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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람에게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해 감금당한다.
이런 소재는 간간이 봐왔던 터라
특이하지는 않지만 관건은 과연 왜 납치를 당했으며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가 독자의 관심을 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 `벙커
다이어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일단 처음 납치를 당한 사람이자 이 다이어리를 써 내려간 화자인
16세 소년 라이너스가 납치될 때의 상황은 시각장애인이 차 트렁크에 짐 싣는 걸 도와주려다 끌려 온 상황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남에게 도움을
주려다 끌려 왔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의를 베푸는 데 왜 납치를 당하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라이너스의 억울함에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을 즈음 다른 사람이 납치되어 들어온다.
이번에는 어린 여자아이... 이
아이 역시 학교 등굣길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상태
그러다 문득 밀폐된 이 공간에 방이 6개이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접시며 포크 같은 게 모두 6개에 맞춰져있었단 걸 깨달은 라이너스는 다른 납치자가 더 있을 예정이며 그 수는 모두 6명이란걸
예감한다.
이렇게 그의 예상대로 창문도 출구도 없이 모두 막혀있고 감시카메라로 모두를 내려다보고 통제된 벙커에는
6명의 남녀가 모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과연 그들이 납치된 데에는 무슨 사연이 있으며 그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독자의 호기심만큼 라이너스 역시 그런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리 전혀 공통점도 없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왜 납치된건지 그 이유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이유를 알수 없으니
해결방법조차 요원하고 막막하다.
이렇게 어느 정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예상을 또 한 번 뛰어넘은 작가는
이제 과연 그들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치고서 이곳을 탈출할까에 관심을 갖도록 장치를 해놨다.
특이한 건 갇힌
자들과 가둔 자 사이에 어떤 대화도 없었고 어떤 제한조차 두지 않은 채 오로지 갇힌 자들의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잘 나가던 미모의 부동산 업자와 투자 관련 비즈니스맨, 늙고 병든 물리학자와 마약에 찌든 덩치, 그리고
소녀와 라이너스
이렇게 전혀 공통점이라곤 없는 6명의 사람들을 한 곳에 가둬놓고 그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라이너스의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는 벙커 다이어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가뒀으며 그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이 그야말로 무작위로 뽑힌
운나쁜 사람이었다는 설정과 함께 그들이 점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면서 무너져내리는 과정 역시 나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
이 상황을 가장 잘 이겨내고 그들을 이끌거라고 예상되는 두 사람...똑똑하고 잘 나가며 그야말로 거칠 것
없던 인생을 살아오던 커리어 맨과 역시 멋진 외모와 우월한 배경으로 고생이라고는 몰랐던 여자의 변화는 처절하리만치 급작스러워 더욱
극적이다.
어느 정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럴 것이라는 예상을 다 뛰어넘은 작가의 상상력은 파격적이고 탁월하지만
그래서 더 암울하고 우울하다.
작가는 왜 이런 글을 쓴 걸까?
극한 상황에 처하면
결국 인간이라는 잘난척하는 종도 평소 자신들보다 하등하다는 동물과 다름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2014년에 그 해 최고의 어린이. 청소년도서에 주어지는 카네기 메달을 받았다는데 아마도 주인공이자 다이어리의
주인인 라이너스의 나이가 16세라는 점 때문인 게 이유인듯하지만 내용은 충격적이고 암울해서 이 책에 경고 문구를 넣거나 16세 미만 연령에게
읽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발이 많았다는 점 또한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강력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알고 보니 작가의 다른 작품 역시 아주 인상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데 독자를 끄는 매력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