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이 이야기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 가장 비현실적이다. 며칠 전에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시민의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한 SNS채널의 유머에서는 피부 색 때문이라도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 차별하고 학대하면 안된다고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고 배우는데, 왜 여전히 우리는 다른 이유도 아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하는가.
이 차별의 역사는 1~2년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차별의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점점 더 과격해지는 것 같다. 이 아이의 이 증오를 어떻게 위로하고 어루만져주어야 할까. 그리고 이 아이가 어른이 된 후에는 이 깊은 차별이 사라질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영화 '셀마'가 떠올랐다. 그 다리 위에 서로의 손을 잡고 두려움을 눌러가며 행진했던 이들은 그 두려움보다 더 큰 열망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나라의 정당한 주민으로서 평등한 투표권을 갖겠다는 의지. 그리고 그 안에서 고뇌했던 인간적인 모습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더이상 희생이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읽었다. 친구가 아무런 잘못 없이 눈 앞에서 스러져버린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유일한 증인이 되어버린 상처만 남은 이 아이의 마음 속에 가득한 울분이 현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응과 포기로 점철되지 않길 바라며.
책의 제목은 미국의 힙합가수 투팍의 노래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잘 들어! '당신이 아이들에게 심어 주는 분노가 모두를 망가뜨린 다(The Hate U Give Little Infants Fucks Everybody)' 앞 글자만을 보라고, 터그 라이프 THUG LIFE! 폭력배의 삶이잖아. 우리가 어릴 때 사회가 심어 준 사상이 우리가 통제 불능이 되었을 때 오히려 사회를 공격하게 하는 거야. 알겠어?"라는 책 속의 대사처럼 결국 사회가 안겨준 증오는 다시 사회로 돌아와 스스로를 해한다.
이 차별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흔히 차별은 편견에서 시작된다고들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크고작은 편견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당연하게 총구를 겨누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삶이 보였다. 국가와 종교,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비하하고 혐오한다. 특히 동양인, 한국인에 대해서는 눈이 찢어지고 공부만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비하적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차별로 상처받은 이들이 반대로 누군가에게 차별의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가 서글프다. 또 우리의 삶 속에는 이런 증오가 생길 일상이 없을까. 우리고 국제결혼이 흔한 이야기가 되고, 혼혈가정이 많아지면서 이런 상처를 주는 차별이 만연하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그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이런 크고작은 증오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곤 한다. 이제, 앞으로는 나 먼저 이 작은 차별에서 자유로워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