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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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프랑스 스릴러 작가로 더 인상 깊지만 공쿠르 상을 수상한 문학 작가로 더 유명한 피에르 르메트르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하게 한 오르부아르를 비롯한 역사 3부작 중 드디어 마지막 3편이 나왔다.

하필이면 공교롭게도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라 이 책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오르부아르가 세계 1차 대전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2차 대전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독일 나치의 행군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은 독일군이 자신들의 땅을 감히 침공하지 못할 거라 자신만만한 가운데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퇴근 후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루이즈는 오랜 단골 의사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는다.

단지 자신의 눈앞에서 옷을 벗어준다면 거금을 주겠다는 그의 제의는 처음엔 모욕처럼 느껴져 분노했지만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 날 자신의 눈앞에서 총으로 자살한 그 사람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건 물론이고 주변 평판마저 나빠져 학교 교사로서의 지위마저 흔들릴 지경에 이른다.

군인이자 전직 수학교사였던 가브리엘은 군대에서 보급품을 빼돌리고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돈을 버는 라울을 보는 게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수완 좋은 라울은 그런 가브리엘에게 협박을 가해 자신의 일에 끌어들이는 걸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원수같이 여겼던 그 라울과 자신만 유일하게 군대 대오에서 낙오해 한순간에 탈영병 신세가 되면서 서로 떨어지지 못한 채 함께하게 된다.

이렇게 평범했던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새 인생이 뒤틀려져버린다.

누군가는 뜻하지않게 탈영병이 되고 누군가는 위험천만한 가방을 운반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토록 자신의 아이를 원했지만 갖지 못한 채 남의 아이를 목숨을 걸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전쟁으로 고통받는 순간에도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를 비롯한 군인들은 현 상황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기보다 그저 거짓말로 때우고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걸로 모자라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게 더 유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에 대한 대미지는 국민들의 몫인 건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그들 옆에 붙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말로 속여 돈을 갈취하는... 여기저기에 모습을 나타내지만 정체가 모호한 데지레라는 인물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분명 영악한 사기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가 사기를 치는 방식이 독특해서 밉지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현란한 혀로 부자들, 정치인들, 고위 관료를 대놓고 속이는 모습이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여러 주인공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어떻게 전쟁에 휘말리고 어떤 고초를 겪는지를 보다 보면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사람들 사이에 작은 연결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이야기의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흥미로워지다 마침내 결말을 맞게 되는 우리 슬픔의 거울은 전쟁이란 게 얼마나 사람들의 인생을 비틀어버리는 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다뤘다고 당연히 무겁고 비극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비극 속에서도 유머와 농담을 섞어놓아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받게 되거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든지하는... 절대적 절망 속에도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은 사람을 통해 피어난다.

어쩌면 이게 바로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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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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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자신이 먹는 음식에서 만든 사람의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의 소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엄마가 만들어준 레몬 케이크에서 평소의 맛과 달리 이상한 맛을 느끼게 된다.

그건 엄마가 느끼는 슬픔과 외로움, 텅 빈듯한 공허함과 괴로움의 맛이라는 걸 안 순간 어린 소녀는 그 케이크를 삼킬 수 없었다.

그 케이크 맛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운 맛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맛을 느끼는 건 자신뿐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소녀는 혼란스럽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소녀의 나이는 불과 9살이었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로즈는 사람들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일면이 있음을 음식을 통해 깨닫는다.

얼핏 봐선 평범하고 단란한 집이지만 로즈네 집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우선 다섯 살 위의 오빠 조지프는 과학과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지만 친구가 없을 뿐 아니라 가족과의 소통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단순하게 말이 없이 과묵하고 과학적 사고에 탁월한 영재라서 그렇다기보다 뒤로 갈수록 조지프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누구보다 사교적인 로즈가 그런 오빠 곁에서 맴돌면서 항상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이유를 알게 된다.

무엇보다 더 안타까운 건 서로 사랑해서 결혼 한 엄마와 아빠가 별다른 대화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서로 손님처럼 예를 갖추고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서로를 미워해 큰 소리로 싸우는 것보다 못한 상태의 부모를 보면서 소녀는 언젠가부터 엄마의 상태를 이해하고 아빠가 혼자서만 묵묵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그런 아빠의 모습을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런 가족들을 지켜보며 로즈가 성장해가는 모습은 사뭇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모든 음식에서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된 이후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힘든 로즈가 엄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사랑하지만 언제나 저 멀리 있는 듯한 아들 조지프와 어느새 남처럼 느껴지는 남편만으로는 그녀의 텅 빈 가슴을 채울 수가 없었던 걸까

엄마는 다른 남자와 불륜 관계가 되고 이를 눈치챈 로즈가 침묵한 이유 역시 엄마의 감정을 이해한 탓이 아니었을까?

로즈가 엄마의 레몬 케이크에서 엄마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된 날은 아마도 로즈가 마냥 행복했던 어린아이 시절을 마감한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집안에 묵직이 내려앉은 깊은 슬픔과 침묵을 밝고 명랑했던 어린 로즈가 깨달으면서 조금씩 그런 가족을 받아들이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사뭇 안타깝게 느껴졌고 로즈가 마침내 오빠 조지프의 상태를 눈앞에서 발견한 날 느꼈을 충격과 슬픔이 가슴 깊이 이해되었다.

읽는 내내 이 집안의 불행이 와닿아 마음이 답답했지만 마냥 비극적으로 마무리짓지 않은 점은 좋았다.

읽는 사람의 감정 소모가 심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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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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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오래전 떠나보낸 사람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그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유혹적으로 들릴까

과학이 발전한 지금 시대에 들으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19세기 즈음 심령 술사를 중심으로 심령회라는 게 엄청난 붐을 이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심령술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 게 바로 이 책에 나오는 폭스 자매다.

책을 읽기 전 이 자매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심령들이 내는 소리라 주장하는 `딱` 하는 소리의 수수께끼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매 중 한 사람이 고백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걸 안다.

그렇게 유명한 실화 인물을 중심으로 가상의 인물을 넣어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그만큼 철저한 고증과 조사가 뒤따라야 하고 사실과 사실 사이의 작은 틈을 비집어서 이야기의 소재를 섞어놓아야 할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사실을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기에 처음부터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거리의 마술사인 제니에게 폭스 자매의 비밀을 밝혀내는 임무를 맡긴 사람인 로버트 펑커튼의 탐정 회사 펑커튼 역시 실제로 존재했으며 당시 이런저런 사건에서 맹활약을 펼치다 현재에 와서 다른 보안업체와 합병되었다는 사실 역시 소개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심령회와 과학적 근거와 증거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회사 사이는 서로 극과 극일 수밖에 없고 이런 둘 사이에서 오가며 서로의 주장을 듣고 허점을 찾는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자 마술사인 제니였다.

제니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현혹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심령 술사들을 사기꾼이라 생각했기에 폭스 자매에게 접근해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자신의 임무를 부당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슬아슬한 순간에 재치를 발휘하는 대담함까지 보여 자매 중 한 사람에게 호의를 얻는다.

하지만 폭스 자매에게 접근해 그들 곁에서 그들이 하는 행위를 지켜보면서 점점 자신의 생각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을 뿐 아니라 큰 언니이자 이 심령술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노아를 제외한 두 여자에게서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과 언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심약함만이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맨 처음 이 자매들에게서 심령현상이 발견된 곳 즉 그녀들이 살던 집 지하실에서 아무도 찾지 못했던 유골을 발견했지만 당연히 이 사실을 경찰들에게 알릴 것이라 믿었던 로버트의 배신은 그녀의 모든 믿음을 흔드는 결과가 된다.

이제 누구의 편에서가 아닌 그녀 스스로가 이 수수께끼의 비밀을 찾고 싶어진 제니는 모든 거짓을 버리고 마술사 제니의 모습으로 그녀들에게 가고 그녀들의 입으로 직접 진실을 듣는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언니에게 속박된 삶을 살았던 두 자매와 자신이 하는 마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제니 그리고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서로 뜻이 다른 형제는 각자가 원하는 바 즉 온전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자신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있다.

심령술사라는 실질 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그들의 비밀을 밝히는 과정을 미스터리적 요소로 풀어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가독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몰입해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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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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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르의 책일지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과 책 설명 때문에 무슨 내용일지 아무것도 모른 채 첫 문장을 읽었다.

어린 두 소녀가 서로의 손바닥을 그어 피를 나누고 그 피가 섞인 우유를 마시며 서로에게 속하게 되었다 느끼는 부분을 보면서 소녀들의 우정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었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다.

어떤 징조도 없이 돌연 뛰어내려버리는 소녀의 모습은 충격과 함께 의문을 던지지만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것이다.소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에 대한 의문만 남겨두고...

그때부터 이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인지 그리고 작가의 의도는 뭔지가 책 내용과 상관없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나온 이야기는 뱃속의 아이를 잃은 여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향연이었다.

이 작품은 첫 작품과 달리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왜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 공감이 가면서 더더욱 이 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중년 남자가 매주 아내가 아닌 젊은 여자와 시시덕거리면서 자신의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이야기가 담긴 천국을 잃다는 곁에 있는 아내의 나이 듦을 보면서 자신 역시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기 싫어 매주 바를 찾아가 돈을 쓰지만 아내가 떠나버리면서 결국 모든 것이 헛짓이었음을 깨닫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 그 과정에서의 허무함과 허탈함이 진득하게 그려졌다.

혀들에서도 그렇고 적들의 심장에서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닌 그 자체로서 자유와 존엄성을 갖고자 하는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비판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혀들에 나오는 여자는 심지어 믿고 의지했던 종교에서부터 강한 배신을 당한다.

목사에게 반항적인 시선을 보내고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서도 냉대를 받는 모습이 나오지만 자신을 핑계로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에게 찾아가 강력한 한방을 날리면서 사회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관습과 권위를 비웃는다.

물에 빠진 순간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순간에 소녀가 한 행동과 그 아이가 느꼈던 감정을 그리고 있는 배의 바깥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민낯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한순간의 고백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경원시당하고 부도덕한 여자로 낙인찍힌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엄마가 한 부정한 행위보다 이후 사람들에게 맞서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눈치를 보는 엄마의 모습에 더 분노하고 화를 내는 딸의 이야기가 그려진 적들의 심장은 자라나는 딸과 엄마 사이에서의 그 미묘함을 잘 포착했다.

거부하고 화를 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당당하게 맞서기를 응원하는 딸의 심리와 점점 성숙해지는 딸의 곁에 맴도는 독수리같은 남자들로 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잇다.

열세 편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 여자이며 백인이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었고 변화의 순간 혹은 어떤 일을 두고 그녀들이 느끼는 감정의 이미지를 강렬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약자의 입장에 있는 여자들이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생각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가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답게 글이 감각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한번 문장을 읽어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작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단편집이었지만 작가가 쓴 장편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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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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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개척 시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을까 감탄을 한다.

영화에서야 잘 생긴 배우가 조금 힘든 여정 길에 죽을 위험도 겪고 사람을 잃는 슬픔도 겪으면서 어쨌든 원하던 곳으로 가 자신의 땅을 쟁취하는 성공담을 그렸지만 실질적으로 그 시기는 원주민들과 정착민들 사이에서 땅을 두고 목숨을 건 싸움이 빈번했을 만큼 위험 가득한 곳이었다.

이 책은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 만큼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그리고 있는 데 위험천만한 여정에서도 서로의 영혼을 알아 본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가 더해져 소설이 훨씬 더 감정적이고 풍부하게 느끼게 했다.

스무 살에 남편을 잃고 홀로된 나오미와 그녀의 가족들은 서부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 길에서 인디언 엄마와 백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존 라우리를 만나고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하지만 존은 언제나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알기에 그녀를 멀리하지만 나오미는 당시의 여자들과 달리 순순히 그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사랑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인데 무엇보다 두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이라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하게 그를 사랑한다 말하는 그녀는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연상케했고 존이라는 캐릭터 역시 심지가 곧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할 줄 아는 멋진 캐릭터다.

마차에 세간살이를 싣고 말과 노새를 끌며 생각할 수도 없는 긴 거리를 두 발로 걸어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옥의 행군보다 더 심해 중간에서 죽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언제나 물과 식량이 부족해 청결을 기대하기 힘든 환경에 질병이 도는 건 당연하고 이 들 캠프에서도 콜레라로 몇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도 행군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그들이 얻고자 한 건 뭐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캠프의 행군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굶주리고 갈증에 시달리고 수시로 병마와 싸우면서 간신히 안전지대인 요새에 도착하면 휴식을 취하고 몸을 씻고서 가게에 가 필요한 걸 구입하거나 때론 자신이 가진 걸로 서로 물물교환을 해 원하는 걸 얻는다.

우리가 볼 때 너무 당연한 일들이지만 그들은 그런 소소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며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힘을 내 다시 길고 긴 원정길을 나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데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감정에 동조되어 그들의 여정을 응원하게 된다.

소설 속에는 나오미와 존 외에도 여러 명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특히 나오미의 엄마와 그녀가 하는 말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담긴 말은 너무 아름다워 시처럼 느껴졌다.

그런 엄마의 믿음과 사랑을 받고 자란 나오미가 어떤 일에도 쉽게 굴복하지 않으며 누구의 시선에도 당당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백인의 사회에서도 원주민의 사회에서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언제나 겉도는 사람이었던 존이 용감하게 자신에게 부딪혀오는 나오미에게 끝내 굴복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재미였다.

마치 한편의 아름다운 드라마 같은 이야기여서 읽고 난 뒤 여운이 깊게 남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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