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어! 꿈공작소 7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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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배에 묶어 바라보고 있는 펭귄

풍선과 부리와 발이 색이 같다.

혼연일체로 풍선과 같이 둥실둥실 날아보고 싶은 펭귄일까?

그러려면 풍선을 좀 큰것으로 매어보지 그랬니? 하면서 말을 걸어보고 싶다.

그렇게 날고 싶은 거니? 하면서..

 

두 친구가 있고 늘상 같이 함께 했었는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혼자 힘으로 하고 싶은 일이었어.' 라며

날고 싶어~!

직선으로 푸른 하늘을 향해서 주욱 날아가는 펭귄이 나타난다.

눈이 쌓여서인지 하얀 산봉우리들을 아래로 펼쳐지는데 저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는 펭귄이다. 날아가는 펭귄의 궤적이 직선으로 쭉 뻗어있다.군더더기 없이 오로지 직선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날고 싶은 욕구에 집중하고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푸른 창공을...날아간다.

 

그렇게 날고 싶은 펭귄이 자신의 날개라고 생각하는 팔을 후두두두 날개짓처럼 움직여도 보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서 양팔을 펼쳐보지만 쯥쯥쯥.

작은 풍선에서 커다란 파란풍선에 몸을 매달로 땅에서 한발 정도 떠오르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파란풍선에 매달린 펭귄를 보면서 혹시 나도 저렇게 큰 풍선이 있다면 매달려 보고 싶다. 저만큼이라도 뜰까? 라는 생각..ㅎㅎㅎ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건 정말이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펭귄. 날아가는것에 어떤 철학이라도 있는 걸까? -비행기는 펭귄이 마지막으로 날았던 순간을 대신해 주지 못했어. 아마도 비행기는 비행기가 날으는 거지 펭귄은 그냥 의자에 앉아있기만 하는 거라는 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구나 의자에만 앉아 있었구나.'

 

드디어 펭귄이 찾아낸 날아가는 방법.

작고 통통한 이에게만 가능한 새대포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구에게 말할 정신없이 달려간다. 날고 싶어서.

소년은 펭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곧 찾을거라며 다른 펭귄들과 논다.

난 이 대목이 마음에 든다.

둘도 없는 친구라 해도..가끔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펭귄의 모습이 좋다

또 그렇게 집중하고 있는 친구를 그냥 그대로. 그러면서 자신은 다른 친구들과 놀수도 있는 소년이 보기에 좋아.

곧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다른 펭귄들은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아무도 몰랐어.

라는 문장이 곧 따라온다. 조금 아쉽다. 게임을 다른 친구들과도 잘 하고 놀았다면 어떨까? 그렇게 놀수 있다는.

 

펭귄은 완전 새내기로서 살아있는 대포알이 되어 날아간다.

소년은 그 펭귄을 받아내기 위해서 달려간다.

그리고 둘은 다시 나란히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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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해, 벳시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65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야마니시 겐이치 그림, 김미영 옮김 / 시공주니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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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는 5번 전학을 했단다.

나는 딱 한번 전학을 했다.

기대도 하지만 두려움이 더 살짝 컸다.

그 기억이 정말 좋지 않아서 전학가기 전과 후를 나누고 있다.

선생님의 부적절한 태도로 인해서 위축되어버린 중요한 시기.

 

여기 주인공인 이치로는 나름 규칙을 정한다.

새로운 곳에 가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을 생각하고 행동한다.

5번째 전학 간 그곳에서 '벳시'라는 짝쿵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뭔가 자신이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과 다른 느낌을 받는 이치로.

준비하기 위해서 여러 아이들에게 물어보지만 정리하기 힘든.

 

위험해보이는 장난 또는 자신의 행동에 전혀 돌아보지 않는 벳시의 행동만을 나열하고 있고 그 행동을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이 벳시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받아들이고 왕따이기보다 '인기'있는 친구로 해석하는 부분

벳시 스스로가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야하는지 이치로와 만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부분등이 공감이 될듯 말듯 한다.

 

-벳시는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는 뜻이야. 벳시는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지. 뭐랄ㄹ까,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파워를 감추고 있는 겉 같은 느낌이 들거든."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한수 접어주는 이미지를 벳시는 갖고 있는걸까?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뭐 초등학교 아이들만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서 뭔가 서프라이즈한 면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약간 색다르게 구경? 대리만족하는 면으로 벳시는 본다면 공감이 간다.

쓰면서 이상해지는 이건..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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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들이 사는 집 - 제4회 비룡소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허가람 지음, 윤정주 그림 / 비룡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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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리의 늑대가 나온다.

세 편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험상궂게 생긴 늑대 세마리가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이야기 전후를 돌아보니 늘상 카드놀이만 하고 있나보다,

밥하기 내기 버섯따는 내기 등등 온갖 것들로.

그렇게 잡은 카드놀이 하는 늑대라는 캐릭터를 잡은 것은 좋았다.

뭔가 상상하게 하는 신선한 부분,

하지만 그 이후로 상상을 뻗어나가지는 못한다.

 

세마리의 늑대가 등장하는 데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아서

뾰족귀나 넓적귀나 처진귀의 특성이 구별되지 않는다.

흠흠,큼, 픔..등등의 이들이 그냥 내는 소리는 있다.

 

늑대들이 사는 집.이 그중 가장 읽을만 했다.

눈이 내리를 추운 겨울에 길을 잃은 양 두마리가 늑대집을 우연히 찾아든 이야기

서로 문을 열고 마주섰을때의 황당함? 그 상황이 그려지면서 어떻게 전개할까?

- 설마 늑대가 사는 집일 줄은 생각도 못 했었나 봐요.-설마 양들이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겠지요.

ㅎㅎ

그리고 은혜를 갚겠다고 머물게 된 양들.

그들에게 묻는다.

카드놀이에 진 넓적귀가 묻는다.

"야, 너! " ...."그래, 너 아까 은혜를 갚겠다고 했지?" ..."어떻게 갚을 거야?"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양들이 갚을까? 하고 물어보는 부분은 흥미로왔다.

 

카드놀이 하는 늑대들의 캐릭터를 좀 더 잘 살렸으면

재미있을텐데라는 아쉬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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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별 - 나를 키운 것들 문지 푸른 문학
김종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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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그리고 있다.

내 어린시절의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 사람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 노닌다.

사냥을 잘하는 친구, 힘이 센 친구, 운동을 잘하는 친구등등

궁금해졌다. 정말 이 사람 옆에 이렇게 뭔가 하나씩은 잘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남들한테 내세울만한 거를 잘하는가?

내세울만큼 뭔가 타고난 친구도 있겠지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 중에 힘이

세거나 사냥을 잘하거나가 아닐까? 

내 주변에 인간들을 한명씩 추억하면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책

그렇게 느껴졌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 내 중심으로 우주가 존재하는 시절의 이야기.

사전첩을 들여다보면서 새록 새록 떠오르는 오래전 일들을 보고 있는거

같았다.

그래서..조금은 뭉클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정말 생경한 이야기 이지 않을까

70년대에 태어나 지은이와 겹치는 세대라 할지라도 도시에서 쭉 살았던 나로는 살짝 감이 떨어지는 부분도 많다.

 

그래도 내 어린시절의 우주를 만들어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애정.

그것만으로 괜찮다

덕분에 아주 오랫만에 알라딘에 리뷰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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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할미 책좋아 옛이야기 36
최은규 지음, 백남원 그림 / 웅진씽크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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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만한 마고할미. 그녀 날다

 

마고할미. 그녀는 완전 풍만하다.

이쁘게 말해서 풍만함이요 노골적으로 말해서 뚱뚱하다.

우리 아들은 최고로 뚱뚱 하다면서 엄마랑 똑 닮았다고 웃어대며 뒤집어진다.

 

마고할미 (정근.보림.) 솔거나라시리즈물로 먼저 만났었다.

푸른빛과 위로 옆으로 펼쳐지게 되는 면들이 인상적이었던 책.

제주도에 설문대할망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많이 끌어왔던 마고할미.

그녀가 오줌을 누면 강이 되어 흐를 만큼 거대하지만 늘씬한 할머니였다.

한참 지나서 웅진에서 만든 마고할미 그림책을 다시 만났다.

 

1. 마고할미가 나를 위해 나타났다

 

표지그림을 펼치면 찢어진 작은 눈, 작은 코, 도톰하나 크지 않은 입술

그리고 두둑한 광대뼈를 가진 여인이 거대한 팔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온다.

오호. 저 팔에 맞으면 최소한 8주 나오겠다 싶을 만큼 힘이 좋아보였다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튼실한 팔을 가진 중년의 여인네가 마고할미로 나왔다면

뭔가는 다를 것 같았다.

 

네 귀퉁이의 각을 지운 하드보드 표지다. 신경을 조금 썼다는 느낌 든다

표지를 넘어 이면지로 넘어가면 뭔가 빽빽이 채워져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그린 졸라맨 식으로 막대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처음 긴 막대기에서 머리가 생기고 다리가 생겨 걸어가고 팔이 생기고

걸어가다가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다른 사람을 만들어 같이 걸어간다.

한명이 두명이 되고 두명이 세명이 되어서 걸어간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임이 짐작된다.

이렇게 인류가 시작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보인다.

 

글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 연한 보랏빛으로 가득하다. 그 안에 수많은 삼각형들,

노랗게 빛이 올라오는 듯한 바닥. 별들이 가득한 은하수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으로 넘어가면 보랏빛들이 리듬을 타는 것처럼 신비한 밤하늘에

수많은 동심원들이 그려져 있다.

동심원들의 간격은 일정치 않으나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는 듯하다.

짐작도 할 수 없이 커다란 삶이 움직이는 질서가 있는 듯하다.

우리의 태양계만이 아니라 다른 은하계들까지 있어 보인다.

좋아하는 색은 아니지만 신비로워 보이는 분위기의 보랏빛이 근사하다.

 

그렇게 또 한 장을 넘어가면 표지의 그녀가 거대한 팔에 어울리는 풍만한 가슴과

배와 엉덩이를 보이며 몸을 일으키고 있다.

여름에 더울 때는 저 가슴 밑이 땀으로 차서 가끔 닦아줘야 할텐데,,

열기가 꽤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쓸데없이 지나가면서 웃음이 실실 나온다.

손으로 배를 찰싹 맞춰볼라치면 떡매로 인절미를 치듯이 쫀득쫀득 달라 붙는

나노1초 정도의 느낌을 받을 거 같다.

가볍게 출렁거리는 파도와 같은 살결이 갖는 배의 무게감.

양팔로 끌어안아 보면 한 바구리네, 하는 기분 들 거 같다.

저 몸에 끌어안아지면 포근해질 거 같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거 같은

풍만함이 있다. 언제 내가 저렇게 안겨보았던가?

내 기억에 나를 안아주웠던 엄마의 모습은 떠오르지를 않는다.

내 기억의 한참 저편에는 있나보다.

안아주는 것을 떠 올리는 것을 보면 기억에는 없지만

몸의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의식에도 남아 있을만큼 안겨보았던 기억이 있음 좋았을텐데.

엄마도 이런 생각을 할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한번 꼭 안아줘야지한다.

 

그렇게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 있다.

아지랑이들이 노랗게 피어오르며 세상의 시작을 알려주는 듯하다

땅덩이를 들어 물에 담갔다 뺄 수 있는 저 괴력.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얼굴의

찡그림도 보인다. 이쁜 얼굴은 아니긴 하다.

그렇게 몇 장 넘어가면 정말 환상적인 그림이 있는 면이 나온다.

 

2. 풍만한 마고할미 . 그녀 날다.

 

머리에 꽂은 비녀 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깨둥이라고 부르는 모습으로,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들고 바람과 생명의 숨결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날고 있다.

이 대목에서 쓴 소주 한잔을 마시고 부러 내는 카~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 육중함이라니... 뚱뚱하나 처지지 않은 젖가슴, 서 있다면 처져보일게 분명한 아랫배, 목욕탕 의자에 절대 앉아지지 않을 만큼 풍만한 엉덩이, 아기처럼 뽀얗게 보들보들 해서 눈 감고 한번 비벼보고 싶은 피부.

그녀 아래 세상에 땅이 이제 생겨나고 생명이 불어 넣어진 노루며 토끼들. 살짜기 그네들을

걱정해보았다. 저리 풍만한 그녀가 날다가 떨어져서 철퍼덕 하면 그네들은 바로 깔끔하게 펴질거 같아서.^^

하지만 날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정말 자유롭게 보인다.

느긋하게 눈을 감고 온 몸을 스쳐가고 감아 지나가는 생명의 숨결들을

사랑스럽게 음미하는 거처럼 보인다.

몸에서 부드러운 곡선의 자유로움을 자극적이지 않게 상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나는 왜 실실 쪼개면서 웃고 있을까?

내가 여기서 얻고 있는 이 즐거움이 도대체 무엇이지?

세상을 창조하는 마고할미.

그 능력에 걸맞게 표현되어질 법한 권위나

엄숙함과 같은 분위기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 소탈함일까?

풍만한 여인네의 나체를 솔직하게 나타내는 점이 즐거운가?

이런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린이 책 시장의 융통성이 좋은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난 이 장면이 정말 좋다. 홀딱 반하게 좋다.

저 풍만한 육체를 통해서 마고할미의 엄청난 풍요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듯해서 좋다.

그리고 날고 있는 풍만한 마고할미의 모습에서 아이들

빵~ 터진다. 핸드폰 있는 아이는 사진으로 찍는다.

생각보다 잘 찍히는 핸드폰의 기술.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돌려보겠단다.

어린아이보다 나이가 있는 여고생들의 반응이 더 좋다. 편안한 느낌이 든단다.

 

3. 한 세기를 접고 있는 마고할미

 

그렇게 날고 있는 마고를 지나서 그녀가 딸을 낳고 낳고 낳아서

많아진 인류들이 펼쳐진다. 너무 많아져서 마고의 젖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진 인류가 사냥을 한다. 젖을 먹다가 다른 생명을 취하면서

미움이 생기고 욕심을 부려서 점점 흉해져간다.

그들을 지켜보던 마고. 그녀는 그들에게 씨 뿌려 농사짓는 것을 가르친다.

농사짓기 위해 뿔뿔히 흩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졸라맨으로 그려진다.

아직 무언가의 의미를 담기에는 그들이 성숙하지 못해서인가

졸라맨과 같은 만화풍과 마고할미를 그려낸 기법이 상당히 다르면서 어울린다..

그림 작가가 그리는 기법을 다르게 함으로서 성숙한 존재와 성장 해 나가야 할

존재들을 말하나...다름의 존재들이 한 그림안에 서로 어울리도록

배치하고 있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라고 해석해본다.

(아..이 잘난척하는 허영을 어찌할까^^)

마지막에 풍만한 그녀가 세찬 하늘의 빗물을 두 손으로 거르고 걸러서

조록조록 부어주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게 마고가 한 세기를 끝내고 있다.

비어있어야 다른 무엇이 그 자리를 채우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마고는 자리를 비켜주고 물러나간다

 

그리고 따라오는 부록 -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마고할미 그후 이야기처럼

마고할미가 다시 마을에 나타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차라리 이 대목에 여운이 남도록 그냥 빈 여백으로 남겨 놓았음 더 좋을텐데

-마고할미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줄까요? ..

이런 질문 두 개 붙어 온다. 나누어주기는 뭘 나눌까. 지금도 겁나게 많이 주었는데

그 마저도 잘 간직하지도 못하는데 하는 개인적 의견 붙는다.

웅진에서 욕심을 조금 덜 부렸더라면

정말 최고로 멋진 책이었을텐데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그러나 내게 날고 있는 풍만한 마고할미를 주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4. 마고할미 풍만함의 자락을 잡고

 

마고할미는 그림책에서만이 아니라 동화책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우리 동화나 그림책에서 능력이 있는 다양한 할망의 모습들이 마고할미의

여러 가지 변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대하고 힘이 세어, 오줌을 싸서 강을 만들고 산을 만든 제주도의 마고할미에서

우리집에 온 마고할미(유은실,바람의 아이들)에서는 도우미로 나타난다. 집안살림에 귀재. 한꺼번에 음식을 12개씩 만들어 낼 수 있고 정리정돈도 잘한다.

집안을 지켜주는 자리의 중요함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마고할미 본연의 모습에서 많이 축소된 모습이 아쉬웠다.

그 외 여러 곳에서 마고할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혼자 다 차지하면 질투를 살게 뻔하므로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마고할미에게 흥미가 당기면 그 님이 할 수 있도록 남겨도^^좋겠다

그녀는 힘세고 거대하기만 한 게 아니라 풍요로움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명의 여신인 거다. 단군신화의 진취적이고 도전하는 에너지보다

생명을 낳고 키우는 여성성의 에너지가 마고할미 안에 담겨 잇는 듯하다

하늘과 땅을 열고 비옥함을 가져오고 인류를 낳아 기르는 마고할미

그 거대함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녀를 작게 세분화했을까?

아니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마고할미를 만지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만한 그녀를 통해서 마고할미가 갖는 여성성의 거대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면 마고신화를 우리가 배우고 있을까?

그가 아니라 그녀였기에 생명력 있는 풍요로움을 보여줄 수 있는건가?

잠시 지나가는 생각하나.

그도 아니고 그녀도 아닌, 남성과 여성의 두 갈래의 성으로 구분짓기

전에 통합된 모든 생명 안에서 마고할미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그렇다면 생명의 여신이라면 죽음의 여신이기도 할 텐데.

풍요로움의 뒤편에는 허기짐도 있을까.

스쳐가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는 물고 지나가지만

내 삶의 시간은 아주 짧기에 오늘은 여기에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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