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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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속한줄]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선택해라. 타인의 도움을 바라지 마라. 너는 너의 것이란다. 그것이 바로 삶이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젊은 민주주의자로서 내가 자유에 대해 논할 기회가 있었다. (중략)

"자유." 아버지가 되뇌었다. "무엇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지 알고 있니?"

"네?"

"그것은 의지, 자신의 의지란다. 그것은 자유보다 더 좋은 권력을 준단다. 무언가를 원하는 능력을 가져라. 그렇게 되면 자유를 얻고 다른 사람들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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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무엇일까. 풋풋하고 싱그러운 느낌만 가득할 것 같은 이 단어는 이들의 세상 속에선 도무지 통용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순수함을 붙일 수 있는 건 열 여섯,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 뿐일 것 같다. 아니, 그러고 싶었던 그의 의지는 아니었을까. 이제 그 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버린 이 중년의 남자는 풋풋했던 한여름의 첫사랑을 열여섯, 순수했던 자신의 눈으로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많이 가미해서 쓴 소설로 여름을 향해 피어나는 열여섯, 화려하게 피어난 스물 한살, 그리고 이젠 다 져버린 마흔의 어쩌면 진짜 첫사랑을 이야기한다.


첫사랑이란 늘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깝고 서러우며, 그래서 더 찬란하게 빛난다. 지나이다를 향한 그의 감정은 그렇게 젊음의 싱그러움과 같이 다가왔고, 또 그렇게 한 낮의 열병으로 마무리되었기에 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았을까. 대학 입학을 앞둔 열여섯의 여름, 옆 집으로 이사온 가난한 공작부인과 그의 딸 지나이다와의 만남은 평탄했을 블라지미르 페트로비치의 삶에 가장 큰 사건이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남자들과의 은밀한 게임도, 왜 그렇게 본인의 어머니가 그녀를 싫어하는지도.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의 비밀도 사실 그는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싶었을테다.


재산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한 아버지, 늘 외로웠던 어머니 사이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블라지미르는 어머니가 주는 사랑을 어쩌면 지나이다에게 원하고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없는 결혼에 가진 것은 잘생긴 외모 뿐이었던 아버지 역시 자신이 오롯이 지배할 수 있었던 지나이다와의 관계에서 희열을 느꼈을까. 의지와 권력을 가졌을까. 그래서 더 오랫동안 살고 싶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먼저 보았던 공연 '붉은 장미'가 떠올라 오롯이 나만의 생각으론 읽지 못했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블라지미르, 아니 이반의 싱그러운 열일곱보다 장미처럼 붉은 지나이다의 세상에 대한 이글거리는 마음보다, 무대 위에선 빅토르 투르게네프로 그려진 그의 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그러나 그 비극의 끝은 서로를 향한 오만의 화살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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