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상자 베틀북 그림책 86
데이비드 위스너 지음 / 베틀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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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빨간 우체통이 사라지는 시간대에 산다

 

시간상자. 데이비드 위즈너.

2017.3.3. 정기화

 

모래사장같은 이면지를 지나고 지나서

해변가에 삽을 들고 있는 어떤 소년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새가 세 마리. 멀리 배경으로 사람들이 있다. 한적하지만 여유가 묻어나는 외롭지 않은 바닷가 풍경이다.

시간상자의 제목. 어디선가 본 듯한 물건들이 늘어져 있다. 쓸모를 알지 못하지만멋져보이거나, 손때가 묻었거나, 세월이 지나간 흔적들이 있거는 자잘한 물건들.

그 사이로 멀리 동그란 동전이 있다. 저거 우리나라 대전통보 그런 엽전들인가?

다들 사연들을 담고 돌고 돌아 여기에 모아놓은 물건들. 그렇다면 작가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느 구석에 있는 물건들을 그려놓은건가?

 

..이건 뭐야? 하고 보니 뭔 생명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뒤에 있다.

서로 이 생명체를 보고 있는 모양새다. 그림책에 눈동자와 내가.

그럼 이 생명체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거야? 발이 몇 개야?

그렇게 잠시 놀란 장면을 지나가면 어떤 소년이 돋보기를 들고 아까 그 벌레를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모래에서 놀기에 적당한 삽들과 양동이들이 있다. 친숙한 자세로 엎드려 있어서인지 눈높이가 나와 같아 편안하다

 

해변가에 파도가 밀려오는 장면을 배경으로 여러컷의 긴 그림들이 폭이 다르게 그려져 있다.

멀지만 걸어오는 모습, 조금 두껍게 엎드려 땅파는 역동적인 컷..그리고 길지만 아주 가깝게 들여다보는 옆얼굴. 그리고 파도에 덮쳐지는 두컷의 그림. 해변가에 가깝게 다가가는 듯하다.

으으....미역줄거리같은 것들이라니..실타.

그 사이로 낯선 물건하나. 수중카메라?? 신기한데.

아이는 필름을 현상한다.

여러컷으로 아이의 조급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서두르면서 뛰어가고..현상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리고 들여다본다.

들여다보는 장면은 전체에 프레임없이 깔려있다. 이 모든 것이 사진을 보기위한 작은 과정이라는 듯이..이런 형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프레임이 없이 배경을 깔고 그 안에 작은 컷으로 프레임으로 그려넣은 그림들.

..로봇물고기다. 짙은 파란색의 바다로 보이는 곳에 붉은 빛의 물고기들이 떼지어 가고 있다. 그 가운데 로봇물고기가 나란히 물고기처럼 나아가고 있다.

도대체 저건 뭐지?

그리고 다른 사진. 바다의 대왕오징어들이 새끼오징어를 앞에 두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어주고 있다. 저 밝은 빛의 물고기는 아귀? 크크크..

검정 프레임을 두른 그림들은 모두 현상된 사진인가보다.

세 번째 검정프레임안에는 가시복 기구를 탄 물고기들? 납치되는 건가? 왠지 기구를 탄 물고기들 표정이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나? 놀란 기운이다.

장면을 넘어갈수록 점점 더 상상이 넘어서는 사진들이 나온다.

카메라가 떨어지는 외계인들의 수중도시 사진을 지나가면서 다른 장면에도 사진기가 있는지 찾아보지만 별로 없다

그리고 사진을 한 장 들고 있는 어느 동양인소녀. 그리고 소년 소녀들..

다들 사진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배율을 높여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시대를 거슬러 흑백의 사진들이 남겨져있다

아이는 자신도 사진을 들고 찍고는 다시 그 카메라를 바다로 던진다.

현상했던 사진들은 바다로 흘러가고..아이는 그 카메라가 던져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 카메라는 바다 멀리멀리 다양한 생명체들을 지나 건네지고 건네져서

어느 바닷가에 아이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 모래사장의 면지가 남겨져있다.

 

시간상자. 원제는 뭘까?

찾아보니 해변에 밀려온 표류물. ..제목을 시간상자로 하니 더 포장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단순히 영어의 원뜻도 저 의미만 있는 단어일지 의문이 든다.

카메라의 기능을 생각해보았다.

기록하고 추억할 수 있는 지금 현재를 고스란히 종이에 옮기는 물건.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여기가 아닌 먼 나라의 사람이나 생활도 알 수 있는.

연결지을 수도 있고 전달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 시간을 저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

하지만 아이가 현상한 다른 사진들을 바다로 흘러가도록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진들도 신기할텐데..간직하고 싶지 않았을까?

다른 아이들과 같은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거 같다.

시간은 소유할 수 없이 흘러가는 거라는 의미일까?

그렇지만 사진을 찍음으로서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의미를 남겨놓기?

난 무엇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즐겼는지 곰곰 자면서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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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화요일 비룡소의 그림동화 84
데이비드 위스너 글.그림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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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화요일

데이비드 위즈너. 비룡소.

2017.3.2. 정기화

 

아주 오래전에 읽었고 데이비드 위즈너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했다.

뼈대는 간단하다.

연잎에서 자고 있던 개구리들이 연잎을 타고 날아가는 하룻밤이야기다.

잠잠하던 동네를 습격하는 개구리들의 비행.

글이 거의 없이 전개하는 방법이 어울려 보인다.

 

처음 시작 세로로 긴 세 컷의 그림이 있다.

곤히 자고 있는 개구리 -> 가운데 개구리 눈이 붕 떠지면서 연잎과 함께 몸이 붕 떴다.-> 다른 개구리들이 놀라는 가운데 같이 부웅 뜨려고 한다.

이 세컷의 그림이 앞으로 전개될 그림책에 대한 기대감을 확실히 높여준다.

그림또한 개구리의 축축하고 안개가 낀 숲속 연못같은 눅눅함도 잘 표현되어 있다.

갈대와 부들의 흐릿한 그림자 배경이 그럴싸하다.

 

화요일 저녁, 8시쯤.

이번엔 가로로 긴 세컷의 그림이다.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다가 달이 떠오르는데 연못의 죽은 나무껍질에 올라앉은 자라가 점점 크게 다가오고 있다. 다가오는 자라의 두리번 거리는 시선의 방향과 눈빛에서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에그머니나. 의 시늉이 보이는 등껍질로 화들짝 말려 들어갈 틈도 없이 버둥거리는 듯한 자라의 팔다리가 ..기세등등하게 연잎을 타고 날아가는 개구리들 밑으로 깔려있다. 위풍당당하다고 해야하나. 까맣게 반들거리고 축축한 눈빛의 개구리들이다. 어디를 가는지.

그렇고 넘어가면 개구리들이 곡예비행을 하며 신이 났다. 전신주에 앉아 수많은 새떼들이 놀라 달아나게 할만큼 하늘을 개구리들이 뒤덮었다.

이 장면을 실제로 본다면....목아지가 쪼여드는거 같다.

 

그럼 날아가서 어디 마을을 둘러나볼까? 개구리반장? 통장처럼 느껴지는 통장개구리를 위시하여 마을에 하늘로 날아간다.

이때 시작 밤 1121. 연못에서 여기까지 3시간 반즘 걸렸다. 꽤 거리가 있다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어떤 사람(-작가라 추정했다.) 유리창너머로 개구리가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예절바른 개구리다.

빨랫줄에 걸려 연잎에서 떨어진 개구리도 있고 빨래를 뒤집어쓰고 날아가는 개구리도 있다. 유령놀이라도 하려나?

웬걸 빨래감이 어느새 망토로 변신해서 바람을 펄럭이며 날아온다. 멋진데..

열린 문으로 굴뚝으로 들어와 밤늦게 티비를 보기도 하고..그렇게 개구리들의 공간에서 틈사이로 상황을 살피는 고양이가 눈에 띤다

영리한 고양이.

 

새벽 438.

...이제야 눈에 보이는 새벽시간이다. 12시까지 너무 짧은 비행이라고 생각했을까? 하룻밤을 온전히 날았구나. 시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건?

개가 개구리를 몰고 뛰어가는 장면이 리얼해서였나?

역전되어서 개구리에게 쫒겨 혀를 내밀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개의 모양새가 웃겨서인가?

생각보다 개구리들의 표정이 경직된 듯 느껴진다. 가끔 활짝 웃는 개구리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표정들이 다양하지 않다. 개의 몇 개의 컷으로도 잘 그려지는데 비해..개구리의 표정을 실제 우리가 관찰하기 어려워서 인것도 같다.

개구리가 속한 파충류부류가 세세히 표정을 표현하기 어려움도 있을 듯 하고..

 

동이 트는 듯한 빛이 살풋이 들어오자 갑자기 연잎들이 출렁이며 개구리들을 떨어뜨린다. 펄쩍 펄쩍 뛰어 자신들이 살던 연못으로 돌아와..불만에 가득찬 개구리라니 표정들이 볼만하다.

그나저나 마을은 의문투성이다. 수많은 연잎들. 샌드위치먹던 남자의 증언등으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8시즘.

그림자에 설마..돼지꼬리? 뭐를 타고?

..돼지들은 아무것도 타지 않았다. 아니 자기들 꼬리를 타고 있는건가?

날아오름에도 잠자는 돼지도 있다. 분홍빛의 토실토실한 돼지들..

 

시간만 한줄씩 쓰여져있고 글이 생략된 그림책.

굳이 글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해도 글이 들어간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그림을 보충할 필요의 글? 아니면 어떤 해석의 글? 그냥 이대로가 좋은 그림책?

의문의 하룻밤에 대한 해석이나 설명을 읽는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는 재미가 있는 그림책이다. 각자의 해석을 들으면서 뜯어먹는 재미가 있는.

그러기에 충분한.

 

그런데 작가는 왜 이런 상상을 했을까? 어디에서 시작한걸까?

연잎이 넙대대하고 질겨서 비행접시하기에 좋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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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핀 꽃 국민서관 그림동화 174
존아노 로슨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 국민서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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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어 가는 색으로

 

<거리에 핀 꽃> 존 아노 로슨 기획.시드니 스미스 그림.국민서관

2017.3.1.정기화

 

1.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에 대해

- 빨간 후드티를 입은 아이가 길을 가고 있다.

하늘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 길가에 노란 꽃을 보고 꺾는다.

- 노란꽃의 향기를 맡아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담벼락 높은 곳에 빨간 꽃도 꺾었다.

- 사람들이 모인 정류장에도 꽃이 피었다.

- 가게를 지나서 길가 커다란 동물상 아래에 핀 꽃을 꺾었다.

- 길바닥 돌 틈에 핀 보라색 꽃을 보았다.

-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공원을 지나 계속 걸어갔다.

조깅하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 공원길에 새가 한 마리 죽어 있다.

꽃 한송이를 새에게 올려주었다.

- 긴 벤취에 아저씨가 누워 있어서 발에 꽃을 한송이 내려놓았다.

- 지나가는 개에게도 꽃을 한송이 꽂아주었다.

- 그녀에게도 꽃을 한 송이 머리칼에 꽂아주었다.

- 유모차에 탄 아이에게도 달팽이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도 꽃을 한송이씩 주었다.

- 마지막 남은 꽃 한송이를 귓가에 꽂았다.

 

2. 그림을 보며 아이 입장으로

- 200734일 오후 320. 아빠가 데리러 왔다.

집으로 걸어 돌아가는 길은 구경할게 많다.

문신한 아저씨도 있고 새도 있고 꽃도 있다.

노랗게 보이는 꽃이 예뻐서 한송이 꺾었다.

- 꽃 향기를 맡아보니 향이 좋았다.

육교를 가다보니 담벼락위에 빨간색 꽃도 피었다.

꽃을 꺾는 동안 아빠가 기다려주었다.

-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에 꽃이 피었다.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언덕위에도 꽃이 있었다.

- 유리병들이 많은 곳을 지나갔다.

꽃을 유리병에 꽂아도 좋겠다.

조금 더 꽃을 모을까

- 새들이 있는 길가에 보라색 꽃도 있다.

꽃이 한주먹 가득이다.

빨리 집에 가야지

-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공원을 지나가면 곧 집이다.

여기에도 꽃이 있으면 좋겠다.

- 그런데 길가에 새 한 마리가 떨어져 있다.

죽은 건가?

곰곰 보다가 땅에 누워있는 새에게 꽃을 한송이 주었다.

아빠가 멀리 손을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

- 공원 벤치에 어떤 아저씨가 모자를 쓰고 누워있다.

아저씨 신발에도 꽃을 꽂아주었다.

일어나서 꽃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겠지

- 샤피로다. 산책나왔나보다.

샤피로목걸이에도 꽃 한송이 꽂아주었다.

이제 집에 거의 다 왔다.

- 엄마다. 엄마가 집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엄마를 꼭 안아줬다.

엄마한테도 꽃 한송이 주고

- 잘 놀고 있는 동생들도 꽃 한송이 주었다.

- 높이 새들이 날고 있다.

남은 한 송이 꽃을 내 귀에 꽂았다.

기분이 괜찮다

 

 

글이 없는 그림책.

그림과 글이 서로 보완하면서 읽고 즐기는 그림책이 아니라 글이 없다.

그림이 글의 내용을 자세히 보여주거나 글이 그림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보충하거나 또는 글과 그림이 반대의 해석을 하므로서 재미를 주거나 여러 가지로 글과 그림이 만나면서 표현하는 책이 그림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이 없다. 글이 없다는 것이 왜일까?

그림만으로 충분히 전달하는 의미를 표현할 수 있어서?

아니면 글이 어떻게 보면 제한적인 표현을 할 수도 있어서 다시 말해 방해할까 싶어서?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전체적으로  신선하지 않았다. 꽃이라는 이미지가 갖고 있는 따뜻함, 뭔가 피어오르는 기대와 희망같은 것을 아이라는 매개(-전달하는 인물유형도 신선하지 않다.)를 통해서 죽어있는 새에게 벤치에 누워 잠자는 사람에게 꽃을 한송이씩 전달하면서 색이 없는 그림책에 색을 점점 입혀가고 있다. 죽어 있는 새를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소외된 듯한 인물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 등이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라는 의미가 주제같다. 하지만 초반에 찬찬하게 완급을 조절했다면 뒤로 갈수록 서두르고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죽은 새, 잠자는 사람, 그리고 동네 개..다음엔 엄마와 동생들이다.

엄마와 동생들은 개인적인 관계에 들어간다. 소외된 어떤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이나 애정이 표현하는 것이 이 책이 전달하려는 의미에 맞는지? 주인공이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라는 인물안에서 보여주는 범위를 이 정도로만 잡은 걸까? 너무 많은 범위로 넓히기 어려워서 인가?

섬세하게 색을 입혀가면서 전개하다가 아이가 새에게 꽃을 주면서 물들어가는 색의 변화가 급하다라는 생각... 생명이 물들 때 어느날 한꺼번에 피어나는 환희와 같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인가? 그렇게 해석을 한다해도 아슴찬하다

글을 쓰면서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빠라는 인물이다.

아이와 눈을 맞주치거나 뭔가 소통한다는 부분이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아이가 꽃을 꺾거나 꽂아줄 때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재촉하거나 잡아 끌지 않는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집에 돌아오는 것이기보다 뭔가 아이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자신의 사소한 일(예를 들어 전화통화)을 처리하면서 돌아오는 것 같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보는 배려.

여기에서 아무 말 하지 않고라는 부분에서 잠시. .그래서 글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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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파랑새 그림책 93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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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하는 맛

 

여우

마거릿 와일드 브라운

 

붉은여우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올려다보는 동자의 서슬이 강렬하다. 귀는 둥그스름하지만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앞다리 가늘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를 노려다보는 가운데 까만 까치 한 마리 여우를 향해 시선 집중해서 애절한? 사랑하는? 눈빛으로 보인다. 까치가 여우를 사랑하나?

이상스럽지만.

여우라는 글자 또한 까만 배경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뭔가로 긁은 듯한 선들이 많은 황토색 배경에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이면이...붉다. 여우가 가진 색보다 더 붉은 황토색으로 보인다. 에너지가 넘친다.

파레트에 물감도 잔뜩 물기도 잔뜩 섞여서 붓이 아닌 도구로 색을 덜어내어 그리면서 그리고 싶은 형태들의 가장자리를 만들었을까? 이 색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비벼보고 싶다. 만져보고 손가락사이로 색들이 삐져나오는 기분을 상상하고 싶다. 생명을 잔뜩 품고 있을 거 같다고 해야하나. 이 붉은 빛이, 색이 나를 쿵쿵 뛰게 한다.

 

개가 까치를 물고 뛴다. 잡아 먹으려나? 까치는 놀라는 눈치다. 가장자리에 아까와 같은 붉은 빛으로 마무리 되었다. 가운데는 흰빛들이 설치듯이 지나가고 있는 밍밍하지만 밝아지는 황토빛이다. 유화의 느낌이 난다. 두껍게 바른 유화들을 죽죽 그려대고 있는 작가가 그려진다.

이 붓터치가 설레나?

 

. 둥그스름한 바위들이 크고 작게 자리잡고 그 사이에 나무기둥? 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이파리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숲속에 물가다. 거기로 새를 물고 달려오고 있다.

 

개가 까치는 물고 가고 그 뒤를 여우가 뛰어가는 모습이 있다. 까치를 서로 잡아먹으려는 모습들인가?

 

<큰 불로 새카맣게 타 버린 숲을 개 한 마리가 달리고 있었어. ...> 왼편에 글들이 있다.

한 방향이 아닌 세로로 방향을 돌려 읽거나 바로 보거나 글을 쓴 판을 다르게 만들어서 짜깁기 한 거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했을까? 글씨가 손글씨다. 어떤 서체도 아니다. 원작을 한면 보았다. 원작은 더 글씨가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다. 더욱 왜 이런 방식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큰 불로 날개를 다친 까치를 개가 물고 동굴로 데려간다. 잡아먹으려고? 했더니 날개 다친 까치가 날지 못할거라고 움츠러들자 개는 <‘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까치는 개가 살던 동굴에 박혀 숨어버린다. 메마르지는 않은 갈색으로 전체를 깔았다.

 

<우리 강가로 나가자. 내 등에 올라타. 그리고 네가 본 걸 내게 말해 줘...>

점점 커지는 슬픔으로 까치가 동굴을 나서자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던 개가 까치를 등에 태우고 강물로 간다. 물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을 까치는 본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은 개와 날개 다친 까치. 그림은 강가에 비치는 개와 까치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까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다. 눈들이 다 빨갛다.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어..> 마음을 내어주는 까치와 개는 서로의 눈이 되어주고 날개가 되어줄 수 있도록 푸른빛 속으로 힘차게 달렸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날아라 , 날아! 내가 너의 눈이 될어 줄 게 너는 나의 날개가 되어 줘.>

그렇게 마음으로 친구가 되는 이들로부터 바람이 까치의 깃털 속으로 스며들어가면서 까치는 기분이 좋아진다. 뭐라해야하나? 이 색들을 흙색? 이라고 할까 개가 달리는 공간에 색이 청록색이 깔린 흙색같다. 그 개가 지나쳐 온 그곳들은 좀더 다갈색처럼 보인다. 개 잔등에 올라탄 까마귀. 그들은 한몸처럼 다닐거같은..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매일 이곳저곳을 달렸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 진한 붉은 색의 여우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 활활타오르는 불길...> 혓바닥을 슬쩍 내밀고 까치를 돌아다보며 웃고 있는 개의 모습이 익히 알던 개의 모습이 떠오른다. 충성스럽고 애교스러운 그래서 인간들과 같이 살고 있는 개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오른편에 여우 한 마리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다. 왠지 불안한 눈빛이란다. 그다지 불안해 보이지는 않지만 응시하고 있는 여우는 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라고 쓴다. 숲을 태운 큰불을 떠오르게 하는 글이다. 까치가 여우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로 읽힌다. 바들바들 떨었다. 왤까? 다시는 날지 못하게 만든 이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여우의 불안한 눈빛때문인가? 붉은 빛이 많은 그림들에서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는 말에 어울리게 초록빛이나 연두빛이 조금씩 나타난다.

 

< ‘어서와. 우리와 함께 지내자.’ ..> 노란빛? 의 눈을 가진 여우가 개의 보이지 않는 쪽으로 다가가 <..너희가 달리는 걸 보았어. 정말 특별해보이더라...> 라고 말한다. 특별해 보이더라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 여우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까치는 자신에 상처입은 날개를 여우가 보지 않도록 숨기듯이 하고 발톱에 부리는 새우고 여우를 바라본다. 개와 까치의 중간에 여우가 기다랗게 그려져 있다. 개와 까치의 공간이 여우로 인해 분리되는 듯하다.

 

<..어느새 동굴 속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버렸어.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였지>

여우의 왼쪽눈이 더 광을 내듯이 노란빛으로 정면을 보고 있다. 강렬한 눈빛이다. 두 눈만 클로즈업 시켜놓았다. 눈을 이렇게 클로즈업 시키는 것. 나를 보고 있는 거처럼 보인다. 눈빛에 느낌이 가득 차 있다. 글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쓰고 그림으로는 눈빛이 가득하도록 강렬하게 그렸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란다. 이상하다. 질투와 외로움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둘의 사이좋음을 질투하고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모습에 외로움을 느끼는거 같다. 그럼 분노는 어디에서 온 걸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 둘에게 화가 나는 걸까? 외로우니 슬프고 슬프니 화가 나서 일까? 여우가 특별해 보인다고 할 만큼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자신도 그 안에 일원이 되고 싶은 감정이 들었을까?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다가갔으나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서일까? 계속 자신을 경계하는 까치를 여우는 아나보다. 그들에 사는 곳에서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가봐도 어렵다. 왼편에 어둠속에 잠긴 보금자리가 숨어 있고 그 앞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빛이 어디에선가 있는지 아래녁에 바위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나는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바람보다도 더 빨리..나랑 함께 가자. > 까치가 여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있다. 어떻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라고 말할수 있을까? 무엇을 보았길래..?

여우는 왜 까치에게 같이 떠나자고 하나? 잡아먹으려고? 신체 건강하지 않은 둘을 잡아먹는건 그다지 어려웁지 않다. 그럼 잡아먹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나? 그렇다면 여우가 좋은 아이라고 말하는 개는 왜 그렇게 단정짓나?

 

<하늘을 나는게 어떤 건지 기억해? 진짜로 나는 것 말이야..> 개보다 빨리 달린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던 까치는 자신의 기억을 깨우는 여우의 말에 움직인다. 자신의 지난날. 날개가 다치지 않았던 자신의 몸으로 직접 날던 시간들이 일깨워지면서 까치는 여우를 따라 나선다

중요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여우를 경계하면서 개를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까치가 마음을 바꾼다. 무엇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날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까치는 개를 떠난다. 화려한 시절이라고 해야할까? 인간들이 잘 하는 왕년에..내가 말이야를 떠오르게 한다. 잠이 깬다.

 

<...드디어 내가 날고 있어. 진짜로 날고 있다고!...> 왠지 시원해보이기도 한 몸이 거꾸로 뒤집어진 까치의 모습이 불안한 그림이다. 대각선으로 여우의 붉은 몸둥이rk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노란눈빛의 여우가 뒤집어진 까치는 회심의 미소를 짓듯이 보고 있는 모습도 점점 들어온다. 날으듯이 화면 가득이 여우가 뛴다. 여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잡아먹는거 훨씬 쉬울텐데...

 

<...이글거리는 붉은 사막까지 달려갔지..> 여기도 붉은 사막이란다. 이 그림이 좋았다.

직선으로 뻗은 듯한 여우의 몸과 나는 거처럼 훨씬 커 보이는 까만 까치. 붉은 빛이 나는 사막으로 날으듯이 달려가는 여우. 죽어도 상관없겠다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까치는 비록 자신이 직접 날지는 못하더라도 여우덕분에 나는 거처럼 날았다고 위안이 될까? 이러고 나서 여우에게 잡아 먹혀도 괜찮을 거 같은 기분이다.

위쪽에 종이를 바느질해서 붙여 놓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저것 뭘까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벼룩이라도 털어 내듯 까치를 떨어뜨리고여우는 까치는 지긋하게 바라본다. 노란 눈의 여우가 까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라고. 여우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운 냄새를 풍겼다고 했다. 그래서 외로움을 까치에게도 개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던건가? 둘 사이에 오직 침묵만이 흘렀을 때 까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우는 외로움 때문에 이 둘을 갈라놓고 싶었던 걸까? 여우가 까치를 잡아먹을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

 

<..까치는 이글거리는 붉은 사람 한 가운데 홀로 남겨졌어. ..온몸이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어.> 그랬다 . 왼쪽 아래에 까치는 멍한 듯 붉은 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붉은 빛이 여전히 많은 사막그림이다.

 

<그 순간 까치는 혼자 남겨 두고 온 개가 생각났어. >그림을 조금 세밀하게 본다면 개가 보일까? 하고 들여다 보지만 깊다.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조심조심, 비틀 비틀, 폴짝폴짝, 까치는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시작했어>왼편 위쪽에 붉은 가장 붉은 빛을 등에 지고 까치는 이동한다. 멀고 먼 여행길을.

 

마지막 이면지에 처음에 펼쳐진 붉은 빛으로 가득차 있던 그곳이 청록색의 나무들이 서 있는 이제는 하얀구름과 파란하늘색으로 여느 숲이 있다. 처음의 그곳이 불타오르는 숲으로 그려놓은 붉은 빛이었나 보다.

 

개와 여우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충성스런 이미지의 개는 날개를 다친 까치를 도와주고 일어나기를 말없이 기다렸다가 까치와 같이 살아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는 건 멋지다고 위로를 한다. 구해주고 위로하고 기다리고 살아가고 있는 개는 한결같게 보인다.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온 여우는 특별해보인다는 칭찬? 과 함께 그들의 보금자리로 들어온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가운데로 들어온다. 자신을 의심하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 까치에게 개를 배신하자고 계속 유혹한다. 물러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돌변하지도 않은채 계속 유혹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체없이 떠난다. 교활하고 꾀가 많다고 생각하는 여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간다. 그에 비해 까치는 나는 새라것 외에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설날에 까치? 외국그림책인데 그곳에서도 까치는 이런 이미지일까? 까치는 힘들고 슬픔에 빠져 어쩔줄 몰라했지만 개와 살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잘 살아가다가 여우로 인해 불안해하고 움츠러든다. 여우의 시선에 힘들어하고 의심하다가 결국 개를 배신하고 여우와 같이 떠난다. 세상을 다시 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한다. 그랬다가 혼자 남겨졌을 때 처음 날개를 다친 불타오르는 숲에 몸을 다친 그날을 연상하는 거처럼 온몸이 타서 재가 되어버린것만 같다고 아파한다. 하지만 까치는 길을 나선다. 자신이 배신했던 개를 떠올리며 비틀거리며 길을 나선다.

 

의외의 결말. 여우가 까치를 잡아먹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외로움에 대해 말을 하고 떠난다. 외로움. 여우는 처음부터 개와 까치를 떼어놓기 위해 다가온 것일까? 불안한 눈빛이라는 여우였다. 여우는 특별해보이는 이들을 질투해서 일까 아니면 그들 속에 속해있고 싶어서 일까? 특별해보이는 그들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특별해질거 같은 바램으로 왔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여우의 눈빛이 다르게 보인다. 뭔가를 아는 듯한, 질문하는 듯하면서도 갈망하는 듯한. 참 묘하게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눈빛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가온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니 깨고 싶은 질투일까? 얻지 못해서 분노하고 화가 나면 떠나면 되는데 떠나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으니 급기야는 깨버리고 싶은 질투심이 일어나고 그 질투심으로 인해 외로워지는 걸까?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라는 문장에 여우의 심정을 알고 싶다. 여우의 이미지는 처음 내게 있던 이미지이긴 하나 여우의 눈빛이나 저 문장이 여우의 복합적인 감정변화가 느껴진다. 이럴수 있을까? 저럴수 있을까? 하는 불안정한 정서가 느껴지는 여우. 제목을 여우로 잡은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일까?

나는 여우에게 감정적 이입이 더 크다. 까치의 선택이나 배신에 감정이입이 되기보다 여우의 눈빛이나 그렇게 까치를 버리고 떠나버리는 여우의 마지막 모습이 더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흔들려서다. 특별한 두 친구를 바라보는 자의 외로움이나 그로 인한 질투와 분노를 더 많이 기억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 불릴만한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 고마움을 느꼈을까? 몰랐을거다. 몰랐으니 고마움도 없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한 장치의 여우가 나왔다고 하기에는 ...

 

일부러 왼손으로 글씨는 쓰는 방법. 수고로움을 선택했을 때는 무엇인가 목적한 바가 있었을때다. 불안함과 불편함? 여우가 가진 불안함이라는 정서를 나타내는건가? 까치가 여우에게서 느끼는 불안함? 그럼 개는 불안해하지 않나 돌아보면 개는 그렇지 않다. 불안함을 읽는 우리에게 느끼도록 하는 장치일까? 불안함도 있지만 불편함도 있다. 그냥 왼손으로만 쓴게 아니라 방향도 자주 바꾸었다. 불안한 글씨체를 편하게 읽게 하지도 않았다. 책을 이리저리 틀어서 읽도록 했다. 쉽거나 빠르게 읽지 않고 일정의 불편함을 안고 읽게 하고 싶은 장치일까 싶다.

 

친절하게 자신을 일으켜준 개를 배신하고 여우를 따라나선 까치.

개를 떠나 날으는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때가 아닌 오래전 기억에 날으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배신을 하고 떠난다. 다른 무엇에 대한 애정이나 갈망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자기에 대한 애정이 까치를 변하게 한다.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 어찌보면 까치로서는 그럴수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난 너를 배신하는게 아니야. 나를 찾기 위함이고 나를 알기 위해서 떠난거야라는. 까치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다쳤으니 슬프고 슬픈데 위로를 해주니 받아들이고 안정을 찾으니 자신을 찾고 싶어지는. 그렇구나. 까치는 현실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그러나 마지막에 까치는 멀고 먼 여행을 떠난다. 혼자남은 개를 생각하면서. 이 대목에서 까치가 내리는 선택에 희망을 그리는 거 같고 마지막 이면지 그림이 맞물려 잘 들어간다. 그럼 나는 그런 상황에 까치와 같은 희망을 그리는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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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머리와 곰 세 마리 - 바바라 매클린톡의 베틀북 그림책 101
바바라 매클린톡 외 지음, 문주선 옮김 / 베틀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누가 주인공인가?

 

 

금발 머리와 곰 세 마리

바바라 매클린톡.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세 마리가 침대에 누워 잠자는 금발머리를 바라보고 있다.

표정으로 아빠곰처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엄마곰은 아이가 자고 있네?’ 아기곰은 엄마아빠 애 좀 봐봐와 같은 어떤 표정이 읽어진다. 각각의 역할로.

그림들이 화려하다. 제목에 금발머리와 곰 세 마리라는 것으로 곰세마리라는 전래동화가 곰들 입장에서 시작했거나 곰 입장이었던 전개가 다르게 펼쳐질거라고 보여진다.

 

죽그릇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엄마곰은 모자를 쓰고 아ᄈᆞ곰은 아기곰을 무등에 태우고 있다. 그리고 넘어가면 금발머리가 양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만만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옛날, 옛날에 머리가 금빛으로 빛나는 여자아이가 있었어.> 라고 시작한다. 금발머리에서 시작하는 곰세마리. <금빛으로 빛난다.> 라고 금발머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인형집을 가지고 있고 자신처럼 금빛으로 빛나는 금발머리 인형도 있고 곰인형도 있다. 차대접할수 있는 차놀이세트가 있고 흔들의자에 발받침대 그리고 말머리장난감이 있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 정원이 있고 창문가에 쳐있는 커텐 또한 커튼구름도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모습에서 금발머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보인다.

금발머리가 자신의 인형들을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는 엄마역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옛날 옛날에~ 도입하는 부분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처럼 시작한다. 금발머리라는 여자아이에 대해 어떤 아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신발끈매기 같은 것을 깜박하고 하지 말라는 일까지 깜박 한다는 것이다.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금발머리는 아이들의 특징이 유달리 강한 아이일까? 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전체적으로 글과 그림은 그다지 연관없이 전개되어있다.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앞장에서 말한 말을 그대로 이어 <그건 문제지..> 하고 시작한다. <하지 말라는 일을 깜빡하면 꼭 큰 일이 벌어지거든. 이제부터 큰일이 벌어진 날 이야기를 해 줄테니 잘 들어 봐> 라고 썼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큰일이 곧 벌어질거라고 읽는 이에게 긴장감을 준다. 숲에 들어가면 무서운 곰이 살고 있다고 들어가서는 안돼.라고 말한다.

들판에 꽃을 따러 간다는 금발머리. 나비를 쫒다가 새를 보다가 숲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비는 보이는데 새는 보이지 않는다. 얼핏 그림에 숲이 우거진 느낌을 주나 그림에 비율로 보아 무서운 곰이 살만큼 큰 숲은 아니게 보인다. 오솔길이 굽이 치기는 하나 멀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공간의 폭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서 일까?

 

<숲으로 들어간 금발머리는 집 한 채를 발견했어. 작은 집은 정말 예뻤어. 그래서 다짜고짜 다가가 뒷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았지.> 드디어 곰 가족이 등장한다. 개별적인 아빠곰이라거나 커다란 곰이라거나 하는 표현은 없다. 사람과 똑같이 섬세하게 옷을 입은 곰들.

왜 신발은 신기지 않은걸까? 아빠곰과 아기곰은 성인 남자와 아이처럼 간편한 차림새다. 앞치마를 걸치고 있는 엄마곰은 꽃으로 장식된 모자도 쓰고 있다, 그들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다하고 있는데 신발은 왜 신지 않은 걸까?

곰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개별적이기 보다 한 가족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가족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은근 많다. ‘다짜고짜다가간다는 단어사용이 금발머리의 성격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특징보다 더 강하게 금발머리의 일면을 나타낸다. 버릇없는 성격처럼 들린다. 담쟁이로 둘러쌓여 있어서 오래전부터 있던 집 같다. 노란새가 지붕에 앉아 있다. 금발머리가 따라온 새인가? 그리고 지붕에 곰인형들이 조각되어져 있다 이 집도 굴뚝이 있고 유리창에 덧문이 있는 잘 손질된 집처럼 보인다.

 

<저기, 아무도 안 계세요?> 금발머리는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엄마말을 듣지 않고, 다른 사람 음식에 손대지 말라는 엄마 말도 듣지 않고 행동한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죽을 보고 먹어본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를 그만 깜박하고 말았어. > < 고소한 냄새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는 또 깜박하고 말았어> 호기심일까? 냄새때문일까? 하면서 금발머리의 행동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금발머리가 계속 엄마 말을 듣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계속 엄마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몽땅> 에 글자 크기며 색이 변해있다. 금발머리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결말을 강조하고 있다.

 

<금발머리는 거실로 갔어.> 여기에서도 <신기한 생김새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는 이번에도 깜박하고 말았어.> 신기해 보이는 의자라니..낯선 의자일수 있겠지만 신기하지는 않겠는데..

금발머리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는 거처럼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거부감이 살짝 든다. 의자의 모양새는 금발머리가 자신의 집에서 앉아 책을 읽어주던 흔들의자와 거의 비슷하다. 신기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과하다. 금발머리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면에 낯섬에 대한 감정적 해석은 약하다고 생각하는지 신기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양면에 의자 세 개를 동그랗게 원을 그리듯이 모아놓고 있다. 금발머리는 제일 큰 의자에 올라가 앉는다.

 

아빠곰의자는 딱딱하고 엄마곰의자는 푹신하고 아기곰의자는 딱 좋은.

금발머리는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아기곰 의자를 우지끈부러지게 한다.

 

<이쯤 되면 집으로 돌아갈 만도 한데, 금발머리의 호기심은 멈출 줄을 몰랐어.>

그렇게 의자를 부러뜨리고 금발머리는 계단 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계단참에 곰세마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고 의자가 놓인 공간에는 곰이 그려져 있는 책이 두권 바닥에 떨어져 있다. 금발머리는 계단에 올라갔다.

 

<계단 위는 아늑한 방이었어..특이한 모양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는 역시나 깜빡하고 말았어.> 엄마 말을 듣지 않는 금발머리라고 말한다. 특이한 모양 때문이란다. 다른 사람의 방을 엿보지 말라는 엄마 말씀..아 잔소리.

 

아빠곰 침대는 딱딱하고 엄마곰 침대는 푹신하다. 의자랑 같다. 아기곰 침대는 적당해서 스르르잠이 들었다.

 

<그때, 바로 그때, 곰 세 마리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때를 두 번 말한다. 이제 바야흐로 큰일이 벌어지려나 보다. ‘누가 내 죽을 먹었나 봐!’ 아빠곰이 말한다. ‘어머 내 죽도!’ 엄마곰이 말한다. ‘제 죽도요. 그것도 그릇째 몽땅요.’ 아기곰이 말한다. 글씨 크기도 다르다. 죽이 여기저기 흘리고 숟가락도 떨어져 있다.

누가 내 의자에 앉았나 봐.!’ 아빠곰이 말한다. ‘어머, 내 의자도!’ 엄마곰이 말한다. ‘제 의자에도요. 게다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아기곰이 말한다.

 

<살금 살금, 슬금슬금, 곰 세 마리는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갔어.> 엄마곰이 제일 먼저 앞장을 서고 있다. 아빠곰이 중간에 슬금거리며 올라가는 모양새가 엄마곰보다 조금 겁에 질린 듯 하다. 다른 무엇이 집에 들어온 흔적이 있는데 모두 겁에 질려 있는 상황에서 엄마곰 뒤에 더 잔뜩 긴장한 태도로 걸어 올라가는 아빠곰 모습이 빵..하고 터진다.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이지 않는 저곳에 무엇이 있을까? 구부러져 보이지 않지만 잠자리가 있는 안식처에 무엇이 있을까 올라가면서 곰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곰들의 시선으로 들어갈 수 있던 지점이다.

 

누가 내 침대에 누웠나 봐! 아빠곰이 말한다 어머 내 침대에도!‘ 엄마곰이 말한다. ’제 침대에도요. 게다가 바로 여기 있어요.! 라고 아기곰이 말한다. 전체 양면에 아빠곰침대부터 차례대로 내려온다. 창문으로는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잇고 금발머리는 아기곰침대에 자고 있다.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금발머리가 잠에서 번쩍 깨어났어.> 금발머리가 이번에는 엄마 말을 들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는 엄마 말..모두 놀라 금발머리를 내려다보고 물끄러미 보고 쳐다보고 있고 금발머리는 깜짝 놀라 곰들을 바라본다. 엄마곰이랑 정면으로 마주치는 시선이다. 엄마곰의 자세는 아기곰을 보호하면서도 금발머리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아ᄈᆞ곰의 자세는 영 어정쩡하다. 몸만 큰 곰이라고 해야하나. 손가락을 맞잡은 모습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보인다.

 

<금발머리는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내려왔어. 그러고는 부엌을 지나 뒷문으로 쏜살같이 빠져나왔지. 금발머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어.> 신발이 벗겨졌다. 신발끈을 안 묶더니 달리니 신발이 벗겨졌다. 중간중간에 잔소리를 하는 목소리에 덕인지 같이 잔소리하고 있다. 순식간에 금발머리가 집에 도착한다.

 

<금발머리는 여전히 엄마가 하라고 하는 것들은 깜빡하지. 신발 끈 바로 매기, 밥 먹고 이 닦기 같은 사소한 것들 말이야. 하지만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절대로, 절대로 깜빡하지 않았대.> ...애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느낌이다. 그림이 화려해서 이것저것 볼게 있어 보이지만 그림들이 제각각 살아 있어서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냥 화려하다라는 느낌. 어쩜 어린 여자아이들한테 잘 쓰일만하다라는.

 

금발머리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던 일들을 계속 했다. 그렇게 잘못하고 잘못해도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꼭 안아준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비록 엄마말을 안 들을지라도 엄마는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 이런 의미로 작가가 썼을까? 엄마말을 듣지 않는다는 금발머리에 대한 해석이 다른 곰세마리와는 다른 시각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 새로운 해석이 전래동화를 다양하게 보는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쉽다라는 생각은 왜 들지?

전래동화가 너무 소소해진다는 느낌. 아깝다.

아깝다라는 기분은 왤까. 곰세마리이야기를 오래전에 알았을 때 어떤 기분으로 들었을까?

낯선 곳에 들어가는,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호기심? 들키면 안되지만 그래도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던거 같은데..그러다 파란수염같은 분위기로 금방 넘어갈거 같으면 죽어라 도망갈 준비하고서. 뭔가 스릴있었던 기분이었다. 허락되지 않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공범의식으로 보았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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