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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낙관주의자 -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8월
평점 :
난 매트 리들리의 진화론에 기초한 광대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뛰어난 글쓰기 능력에 매료 되었었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붉은 여왕], [본성과 육성], [이타적 유전자]는 과학적 지식이 미천한 나 같은 독자에게 적절한 긴장과 이해를 위한 몰입을 요구하는 훌륭햔 책들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좀 실망스럽다. 그의 최대 장점인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량은 여전하지만 과학적인 글쓰기의 논리적인 구조가 허술해서 과학서라기 보다는 미래서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책들이 소위 미래서라는 것들인데 사이비 종교같은 냄새가 강할수록 거부감은 배가 된다.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주장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인류는 과거에 비해 현재 번영된 삶을 누리고 있으므로 미래에도 역시 번영 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재화, 용역, 그리고 특히 아이디어의 교환으로 인한 전문화, 분업으로 집단적 지능을 축적해 왔고, 집단적 지능은 끊임없는 발명과 발견의 기술적 혁신으로 현재의 번영과 진보를 달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관론자들이 지적하는 기아, 질병, 기후, 가난, 인구, 식량, 자원 문제는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고 과거의 인류의 역사적 결과를 보건데, 이런 문제들이 결코 미래의 인류 번영에 큰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 동의 한다. 특히 탄소 에너지 감소를 위한 과도한 정책의 일환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로 요즘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 연료가 사실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가격 경쟁력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인한 착시 현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식량 생산의 경작지를 감소시키고 토지를 황폐화 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그의 주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비슷한 논지의 유기농 제품에 대한 비판에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한편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그의 주장은 좀 과도하다 싶지만 일정 부분 동의한다. 물론 그의 생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난 아무런 이론적 수단이나 능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저자 매트 리들리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옹호론자라는 새 옷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모양새로 그의 논지는 어설프고 논거는 주관적이다. 매트 리들리의 전공은 진화론적 과학 저술가이지 자유주의 경제학자나 미래학자가 아니다. 인류의 경제 붕괴, 인구폭발, 기후변화, 테러리즘, 빈곤이 모두 해결 될 수 있는 방법이 500페이지가 넘는 [이성적 낙관주의자]에 단 한줄이라도 시원하게 제시 되어 있는가? 난 잘 모르겠다. 진화론적 관점으로 인류의 밝은 미래의 번영을 모두 풀어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출발이었다고 생각된다. 현실에 대한 그의 진단은 낙관적이다 못해 안이하고 때로는 무책임해 보인다. 진단이 안이하므로 치료를 신뢰할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글의 전체적인 문맥과는 상관없이 그의 글쟁이 - 저술가라는 표현보다는 느낌이 좋아 써보는데, 실제 있는 단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 로서의 장인 수준의 숨결이 묻어나는 문장들은 따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다. 매트 리들리의 정의에 의하면 보수주의론자들은 경제적 변화는 포용하면서 그 사회적 결과는 혐오하는, 다시 말해 자유주의 경제의 열매는 저주하면서 이를 탄생시킨 시스템은 옹호하는 자들이다. 반대로 자유주의론자들은 경제적 번영의 사회적 결과는 사랑하면서 이를 발생시킨 경제적 원천은 미워하는, 자본주의를 비난하지만 그 열매는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자들이다. 나 역시 100퍼센트 동의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과학 저술가로서의 매트 리들리는 다시 만나고 싶지만 어설픈 미래 진단이나 전망에 대한 사이비 저술가로의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