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도어 프라이즈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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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2달러로 인생이 확 바뀐다는 광고 문구를 보고 맨 먼저 생각했던 건 복권 당첨된 사람이 주인공 인가? 였다.

그렇게 작은 돈으로 인생을 바꿀만한 게 복권 이외에는 선뜻 떠오르는 게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외부의 요인에 의해 그토록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확 바꿔주는 게 DNA 판독기라니... 생각지도 못한 물건의 정체였다.

여기에는 분명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면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납득이 갈 뿐만 아니라 나도 그런 장치가 있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조용하고 평화로운 디어필드가 요즘 들썩거린다.

마을의 식료품점에 새롭게 DNA 판독기라는 게 설치된 이후부터 보이는 변화는 처음엔 작았지만 거기서 나온 결과를 따른 사람이 연달아 나오면서 가장 핫한 화젯거리가 되었다.

누군가는 결과지를 따라 하던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해서 성황을 이룬다거나 또 다른 누군가는 약을 끊기도 했다는 등...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한 만큼 모두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학교 교사이자 사랑하는 아내와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역사 선생 더글라스는 사람의 운명을 그딴 기계 가 바꿔준다는 것도 그렇고 입안에서 채취한 DNA에서 나온 결과지로 쉽게 지금까지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걸 찾겠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결과지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더글라스가 있는 학교의 교장도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불만은 없을 거라 믿었던 아내 셰릴린도 포함되었다.

그녀 역시 더글라스와의 결혼에 불만이 없었지만 DNA 분석에 따르면 자신에게 가능한 신분에 왕족이라는 결과지를 받은 이후부터 그와의 생활에 갑갑함과 더불어 뭔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면서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일탈을 꿈꾸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의 평화롭던 일상을 뒤흔드는 DNA 판독기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포기했거나 어느 순간 자신의 일상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꼈지만 그걸 바꿀만한 계기가 없었던 사람의 등을 떠밀어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게다가 막연히 다른 삶을 제시한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측정된 결과라는...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할 만한 근거마저 제시하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명분이 필요했고 그걸 해 준게 DNA 판독기의 역할은 아니었을까?

등장인물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들이 왜 변화가 필요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빅 도어 프라이즈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보여주지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지금 사는 인생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꿈이나 새로운 뭔가를 시도해 보기에 지금만큼 적당한 때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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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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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인 세 형제가 모여 엄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24시간을 함께 한다.

그리고 그런 형제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보여주는 세 형제의 숲은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 35개국에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감동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어린 시절 언제나 함께 했던 그곳... 숲속에 있는 별장을 비롯해 그곳을 둘러싼 숲을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곳에서 여름이면 늘 가족이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우애가 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은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싸운다.

왜 엄마의 유골함을 안은 채 서로에게 욕을 하고 주먹질까지 해야만 했던 걸까?

그리고 두 사람이 그렇게 주먹질을 하고 싸우는데 남은 사람은 왜 말리지 않고 방관자처럼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은 이내 세 형제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

언제나 집이 아닌 다른 곳을 보며 함께 하는 걸 거부하는 듯한 모습의 큰 형 닐스, 엉뚱한 행동을 잘 하고 사고뭉치이지만 둘째 형을 따르는 막내 피에르 그리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와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한발 떨어져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보는 베냐민

이렇게 세 형제는 같이 자랐지만 성향이나 성격은 전혀 달랐고 그런 세 형제의 부모는 늘 술을 마시고 조금은 방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늘 화가 난 듯 보이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세 형제보다 강아지 몰리에게 더 큰 애정을 보여주고 있고 아빠는 평상시에는 친절하고 아이들에게 애정을 보이는 듯하지만 술을 마시면 감정 기복이 심해 폭력적인 모습마저 보인다.

아직 어린 세 아들들에게 보이는 부모의 무관심은 다소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이를테면 심심해하는 어린 피에르를 보고 부모로서 함께 놀아주기 보다 다른 아이들을 불러 호수 깊은 곳에 있는 부표까지 내기를 시킨 후 아이들의 상태를 지켜보지 않은 채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아이들은 수영으로 그곳까지 가다 중간에 지쳐 위험했지만 아이들의 위험 신호를 보고 그들을 구출해 줄 부모는 이미 자리를 뜬 뒤... 결국 세 형제는 서로 의지해서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부모의 방관 내지 무관심으로 아이들은 방치되어 있지만 그런 이유로 오히려 세 형제들은 서로 간에 우애도 깊었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별장에서의 날들을 보낸다.

그런 그들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언제나 궁금했지만 출입 금지라 들어갈 수 없었던 전기 배전반의 문이 열려 있던 그날 형과 동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냐민은 그 안으로 들어가 궁금증을 해결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기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집안에서는 서서히 뭔가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집안은 청소하지 않은 상태로 더럽혀져있고 개수대에는 설거지하지 않은 접시가 쌓여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씻지 않은 채 학교에 가서 선생님으로부터 냄새가 난다는 걱정을 듣는다.

비록 술을 마시지만 아이들은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식사는 항상 함께하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갑작스러운 집안의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페이지가 뒤로 갈수록 가족의 사이는 점점 더 소원해지고 서로 멀어져만 간다.

언젠가부터 부부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고... 형제들도 눈을 맞추지도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변하게 한 건 뭘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인가 하는 의문이 들 즈음 드러나는 진실은 생각지도 못한 거라서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그제야 이 가족에게 생긴 변화가 단숨에 이해가 됐다.

아름답고 목가적인 자연에서 벌어진 비극은 끝내 가족을 삼켰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세 형제는 다시 모일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에 한 주먹질의 의미는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서로 먼 거리를 돌아 진실을 마주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온 세 형제의 숲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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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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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가족이 아닌 이상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66살이라는 나이차의 두 사람이 그것도 시한부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라는 소개 글을 보고 그냥 눈물을 좀 흘리게 하는 여느 평범한 힐링 소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 생각은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졌고 마지막에 가서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기적을 바라고 또 바라게 되었다.

그렇다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답게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기 위한 이런저런 장치를 둔 게 아니라 오히려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아름다운 감동과 함께 마음 한편을 찌르르 울리게 한다.

시한부 병실의 환자인 열일곱 살 레니는 자신이 왜 죽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병원 내 성당을 찾아 신부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신부님 역시 레니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병실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질문을 던지는 레니의 눈에 쓰레기통을 뒤져 뭔가를 찾고 있는 듯한 한 노부인이 들어오고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가 들키지 않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되고 또다시 해후한 건 미술실에서였다.

또래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법을 모르는 레니지만 할머니인 마고와는 금세 친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나이를 합치면 100살이라는 데 기안해서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100장의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일명 백 년 프로젝트

그렇게 그림을 매개로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마고는 자신을 사랑해 주겠다는 남자 조니를 믿고 결혼하지만 행복했던 것도 잠시 소중했던 아이를 잃으면서 조니는 떠나고 결혼생활마저 파투 난다.

그렇게 떠나버린 조니를 찾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향한 런던의 경찰서에서 헤매는 그녀에게 다가와 마고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의문을 던지는 미나를 만나게 된다.

자유분방하고 스스로의 삶을 사는데 거침없는 미나의 조언대로 소심했던 마고는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녀와 동고동락하게 되면서 조금씩 아이를 잃은 슬픔도 떨쳐버린다.

레니 역시 평범하지는 않다.

어릴 적 언제나 멍하니 모든 것을 놔버린 채 텅 빈 눈을 하고 있던 엄마와 그런 엄마의 곁에서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는 아빠를 둔 레니는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도 없었고 소속감 역시 가질 수 없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소녀였다.

단 한 번도 어딘가에서 제대로 된 애정을 마음껏 받아보지 못한 소녀 레니는 마고와 함께 하게 된 백 년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하는 즐거움과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마고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조금씩 죽어간다는 슬픈 공통점도 있었기에 더욱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몰랐지만 마고 외에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인 신입 간호사, 아서 신부님, 미술 선생님, 보호사 등으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깨닫으면서 생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마고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죽는다는 게 반드시 무서운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되는 레니

마고 역시 자신의 손녀 같은 레니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고 그녀를 통해 자신의 일생을 추억할 수 있어 행복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 레니와 마고의 백 년은 그저 그런 힐링 소설이 아니었다.

평범한 두 사람의 삶의 여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치료해가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는... 오랫동안 기억에 기억에 남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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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그린
마리 베네딕트.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지음, 김지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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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진 게 불과 100여 년에 불과하다는 게 가끔씩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지금도 온전히 남녀평등이 이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들이 목소릴 낼 수 있고 비록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힘들지만 그래도 능력에 따라 회사의 임원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 생각되는 미국만 해도 세계대전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에게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불법이 아닌 세상에서 흑인 여성이 평범한 직장이 아닌... 누구나 선망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었고 그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서 유명해진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벨 그린이었다.

사실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마치 예전에 부모님들이 억지로 읽기를 강권하셨던 위인전을 읽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적으로 본받을만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건 그녀가 성취해낸 게 물론 뛰어나긴 했지만 그 당시 인종차별이 극심해 백인 남자들의 전유물이다시피한 큐레이터를 흑인 여성으로 어떻게 그런 눈부신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다.

벨은 흑인 여성으로 당대 최고의 개인 소유의 도서관인 JP 모건의 개인사서로 취직하게 된다.

물론 그녀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데에는 흑인이면서 겉보기엔 백인과 비슷할 정도의 흰 피부를 가졌었다는 게 한몫하기도 하고 벨의 엄마와 공모해 자신들을 백인이라고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서로 사랑하고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벨의 아빠와 엄마는 의견 대립 끝에 헤어지는 아픈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벨은 당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큐레이터의 세계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모두에게 인정받는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벨과 엄마의 선택이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건 아니다.

일단 아빠와도 의견 대립을 보였지만 가족들에게조차 자신들의 핏줄을 거부한 배신자로 낙인찍혀 어디서도 환영받을 수 없었고 늘 누군가가 자신의 거짓말을 꿰뚫어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평생을 불안 속에 살아야 했던 벨은 심지어는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에게조차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이 넓은 아파트에서 살며 원하는 대로 꿈을 이룰 수 있게 한 발판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했고 당대 최고의 큐레이터로서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모든 꿈을 이뤘다.

책 속에는 그녀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원하던 물건을 낙찰받을 수 있었는지... 여자라고 은근히 무시하고 깔보던 남자들의 눈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단숨에 낚아채 그 작품을 원하던 남자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었던 일화를 보면서 그런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던 꿈을 이루고 당당히 제자리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벨의 이야기는 거짓말 같은 실화여서 더 흥미로웠다.

아마도 소설 속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다면 오히려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너무 힘을 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숙녀는 신사의 곁에서 얌전하게 있는 걸 미덕으로 알던 시기에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인종차별의 위험을 넘어 대담하게 그들의 눈앞에서 백인인 척 위장하고 원하는 걸 쟁취해간 벨 그린은 비록 동시대에 살았던 아빠와 친척을 비롯한 다른 흑인들의 동의는 못 얻었을지는 몰라도 당당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간 용감한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벨그린의 드라마틱한 여정을 흥미있게 그려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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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6 - 터무니없는 거짓말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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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이면 오고 가는 것도 쉽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척박한 땅 그린란드

그곳을 기점으로 긴 겨울 동안 사냥을 해서 다음 보급선이 오면 그동안 사냥했던 것들을 넘기고 다시 보급선이 올 때까지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게 바로 북극 사냥꾼들이고 이 책 북극 허풍담 시리즈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그린란드에 가서 그곳에서 16년을 보낸 후 그 경험담을 쓴 책이 바로 북극 허풍담이란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냥꾼들의 캐릭터가 마치 실존하는 인물처럼 생생하기 그지없다.

겨울이 길고 이웃을 방문하고 싶어도 몇 날 며칠 개 썰매를 타고 가야만 하는 척박한 곳이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이곳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은 서로 오랜 시간을 봐온 사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모든 걸 공유하다시피하면서 서로 모르는 것이 없는 이 사내들은 긴긴밤 술로 몸을 데우거나 함께 할 시간이 오면 술과 이야기로 지새우기 예사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그마한 진실에 온갖 허풍과 과장이 섞이고 자신의 사담까지 섞어서 원래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고 없고 그저 긴긴 겨울밤을 재밌게 보낼 수 있기만 하면 뭐든 오케이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랜 시간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란 게 있다.

평소에는 서로의 작은 실수를 화제로 짓궂게 놀리고 평생을 웃음거리로 삼지만 동료에게 위험이 닥치거나 외부의 적을 만났을 땐 누구랄 것 없이 공조를 펼친다.

이번 편에서도 그런 점이 두드러졌는데 이를테면 본토에서 건너온 산악회와의 일화가 그렇다.

산악회가 창립된 지 몇백 년이나 되는 전통 산악회인 덴마크 산악회가 이곳 그린란드의 산을 오르기 위해 왔는데 어디든 그렇듯이 그들 모임에 질 좋고 귀한 술이 빠질 수 없다.

엄청난 양의 위스키와 술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산악회 사람들을 환영하는 만찬회에서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식으로 눈앞에서 그들의 술을 훔쳐 숨겨놓고는 시치미를 떼고서 마치 이 모든 짓을 한 게 곰 그것도 미국 곰이 한 짓이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허술한 거짓말에 속는다고? 하는 마음이 반, 원하는 술을 얻기 위해 서로 단결해 술을 도둑질하는 일련의 과정의 엉뚱한 전략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에피소드 중 하나인 기생충을 잡는 에피소드는 솔직히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징그러웠다.

나날이 여의어 가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백작에게 사냥꾼들이 걱정하며 곁을 지키고 선 가운데 그의 몸속에서 하나씩 기생충이 기어 나오는 장면의 괴기스러움이란...

시리즈의 대부분이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와 함께 북극 사냥꾼들의 일상을 흥미롭게 그려놓고 있는 데 들여다보면 마냥 재밌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웃음 뒤에 감춰진 사람들의 어둠이나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도 있는 데 어떤 걸로도 숨기거나 감출 수 없고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는 막다른 장소 바로 북극이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칫 서늘하고 냉담할 수도 있는 내용을 무겁지 않게 유머로 잘 포장해놓고 있는 게 바로 이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리즈를 모아놓고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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