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앤 올
카미유 드 안젤리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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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그 무엇 즉 이형의 존재에 대한 걸 소재로 한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건 아마도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뱀파이어 남자 주인공이 인간 여자 주인공을 만나 금단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 작품은 사실 겉만 뱀파이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져왔을 뿐 속은 로맨스 소설 그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비록 뱀파이어지만 사람의 피를 흡혈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잘생겼으며 여주인공에 일편단심의 마음을 보여주니 어떻게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 본즈 앤 올을 소개하는 글을 처음 봤을 때 맨 먼저 떠올린 게 바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였던 것도 그래서였다.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 구절을 통해 주인공이 사람을 먹는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당연히 글귀 그대로의 뜻이 아닌 사람의 피를 흡혈한다고 착각했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진짜 글귀 그대로 온전히 사람을 먹는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곁에서 그녀가 이런 일을 벌이고 온 후면 모든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함으로써 소녀이자 자신의 딸을 보호하던 엄마마저 사라진 후 매런은 홀로 남겨진다.

자신조차 어쩔 수 없는 허기로 자신에게 친절하고 욕망을 품은 사람을 먹어치울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아무도 이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데서 오는 외로움은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아가게 하지만 엄마가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들어갈 틈이 없음을 깨닫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가족이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를 찾아 길을 나선 매런은 뜻밖에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 즉 누군가를 먹는 사람인 리를 만나게 된다.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와 반가움은 그를 향한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는 매런

자신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매런의 내면의 갈등과 고민은 그녀가 사람을 먹는 식인 습관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여느 성장기의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어렵다고 느껴졌다.

누군가를 원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런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함께 할 수 없다도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언제나 자각하고 있어야 하며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소녀의 고민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덫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매런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아빠를 반드시 찾아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애런에게 있어 식인 습관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타고난 본성과도 같은 것이고 자신이 아무리 평범한 삶을 원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마침내 깨닫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과정은 섬뜩한듯하면서도 어딘지 매혹적인 부분이 있다.

가장 무서우면서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무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을 먹을 수밖에 없는 소녀의 운명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상처를 받는다는 걸 철학적으로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영상으로 표현하면 훨씬 더 매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고 느꼈는데 영화화된다는 걸 보면 비슷하게 느낀 사람이 많은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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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플레저
클레어 챔버스 지음, 허진 옮김 / 다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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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람들에게 처녀 생식 즉 처녀 수태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으로 취급하거나 상대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종교에서 가장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책 스몰 플레저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부분 즉 처녀 생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살짝 당황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1954년 과학계에서 개구리나 토끼의 처녀생식에 관한 연구가 신문 기사에 실리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인간의 처녀생식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누군가 이 기사를 보고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 즉 처녀로 아이를 낳았다는 주장이 실린 편지를 보내오고 신문사에서는 이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금 같으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무시했을 것이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독자의 이런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던 신문사는 그녀를 만나보기로 하고 자신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도맡는 유일한 여성 기자인 진을 보내기로 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기대대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쟁이거나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해 허언을 남발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 보기에도 순수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 거짓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었고 진이 만난 그레천 틸버리에게는 여기에다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확실한 근거가 있었다.

그녀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시기는 심한 류머티즘으로 인해 혼자 걸을 수조차 없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있었던 요양원에서는 늘 다른 환자와 함께 있어 남자를 만날 수도 없었고 그런 남자조차 없었다는 걸 당시의 간호사와 요양원 관계자가 증명해 준 것

놀라운 건 그녀의 남편조차 그녀의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레천은 딸과 함께 병원에서 하는 검사를 하게 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디라는 동안 그래천의 가족과 진 사이에는 큰 변화가 찾아온다.

이렇게 스몰 플레저에서는 겉으로 봐선 처녀 임신을 한 그레천의 확고한 주장을 진이라는 기자가 조사하는 이야기지만 들여다보면 두 여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은 일을 하는 커리어 우먼이자 독신 여성이면서도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 하는 노모와 함께 살고 있어 자신을 위한 시간을 한 시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치는 그래천은 비록 딸아이의 출생은 의심스럽지만 그녀를 믿고 사랑해 주는 남편과 엄마를 사랑하고 따르는 사랑스러운 딸을 둔 행복한 주부였다.

자신은 가질 수 없는 모든 걸 손에 쥐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진은 사랑하는 사람도 아이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쓸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지만 진이 그래천의 주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옛 친구의 출현은 이 모든 걸 단숨에 뒤집는 결과를 가져온다.

행복하고 완벽하게 보였던 틸버리 가는 한순간에 흔들리고 무너졌으며 이 과정에서 뜻밖의 행운을 안게 된 건 진이였다.

과거 안타까운 연애의 실패 이후로 언제나 혼자이고 평생을 노모를 보살피며 자식도 갖지 못한 채 사랑받지 못하고 늙어갈 것만 같았던 진에게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보석 같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처녀 생식이라는 의외의 소재로 한순간 짧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스몰 플레저는 제인 오스틴의 뒤를 잊는 작가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여성의 심리묘사에 탁월했다.

특히 진이 여성으로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기쁨과 두려움, 질투의 감정의 묘사뿐 아니라 여기에 자신이 찾아낸 진실을 밝힐 때 누군가가 받을 크나큰 아픔과 상처에 대한 기자로서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묘사는 섬세하면서도 그 미묘함을 잘 표현해냈다.

그럼에도 작가는 갈등 상황을 타당한 마무리로 잘 매듭지었다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전을 남겨둬 마지막까지 독자를 놀라게 했다.

제목이 왜 스몰 플레저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었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의문이 풀렸다.

섬세하고 사랑스럽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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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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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 코믹하거나 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숙한 과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야설이란 단어를 매치한 이 소설은 재치 있고 흥미로우면서도 적당히 야한가 하면 생각지도 못한 치부를 건드리고 들어온다.

왜 과부들은 정숙해야 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정숙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가 하는 문제는 우선 이 사람들이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의 미망인들이 아니라는 걸 감안해야 할 듯하다.

영국의 인도인들이 모여서는 마을 사우스 홀

그곳에는 우리가 아는 규칙과 규범이 아닌 그들만의 규칙과 규범이 있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무리에 어울릴 수 없다.

사원이 있어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고 누구의 비밀도 온전히 지켜지기 힘든 이곳에 인도인이면서도 영국인인 니키는 언니 민디의 부탁으로 결혼을 위해 만든 민디의 프로필을 부치기 위해 왔다.

지극히 영국인의 사고를 가진 니키로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선을 봐서 결혼하겠다는 언니 민디를 이해할 수 없지만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어 이곳 사우스 홀에 왔고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자리를 얻는다.

이곳 사우스 홀에 사는 인도 여자들을 위한 글쓰기 강좌

대학을 중퇴한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신감이 한없이 떨어진 니키에게 이 일자리는 뭔가 새롭게 해 볼 의지를 불러오지만 첫날 강좌에 모인 사람들은 예상과 달리 모두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넘쳐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곳으로 온 과부들이었다.

당연히 수업의 진도가 나가기는커녕 그녀들은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맹이 대부분이라는 걸 발견한 미키는 방향을 바꿔 영어 기초를 가르치려 하지만 그녀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로지 자신들의 상상이나 자신들이 하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곳으로 모였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녀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디에서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성적인 이야기나 성에 대해 그녀들이 꿈꾸던 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대담하고 노골적이며 야하기까지 한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내 활기를 띠고 누군가의 의견으로 이야기가 글로 옮겨지지만 이 모임에서도 다른 누군가는 그녀들의 이런 일탈을 싫어할 뿐 아니라 거부하고 나선다.

니키는 자신의 강의가 처음 생각과 다른 쪽으로 흐르는 걸 어느새 묵인하고 즐기게 되지만 이 강좌가 변한 걸 책임자인 쿨빈더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전형적인 인도의 여자이자 아내로 규칙과 규율을 중시하며 전통을 중시하는 고지식한 타입이었고 자신이 책임하에 이런 강좌가 열리는 걸 두고 볼 타입은 아니었다.

게다가 쿨빈더외에도 조심해야 할 무리가 있다.

언젠가부터 사우스 홀에는 여자들에게 전통과 책임을 강요하며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뒤에서 체벌을 하거나 테러를 가하는 무리가 생겨나 두려운 존재로 부상하는 중이었고 이들의 레이더에 걸리면 이 클럽 역시 무사하기 힘들다. 아니 무사하기는커녕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고 정숙하지 못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하지만 니키의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이 강좌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점점 더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함께 같이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발각될 위험은 커져만 간다.

겉으로 봐선 절대로 그럴 것 같지 않은 무리 즉 중년이나 할머니 연배의 여자들이 모여 입에 담기도 야한 이야기를 하고 금기시되던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일탈을 꿈꾸는 모습을 사뭇 유쾌하게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자신의 고향이 아닌 낯선 타국에 살면서도 고향에서의 습관과 문화에서 벗어날 수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인도 여자들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집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고 정숙을 요구하며 이성과의 교제를 금기시하거나 이를 어길 시 심한 경우 배우자나 남자 형제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해도 명예살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도가 아닌 영국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고 자란 인도여자들이 느끼는 답답함과 부당함 그리고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어 막막함을 느끼는 모습을 니키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대로 구현해 내고 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내서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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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 파이퍼
네빌 슈트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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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은 말해 뭐 할까만은 대부분의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힘없는 노약자나 어린애, 여성들이다.

물론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남자들도 엄청난 희생이 따르지만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이나 성적 피해 같은 부수적인 피해의 참혹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온다.

이 책 파이드 파이퍼는 그런 전장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다행이랄지 그렇게 어둡거나 참혹하지 않다.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만큼 전투가 벌어진 전장에서 힘없는 70대의 노인이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가진 아이들을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이끌고 사라지듯 데리고 탈출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그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70대 영국 노신사 하워드는 전운이 감도는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로 휴가를 온다.

그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 전쟁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지만 휴가지에서 만난 한 가족으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영국 출신의 부부는 두 아이를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보내길 원했고 하워드가 귀국길에 두 아이를 함께 데려가 주길 바랐던 것

어쩔 수 없이 두 아이를 맡아 귀국길에 오르지만 전쟁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어 이미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고 이제 단순한 방법으론 영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탈출이 된 것... 게다가 하워드와 두 아이의 피난길에 또 다른 아이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하워드의 책임은 무거워진다.

어느새 다섯 명으로 불어난 아이들을 이끌고 안전한 곳으로 가 어떡하든 영국으로 갈 길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독일 군인으로부터는 물론이고 전쟁으로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아이들을 보호하고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하워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워드가 낙천적인 성격이고 돈이 좀 있어서 원하는 걸 살 수 있었다는 점인데 그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비싼 값을 불러서 이익을 취하려 드는 사람들을 보면 전쟁의 비정한 면을 일부 보는듯했다.

전쟁으로 인해 평범했던 사람들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낯선 땅에서 의심의 시선을 받아 가면서 통제하기도 쉽지 않은 어린아이 다섯 명을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하워드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 파이드 파이퍼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단지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아이가 충격을 받은 모습이나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린아이나 노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쉽사리 내밀지 않고 오히려 외면하는 모습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과 비정한 부분을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워드와 아이들이 영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이 마치 모험담처럼 흥미롭게 그려진 파이드 파이퍼... 드라마틱한 여정을 드라마로 봐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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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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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조용할 날이 없이 시끌벅적한 주말 가족 드라마 같은 소설이 나왔다.

83살이라는 나이에도 지독하게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면서 엉뚱하게도 도벽까지 가지고 있는 할머니 밀리

그리고 그런 엄마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데 아주 미치기 직전인 아들 케빈... 심지어 케빈은 사춘기 쌍둥이 딸을 비롯해 네 아이를 둔 가장이면서도 실직한 상태이기도 하다.

얼핏 가족 구성원만 봐도 조용하기 쉽지 않은 이 고가티네는 각자 개성마저 너무나 강하다.

그래서 각자 서로에게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의 목소릴 높여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 바쁘다.

그중에서도 특히 83살 밀리는 연이어 자동차로 사고를 내면서도 면허증을 반납하기를 거절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가정부를 두라는 아들의 권유조차 내내 무시한다.

그러면서도 아들이 자신을 요양원에다 버리고 가는 걸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그랬던 밀리가 더 이상 아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는데 그건 잡화점에서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연행되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미국인 도우미를 두는 걸로 합의한 후 맞이한 상냥하고 친절한 실비아는 밀리의 생활 전반을 변화시킨다.

한편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처지가 된 케빈은 딸의 새로운 학교 교무 직원이자 자신보다 스무 살은 어린듯한 여자 로즈를 보고 첫눈에 필이 꽂혀 마치 갓 사춘기를 벗어난 듯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이 집안의 또 다른 문제적 아이 에이딘은 쌍둥이로 태어나 언제나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낫다고 여겨지는 언니와의 마찰로 모든 것이 싫어진 상태... 그래서 부모에게 반항하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걸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지만 그런 걸로 만족하기엔 에이딘은 너무 똑똑했다.

도대체가 누구의 말도 듣지도 않고 끊임없이 엉뚱한 소릴 해대면서 연방 사고를 일으키는 밀리가 처음엔 사랑스럽지 않았다.

아니 사랑스럽다기보다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 같아 케빈의 처지에 동정이 가지만 뒤로 갈수록 그녀의 그런 성격 밑바탕에는 젊은 날 너무나 어이없이 잃어버린 딸에 대한 슬픔과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 준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는 그녀의 터무니없을 정도의 낙천적인 성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성격은 위기에서 진짜 말도 못 할 만큼 엉뚱한 기지로 발휘되고 결과적으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과정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정신없고 도대체가 맥락도 없어 보이는 대화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헷갈려서 몰입하기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읽으면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난 뒤에는 이 엉뚱한 할머니의 대화법을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

에이딘 역시 쉽게 사랑해 주기는 쉽지 않은 성격이지만 그 기저엔 자신보다 모든 것이 나아 보이는 언니에 대한 열등감과 가족들의 관심에 목말라하는 십 대의 여린 감성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오히려 연민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각자 자신의 개성대로 도대체가 하나로 뭉칠 수 없을 것 같은 이 가족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서로 뭉쳐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는 마치 가족 시트콤을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유쾌 상쾌 통쾌한 가족 드라마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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