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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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비롯해 어떤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은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녹녹치 않았다.

술술 읽히기 힘든 방식의 글 이를테면 대화체를 따로 표시하지 않은 부분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다루고 있는 소재 역시 쉬운 게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기본 배경지식이 없이 읽으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구조의 글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낯선 느낌에 익숙해지고 전체적으로 그 많은 등장인물 중에 누가 가장 핵심 인물이고 제일 중요한 이야기인가를 파악하고 보면 그제야 비로소 장황하게 설명한 그 많은 사례와 등장인물 간의 관계도가 정립되면서 그때부터는 점점 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일단 시작은 포츠 타운의 낡은 우물에서 오래된 유골이 발견되면서부터다.

누구 봐도 타살이 의심되는 상황인데 그렇다면 그 유골은 누구며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포츠 타운의 낡고 오래된 마을 치킨 힐로 거슬러 올라간다.

치킨 힐이란 동네는 유색인종과 유럽에서부터 건너 온 유대인을 비롯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동네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이곳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초나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음식과 필요한 생필품을 나눠주는 친절함과 사랑을 베풀었으며 극장을 운영하는 남편이 많은 돈을 벌어서 남들처럼 그곳을 떠나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어도 치킨 힐을 떠나지 않는다.

덕분에 그 동네에 사는 사람치고 그녀에게 도움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초나에게 어릴 적 사고로 청각을 잃고 갑작스럽게 엄마마저 잃어서 고아가 된 도도를 보호하는 일을 부탁받는다.

당시 부모라는 보호자가 없는 장애인 소년은 국가에서 지정한 특수학교에 가는 것이 의무였지만 그곳에는 온갖 폭행과 학대가 자행되는 말하기조차 끔찍한 곳이었다.

초나는 도도를 그곳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결국 도도는 모두가 우려하던 그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 생각해 보면 결국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동안 장황한 배경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백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종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던 시기... 심지어는 이웃이 그 유명한 KKK 단에 가입해서 자신과 다른 피부의 이웃을 위협하는 게 예사였던 시기에 고아이면서 장애까지 있는 소년이 설 곳은 없었다.

초반의 다소 어수선했던 이야기는 이렇게 초나와 도도를 둘러싼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 모든 이야기의 초점은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소년 도도를 어떻게 구조해 내는지 그 과정에 맞춰지면서 긴장감이 흐른다.

서로 다른 인종이 모여사는 곳이지만 서로 간의 영역을 간섭하거나 침범하는 일이 없었던 치킨 힐의 주민들이 도도를 구출하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서 작전을 도모하고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래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유대인과 유색인들이 감히 주류인 백인에게 대적하고 정부의 뜻에 반기를 드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마저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그들이 낸 용기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런 용기를 낼 수 있게 한 게 바로 초나가 그들에게 평소에 베푼 관대함과 사랑 덕분이란 건 분명한 일이고...

차별과 혐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작고 약한 소년을 구하기 위해 뭉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많은 울림을 준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던 대서사시 같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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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문
아쿠타가와 나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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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본 연인은 평생 맺어진다는 전설이 있는 스트로베리 문...로맨스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끌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와 비슷한 전설로 아주 오래전 어떤 창에서 내려다 보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 창의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어쩌면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전설의 힘을 빌려서라도 지금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랐던 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 책은 제목이 의미하는 것부터 표지까지 누가 봐도 로맨스 소설임을 짐작게 해준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핑크빛 표지에다 함께 본 연인은 영원히 맺어진다는 전설까지...

뜨겁기 그지없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어서일까

가슴 한편을 달달하면서도 먹먹하게 해주는 로맨스가 당기는 계절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서로 첫눈에 자신의 짝임을 알아보는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청춘들이다.

더군다나 여자아이는 입학하자마자 전교의 남학생들 가슴을 들썩이게 만들 만큼 귀엽고 예쁜 미소녀이지만 그 아이가 선택한 남학생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외모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이 소년은 누구보다 다정다감하고 친절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었고 소녀는 그런 소년의 보이지 않는 마음씨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착한 소년과 예쁜 소녀의 귀여운 첫사랑은 순조롭게 흘러갈 것 같지만... 소녀는 부모의 과보호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육시간엔 늘 참여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소녀에게는 어딘가 이름 모를 병이 있을 것 같다고 누구나 짐작한 순간 이 둘의 로맨스의 끝이 보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마음은 요즘 또래와 달리 순수하기 그지없다.

마치 만화 속의 주인공처럼...

만나지 못한 시간에는 문자나 메일을 주고받고 기껏하는 일탈이란 건 부모님 몰래 스트로베리 문을 보러 밤에 몰래 빠져나와 조용한 공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기라니...

요즘 세대의 썸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지만 그럼에도 둘을 보면서 어릴 적 순수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된다.

둘은 소녀가 굳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을 제외하곤 여느 첫사랑을 하는 아이들처럼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두 아이가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보름달처럼 꽉 찼을 때... 마치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소녀는 병으로 쓰러진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잊을 수 없겠지만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거나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자신의 뜻과 상관없어 중단하게 된다면.... 아마도 더더욱 그 사랑을 잊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년의 선택은 약간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아이들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과 서로를 배려하고 걱정하는 마음도 예뼜고 모두 다 예상했던 결말이지만 그 결말까지 자연스러웠던 반면 그 이후의 선택은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런 사랑을 못 해본 사람의 속 좁은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소녀 취향의 결말이었던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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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청미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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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시골에서의 느리고 여유로운 슬로 라이프가 연상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농촌과 시골에서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지를 보여준다.

계절에 따라 심어야 하는 농작물도 있지만 그 농작물을 심기 위한 준비 작업도 쉽지 않다.

때마다 약도 치고 비료도 줘야 하고 심어야 할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격이라 그 시기를 잘 따라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잡초도 베고 온갖 정성을 다한 후엔 또 혹시나 태풍이나 자연재해로 뜻하지 않게 농사를 망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수확의 시기가 오면 또다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이렇게만 봐도 도무지 한가할 틈이 없는데 그렇다고 시골생활이 이렇게 늘 빡빡하고 고되기만 할까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도시에서의 생활과 달리 대체로 노력한 만큼의 성과와 결실을 주고 일단 사람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적다.

아마도 이런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부분 때문에 시골 생활을 느긋하고 여유롭다고 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속의 주인공 역시 산골에서의 생활을 그저 단순하게 지루하고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법한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다.

그런 도시 청년이 이곳 가무사리에서 1년이 넘는 동안 생활하면서 서서히 진짜 남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책이

바로 이 책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히라노 유키는 원하는 것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알바나 하며 보내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도시 청년

하지만 대학을 진학하기엔 공부에 뜻이 없고 이렇다 할 목표도 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담임과 부모의 합작으로 자신도 모르는 새 깊은 산속에 위치한 가무사리 마을의 임업현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한 번도 나무를 타본 적도 없고 잘라본 적도 없는 히라노에게는 좀처럼 쉽지 않아 틈만 나면 도망칠 궁리를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방어도 만만치 않아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그렇게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자신은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하던 히라노였지만 이곳 마을에서 살며 대대로 나무를 심고 그 나무를 베어 생활하던 사람들과 함께 하며 같이 산을 오르고 나무를 타면서 조금씩 이들의 생활에 동화되어 간다.

어쩌면 히라노의 성장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 꿈도 목표도 없이 그저 세월을 보내며 나이만 먹을게 분명했던 도시 청년 히라노가 이곳 가무사리로 와서 사람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가치도 알게 되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 속에서 그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무를 베어서 파는 임업을 그저 힘들지만 단순한 작업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 나무를 제대로 된 상품 가치를 지닌 나무로 성장시켜 제값을 받기 위해 가지를 자르고 많은 나무 중에 골라서 잡초를 베듯 필요 없는 나무는 잘라내고 심지어 나무를 자르는 것도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려준다.

이렇게 산골에서 적응하는 동안 벌어지는 에피소드에는 당연하지만 달달한 로맨스도 있다.

한눈에 반해버린 연상의 여자 나오키에게 제대로 된 어필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재밌었고 우리는 잘 몰랐지만 오랜 세월 전통을 가지고 해오던 마츠리의 엄숙하면서도 위험천만한 장면을 살짝 유쾌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묘사해 놓은 점은 인상적이었다.

영화 우드잡의 원작소설이라는 데 책을 읽으면서 영상으로 보면 훨씬 더 재밌겠다 생각했었다.

아름다운 숲의 정경과 그 속에서 유쾌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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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세븐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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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거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빠져 그야말로 접시 물에도 코 박고 죽을 것 같은 불운의 사나이 나나오...그런 나나오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부업자다.

운이 지지리도 없는 데 이상하게도 위기에서 그럭저럭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어찌 됐던 맡은 임무는 대체로 완수하는 나나오가 업계에서 불리는 이름은 무당벌레다.

나나오는 10여 년 전 기차 안에서 벌어진 무차별 살상극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타이틀로 업계에서 나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실상은 소심하고 스스로 불운의 아이콘임을 늘 자각하면서 매사에 몸을 사린다.

이번에도 그에게 곧잘 업무를 맡겼던 마리아로부터 아주 간단한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일은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저 그림만 건네주면 된다던 말과 달리 수취인은 그에게 공격을 가하고 그저 살짝 피하기만 했을 뿐인데 그 사람은 죽고 말았다.

여기에 더불어 생전 처음 보는 여성이 그녀를 잡으려는 전문 청부업자들로부터 신변을 보호해달라는 요청까지...

이때부터 대 환장극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녀 가미노 유카는 보거나 들은 내용은 절대로 잊지 못하는 절대 기억의 소유자였고 그녀가 자신이 일했던 곳의 사장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 이유 또한 그녀의 범상치 않은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이들이 모인 일류 호텔에는 그녀를 잡기 위한 사람들과 그녀를 보호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야말로 전문가들끼리의 전쟁...

온갖 무기와 전문적인 살인방법이 동원되어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데 이때 동원된 방법 또한 기발하기 그지없다.

이런 모습에서 작가의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을 듯...

작가의 작품 중에 몇 개의 시리즈가 있지만 대부분의 시리즈에서 나타나듯이 이 킬러 시리즈에서도 잔인한 상황에다 장난기와 유머러스함을 곁들이고 현실을 살짝 비틀어서 전체적으로 무거움을 덜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이 왜 제작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초반과 중후반까지는 그녀가 쫓기는 신세가 된 이유와 함께 그녀를 노리는 전문업자와 서로를 몰라보는 또 다른 팀들 간의 치열한 대결을 주로 다뤘다면 후반부에서는 우리의 재수 없는 무당벌레 나나오와 이 모든 전쟁의 핵심 인물인 가미노 유카가 어떻게 얼마나 기발한 방법으로 대 환장 파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작가는 잘 알고 있어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결말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유명 호텔에 속속들이 모여든 전문업자와 그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를 보는 재미도 물론 좋았지만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예측하는 재미 또한 좋았다.

한마디로 가독성과 재미 그리고 반전까지 모두 잡은 책~

역시 믿고 보는 작가의 작품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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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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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출간된 범죄소설을 읽다 보면 지금의 경찰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닐까 싶다.

온 사방에 CCTV 가 없는 곳이 없어 웬만한 건 다 걸리고 실내에서 벌어진 일들은 과학 수사 즉 DNA라든지 혹은 미세 증거 하나만으로도 용의자를 특정 지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이런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는 모든 걸 발품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서 증언을 듣고 피해자와의 관련성을 따져 증언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했던 만큼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었다.

서류 작업은 또 어떻고...

물론 예전에 비해 범죄의 양상이 좀 더 교묘해지고 치밀해진 부분도 있지만 큰 관점에서 볼 때 범죄의 이유나 목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만큼 요즘의 온갖 화려한 장치와 범죄의 수법이 난무하는 범죄소설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예전에 나온 작품들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투박함 속에서도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움... 그게 바로 고전의 매력이 아닐까

마르틴 베커 시리즈 9번째 책에서는 첫 번째 시리즈에서 살인범으로 나왔던 남자가 또 다른 사건의 용의자로 등장한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이혼 후 혼자 살았던 여자가 깜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가출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경찰에서 이 실종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이웃집에는 한 여자를 살해한 죄로 복역을 했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분명하게 보이는 사건의 형태였기에 윗선에선 제대로 수사하기는커녕 그저 얼른 그를 검거해서 넘기고 그 공을 자신의 승진의 발판으로 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언론에서조차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짓고 이에 대한 기사를 싣기에 바쁘다.

게다가 그녀가 사라지던 날 그와 대화하는 걸 목격한 증인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마르틴은 왠지 그가 범인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결정적인 증거도 없고 용의자 역시 비협조적이어서 사건 해결이 지지부진한 이때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단순히 빈집털이범으로 생각했던 범인을 검거하다 범인의 총에 경찰이 부상당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모두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전혀 다른 두 사건이지만 이 두 사건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접점이 나와 자칫 미궁으로 빠질뻔 한 사건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동종의 전과가 있어서 자칫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릴뻔 한 사람을 구제하게 되는 과정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려놨다.

물론 빠른 전개와 장면전환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 시리즈가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야기 전체에서 볼 수 있는 당시 스웨덴 사회와 경찰 조직의 타락한 모습을 향한 작가의 통렬한 비판은 그들을 왜 장르를 지키는 보초와 같다고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범죄소설은 단순히 범죄의 동기나 해결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당시 시대의 현실과 사회현상에 관한 냉철한 비판의식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게 한다.

마르틴을 포함해 등장하는 인물 모두의 개성이 제대로 살아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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