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어 제끼면서 둘째 아들이 들어온다
일번 엄마, 나 라면 먹어도 돼?
이번 라면 먹었어?
삼번 어? 라면 냄새난다
음~ 이놈의 라면


우리 도서관은 매달 나름의 주제어를 정해놓고 책을 골라내어 책바람을 쐬어준다
다음 달 주제어는 `향`이다
이런 저런 책들을 골라보지만
이거다 하는 책이 없어 고심하다가
세 권의 책을 골라냈다 드디어~

정은우의 잉크냄새 진동하는 《아무래도 좋을 그림》
고소하고 따뜻한 빵 굽는 냄새가 풍겨나는 《브래드 앤드 버터》
그리고 김 훈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라면 냄새를 풍기는 《라면을 끓이며》
김 훈의 라면은 좀 담백하고 시원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읽고 있는 동안 우리 집은 계란 들어가서 라면이 끓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꽉 차있었다.
보글 보글 소리와 함께
파와 섞인 라면에
계란의 독특한 비릿하면서 달큰한 냄새와 시골엄마의 손 맛? 같은
복합적이고 미묘한 그 냄새~ ㅎㅎ

라면이 맛일까 냄새일까
잠깐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서 라면은 냄새에 더 가깝다.
조미료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들이 끓으면서 나는 냄새를 통틀어 라면냄새라고 하는 둘째가 있어서 더 그렇다
감자탕을 먹으러 가도 라면냄새
집에서 김치찌게를 끓여도- 가끔 얻어오는 김치에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금방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ㅎㅎ-
MSG의 모든맛을 라면냄새 한 마디로 퉁 쳐버리는 두번째 아드님..
거의 매일 실랑이.
라면 먹어도 되? 밥 먹어
밥 말아 먹을께.. 그냥 밥 먹어
요즘 아이들에게는
예전 우리가 느꼈던 밥 익어가는 냄새보다
누룽지 눌어가는 냄새보다
라면냄새에 더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김 훈의 라면 끓이는 방법은 내가 끓이는 방법과 비슷하다.
파대신 김치를 넣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끓인 라면 맹탕같다고 안 먹는 남자도 있다
짭짤하게 끓여야 라면에 대한 예의라나 뭐라나~
이 책은 옆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읽어야 제 맛이 날것 같다 ㅎㅎ

이제 밥 먹으러? 아니 읽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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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0-14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공 너무 배가고파지네요 ㅎㅎ 오늘 점심은 라면으로다가! 주제를 정해 바람을 쐬어주는거 정말 좋은데요 ㅎ 세 권다 관심이 갑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0-14 21:46   좋아요 0 | URL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실제로 점심으로 라면을 먹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주로 일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에 라면찌게로~ ㅎ

yureka01 2015-10-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면은 먹는 것의 안쪽에 대한 비애라고 딱~~~적혀 있으니..흐..

지금행복하자 2015-10-14 21:47   좋아요 0 | URL
인 박히는 음식인데.. 왠지 처량한 음식인데.. 그래도 맛있어요 ㅎㅎ

레삭매냐 2015-10-14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라면 먹으러 왔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0-14 21:48   좋아요 0 | URL
맛있게 드셨어요? 요즘은 라면 종류가 정말 많아요~ 저는 삼*라면이 젤 좋아요~~

낭만인생 2015-10-1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면 좋아했는데... 글이 맛깔스럽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0-14 21: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금도 라면 좋아해서 가끔 먹어요~
 

달콤달콤 & 짜릿짜릿
Gido Amangakure

혼자아빠의 딸키우기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서 먹인다는 것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어쩌다 가끔 해주는 음식이야 입에 맞고 맛있는 그런 음식을 해줘도 되지만
집에서 매일 매일 먹는 음식은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이면서 또 무심해지기도 쉽다
특히 음식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마 하기싫은 일이 되어버릴수도 있다.
가족이 아니라면.
가족이기에.
이런 저런 변명으로 밥을 해먹이게 된다
근데 왜지? 생각하게 된다
집에서 하는 밥은 당연한것이다
엄마는 당연히 밥을 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하는 밥은 당연하다
아무리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 놈들이 뼈속까지 그 의식을 심어놨나
밥 해주란다. 무조건 맛있는 밥으로..
밥은 해주되 이제는 혼자는 안 한다
최근에 나는 인정했다
난 밥 해주고 빨래해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야. 아무리 내 새끼입으로 들어가는 밥이지만 밥 해놓으라고 하면 무조건 이뻐보이지는 않네..
나 밥먹을때 뺏어먹는 것도 싫고 ㅋㅋ
솔직히 각자 알아서 먹으면 정말 좋겠다 ㅎㅎ 정말 배 고파 밥 뜰 힘도 없으면 어쩔수 없지만 ㅋㅋ

신랑도 인정. 애들도 인정. 나도 인정.
맞아 엄마는 집안일 하는거 진짜 싫어해~

그니까 같이하자고
도와주는게 아니라~~
분담해 주면서~~
이제 니들이 밥도 해먹어라~~
종용도 해가면서 ㅎㅎ 이미 해 먹고 있기는 하지만~

나한테 밥 얻어먹고 싶으면 다함께 재미있게 만들어 먹기 그리고 무지하게 고마워하기 ㅎㅎ


솔직히 제목보고는 좀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내용을 기대했었는데
유치원생 딸과 혼자아빠 그리고 바쁜 엄마를 둔 여고생의 맛있는 집밥 해먹기일줄은 꿈에도 생각못 했다.
그래도 밥을 먹는 행위로만 아닌 함께 하는 활동으로 밥 해먹는 함께 먹는 즐거움. 고마움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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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을 그림
글.그림 정은우

제목이 너무 좋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그냥`이다.
왜 좋아?
그냥
왜 책읽어?
그냥
왜 그거 해?
그냥
별 목적도 의도도 없다
그냥한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지금도 그냥 책 읽고 그냥 쓰고
그냥 뒹굴뒹굴 거리고 있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아무래도 좋은거라고 해서
함부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막 대하라는것도 아니다
가끔 이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목적과 의도가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목적의식적인 삶은 힘들고 불편하다
왠지 두뇌가 쉬지 못할 것 같다
고단해보인다.
그래서 왜? 를 물어보면 난 할 말이 없고 그들은 답답하다
심지어 이런 말도 듣는다
그 열정 변하지 말고 오래가시길 바래요~
그 사람이 불편해지는 순간이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라 더 좋을수도 있다
더 오래할 수도 있다
그냥 하는 일이라 더 열정적으로 보일수 있다
더 오래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별로 지치는 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여행을 기억하는 만년필 스케치`
제목에 붙어있는 글귀다.

만편필을 써 본지 얼마나 됬을까
요즘엔 펜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키보드가 익숙해지고
뭔가늘 쓸때도 느린 손 글씨가 자꾸 생각을 걸고 넘어지는 것 같아 컴으로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부러 손글씨를 쓰다가도 다시 키보드로 돌아가기도 한다
뭘 많이 쓰지도않으면서..
편리성이 인스턴트한 생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것이다

잉크색을 좋아한다
만년필의 서걱거리는 그 느낌이 좋아
많이 사다나르기도 했다.
다 어디갔을까?
고등학교때에는 만년필가지는것이 큰 소원이어서 돈 벌면 꼭 만년필 살거라고 다짐했었는데..
그때는 빠이로트- 파이럿은 어색하다 빠이롯트여야한다- 만년필이 최고인줄 알았다. 십수년전 서울에서 잠깐 살 때 종각에서 종로 3가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그 중간쯤 모퉁이에 빠이롯트 대리점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구경하고 들어가서 구경하고 틈틈히 사기도 하고..
잉크도 블루블랙 뿐만 아니라 여러색도 나왔던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만년필에 가장 어울리는 색은 아무래도 블루블랙. 잉크색이다.

지금은 만년필을 쓰지 못하고 잉크색 시그노펜을 쓴다. 이 펜을 발견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잉크색 펜이 있다니~
신세계야~

책속에 러스킨의 이야기가 나온다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인상깊은 구절이었는데 이 책의 저자 정은우씨가 다시 떠올려준다
풍경을 소유하는 방법에 관하여 사진과 데생과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
그 때는 유일하게 그나마할수 있는게 글쓰기라고 생각해서 이거라도 해야지 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대신 사진을 하고 있다.
스케치도 글도 시간과 정성이 사진보다는 더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손글씨를 쓰다가 키보드로 넘어가버린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

--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피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노력에 달려있다...... 이 아름다움이 기억속에서 얼마나 오래 남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의도적으로 파악하느냐에 달려있다.... . 카메라는 진정한 지식을 선택할 기회를 줄 수도 있지만, 어느 새 그 지식을 얻으려는 노혁을 잉여의 것으로 만들어 버릴수도 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우리 할 일을 다 했다는 느낌을 줄수도 있다...
-- 여행의 기술중에서 --


아직 사진도 제대로 못 하는데.
더한 욕심은 없다
그렇다라는 거.
아직은 사진에 집중하고 싶다.
사이에 뭔가가 들어오기도 할것이다.
그것들이 나에게 들어오기를 기다리는거다
책장 한 귀퉁이에서 말라가는 내 수채물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듯이~


* 관계에서 사랑의 유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 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이해했다는게 중요하다 - 20p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식으로 서로 만날 일 없었던 것들이 만나가는 이야기의 축적이다. 길고양이 한마리에도 여행의 놀라움이 있는 것이다 - 24p

다만 만드는 정성 못지 않게 보는 이의 정성도 일종의 예의라는 이야기정도는 하고 싶다. 보는 정성이 만든 정성을 완성한달까. 건축가의 감정과 집념이 어떻게 스며 있으며, 보는 이이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 끝내 감지 못한다면 지은이로서는 적지 않게 섭섭할 것이기 때문이다. - 31p

나는 재현보다 간섭을 좋아한다. 눈으로 풍경시 들어올 때는 잠자코 있다가 보고 있는 장면을 종이위에 옮기는 순간 끼어드는 제 나름의 해석이 간섭이다. 간섭은 어떤 대상을 지우기도 하고 특정장면은 강조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저 타자화 된 대상을 내 식대로 해석해 쓰고 싶다는 속셈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 98p

갈수록 어딘가에 글씨를 끄적이는 사람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이러다가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닐까싶을 정도다.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 시대는 내가 나이길 포기하는 시대 혹은 내가 나라는 것을 남들이 증명해주어야하는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 119p-

생의 꿈이나 열정 운운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산지 오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슴 속 깊이 잊었던 염증이 도지는 기분이다. 뭔가를 간절히 이루려는 사람은 경험상 주변의 누군가에게 꼭 상처를 준다... 삶과 자신에게 날이 서 있는 사람은 그 세월을 지나며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기 마련이다. 요즈음엔 차라리 꿈이 없는 사람이 더 건강해보인다. 더는 이루려는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다. 굳이 누군가와 함께 어깨를 맡대고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이런자들의 곁에 서 있겠다 -157p

전통은 멋이 아니라 생존이다 - 159p

개인이 살아가는 이유는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한 것이지 그 이외의 어떤것을 위해서도 살아가지 않는다고 했던 중국작가 위화의 말이 그래서 거짓말이 아니다 - 161p

내가 먹고 싶은 건 추억이지 그 맛이 아니란 걸 나도 이제 잘 안다 - 219p

인간은 돼지를 기르며 살찌라고 먹이를 주지만 그게 돼지의 안녕을 위한 것은 아니다 - 228p

물론 견주는 총명하다거나 빠르고 힘이 세다는 이유로 어떤 개만 총애하지 않는다. 견주의 역할은 각각의 개가 가진 역량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있기 때문에 특정한 개를 편애하지 않는다. 견주가 그들 한마리 한마리의 이름을 불러주고 안아주느라 하루를 다 보냈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개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견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리라. 견주는 그래야만 썰매개들이 인간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이 아닌, 스스로 잘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달릴수 있다고 했다... 그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땀 흘리고 `달렸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한다. 개들조차도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아는 것이다 - 232~233p

앙코르와트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감탄을 연발하는 우리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지 못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세계유산이 아니라 그 돌덩이 밑에 깔린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감수성일지도 모른다 - 236p

남들의 기이한 삶. 뜻 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 여기` 내가 저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이 여행에서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들어야 비로소 남의 삶. 남의 풍경이 내 일부가 되어준다. -245p

우리의 삶은 결국 직접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나칠수도 모를 수 많은 일상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누가 내게 여행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이 세상의 사소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라 말하고 싶다 - 2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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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10-12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냥`이라는 단어 아주 좋아하는데!!!!요~~~^^;;;

지금행복하자 2015-10-12 20:08   좋아요 0 | URL
그냥이라는 단어 정말 좋아요. 사는데 실상 의미를 담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하는 일이 더 많잖아요. 후에 그 의미가 부여되는거지 ㅎ
그냥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고기자리 2015-10-1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화의 `인생`을 좋아해요.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 있는 대로 힘을 잔뜩 주고, 대단한 목적을 위해 사는 순간도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그저 삶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요../ 책에서 인용하신 내용들이 다 좋습니다^^ /저도 시그노펜 좋아해요ㅎ

지금행복하자 2015-10-12 20:11   좋아요 0 | URL
한동안은 힘 잔뜩주고 살았는데 저도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던것 같아요. 굳이 그리 살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살았는지. ㅎㅎ
시그노펜.. 롤링도 좋고 색깔도 다양해서 더 좋아요. 브라운블랙. 보르도 블랙. 그린블랙 ㅎㅎ 그중에 최고가 블루블랙이구요~

AgalmA 2015-10-13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이 책 보다가 <존 러스킨의 드로잉>을 제대로 읽어보자 싶었던 것 아니겠음요ㅎ?

지금행복하자 2015-10-13 08:26   좋아요 0 | URL
ㅈ저는 보통의 여행의기술 보다가 러스킨의 드로잉을 샀어요. 데생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에세이 읽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던것 같아요. ㅎㅎ
독특하게 매력있는 책이에요~^^ 저 책 덕분에 보통의 여행의 기술. 드로잉 다시 뒤적이고 있어요~^^
 

운주사를 처음 갔을때가 19살이었나보다.
대학 1학년때였으니.
절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고
천불천탑. 와불에 대한 간단한 내용만 있었던것 같다.
윗 선배가 나름 조사해와 후배들에게 브리핑했던 기억이 난다.
와불에 대한 전설도 듣고 와불앞의 머슴불에 대한 이야기. 운주사만의 천불이 다른 절과 다른 이유등등..
시절이 그래서 그런 사연을 가진 곳을 일부러 찾아갔었던것 같다.

어째든 그때의 운주사는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에 절만 달랑..
여기 저기 석상들은 널부러져? 있고
탑들도 어수선하게 서 있었던것 같은데..
와불위에도 올라가고 칠성바위에도 올라가 놀았던것 같다. ㅎㅎ
절 밖으로 나와 옆 길가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버스를 타러 나오는 길이 길어 한참을 걸어나오면서 한 선배가 풀피리 불어주던 일도 기억이 난다 ㅎㅎ
그때의 사진들은 다 어디에 가버렸는지..

그때의 고즈넉하고 작고 아담하고 소박했던 운주사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가보고 허거덕~ 왜 이리 바뀐거야..
초록잔디가 깔리고 산책길이 만들어지고..석상들은 한데 고이 모셔지고~~ 없던 일주문도 만들어지고.. 어이구야~~
여타의 사찰과 다름없음에 실망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몇년전 불이 크게 나서 보수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었지.. 어쩔수가 없는 건데..
크게 실망했던것은 사실이었다.

올해 다시 가본 운주사는 작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잘 만들어졌구나. 그래도 주변 환경에 튀지 않으려고 애썼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곳 저곳 다녀보면서 이전의 변해버린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아쉬움과 어쩔수 없음을 생각하게되는 하루다.





<장길산> 제4부 ‘역모’ 끝부분

황석영

세상의 천민들이여 모여라, 천불천탑을 세우자.
그들은 보리밭 밭고랑에 돌을 눕혀 새기기도 하고, 산비탈에서 쪼으기도 하고 암벽 중간에 매댤려서 정과 망치를 두드리기도 하였다. 늙은 노비가 일러서 계곡이 끝나는 곳에 새 절을 세웠으니 운주사(運舟寺)라 하였다. 젊은 노비가 물었다.

할아버지. 절 이름이 어째서 운주사요?
배를 부린다는 뜻이란다. 배가 물에 떠서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니라.

젊은 노비는 더욱 궁금해졌다. 이 깊은 산골에서 배는 무엇이고 물은 또 무어요. 우리가 이제는 다시 죽지 못해 살던 섬으로 쫓겨 간다는 뜻이우?

늙은 노비는 햇빛에 그을린 주름살 많는 눈을 감을 듯이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게 아니란다 얘야. 새로운 우리 세상이 바로 배가 되는 게야. 미륵님 세상의 배가 된다. 배는 물이 없으면 뜰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럼 물은 또 무엇이우?

물은 우리 같은 천것들이고 만백성이란다. 우리 중생이 물이 되어 고이면 배가 떠서 나아가게 되는 게야. 이제야 배가 되어 움직이는 절의 의미를 알겠느냐.

노비들은 다시 정신없이 돌을 쪼아 미륵상을 세웠다.





<구름바다 위 운주사(運舟寺)〉

황지우

비구름 끼인 날  
운주사(運舟寺), 한 채 돛배가  
뿌연 연초록 화순(和順)으로 들어오네  
가랑이를 쩌억 벌리고 있는 포구(浦口)  
천불천탑이 천만 개의 돌등(燈)을 들고 나와 맞는다  
해도, 그게 다 마음 덩어리 아니겠어?  
마음은 돌 속에다가도 정(情)을 들게 하듯이  
구름 돛 활짝 펴고 온 우주를 다 돌아다녀도  
정들 곳 다만 사람 마음이어서  
닻이 내려오는 이 진창 비구름 잔득 끼인 날  
산들은 아주 먼 섬들이었네  



<산경(山經)을 덮으면서〉

황지우


1
적설 20cm가 덮은 운주사(雲舟寺),
뱃머리 하늘로 돌려놓고 얼어붙은 목선(木船) 한 척
내, 오늘 너를 깨부수러
오 함마 쇠뭉치 들고 왔다
해제, 해제다
이제 그만 약속을 풀자
내, 정(情)이 많아 세상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세상이 이 지경이니
봄이 이 썩은 배를
하늘로 다시 예인해가기 전
네가 지은, 그렇지만 작용하는 허구를 작파하여야겄다


2
가슴을 치면
하늘의 운판(雲板)이 박자를 맞추는
그대 슬픔이 그리 큰가
적설 20cm,
얼음 이불 되어
와불 부부의 더 추운 동침을 덮어 놓았네
쇼크로 까무라친 듯
15도 경사로 누워 있는 부처님들
석안(石眼)에 괸, 한 됫박 녹은 눈물을
사람 손으로 쓸어내었네


3
운주사 다녀오는 저녁
사람 발자국이 녹여놓은, 질척거리는
대인동 사창가로 간다
흔적을 지우려는 발이
더 큰 흔적을 남겨놓을지라도
오늘밤 진흙 이불을 덮고
진흙덩이와 자고 싶다

넌 어디서 왔냐?




< 풍경 달다>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어오는 길에
그대 가슴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흐흐 올만에 관광객 모드 ㅎㅎ

사진 배우는 스님들..
어두워요~ 다시 찍어보세요.
플래쉬 터트려도 어둡나요?
확인해보세요~
선생님인듯한 분은 후래쉬 터트리면 빛이 강할까봐 흰색 우산으로 반사판으로 만들어 주고 계셨고
사진 찍는데 너무 진지해보이는 스님들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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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10-1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주사 정말 느낌이 좋은 독특한 절이죠. 자연히 생겨난 절같은 느낌. 저도 가 본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렇게 변해버렸다니 씁쓸하네요.

지금행복하자 2015-10-11 21:02   좋아요 0 | URL
절들이 관광화 되면서 나름의 독특한 맛들을 잃어가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세월이 바뀌는 것을 탓할수는 없고 되도록이면 너무 많이 인공적이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만 하고 왔어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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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오키노 유이치

책 표지
`못다한 효도를 당장 하고 싶게 만드는 책`

그런가?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못다한 효도를 하고프게 한다기 보다는 효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예전에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자식들에게야 못 할일이겠지만
치매라는 것. 꼭 나쁘게 생각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 한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물론 세상의 기억을
살면서의 기억을 다 가져가고 싶을 수도있지만
또 누군가는 세상의 기억을
살면서의 기억을 놓고 가고싶어 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람이 치매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가장 좋았던 기억만
가장 행복했던 기억만 기억하고
이 마저도 부질없을 수도 있고
다 놓고 싶어하는 것이 치매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왔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가는 것이 치매가 아닐까 하고...

치매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아 쉽게 말한다고 하겠지만...
가장 행복한 죽음이 자다가 눈 감는것이라고 그러지 않은가..
고통속에서 이승의 마지막 기억을 약으로 취해 몽롱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너무 아픔으로 고통스러워 그냥 보내드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보다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의 입장에서야
힘든것은
마음 아픈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부모님과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효가 아닐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동안 엄마가 아버지가 계속 꿈속에 보인다고
이렇게 말했다고..
또는 말을 안 한다고..
쳐다만 보다가 갔다고..
엄마랑 사이도 안 좋은 양반이 뭐한다고 엄마한테 나오냐고 말도 안 된다고
죽은 사람 자꾸 꿈에 보는것 안 좋다고
타박? 준적이 있는데 ...
생전의 부부로서의 기억이 리셋되어버린 듯한 엄마의 모습이 불편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이 엄마한테는 아빠를 보내는 방법이지 않았나 싶다.
부모로서의 모습이 아닌
부부로서의 아버지는 엄마에게 분명 다른 의미였을 텐데..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사람도 엄마인걸 보면 우리 자식들은 모르는 뭔가가 분명 있는 건데 자식으로서의 잣대를 엄마에게 들이댔었던 적이 있었다.
그냥 들어주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런것이 효가 아닌가 싶다..
어? 아닌가? 돈 잘주는 자식이 효도하는 자식인가? ㅎㅎ

벗겨진 머리를 내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효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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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0-1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니 `비밀 독서단`에서 정찬우님 사연때문에 코끝이 찡했던 생각이 났어요.. 이 책은 그런것 같아요. 가까이에는 부모님을 그리고 조금 멀리에는 자식과 나 사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바구니에 담아봅니다^~^

2015-10-11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1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리미 2015-10-11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 책 도서관에서 빌리려 했더니 티비프로그램 영향인지 이미 대출중이고 예약도 다 차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영화로 나온 걸 봤거든요. 영화도 나름 감동적이었고 중간 중간 작가의 그림체가 소개되었어요. 근데 확실히 귀여운 그림체로 보는게 더 감동적일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행복하자 2015-10-11 17:38   좋아요 0 | URL
영화도 있나요? 그림체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말투 하나하나에 애정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어요~^^

2015-10-11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 2015-12-02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 잘 보았습니다. 페코로스와 엄니의 두 번째 이야기 <페코로스, 어머니의 보물상자>가 이번에 나왔더군요. 전작의 감동을 뛰어넘는 완결편이라니 같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행복하자 2015-12-08 08:47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추천 감사해요~^^
꼭 읽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