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토마토비 서재 (토마토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478111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2 Jul 2026 03:30: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토마토비</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478111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토마토비</description></image><item><author>토마토비</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냥 즐긴다는 것의 어려움 -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 - 성취 중독 사회, 이유 없이 즐거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4781112/17350076</link><pubDate>Tue, 23 Jun 2026 0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4781112/173500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9661&TPaperId=173500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1/82/coveroff/k2421396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9661&TPaperId=173500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 - 성취 중독 사회, 이유 없이 즐거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a><br/>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유유 / 2026년 05월<br/></td></tr></table><br/>우리는 왜 늘 "왜?", "무슨 의미가 있어?", "뭐에 도움이 돼?"라고 묻는 걸까. 고쿠분 고이치로의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는 이 물음에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이유 없이 즐거운 행위 자체의 가치를 되묻는 책이다.<br/><br/>'그냥'이라는 말은 결코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수단화된 삶, 성취 중독 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목적-수단의 틀에 가두려 한다. 바쁜 일상에서 노을을 봐도 "아, 노을이네" 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한 여유가 아니다. 감각이 대상과 부딪히면서 예상치 못한 형상을 빚어내는 힘—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에서 뜻밖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그 능력—이 막힌다. 고쿠분은 이것을 구상력이라 부른다.<br/><br/>이 현상은 관계와 창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화 상대를 미리 '저런 부류'로 분류해 놓으면, 그 사람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개념이 감각보다 먼저 도착한다. 눈앞의 사람은 '지금의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뀐다. 글을 쓸 때도 마감과 평가 압박이 있으면 기존 개념을 재배열하는 글만 나온다. '글이 글을 밀고 가는' 자유로운 쓰기는 먼 이야기가 된다. 구상력이 닫히면, 관계도 언어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의 반복으로 굳는다.<br/><br/>소비사회는 이 문제를 더욱 강화한다. "저 맛집에 가봐야 해"라는 생각은 이미 '답'을 미리 정해 놓은 상태다. 답을 아는 지성이 앞서서, 경험 자체에 들어갈 틈을 없앤다. 이런 경계와 분류가 습관이 되고, 반사가 되고, 결국 자동회로가 된다. 이는 단순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목적-수단 강박에 갇힌 구조적 문제다.<br/><br/>그렇다면 모든 습관은 나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성 개념은 여기서 중요한 반전을 제공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규칙을 배워야 한다. 의식적으로 따르고, 반복해서 익혀야 한다. 그러나 진짜 탁월성은 규칙을 억지로 붙드는 데서 오지 않는다. 규칙이 몸과 감각 속으로 충분히 스며들어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될 때, 행위는 자연스러움을 얻는다. 그때의 행위는 계산된 수단이 아니라 숙성된 리듬이 된다.<br/><br/>이 점에서 방어적 습관과 탁월성은 정반대의 방향을 향한다. 방어는 경험을 미리 닫아버린다. 반면 탁월성은 경험을 충분히 통과한 뒤에 비로소 열린다. 우리가 쾌락을 얻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쾌락을 얻기 위해 만든 수단들이 어느 순간 방어 장치로 굳어버리는 데 있다.<br/><br/>이 책은 '그냥' 즐기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삶의 완고한 자동회로를 깨우는 철학적 초대장이다. 목적이라는 안전장치를 풀고 무방비하게 나설 때, 세계는 다른 얼굴을 보인다. 오늘 저녁, 노을 앞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 붉은 빛에 마음을 통째로 내맡겨 보는 것—그것으로 충분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1/82/cover150/k2421396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71824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