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핀 꽃 국민서관 그림동화 174
존아노 로슨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 국민서관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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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어 가는 색으로

 

<거리에 핀 꽃> 존 아노 로슨 기획.시드니 스미스 그림.국민서관

2017.3.1.정기화

 

1.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에 대해

- 빨간 후드티를 입은 아이가 길을 가고 있다.

하늘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 길가에 노란 꽃을 보고 꺾는다.

- 노란꽃의 향기를 맡아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담벼락 높은 곳에 빨간 꽃도 꺾었다.

- 사람들이 모인 정류장에도 꽃이 피었다.

- 가게를 지나서 길가 커다란 동물상 아래에 핀 꽃을 꺾었다.

- 길바닥 돌 틈에 핀 보라색 꽃을 보았다.

-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공원을 지나 계속 걸어갔다.

조깅하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 공원길에 새가 한 마리 죽어 있다.

꽃 한송이를 새에게 올려주었다.

- 긴 벤취에 아저씨가 누워 있어서 발에 꽃을 한송이 내려놓았다.

- 지나가는 개에게도 꽃을 한송이 꽂아주었다.

- 그녀에게도 꽃을 한 송이 머리칼에 꽂아주었다.

- 유모차에 탄 아이에게도 달팽이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도 꽃을 한송이씩 주었다.

- 마지막 남은 꽃 한송이를 귓가에 꽂았다.

 

2. 그림을 보며 아이 입장으로

- 200734일 오후 320. 아빠가 데리러 왔다.

집으로 걸어 돌아가는 길은 구경할게 많다.

문신한 아저씨도 있고 새도 있고 꽃도 있다.

노랗게 보이는 꽃이 예뻐서 한송이 꺾었다.

- 꽃 향기를 맡아보니 향이 좋았다.

육교를 가다보니 담벼락위에 빨간색 꽃도 피었다.

꽃을 꺾는 동안 아빠가 기다려주었다.

-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에 꽃이 피었다.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언덕위에도 꽃이 있었다.

- 유리병들이 많은 곳을 지나갔다.

꽃을 유리병에 꽂아도 좋겠다.

조금 더 꽃을 모을까

- 새들이 있는 길가에 보라색 꽃도 있다.

꽃이 한주먹 가득이다.

빨리 집에 가야지

- 커다란 나무들이 있는 공원을 지나가면 곧 집이다.

여기에도 꽃이 있으면 좋겠다.

- 그런데 길가에 새 한 마리가 떨어져 있다.

죽은 건가?

곰곰 보다가 땅에 누워있는 새에게 꽃을 한송이 주었다.

아빠가 멀리 손을 내밀고 기다리고 있다.

- 공원 벤치에 어떤 아저씨가 모자를 쓰고 누워있다.

아저씨 신발에도 꽃을 꽂아주었다.

일어나서 꽃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겠지

- 샤피로다. 산책나왔나보다.

샤피로목걸이에도 꽃 한송이 꽂아주었다.

이제 집에 거의 다 왔다.

- 엄마다. 엄마가 집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엄마를 꼭 안아줬다.

엄마한테도 꽃 한송이 주고

- 잘 놀고 있는 동생들도 꽃 한송이 주었다.

- 높이 새들이 날고 있다.

남은 한 송이 꽃을 내 귀에 꽂았다.

기분이 괜찮다

 

 

글이 없는 그림책.

그림과 글이 서로 보완하면서 읽고 즐기는 그림책이 아니라 글이 없다.

그림이 글의 내용을 자세히 보여주거나 글이 그림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보충하거나 또는 글과 그림이 반대의 해석을 하므로서 재미를 주거나 여러 가지로 글과 그림이 만나면서 표현하는 책이 그림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이 없다. 글이 없다는 것이 왜일까?

그림만으로 충분히 전달하는 의미를 표현할 수 있어서?

아니면 글이 어떻게 보면 제한적인 표현을 할 수도 있어서 다시 말해 방해할까 싶어서?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전체적으로  신선하지 않았다. 꽃이라는 이미지가 갖고 있는 따뜻함, 뭔가 피어오르는 기대와 희망같은 것을 아이라는 매개(-전달하는 인물유형도 신선하지 않다.)를 통해서 죽어있는 새에게 벤치에 누워 잠자는 사람에게 꽃을 한송이씩 전달하면서 색이 없는 그림책에 색을 점점 입혀가고 있다. 죽어 있는 새를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소외된 듯한 인물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 등이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라는 의미가 주제같다. 하지만 초반에 찬찬하게 완급을 조절했다면 뒤로 갈수록 서두르고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죽은 새, 잠자는 사람, 그리고 동네 개..다음엔 엄마와 동생들이다.

엄마와 동생들은 개인적인 관계에 들어간다. 소외된 어떤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이나 애정이 표현하는 것이 이 책이 전달하려는 의미에 맞는지? 주인공이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라는 인물안에서 보여주는 범위를 이 정도로만 잡은 걸까? 너무 많은 범위로 넓히기 어려워서 인가?

섬세하게 색을 입혀가면서 전개하다가 아이가 새에게 꽃을 주면서 물들어가는 색의 변화가 급하다라는 생각... 생명이 물들 때 어느날 한꺼번에 피어나는 환희와 같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인가? 그렇게 해석을 한다해도 아슴찬하다

글을 쓰면서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빠라는 인물이다.

아이와 눈을 맞주치거나 뭔가 소통한다는 부분이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아이가 꽃을 꺾거나 꽂아줄 때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재촉하거나 잡아 끌지 않는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집에 돌아오는 것이기보다 뭔가 아이가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자신의 사소한 일(예를 들어 전화통화)을 처리하면서 돌아오는 것 같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보는 배려.

여기에서 아무 말 하지 않고라는 부분에서 잠시. .그래서 글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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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파랑새 그림책 93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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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하는 맛

 

여우

마거릿 와일드 브라운

 

붉은여우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올려다보는 동자의 서슬이 강렬하다. 귀는 둥그스름하지만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앞다리 가늘지만 꿋꿋하게 버티는 기분이다. 그렇게 나를 노려다보는 가운데 까만 까치 한 마리 여우를 향해 시선 집중해서 애절한? 사랑하는? 눈빛으로 보인다. 까치가 여우를 사랑하나?

이상스럽지만.

여우라는 글자 또한 까만 배경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뭔가로 긁은 듯한 선들이 많은 황토색 배경에 이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이면이...붉다. 여우가 가진 색보다 더 붉은 황토색으로 보인다. 에너지가 넘친다.

파레트에 물감도 잔뜩 물기도 잔뜩 섞여서 붓이 아닌 도구로 색을 덜어내어 그리면서 그리고 싶은 형태들의 가장자리를 만들었을까? 이 색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비벼보고 싶다. 만져보고 손가락사이로 색들이 삐져나오는 기분을 상상하고 싶다. 생명을 잔뜩 품고 있을 거 같다고 해야하나. 이 붉은 빛이, 색이 나를 쿵쿵 뛰게 한다.

 

개가 까치를 물고 뛴다. 잡아 먹으려나? 까치는 놀라는 눈치다. 가장자리에 아까와 같은 붉은 빛으로 마무리 되었다. 가운데는 흰빛들이 설치듯이 지나가고 있는 밍밍하지만 밝아지는 황토빛이다. 유화의 느낌이 난다. 두껍게 바른 유화들을 죽죽 그려대고 있는 작가가 그려진다.

이 붓터치가 설레나?

 

. 둥그스름한 바위들이 크고 작게 자리잡고 그 사이에 나무기둥? 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이파리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숲속에 물가다. 거기로 새를 물고 달려오고 있다.

 

개가 까치는 물고 가고 그 뒤를 여우가 뛰어가는 모습이 있다. 까치를 서로 잡아먹으려는 모습들인가?

 

<큰 불로 새카맣게 타 버린 숲을 개 한 마리가 달리고 있었어. ...> 왼편에 글들이 있다.

한 방향이 아닌 세로로 방향을 돌려 읽거나 바로 보거나 글을 쓴 판을 다르게 만들어서 짜깁기 한 거처럼 보인다. 왜 이렇게 했을까? 글씨가 손글씨다. 어떤 서체도 아니다. 원작을 한면 보았다. 원작은 더 글씨가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다. 더욱 왜 이런 방식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큰 불로 날개를 다친 까치를 개가 물고 동굴로 데려간다. 잡아먹으려고? 했더니 날개 다친 까치가 날지 못할거라고 움츠러들자 개는 <‘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까치는 개가 살던 동굴에 박혀 숨어버린다. 메마르지는 않은 갈색으로 전체를 깔았다.

 

<우리 강가로 나가자. 내 등에 올라타. 그리고 네가 본 걸 내게 말해 줘...>

점점 커지는 슬픔으로 까치가 동굴을 나서자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던 개가 까치를 등에 태우고 강물로 간다. 물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을 까치는 본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은 개와 날개 다친 까치. 그림은 강가에 비치는 개와 까치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까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다. 눈들이 다 빨갛다.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어..> 마음을 내어주는 까치와 개는 서로의 눈이 되어주고 날개가 되어줄 수 있도록 푸른빛 속으로 힘차게 달렸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날아라 , 날아! 내가 너의 눈이 될어 줄 게 너는 나의 날개가 되어 줘.>

그렇게 마음으로 친구가 되는 이들로부터 바람이 까치의 깃털 속으로 스며들어가면서 까치는 기분이 좋아진다. 뭐라해야하나? 이 색들을 흙색? 이라고 할까 개가 달리는 공간에 색이 청록색이 깔린 흙색같다. 그 개가 지나쳐 온 그곳들은 좀더 다갈색처럼 보인다. 개 잔등에 올라탄 까마귀. 그들은 한몸처럼 다닐거같은..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매일 이곳저곳을 달렸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 진한 붉은 색의 여우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 활활타오르는 불길...> 혓바닥을 슬쩍 내밀고 까치를 돌아다보며 웃고 있는 개의 모습이 익히 알던 개의 모습이 떠오른다. 충성스럽고 애교스러운 그래서 인간들과 같이 살고 있는 개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오른편에 여우 한 마리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다. 왠지 불안한 눈빛이란다. 그다지 불안해 보이지는 않지만 응시하고 있는 여우는 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라고 쓴다. 숲을 태운 큰불을 떠오르게 하는 글이다. 까치가 여우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로 읽힌다. 바들바들 떨었다. 왤까? 다시는 날지 못하게 만든 이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여우의 불안한 눈빛때문인가? 붉은 빛이 많은 그림들에서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는 말에 어울리게 초록빛이나 연두빛이 조금씩 나타난다.

 

< ‘어서와. 우리와 함께 지내자.’ ..> 노란빛? 의 눈을 가진 여우가 개의 보이지 않는 쪽으로 다가가 <..너희가 달리는 걸 보았어. 정말 특별해보이더라...> 라고 말한다. 특별해 보이더라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 여우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까치는 자신에 상처입은 날개를 여우가 보지 않도록 숨기듯이 하고 발톱에 부리는 새우고 여우를 바라본다. 개와 까치의 중간에 여우가 기다랗게 그려져 있다. 개와 까치의 공간이 여우로 인해 분리되는 듯하다.

 

<..어느새 동굴 속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버렸어.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였지>

여우의 왼쪽눈이 더 광을 내듯이 노란빛으로 정면을 보고 있다. 강렬한 눈빛이다. 두 눈만 클로즈업 시켜놓았다. 눈을 이렇게 클로즈업 시키는 것. 나를 보고 있는 거처럼 보인다. 눈빛에 느낌이 가득 차 있다. 글은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쓰고 그림으로는 눈빛이 가득하도록 강렬하게 그렸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란다. 이상하다. 질투와 외로움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둘의 사이좋음을 질투하고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모습에 외로움을 느끼는거 같다. 그럼 분노는 어디에서 온 걸까?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 둘에게 화가 나는 걸까? 외로우니 슬프고 슬프니 화가 나서 일까? 여우가 특별해 보인다고 할 만큼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자신도 그 안에 일원이 되고 싶은 감정이 들었을까?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에게 다가갔으나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서일까? 계속 자신을 경계하는 까치를 여우는 아나보다. 그들에 사는 곳에서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가봐도 어렵다. 왼편에 어둠속에 잠긴 보금자리가 숨어 있고 그 앞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빛이 어디에선가 있는지 아래녁에 바위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나는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바람보다도 더 빨리..나랑 함께 가자. > 까치가 여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있다. 어떻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라고 말할수 있을까? 무엇을 보았길래..?

여우는 왜 까치에게 같이 떠나자고 하나? 잡아먹으려고? 신체 건강하지 않은 둘을 잡아먹는건 그다지 어려웁지 않다. 그럼 잡아먹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나? 그렇다면 여우가 좋은 아이라고 말하는 개는 왜 그렇게 단정짓나?

 

<하늘을 나는게 어떤 건지 기억해? 진짜로 나는 것 말이야..> 개보다 빨리 달린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던 까치는 자신의 기억을 깨우는 여우의 말에 움직인다. 자신의 지난날. 날개가 다치지 않았던 자신의 몸으로 직접 날던 시간들이 일깨워지면서 까치는 여우를 따라 나선다

중요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여우를 경계하면서 개를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까치가 마음을 바꾼다. 무엇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날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 까치는 개를 떠난다. 화려한 시절이라고 해야할까? 인간들이 잘 하는 왕년에..내가 말이야를 떠오르게 한다. 잠이 깬다.

 

<...드디어 내가 날고 있어. 진짜로 날고 있다고!...> 왠지 시원해보이기도 한 몸이 거꾸로 뒤집어진 까치의 모습이 불안한 그림이다. 대각선으로 여우의 붉은 몸둥이rk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노란눈빛의 여우가 뒤집어진 까치는 회심의 미소를 짓듯이 보고 있는 모습도 점점 들어온다. 날으듯이 화면 가득이 여우가 뛴다. 여우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잡아먹는거 훨씬 쉬울텐데...

 

<...이글거리는 붉은 사막까지 달려갔지..> 여기도 붉은 사막이란다. 이 그림이 좋았다.

직선으로 뻗은 듯한 여우의 몸과 나는 거처럼 훨씬 커 보이는 까만 까치. 붉은 빛이 나는 사막으로 날으듯이 달려가는 여우. 죽어도 상관없겠다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까치는 비록 자신이 직접 날지는 못하더라도 여우덕분에 나는 거처럼 날았다고 위안이 될까? 이러고 나서 여우에게 잡아 먹혀도 괜찮을 거 같은 기분이다.

위쪽에 종이를 바느질해서 붙여 놓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저것 뭘까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벼룩이라도 털어 내듯 까치를 떨어뜨리고여우는 까치는 지긋하게 바라본다. 노란 눈의 여우가 까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라고. 여우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사라진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운 냄새를 풍겼다고 했다. 그래서 외로움을 까치에게도 개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던건가? 둘 사이에 오직 침묵만이 흘렀을 때 까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우는 외로움 때문에 이 둘을 갈라놓고 싶었던 걸까? 여우가 까치를 잡아먹을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

 

<..까치는 이글거리는 붉은 사람 한 가운데 홀로 남겨졌어. ..온몸이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어.> 그랬다 . 왼쪽 아래에 까치는 멍한 듯 붉은 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붉은 빛이 여전히 많은 사막그림이다.

 

<그 순간 까치는 혼자 남겨 두고 온 개가 생각났어. >그림을 조금 세밀하게 본다면 개가 보일까? 하고 들여다 보지만 깊다.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조심조심, 비틀 비틀, 폴짝폴짝, 까치는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시작했어>왼편 위쪽에 붉은 가장 붉은 빛을 등에 지고 까치는 이동한다. 멀고 먼 여행길을.

 

마지막 이면지에 처음에 펼쳐진 붉은 빛으로 가득차 있던 그곳이 청록색의 나무들이 서 있는 이제는 하얀구름과 파란하늘색으로 여느 숲이 있다. 처음의 그곳이 불타오르는 숲으로 그려놓은 붉은 빛이었나 보다.

 

개와 여우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충성스런 이미지의 개는 날개를 다친 까치를 도와주고 일어나기를 말없이 기다렸다가 까치와 같이 살아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살아가는 건 멋지다고 위로를 한다. 구해주고 위로하고 기다리고 살아가고 있는 개는 한결같게 보인다.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온 여우는 특별해보인다는 칭찬? 과 함께 그들의 보금자리로 들어온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가운데로 들어온다. 자신을 의심하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 까치에게 개를 배신하자고 계속 유혹한다. 물러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돌변하지도 않은채 계속 유혹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체없이 떠난다. 교활하고 꾀가 많다고 생각하는 여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간다. 그에 비해 까치는 나는 새라것 외에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설날에 까치? 외국그림책인데 그곳에서도 까치는 이런 이미지일까? 까치는 힘들고 슬픔에 빠져 어쩔줄 몰라했지만 개와 살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잘 살아가다가 여우로 인해 불안해하고 움츠러든다. 여우의 시선에 힘들어하고 의심하다가 결국 개를 배신하고 여우와 같이 떠난다. 세상을 다시 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한다. 그랬다가 혼자 남겨졌을 때 처음 날개를 다친 불타오르는 숲에 몸을 다친 그날을 연상하는 거처럼 온몸이 타서 재가 되어버린것만 같다고 아파한다. 하지만 까치는 길을 나선다. 자신이 배신했던 개를 떠올리며 비틀거리며 길을 나선다.

 

의외의 결말. 여우가 까치를 잡아먹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외로움에 대해 말을 하고 떠난다. 외로움. 여우는 처음부터 개와 까치를 떼어놓기 위해 다가온 것일까? 불안한 눈빛이라는 여우였다. 여우는 특별해보이는 이들을 질투해서 일까 아니면 그들 속에 속해있고 싶어서 일까? 특별해보이는 그들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특별해질거 같은 바램으로 왔을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여우의 눈빛이 다르게 보인다. 뭔가를 아는 듯한, 질문하는 듯하면서도 갈망하는 듯한. 참 묘하게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눈빛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처음부터 다가온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니 깨고 싶은 질투일까? 얻지 못해서 분노하고 화가 나면 떠나면 되는데 떠나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으니 급기야는 깨버리고 싶은 질투심이 일어나고 그 질투심으로 인해 외로워지는 걸까?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의 냄새라는 문장에 여우의 심정을 알고 싶다. 여우의 이미지는 처음 내게 있던 이미지이긴 하나 여우의 눈빛이나 저 문장이 여우의 복합적인 감정변화가 느껴진다. 이럴수 있을까? 저럴수 있을까? 하는 불안정한 정서가 느껴지는 여우. 제목을 여우로 잡은 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일까?

나는 여우에게 감정적 이입이 더 크다. 까치의 선택이나 배신에 감정이입이 되기보다 여우의 눈빛이나 그렇게 까치를 버리고 떠나버리는 여우의 마지막 모습이 더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흔들려서다. 특별한 두 친구를 바라보는 자의 외로움이나 그로 인한 질투와 분노를 더 많이 기억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 불릴만한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 고마움을 느꼈을까? 몰랐을거다. 몰랐으니 고마움도 없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한 장치의 여우가 나왔다고 하기에는 ...

 

일부러 왼손으로 글씨는 쓰는 방법. 수고로움을 선택했을 때는 무엇인가 목적한 바가 있었을때다. 불안함과 불편함? 여우가 가진 불안함이라는 정서를 나타내는건가? 까치가 여우에게서 느끼는 불안함? 그럼 개는 불안해하지 않나 돌아보면 개는 그렇지 않다. 불안함을 읽는 우리에게 느끼도록 하는 장치일까? 불안함도 있지만 불편함도 있다. 그냥 왼손으로만 쓴게 아니라 방향도 자주 바꾸었다. 불안한 글씨체를 편하게 읽게 하지도 않았다. 책을 이리저리 틀어서 읽도록 했다. 쉽거나 빠르게 읽지 않고 일정의 불편함을 안고 읽게 하고 싶은 장치일까 싶다.

 

친절하게 자신을 일으켜준 개를 배신하고 여우를 따라나선 까치.

개를 떠나 날으는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때가 아닌 오래전 기억에 날으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배신을 하고 떠난다. 다른 무엇에 대한 애정이나 갈망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자기에 대한 애정이 까치를 변하게 한다.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 어찌보면 까치로서는 그럴수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난 너를 배신하는게 아니야. 나를 찾기 위함이고 나를 알기 위해서 떠난거야라는. 까치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다쳤으니 슬프고 슬픈데 위로를 해주니 받아들이고 안정을 찾으니 자신을 찾고 싶어지는. 그렇구나. 까치는 현실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그러나 마지막에 까치는 멀고 먼 여행을 떠난다. 혼자남은 개를 생각하면서. 이 대목에서 까치가 내리는 선택에 희망을 그리는 거 같고 마지막 이면지 그림이 맞물려 잘 들어간다. 그럼 나는 그런 상황에 까치와 같은 희망을 그리는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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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머리와 곰 세 마리 - 바바라 매클린톡의 베틀북 그림책 101
바바라 매클린톡 외 지음, 문주선 옮김 / 베틀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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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공인가?

 

 

금발 머리와 곰 세 마리

바바라 매클린톡.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세 마리가 침대에 누워 잠자는 금발머리를 바라보고 있다.

표정으로 아빠곰처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엄마곰은 아이가 자고 있네?’ 아기곰은 엄마아빠 애 좀 봐봐와 같은 어떤 표정이 읽어진다. 각각의 역할로.

그림들이 화려하다. 제목에 금발머리와 곰 세 마리라는 것으로 곰세마리라는 전래동화가 곰들 입장에서 시작했거나 곰 입장이었던 전개가 다르게 펼쳐질거라고 보여진다.

 

죽그릇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엄마곰은 모자를 쓰고 아ᄈᆞ곰은 아기곰을 무등에 태우고 있다. 그리고 넘어가면 금발머리가 양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만만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옛날, 옛날에 머리가 금빛으로 빛나는 여자아이가 있었어.> 라고 시작한다. 금발머리에서 시작하는 곰세마리. <금빛으로 빛난다.> 라고 금발머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인형집을 가지고 있고 자신처럼 금빛으로 빛나는 금발머리 인형도 있고 곰인형도 있다. 차대접할수 있는 차놀이세트가 있고 흔들의자에 발받침대 그리고 말머리장난감이 있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 정원이 있고 창문가에 쳐있는 커텐 또한 커튼구름도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모습에서 금발머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보인다.

금발머리가 자신의 인형들을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는 엄마역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옛날 옛날에~ 도입하는 부분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처럼 시작한다. 금발머리라는 여자아이에 대해 어떤 아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신발끈매기 같은 것을 깜박하고 하지 말라는 일까지 깜박 한다는 것이다.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금발머리는 아이들의 특징이 유달리 강한 아이일까? 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전체적으로 글과 그림은 그다지 연관없이 전개되어있다.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앞장에서 말한 말을 그대로 이어 <그건 문제지..> 하고 시작한다. <하지 말라는 일을 깜빡하면 꼭 큰 일이 벌어지거든. 이제부터 큰일이 벌어진 날 이야기를 해 줄테니 잘 들어 봐> 라고 썼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큰일이 곧 벌어질거라고 읽는 이에게 긴장감을 준다. 숲에 들어가면 무서운 곰이 살고 있다고 들어가서는 안돼.라고 말한다.

들판에 꽃을 따러 간다는 금발머리. 나비를 쫒다가 새를 보다가 숲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비는 보이는데 새는 보이지 않는다. 얼핏 그림에 숲이 우거진 느낌을 주나 그림에 비율로 보아 무서운 곰이 살만큼 큰 숲은 아니게 보인다. 오솔길이 굽이 치기는 하나 멀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공간의 폭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서 일까?

 

<숲으로 들어간 금발머리는 집 한 채를 발견했어. 작은 집은 정말 예뻤어. 그래서 다짜고짜 다가가 뒷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았지.> 드디어 곰 가족이 등장한다. 개별적인 아빠곰이라거나 커다란 곰이라거나 하는 표현은 없다. 사람과 똑같이 섬세하게 옷을 입은 곰들.

왜 신발은 신기지 않은걸까? 아빠곰과 아기곰은 성인 남자와 아이처럼 간편한 차림새다. 앞치마를 걸치고 있는 엄마곰은 꽃으로 장식된 모자도 쓰고 있다, 그들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다하고 있는데 신발은 왜 신지 않은 걸까?

곰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개별적이기 보다 한 가족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가족을 표현하는 그림들이 은근 많다. ‘다짜고짜다가간다는 단어사용이 금발머리의 성격이 느껴진다. 아이들의 특징보다 더 강하게 금발머리의 일면을 나타낸다. 버릇없는 성격처럼 들린다. 담쟁이로 둘러쌓여 있어서 오래전부터 있던 집 같다. 노란새가 지붕에 앉아 있다. 금발머리가 따라온 새인가? 그리고 지붕에 곰인형들이 조각되어져 있다 이 집도 굴뚝이 있고 유리창에 덧문이 있는 잘 손질된 집처럼 보인다.

 

<저기, 아무도 안 계세요?> 금발머리는 다른 사람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엄마말을 듣지 않고, 다른 사람 음식에 손대지 말라는 엄마 말도 듣지 않고 행동한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죽을 보고 먹어본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를 그만 깜박하고 말았어. > < 고소한 냄새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는 또 깜박하고 말았어> 호기심일까? 냄새때문일까? 하면서 금발머리의 행동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금발머리가 계속 엄마 말을 듣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계속 엄마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몽땅> 에 글자 크기며 색이 변해있다. 금발머리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결말을 강조하고 있다.

 

<금발머리는 거실로 갔어.> 여기에서도 <신기한 생김새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는 이번에도 깜박하고 말았어.> 신기해 보이는 의자라니..낯선 의자일수 있겠지만 신기하지는 않겠는데..

금발머리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는 거처럼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거부감이 살짝 든다. 의자의 모양새는 금발머리가 자신의 집에서 앉아 책을 읽어주던 흔들의자와 거의 비슷하다. 신기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과하다. 금발머리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면에 낯섬에 대한 감정적 해석은 약하다고 생각하는지 신기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양면에 의자 세 개를 동그랗게 원을 그리듯이 모아놓고 있다. 금발머리는 제일 큰 의자에 올라가 앉는다.

 

아빠곰의자는 딱딱하고 엄마곰의자는 푹신하고 아기곰의자는 딱 좋은.

금발머리는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아기곰 의자를 우지끈부러지게 한다.

 

<이쯤 되면 집으로 돌아갈 만도 한데, 금발머리의 호기심은 멈출 줄을 몰랐어.>

그렇게 의자를 부러뜨리고 금발머리는 계단 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계단참에 곰세마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고 의자가 놓인 공간에는 곰이 그려져 있는 책이 두권 바닥에 떨어져 있다. 금발머리는 계단에 올라갔다.

 

<계단 위는 아늑한 방이었어..특이한 모양 때문이었을까? 금발머리는 역시나 깜빡하고 말았어.> 엄마 말을 듣지 않는 금발머리라고 말한다. 특이한 모양 때문이란다. 다른 사람의 방을 엿보지 말라는 엄마 말씀..아 잔소리.

 

아빠곰 침대는 딱딱하고 엄마곰 침대는 푹신하다. 의자랑 같다. 아기곰 침대는 적당해서 스르르잠이 들었다.

 

<그때, 바로 그때, 곰 세 마리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때를 두 번 말한다. 이제 바야흐로 큰일이 벌어지려나 보다. ‘누가 내 죽을 먹었나 봐!’ 아빠곰이 말한다. ‘어머 내 죽도!’ 엄마곰이 말한다. ‘제 죽도요. 그것도 그릇째 몽땅요.’ 아기곰이 말한다. 글씨 크기도 다르다. 죽이 여기저기 흘리고 숟가락도 떨어져 있다.

누가 내 의자에 앉았나 봐.!’ 아빠곰이 말한다. ‘어머, 내 의자도!’ 엄마곰이 말한다. ‘제 의자에도요. 게다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아기곰이 말한다.

 

<살금 살금, 슬금슬금, 곰 세 마리는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갔어.> 엄마곰이 제일 먼저 앞장을 서고 있다. 아빠곰이 중간에 슬금거리며 올라가는 모양새가 엄마곰보다 조금 겁에 질린 듯 하다. 다른 무엇이 집에 들어온 흔적이 있는데 모두 겁에 질려 있는 상황에서 엄마곰 뒤에 더 잔뜩 긴장한 태도로 걸어 올라가는 아빠곰 모습이 빵..하고 터진다.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이지 않는 저곳에 무엇이 있을까? 구부러져 보이지 않지만 잠자리가 있는 안식처에 무엇이 있을까 올라가면서 곰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곰들의 시선으로 들어갈 수 있던 지점이다.

 

누가 내 침대에 누웠나 봐! 아빠곰이 말한다 어머 내 침대에도!‘ 엄마곰이 말한다. ’제 침대에도요. 게다가 바로 여기 있어요.! 라고 아기곰이 말한다. 전체 양면에 아빠곰침대부터 차례대로 내려온다. 창문으로는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잇고 금발머리는 아기곰침대에 자고 있다.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금발머리가 잠에서 번쩍 깨어났어.> 금발머리가 이번에는 엄마 말을 들었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는 엄마 말..모두 놀라 금발머리를 내려다보고 물끄러미 보고 쳐다보고 있고 금발머리는 깜짝 놀라 곰들을 바라본다. 엄마곰이랑 정면으로 마주치는 시선이다. 엄마곰의 자세는 아기곰을 보호하면서도 금발머리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아ᄈᆞ곰의 자세는 영 어정쩡하다. 몸만 큰 곰이라고 해야하나. 손가락을 맞잡은 모습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보인다.

 

<금발머리는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내려왔어. 그러고는 부엌을 지나 뒷문으로 쏜살같이 빠져나왔지. 금발머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어.> 신발이 벗겨졌다. 신발끈을 안 묶더니 달리니 신발이 벗겨졌다. 중간중간에 잔소리를 하는 목소리에 덕인지 같이 잔소리하고 있다. 순식간에 금발머리가 집에 도착한다.

 

<금발머리는 여전히 엄마가 하라고 하는 것들은 깜빡하지. 신발 끈 바로 매기, 밥 먹고 이 닦기 같은 사소한 것들 말이야. 하지만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절대로, 절대로 깜빡하지 않았대.> ...애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느낌이다. 그림이 화려해서 이것저것 볼게 있어 보이지만 그림들이 제각각 살아 있어서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냥 화려하다라는 느낌. 어쩜 어린 여자아이들한테 잘 쓰일만하다라는.

 

금발머리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던 일들을 계속 했다. 그렇게 잘못하고 잘못해도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꼭 안아준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비록 엄마말을 안 들을지라도 엄마는 모든 것을 다 받아준다. 이런 의미로 작가가 썼을까? 엄마말을 듣지 않는다는 금발머리에 대한 해석이 다른 곰세마리와는 다른 시각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 새로운 해석이 전래동화를 다양하게 보는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쉽다라는 생각은 왜 들지?

전래동화가 너무 소소해진다는 느낌. 아깝다.

아깝다라는 기분은 왤까. 곰세마리이야기를 오래전에 알았을 때 어떤 기분으로 들었을까?

낯선 곳에 들어가는, 이것저것 들여다보는 호기심? 들키면 안되지만 그래도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던거 같은데..그러다 파란수염같은 분위기로 금방 넘어갈거 같으면 죽어라 도망갈 준비하고서. 뭔가 스릴있었던 기분이었다. 허락되지 않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공범의식으로 보았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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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특별한 집 - 1954 칼데콧 아너 상 수상작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3
모리스 샌닥 그림, 루스 크라우스 글,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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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선이 필요없는.

 

아주아주 특별한 집. 모리스 샌닥. 루스 크라우스

 

눈과 입이 웃고 있는 맨발의 남자아이가 다람쥐? 와 비슷한 동물에 소곤소곤거리는

귓속말을 듣고 있다. 장난을 준비하는 분위기이거나 뭔가 재미난 일을 도모하는 분위기다.

꼬마아이랑 스컹크? 는 아닐거고 다람쥐랑.

 

랄라랄라 랄랄라.

두 눈을 감고 양손을 왼편으로 슬쩍 추어 올리고 옆걸음으로 움직인다.

엉덩이는 삐죽이 오른편에서 따라온다.

막이 올랐다.

 

<나는 어떤 집을 알아요. 다람쥐 집은 아이에요. 당나귀 집도 아니죠. 눈으로 볼 수 있는 집이 아니에요. 어느 거리에도 없고, 어느 골목에도 없어요. 오직 나만을 위한 집이에요.

바로 나, , , .>

당나귀가 아니야하고 따라가고 1번 다람쥐도 아니야’ 2번 다람쥐도 아니야’ 3번 다람쥐도 아니야그리고 꼬마아이가 눈을 감고 자유롭게 팔다리를 펼치고 춤을 추듯 걸어가고

4번 다람쥐가 제일 앞에 꼼질꼼질 기어가는 애벌레? 송충이? 아무튼 그애의 아니야를 따라간다. 그런데 이리 보니 아니야를 외친다고 생각했던 당나귀와 다람쥐 사이사이에 집들이 있다. 버섯집같은 집, 아파트 같은, 단독주택같은..‘아니야를 애네들이 외친거 아닌가?

그럼 제일 앞에 송충이가 아니라 집을 이고 다니는 어떤 무엇일까?

누가 외치는 아니야? 인지.

 

<그 집에는 아주 특별한 침대가 있어요. 아주 특별한 선반도 있고, 아주 특별한 의자도 있어요. 하지만 앉으라고 있는 의자는 아니랍니다. 문도 아주 특별하고, 벽도 아주 특별해요. 아주 특별한 테이블도 있어서 발을 쭉 뻗어 올려놓기에 딱 좋아요. , , , .>

꼬마아이가 논다. 막 논다. 혼자서 논다. 벽에 벽화처럼 그림을 디따 편안하게 크게 그리고 논다. 침대에서 팡~~~~ 뛴다. 문을 타고서~~

어찌나 어렸을적에 문손잡이에 올라타고 문틀 사이를 올라다니고 얼마나 오래 버티나 견디면서 놀고 아마 문틀 사이에 버티고 책도 읽어보려고 시도한거 같은데..책꽂이에 책들은 어디에 가고 아이는 논다. 침대처럼 누워서. 그랬다 이불장에 들어가 누워있고 소파방석사이에 숨어 잠잤다. 침대밑에 저 강력 스프링이라니 부릅다. 저렇게 뛰면서 천장에 손을 닿아볼텐데..

그러면서 특별해라는 단어들 군데 군데 들어있다.

특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놀이. 특별하다는 규정아래에서나 즐길 수 있는 놀이.

섭하다. 일상에서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저 아이는 특별하니까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집에 거북을 데려가요. 토끼랑 거인이랑 죽은 쥐 한 마리도요, 내가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는 쥐예요. 원숭이와 스컹크 몇 마리도 데려가요. 늙은 사자 한 마리도 빼놓을 수 없죠.>

스컹크로구나. 다람쥐가 아니라. 스컹크는 악취나는 방귀뀌는 동물로만 그리고 있어서 설마 스컹크와 속닥거리는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흥미로운 방귀는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그림책에 주인공 노릇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거 같다. 갖가지 흥미로운 동물들을 데려간다. 갈기 어마어마 큰 사자가 ......’거리며 같이 간다. 죽은 쥐..흐흐 영화에서 죽은 쥐와 같은 살아있지도 않은데 보물처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는데 .

진짜 죽은 쥐 시체일까? 저 상자속이 궁금하네. 어디가서 상자가 있으면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있다. 없으면 서운하다. 뭔가 있었으면 하고 바래고 열어보지만 별거 없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별거 아닌 그것들도 상자안에 있으면 특별해지는 기운을 갖게 되는 기분.

커다란 모자 쓴 거인이 인사를 한다. 원숭이들도 스컹크들도 토끼도 몇 마리 뛰어다니는 아까 보았던 그 특별한 공간안으로 데려간다.

죽은 쥐. 늙은 사자.

 

<늙은 사자는 의자 틀만 남기고 쿠션 솜을 싹 먹어 치워요. 우적우적 우적우적>

..................................................

하고 먹어 치운다. 뭐든 먹어치울수 있으까?

 

<나는 동물들과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하고,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며, 까르르 웃어요.

이리 폴짝 저리 폴짝 뛰어다니기도 하지요. 야호, 야호, 야호! 꼬꼬댁 꼬꼬 암탉 흉내를 내고 오페라 무대에 선 것처럼 목청쩍 노래해요. 모두들 신이 나서 우아우아, 우아우아, 우아아아>

조금 더 활발하게 아이가 움직이며 논다. 구르고 웃고 뛰고 소리지르며 노래한다.

소곤거리면 듣고 기어가면 같이 기어가고 노래하면 같이 노래부르고 구르면 같이 구르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논다.

 

<, 우아우아, 우아우아, 우아아아, 우아우아, 우아우아, 여기저기 쿠션 밑에 과자 부스러기를 뿌려 놓아요. 늙은 사자는 요란하게 코를 골며 드르렁, 드르렁, 드르렁, 원숭이들은 신이 나서 춤을 들썩들썩, 조그만 발자국들이 천장까지 콩콩, 콩콩콩콩. 나는 쿵쿵 뛰고, 폴짝 뛰고, 콰당 부딪혀요. 온 집 안에 음악 소리가 울려 퍼져요. 이런, 거인이 음료수를 왈칵 쏟았어요. 음료수가 바닥에 흥건히 퍼져요. 토끼는 가장 멋진 문을 덥석 한 입 뜯어 먹어요. 모두들 소리쳐요. 또 해! 또 해! 또 해! >

뛴다. 뛴다. 그리고 음료수를 쏟고 문짝도 뜯어 먹고. 그냥 놀지 않고 뭔가 부스거나 흔들림을 만들거나 어지르며 논다. 맘대로 논다. 시끄럽게 논다. 활발하게가 아니라 시끄럽게 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렇게 놀고 다시는 안할까? 한번으로 끝나나? 아니다. 또 해!

 

<또 해! 또 해! 또 해! 또 해! 또 해! 또 해! 철벅, 철벅, 철벅. 또 해! 또 해! 또 해!또 해!

또 해! 또 해! 또 해! 또 해! 아무도 그만, 그만,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모두들 손에 손잡고 노래하듯이 또 해!’를 외친다. 반복해서.

그네들은 또 해!를 주장하고 주장하고 당연히 그렇게 놀아야 하는 거처럼 또 해!를 외친다.

그렇게 오래 오래 지루해져서 스스로 그만 할때까지 이 놀이를 또 해!를 외치며 놀 것이다

 

<나는 어떤 집을 알아요. 다람쥐 집은 아니에요. 당나귀 집도 아니고요. , 아까 이야기했죠?

산 위에 있는 집도 아니에요. 골짜기에 있는 집도 아니죠. 깊은 구멍 속에 있거나 우리 동네 골목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나무 위에도 없고, 침대 아래에도 없어요. 그 집은 바로 여기...

바로 바로 요기 요기..... 내 머릿속 한가운데에 쏙 들어 있답니다. , , , . >

어느 집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머릿속 상상안에 들어 있는 집이란다. 어느 집도 아니라고 친절하게 그림 그려져 있다. 어떤 배경이 잘 살아 있는 맞춰 있는 그림은 아니다.

이 모든 집이 아니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고 침대에서 팡 팡 뛰며 말한다. 양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침대 밑에 스프링 사이에는 작은 집 모형이 들어있다.

특별한 집은 꼬마아이의 머리안에 있어서 아무 때나 언제든 갈수 있겠다.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겠구나. 단지 내 머리안에 있는 그 특별한 집을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랄라랄라 랄랄라

랄랄랄랄 라라라

노래하며 꼬마아이가 눈을 감고 날아다니듯이 몸을 가볍게 날리며 반원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주저앉듯이 내려앉으며 소리를 갖는다. ‘하고.

꿈을 꾸었나? 아니면 그 아이가 상상놀이를 끝냈을까?

특별한 집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놀이를 끝내면 주저앉았을까?

놀이가 끝났기에 이제 돌아오는 자리인가보다.

이라는 어떤 물체와 부딪히는 소리가 살아난다.

 

전체적으로 노란책이다. 노란 표지그림에 해가 동그랗게 떠 있고 햇살이 사방으로 펼쳐 나간고 있다. 꼬마아이는 분핀을 손에 쥐고 노란 바탕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양팔을 내밀고 있는 고양이수염에서 그림이 나오려 하고 ,집에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김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바탕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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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세 마리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60
폴 갤돈 글 그림, 허은실 옮김 / 보림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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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에서 하는 이야기

 

곰 세마리. 폴 갤돈

 

숲속 오드막집에 곰 세 마리가 살았어.

작은 곰이 그네에 앉아 있고 밀어주고 있는 곰과 지켜보는 곰이 있다.

은근 깊어 보이는 숲이고 제일 가깝게 서 있는 나무 둥치에 올빼미? 한 마리가

정면으로 보고 있다. 저 올빼미는 무엇을 보고 있지. 이야기에 전혀 상관없는 무엇들이 난 재미있다. 거기에서 긴장감이라고 해야하나? 숲속이라는 생동감을 주기 위해 그려넣었을까? 곰들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 시선의 다름도 있지만 책을 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싶어서 긴장감이 든다. 즐거운 긴장감.

 

한 마리는 조그맣고 조그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커다랗고 커다란 곰들이다.

추측컨대 아기곰 엄마곰 아빠곰이다. 그런데 그렇게 쓰지 않은 이유가 뭘까? 혈연으로 쉽게 쓰지 않고 크기로 표현한다. 크기만 느껴지는 건가?

글씨도 실제 작다. 작고 연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페이지에서만이 아니라 끝까지.

털의 방향을 보아 조그많고 조그만은 어린 아기남자곰일거 같다. 아빠곰과 털의 방향이 비슷하다. 뒤에 꽃을 배경으로. 인간들처럼 집을 짓고 두발로 걷고 곰인형을 가지고 논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성향으로 보아 아기곰이 중앙으로 배치하고 엄마곰 아빠곰이 양편으로 갈려 아기곰을 보호하듯이 그려지는데 여기는 크기 순으로 배치했다. 크기가..또 나온다

 

넘어가면 죽 그릇이 있는 장면과 의자에 앉아 곰들이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조그많고 조그만 그릇,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릇, 커다랗고 커다란 그릇..

조그많고 조그만 의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의자, 커다랗고 커다란 의자..

반복되어진다. 그릇과 의자의 크기가.

그리고 곰들은 책을 보고 있다. 책의 크기는 반대다. 곰인형은 바닥으로..곰인형을 안고 책을 보지는 않는군. 곰인형을 그리지 않아도 되었을텐데..그리면서 바닥에 있다.

조그만곰은 의자에서 바닥에 발이 닿지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은 발을 꼬고 앉아 있고 커다란 곰은 안경을 걸치고 책을 본다.

죽그릇 뒤에서 작은 생쥐 한 마리.

그리고 다음장에는 침대.

조그많고 조그만 침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침대. 커다랗고 커다란 침대..

작은곰은 곰인형과 자고 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은 귀를 막고 잠을 못들어하고 커다랗고 커다란 곰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지..코를 골고 있는지..

옆에 누웠는 곰의 태도라면 코를 골고 있는 모양새인데..침대를 이루고 있는 나무결 모양새가 제각각 멋지다. 커다란 곰의 머리맡에 끊어진 모양새는 더..코고는

소리에 벌어진건 아니겠지?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그림들.

곰 세 마리는 죽이 너무 뜨거워 산책을 나간다. 작은 곰을 커다란 곰이 무등을 태워서 나간다. 곰인형은 작은 곰이 여전히 안고 있다. 가족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금발머리가 곰 세 마리네 집에 왔어. 이상한다. 금발머리는 이 집을 원래 알고 있던걸까?

지나가다 들어올만큼 얕은 숲은 아닐거 같은데 지나가다 들어왔다거나 그런 부분은 없고 그냥 집에 왔어로 글은 시작한다. 그리고 금발머리의 표정은 드디어~!라는 의미가 살짝 묻어 있는 호기심이 들어있다. 슬쩍 들여다보고 살짝 안으로 엿보고 문고리를 돌렸다. 치밀하다.

바로 들어가지 않고 정탐? 하는 치밀한 작전이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곰들이 다른 곰들을 믿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지 다른 곰을 믿은 신뢰는 깨지지 않았지만 금발머리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른부류..에 대한 준비는 없다.

이 부분이 군더더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부분을 넣고 싶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넉줄의 설명이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의미였을까?

글자의 크기나 색의 굵기와 같은 모든 것에서도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다. 죽그릇 주변에 날아다니는 파리한마리도 그려 넣는다. 넣지 않아도 되지만 죽이 맛있을거라는 무언의 전달.그렇다면 넉줄에 의미는 무엇일까?....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다.

 

금발머리는 차례대로 죽을 먹어보고 작은 곰 죽을 홀랑 먹는다.

의자에 차례대로 앉아보고 작은 곰 의자를 앉아 흔들다가 부서뜨린다.

침대에 차례대로 누워보더니 조그만 곰 침대가 마음에 쏙 들어 스르르 잠이 들었다.

곰 세 마리가 돌아온다.

조그만 곰은 곰인형을 가지고 있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곰은 꽃을 한아름 안고서 조그만 곰을 웃음을 띠고 올려다보고 있다.

커다란 곰과 조그만 곰이 정면으로 바로보고 있다.

설마 재네들이 책을 보고 있는 나한테 자기네들 집을 잘 지키고 있었는지..그 사이 무슨일이 생긴건지 물어보는 건가? 조금 어이없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다. 꼭 그런거처럼 우린 당신을 믿고 있어요 라는 거처럼 보인다는..

 

커다란 곰이 누가 내 죽을 먹었바 봐!’ 라고 한 장면 가득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도 누가 내 죽을 먹었나 보네!’ 파리 한 마리 오른쪽 끝에서 날아간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라고?

조그많고 조그만 곰이 누가 내 죽을 다 먹어 버렸어요!’

커다란 곰이 누가 내 의자에 앉았나 봐!’ 의자가 오른쪽 끝에 그려져 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라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이 누가 내 의자에 앉았나 보네!’

조그만 곰이 누가 내 의자에 앉았다가, 의자를 망가뜨렸어요!’ 울먹인다

곰 세 마리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지

커다란 곰이 누가 내 침대에 누웠나 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곰이 누가 내 침대에 누웠나 보네!’

조그만 곰이 누가 내 침대에 누워 자고 있어요!’

금발머리가 잠에서 깼다. 한쪽 눈만 번쩍 떳다.

난 이 장면이 마음에 든다. 처음 이 이야기에 몰입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놀래거나 뭔가 으스스 할 때 두 눈을 한꺼번에 뜨지 않을거 같다는 머릿속에서 만들어 놓은 광경을 보고 있는 듯하다.

꽃과 동물들과 자연물들을 퀼팅한거 같은 이불이 가깝게 보이고 그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있던 금발머리. 한쪽눈만 번쩍 뜨고 있고 그 모습을 호기심반 놀라움 반으로 곰 세 마리가 들여다보고 있다. 어떻게 될까? 이 다음은..얼른 넘겨 보고 싶다.

금발머리는 조그만 침대 곁에 있던 창문으로 달려가 훌쩍 뛰어 내렸다.

다행이다. 그 침대 곁에 창문이 있었구나. 저렇게 곰 세 마리가 지켜보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헤치고 도망나올까가 항상 긴장되고 궁금했는데 ..침대 옆에 창문이 있다는 것은 이제야 안다. 세 마리 곰은 뒤에서 멀거니 뭐니? 이건 하는 표정으로 서 있다. 그러면서 어떤 새도 같이 날아간다. 저 새는 어디서 뛰어 나온걸까?

마지막 장면 곰 세 마리가 금발머리가 뛰쳐 달아난 그 창문으로 얼굴을 내다보며 참 이상한 일일세라는 표정을 보이며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창문을 위에 창문틀에 있다.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창문틀이 뭔가들이 앉아 있을만하게 보인다. 주변에 포도넝쿨들이 그려져 있다는..저 넝쿨은 무엇을 지지대로 타고 올라가는 거지? 벽틈에 작은 부스러기 들이 있나? 그러면 나무로 된 창문틀보다 유리로 된 창문틀이 더 나을텐데..

 

그림에 공간이 느껴지고 글에서 말하지 않은 섬세한 부분들을 그려놓고 있다.

조그맣고 커다란 등등 크기로 곰을 말하고 있지만 그림은 가족형태라고 소개하고 있다.

곰인형을 가지고 노는 조그만 곰이라던가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들이 살이 붙어가는 그림이다. 글만으로 보기에는 아쉬운. 그런데 공간이 그려지는 그림들이라면 이 책을 보고 즐길수 있는 연령대가 10대로 들어가는 초입? 초등 중학년 정도 이면 좋을텐데..

글이 반복되어지는 부분들은 조금 더 어린 연령이어야 재미있어하며 따라할 것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 싶은 4줄은 어떤 아이들에게 작가가 하고 싶었던 걸까?

유치원? 집문단속? 어느 연령일지 조금 헷갈리는 곰세마리.

하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는 글과의 관계를 보기에 참 재미있게 본다.

들여다보는 재미가 이런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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