정치세력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문제였을 것이고 정말 흠잡을데 없는 인품과 덕망과 유교적 이념을 제대로 지킨 사람이어야 했다. 

 

 문묘 18현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들이 있다. 김굉필은 임금의 노여움을 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위해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조광조의 경우는 4년여라는 짧은 정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도덕성과 죽음을 무릅쓴 개혁가로 선비들의 모범이 되었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비의 길이라고 믿었던 율곡 이이는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이며, 김장생과 김집은 부자가 함께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정몽주의 경우는 어찌보면 조선의 개국에 반대하여 죽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충절만큼은 높이 인정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는데 선비님들이 이렇게 쿨~ 할때도 있는가 보다 싶었다.

 

 18인의 가장 큰 특징은 성리학의 가르침과 실천 사이에 간격을 얼마나 좁혔는가 하는 것이다. 유교는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절제와 인내를 요구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기에 정말 어려운 학문이다. 그리고 그들중 적지 않은 수의 인물들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고 충심을 전달했던 임금께 사사된 경우도 있다. 비록 안타까운 죽음을 맞긴 하였으나 후에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에 성현으로 이름을 남겼으니 역사의 심판은 냉혹하면서도 정확하다 하겠다. 문묘 18인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것은 세월에도 빛바램이 없는 고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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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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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경우 재임 기간동안 잊을만하면 신사 참배를 강행하여 주변국과 마찰을 빚곤 했었다. 당시 그는 총리라는 신분으로 참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라며 억지 논리를 펴기도 했는데 자신이 총리라는 직위를 버리지 않는 한,  사석에서 발언한 내용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공식화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리가 만무하다. 주목할 것은 그 무렵에 일본내 극우파 인사들의 황당한 발언이 이어지는가하면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하게 불어지기도 했고 일부 국민들의 지지 의사도 뻔뻔해지고 과격해지더라는 것이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참전 군인들의 유품을 전시한 곳에서 카미가제 특공대원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장면을 말이다. 특공 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애국심에 감동하여 그리했다면 그는 분명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자격이 없으며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일본의 발전과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정치가들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제국주의에 희생되었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야 옳다.

 

 <1910년, 그들이 왔다> 이 책은  조선 침략과 태평양 전쟁에 연루된 21인의 일본인을 설명한 책이다. 일본은 임진왜란때 잠시 조선에 주둔했었던 것을 마치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라도 된 것인양 역사를 날조해가며 '조선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중국에는 황제가 있고 일본에는 천황이 있으니 중국을 따르는 조선이 일본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고 말이다. 이와같이 정한론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중심에 서있었던 인물 대부분은 모순과 억지로 일관하며 제국주의의 칼날을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흔히 일본의 민족성과 문화를 '국화와 칼'에 비유한다. 이 책에서도 '찻잔속의 비수'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차를 마시는 행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소박함을 추구한다던 사람이 다도를 벗어나는 순간 칼을 휘두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침략자가 된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근대화에 있어서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합리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결국은 제국주의를 최우선으로 택했고, 패전 후 조선과 아시아에 대한 반성은 없으면서 원폭을 내세워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철저한 이중성에 말문이 막히고 가끔씩은 지긋지긋하다. --;;

 

 일본이 조선을 강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던 다른 나라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국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다른 나라가 약소국을 점령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는 식으로 서로 나눠먹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속주국의 자원과 노동력이 절실해졌다는 이유도 제국주의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은 손꼽히는 경제 대국으로 우리와도 정치,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 없이는, 제대로 된 과거 청산 없이는 결코 두 나라의 동반자적 관계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910년, 그들이 왔다> 어찌보면 참 평범하고 담담한 제목이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피를 생각하면... 백년이든 천년이든 우리 후손들에게 그 날의 교훈을 되새기게 해서 우리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야욕에 이 땅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나, 이미 조선이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정조 때 잠시 중흥기를 맞지만 정조 사후에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을 치닫는 가운데 허수아비 왕을 내세워 사리사욕만 채웠던 정치인들과 고통받는 국민들의 모습이 구한말이라도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병탄 시나리오의 주역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치밀하고도 철저하게 준비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일본의 만행에 대해 사죄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들앞에 당당할 수 있을 만큼 힘을 키우고 국제 문제에도 보다 관심을 가져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1910년,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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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란 무엇인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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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인을 들썩이게 만드는 대축제, 모두가 기다리던 월드컵이 돌아왔다. 축구장을 가르는 공 하나에 모두가 열광하는 순간들... 축구는 단일 종목으로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스포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클럽별, 국가별로 사람들을 하나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의 경우, 개막직전 까지도 테러 위협과 치안의 공백이 맞물려 온갖 잡음이 끊이질 않은 탓에 지난 회차보다 열기가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여는 순간 후끈해 지는 것이 역시 월드컵 이구나 싶었다.

 
 2002년은 우리 나라 스포츠 역사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정말 뜻깊은 한해였다.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뿌듯함은 축구에 관심조차 없는 국민들조차 붉은 악마로 만들었고, 악마들이 외치는 함성은 세계인들까지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영광스러운 '4강 신화'를 발판으로 월드컵 영웅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했을 뿐 아니라 축구에 빠져든 수많은 생활 체육인들, 유소년 축구팀의 활성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월드컵 성공 개최는 그해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슈였던 대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정도이니 정말 대단한 월드컵이라고 하겠다. 
 
 <축구란 무엇인가>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정말 궁금해졌다. 도대체 축구란 무엇이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축구에 미치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다. 솔직히 2002년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축구라고 하면 한,일전 정도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그렇게 좋아하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당시 매 경기 마다 응원할 때도 기본적인 규칙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공을 잡는구나, 드리블을 하는구나, 골이 들어갔구나! 하는 식으로 경기를 관람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축구 경기와 구성, 요건, 규칙 등 경기 자체에 대한 설명과 축구의 역사와 의미 등  축구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UN 가입국 보다 FIFA에 가입된 국가가 더 많다는 사실이 축구의 세계화를 설명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면에서는 축구 종주국인 영국, 유럽을 중심으로 한 축구의 발전도 흥미롭지만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점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당시의 축구는 지금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전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축구와 비슷한 형태의 경기를 즐겼다는 사실과 과거의 어느 시대는 칼을 차고 경기를 뛰기도 했다는데 도저히 상상히 안된다. 
 
 축구의 규칙은 축구의 역사와 함께 계속 변해왔다. 골대와 골키퍼, 핸들링, 오프 사이드, 패널트 킥, 승부차기 등 지금은 익숙한  규칙이 그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바뀌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골이 너무 많이 들어가도 재미가 떨어지고 골가뭄이 심해도 재미가 떨어진다. 공격 축구와 수비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명경기로 기록된 축구경기, 월드컵의 역사, 미국의 자존심 미식축구의 역사 등 읽을 거리가 많다. 다만,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멍해 지는 것이 축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겠다 싶은 부분이 있어 아쉽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만족스런 독서였다. 
 

 저자는 축구의 매력을 꼽을 때, 스터디움에 들어서는 순간 개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내려놓고 하나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축구의 수많은 매력중 하나에 불과하다. 축구는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의 현란한 발놀림을 보는 재미와 팀경기가 주는 전략, 전술이 그 어떤 스포츠보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기이다. 그리고 보는 경기에서 직접 뛰는 경기로 쉽게 이어지며, 흔치 않은 골 때문에 더욱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경기다. 무엇보다 공은 둥글다. 어디를 어떻게 차느냐에 따라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는 사실, 어쩜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통해 인생의 단맛, 쓴맛을 경험하는 재미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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