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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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이 책은 여러 책에서 인용되고 있어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루이스 세풀베다' 약간은 허무하게 읽혀 아련한 느낌이 드는 이름의 작가도 들어는 봤다.

그렇지만 읽는 것은 지금. 그래도 이렇게 읽은 게 어딘가.

책과 사람도 분명 인연이 있어 만나야 할 책은 언젠가 이렇게 만나게 된다. 만나지 말아야 할 책은 만나지 않게 되는 것처럼.


첫 장을 넘기고 글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래서, 이 책이 유명한 것이구나!' 담박에 알아챘다. 강렬한 묘사, 위트넘치는 대사, 다음이 궁금해지게 하는 전개. 작고 얇은 책 안에 우주가 담겨 있는 것처럼 하나도 허투루 쓰여진 단어나 문장이 없어 보였다.

꿀곰을 죽이면 재앙이 온다는 것은 천하의 바보들도 다 알고 있소 (p136)

단순한 문장 안에 복선을 집어넣고, 이야기를 담을 줄 안다. 그 것이 감탄스럽다.


그는 그저 연애소설을 실감나게 읽고 싶어하는 노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운명은, 사람들은 노인에게 그러한 낙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노인은 밀림을 너무 잘 알았다. 개간자들 중 하나로 밀림에 들어와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 란  긴 이름을 가진 아내를 밀림에서 잃고 난후, 인디오 수아르 족이 그를 받아주면서 그는 밀림을 알아갔다.

그래서 그 시체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도 먼저 알았다.


밀림 속에서 긴 시간 동안 자신에게 맞는 책이 어떤 것인지 찾아가는, 그래서 '연애 소설'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의문을 함께 찾은 노인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암살쾡이와의 한바탕 싸움이었다.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갓 걸음을 뗀 사내아이같았다. 암살쾡이를 찾아 밀림 안으로 들어가는 노인. 서로의 생각을 읽고 읽히는 가운데 긴장감이 조성된다.

자연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 총 하나만을 믿고 떠들어대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조롱, 문명의 이기심에 대한 고발이 이어진다.


기다리는 건 너에게 질 수 없다.

노인은 생각한다. 

암살쾡이를 기다리면서도 연애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는 노인에게 암살쾡이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이런.


소설은 노인이 인간을 저주하면서 '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얇고 작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게 어찌나 힘이 들던지.

마치 내가 암살쾡이가 있는 밀림에 함께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란 말랑 말랑한 제목은 위장이었다.

유명한 책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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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선옥 옮김 / 집사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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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라는 책 속에서 발견한 이 책을 친구네 책장에서 본 순간, 얼른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내용일지 항상 궁금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 일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생각할 기회를 주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 활개치며 성큼 성큼 뚜벅 뚜벅 걸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울부짖는 아우성 속에, 마차, 자동차, 버스, 짐차, 그리고 허청허청 발을 질질 끌면서 춤추는 샌드위치맨 속에, 악대와 손풍금 속에, 환성과 종소리와 그리고 머리 위를 나는 비행기의 기묘하게 찢어지는 듯한 폭음 속에, 이러한 것들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인생이 있었다. 그리고 런던이 있었고, 6월의 이 순간이 있었다. (p11-12)


읽는 동안 괜시리 마음이 들뜨고 찬란한 6월의 한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댈러웨이 부인이 자신이 직접 꽃을 사와야겠다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되었다. 그날 밤에 그녀는 파티를 열 예정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를 논할 때면 항상 이야기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댈러웨에 부인이 꽃을 사러 가면서 길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허투루 사라지지 않고 하나하나 연상되는 생각과 함께 나열된다. 그녀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의식을 우리는 놓치지 않고 지켜 볼 수 있다.


어떤 여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결혼 생활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을 것 같이 그에게는 생각되었다. (p66)


물론,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누군가의 생각을 알게 된다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내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번민하고, 짐작하고, 후회하고, 이렇게 의식의 나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소설은 자꾸 자꾸 사람을 끌어들인다. 누군가의 생각을 이토록 진지하게 들어주기도 오랜만이었다.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 등 이제까지의 여류 작가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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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목에 가득한 행복 - 사람 냄새 나는 계동길의 어느 카페에서 생긴 일
김주현 지음, 최홍준 사진, 오다윤 요리 / 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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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 골목이 가진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직접 찾아가 본 계동은 그럴만해 보였다.

아직도 서울 안에 이런 곳이 남아 있단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날만큼 정감넘치는 풍경이 가득했다.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던 하늘이, 계동에서는 멋진 한옥과 어울려 넓고 풍요로우며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게들은 또 어떤가. 시간을 이겨낸, 혹은 시간의 흐름과 같이 흘러가는 듯한 모습의 가게들 투성이다.

한마디로 계동은 서울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한다. 서울이 아니면?

그냥 계동이다. 한옥이며 물건들, 사람들까지 계동스러움이 없으면 그 곳에 있을 수 없는지,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부럽기만 하다.

이 책은 계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계동에 둥지를 튼 부부의 생활 이야기, 계동의 가게 이야기, 골목 이야기...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한다면 행복한 일이겠으나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 간격이 크다고 해도 꼭 좌절하거나 절망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다 보면 그 분야의 최고처럼 잘하지는 못해도 자기만의 스타일이 생긴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즐긴 사람에게 찾아오는 작은 보상이다. (p89)


뭐랄까, 이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이웃 주민들과의 교류나 사람들 간의 정이 담뿍 담긴 내용이 뭉클거리는 감동을 주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책 속에서 발견하고 추억을 공유한 양 즐겁게도 느껴진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고픈 세상이기도 하다.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삶.

사람들과 나누며 행복한 삶.

그래서 책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멀지 않은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투영해보며 말이다.


얼마전 예전에 끄적여대는 노트를 다시 꺼내본 일이 있었다. 그 속에서 지나간, 이미 이루어진 몇가지를 - 비록 사소한 몇가지이긴 했지만 - 발견하고는 신기해했던 일이 있었다. 저자처럼 느리게 같이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읽는내내 했다.


햇살이 반짝이는 가을날, 계동 골목에 찾아가 저자가 책을 통해 보여주었던 살가움, 사람 사는 내음을 담뿍 느끼고 오고 싶다. 내게도 그 조곤조곤한 행복스러움이 다가와 인사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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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낯선 여행 beyond the travel 1
이혜승 지음 / 에디터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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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관한 여행에세이였을 것이다. 저자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약간은 시니컬한 유머가 넘치는 터키에 관한 책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친구의 집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을, 저자의 이름 때문에 꺼내 읽게 되었다. 이번엔 모로코였다. 책이 출판된 순서는 터키에 관한 책이 나중인지 저자의 약력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무얼 먼저 읽던지 상관은 없겠지만, 다 읽고난 지금, 솔직히 터키에 관한 책이 좀 더 마음에 든다.


내가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 것은 스페인을 여행하고 나서일 것이다.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방문하고선 알았다. 우리나라의 세공술이나 문화가 타문화에 비하면 그리 세밀하거나 정교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무지개색 눈꽃 결정같은 무늬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패턴은 작정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표현하기 힘들어 보였다. 아, 진짜 너무 예쁘잖아, 진짜 정교하다, 감탄도 이어졌다.

모로코는 그런 이슬람 문화가 도시 곳곳에 스며 있는 곳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상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그런 정교하고 세밀한 무늬가 새겨진 벽과 문만이 모로코 일상의 전부도 아니었다. 사막의 건조한 기운이 느껴진다. 세밀한 무늬과 강렬한 색감은 건조함을, 팍팍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정말 오랜만에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아니 책 한권을 제대로 정독하기가 오랜만이다. 그래서일까. 책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이렇게 두서없는 이야기만 나온다.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여행에세이에 필수적인 사진도 마음에 든다. 글과 사진이 모두 훌륭한 여행에세이는 그리 흔하지 않다. 저자의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리고 여행에세이는 후유증을 남긴다. 가을은 떠나기에 참 좋은 계절이 되고, 여행에세이는 부추기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뭐, 어쩌겠는가. 한동안 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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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사생활 - 사유하는 에디터 김지수의 도시 힐링 에세이
김지수 지음 / 팜파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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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참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다.

도시는 개인의 사생활을 CCTV 외 여러 가지를 통해 끊임없이 지켜보며 참견하기도 하지만, 독거노인이나 노숙자의 쓸쓸한 죽음을 모른 척 하기도 한다. <도시의 사생활> 이란 제목을 접했을 때 생각이 많아졌다. 나도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아직 도시와 친해지지 못했다. 이해 못할 부분을 많이 가진 것도 같고, 내가 생각했을 때 도시는 참 얄밉고 이기적이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도시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했다. 나한테만 얄밉고 이기적인 게 아니었다면 뭐, 다행이네, 괜찮네, 생각하고 싶었달까.


패션지 <보그>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는 저자에게 도시는 그를 모욕하고 배신한 존재다. 상처주고 모른 척하는 건 예사요, 전쟁터였으며 가장 고독한 생명체이기도 했다.

도시 때문에 그녀는 우울과 불안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병원을 다녔으며, 전전긍긍 다이어트를 시도했고, 달콤한 아부를 남발하며 원더우먼이 되고자 했다. 

불안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불안한 상황 속으로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는 것도. (p35)


그녀는 잡지사 에이터답게 도시 속에서의 삶을 표현했다. 책은 광고와 사진만 없다 뿐이지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참 좋은 말도 많고 다양한 얘기를 담고 있지만 정작 내 삶과 비교하면 뭔가 수준차이 나는 기분이 드는 걸 어쩌겠나. 푹푹 끓인 곰탕이나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찌개가 아닌 고급 프랑스 요리를 앞에 두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 포크며 순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듯한 난처한 기분도 든다. 칼로 잰 듯 벌레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복원된 궁궐의 돌담보다 바람도 지나가고 벌레도 지나가고 세월도 지나가는 제주의 검은 돌담이 그리워진다. 그녀의 글은 비유와 인용 등으로 풍성하지만 가슴 밑바닥의 그것은 건드리지 못했다.

그래, 그래,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런 기분 알 것도 같아... 끄덕끄덕은 하는데 거기까지!

그렇게 품위는 때로 웨이팅 리스트에 줄을 서서 구한 샤넬 2.5백보다 높은, 그러니까 미학적 제스처보다는 끝없는 노력과 신념의 문제로 승화된다. (p77)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 한번 올린 적 없고, 그 전에 왜 백을 기다려가면서 사야하는지 이해 못하는 내게 이런 표현은 단어 하나하나의 이해 뿐 아니라 단어가 모여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에서조차 고급스러움이 뚝뚝 떨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되 그 일을 억지로 사랑할 필요는 없다고. 만약 그 일이 내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거나 깊은 한숨으로 가슴뼈를 내려앉게 만든다면 내 마음을 자부심과 희망으로 채울 수 있는 더 좋은 일을 찾으라고 말이다. (p222)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린 결론에는 동의한다.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으로 치장했지만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재채기처럼, 한차례 시원하게 쏟아낸 후 그녀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일상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변덕스럽고 불친절한 이 도시와 사이좋고 풍요롭게 사는 법’,

저자만의 방법을 알고 싶다면 <도시의 사생활>을 펼쳐보시길.


한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도시는 나에게만 얄밉고 이기적이진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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