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다 읽었다.
느낌이 뭐랄까? 역시 외국 단편소설은 번역으로 인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에게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하면서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서 그녀의 마음을 확인 하는 것과 친구를 통해서 고백을 하고 그녀의 반응을 전달 받는 것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역시 무리수였다. ㅠㅠ). 왜냐하면 단편은 처음부터 길이와 분량이라는 형식적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사소한 주위 환경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 하나에도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담겨져 있다. 다시말해 단편소설에서는 미묘한 단어 차이로 인해 소설의 톤이나 흐름이 완전히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에 번역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의미적 왜곡이나 손실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느낌은 역자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책을 읽는 속도와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좋은 번역이었다.
책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리뷰란에서 끄적 거리겠지만 이 책의 뒷 커버에 나열 된 이름만 들어도 억! 소리가 나는 위대한 작가들의 체홉에 대한 극찬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바닥(?)에서 클리셰로 별 신선 할 것 없지만 그 중에 '레이먼드 카버' 라는
이름은 기억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유일하게 그의 단편 소설집 [대성당]을 읽었는데 지금 체홉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느낌이 그 때와 비슷했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은 마음이 뭉클해 지면서 인생의 처연함마저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당장 영화로도 각색 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작품으로 기억 된다. 다른분들 한테도 꼭 읽어 보라고 자신있게 권하고 싶은 몇 안되는 단편중 하나이다.
P.S: 그리고 또 하나 [대성당]의 번역자는 소설가 김연수다. 그러면 무조건 읽는 거다. 물론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자
김영하 (물로 우리가 아는 바로 그 김영하다)도 빼 놓을 수 없다. 근데 웃긴 게 난 이 둘이 최근까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가끔, 아니 자주 이러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람쥐.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