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귀 살인사건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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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게 꼬아놓은 문제라도 반드시 정해진 정답이 있다는 점... 그 명확성을 이유로 드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불안한 건 어쩌면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이런저런 요소에 따라 변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여기 늘 수학을 생각하고 심지어 일상생활조차 수학적으로 풀어가는 남자가 있다.

만약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심지어는 일어날 수 있는 변수까지 함께 묶어 플랜을 짰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해 이제까지 계산해 둔 게 전부 쓸모가 없어졌다면... 그런 상황을 이 남자는 견딜 수 있을까?

이 책 토끼 귀 살인사건 속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그렇다.

보험 계리사 핸리는 생각지도 못하게 회사에서 잘린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형의 부고장을 받고 심지어 그 형이 자신에게 놀이공원을 유산으로 남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운영상태가 엉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빚마저 떠안게 되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데 직원들은 형이 책임지지도 못할 정도로 남발한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핸리가 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문제는 한 푼의 돈도 없고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것

이럴 때 사람을 예사로 죽이는 사채업자까지 나타나 그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불 꺼진 놀이공원에 혼자 남아 있는 그를 찾아온 사람을 사고로 죽여버리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된 핸리는 일단 사체를 처리하고 그들에게 혹 할 만한 제안을 함으로써 위기를 잠시 벗어나지만 모든 일이 그가 계산한 대로 되지는 않는 법

누군가가 놀이공원의 돈을 횡령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목숨마저 위험한 그는 과연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감정을 배제한 채 모든 걸 수학적으로 계산하던 핸리는 자신이 왜 보험회사에서 잘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는지를 궁금해한 적도 없던 그는 누가 뭐래도 혼자서 조용하고 고독하게 생활하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놀이공원을 책임지면서 직원들과 상담을 하고 그들의 사정을 들으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특히 그의 모든 걸 뒤흔드는 존재인 라우라와 만나면서 이제까지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간다.

물론 그로 인해 자신의 요구사항만 주장할 줄 알던 직원들도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져간다.

작가의 전작도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서울 내용을 특유의 위트와 살짝 비튼 블랙 유머로 무겁지 않게 가벼운 듯 경쾌하게 풀어가고 있는 토끼 귀 살인사건

혼돈이 가득한 아이들의 놀이공원에 떨어진 게 하필이면 모든 걸 명확하게 계산해야 되는 수학자라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그가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세운 계획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가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독특하고 흥미로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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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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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유명한 스파이 영화가 있고 그 영화 속 캐릭터의 활약이 눈부시게 멋져 많은 사람들에게 스파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세련됨과 쿨함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간첩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어딘지 불온한 냄새와 함께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인 것에 비하면 스파이는 어쩌면 언어유희나 마케팅의 덕분에 부정적인 인식보다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스파이의 면면은 우리가 막연히 영화나 드라마 혹은 기존의 스파이 소설에서의 역할보다 상당히 부정적에 가깝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게 더 사실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과 스페인 반반의 피가 섞인 자유로운 영혼 토마스는 어린 나이에 베르타와 한눈에 운명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서로 함께 하게 될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며 성장했던 둘은 학업 때문에 토마스가 옥스퍼드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의 모든 인생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사건을 겪는다.

원치 않았지만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토마스는 비밀 정보부의 일을 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하게 되고 그런 토마스를 곁에서 지켜본 베르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가슴에 커다란 비밀을 품은 사람은 얼마나 고독해지고 황폐해질 수 있는가는 토마스의 변모를 보면서 여실히 드러난다.

영혼의 짝인 토마스가 언젠가부터 비밀스럽고 은밀해졌으며 말없이 사람들 곁을 떠도는 유령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베르타에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일이 알고 보니 그를 원했던 측에서 꾸민 함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수많은 세월이 흘렀을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해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가족과의 연을 끊은 뒤였다는 내용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그가 느꼈을 엄청난 배신감과 허탈함이 와닿았다.

어느 날부터 변해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베르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어쩌면 좀 더 차분하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토마스가 유린되는 과정을 객관성을 유지하며 지켜보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타지에서 대의를 내세워 위험한 일에 직면해있는 동안 베르타 역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조금씩 전통적인 아내로서의 삶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건 삶의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어쩌면 그런 변화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변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의 모든 걸을 알 수 있다 생각했던 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그러고 보면 그를 바라보면서 독백처럼 처리된 대사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가 어떤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각자 만의 내밀한 슬픔을 안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도구처럼 쓰이고 버려진 비운의 남자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부라 할지라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 초반의 진입장벽이 존재했지만 토마스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서부터는 속도가 붙어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젊어서 찬란하게 빛났던 두 사람의 삶이 국가에 의해 비틀어지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왜 그토록 많은 찬사를 받았는지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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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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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에 단골로 거론되는 작가인 조이스 캐럴 오츠

나 같은 경우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읽어보진 않았는데 가독성 좋고 쉽게 읽히는 책만 읽던 나에게 작가의 작품은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일단 장편이 아니라 부담감이 적다는 점도 그렇고 탈출과 복수에 관한 4가지 가족 잔혹극이라는 설명이 관심을 끌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긴장감을 느꼈고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것이 사건이 구체적으로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몇 줄의 문장만으로 이렇게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왜 작가를 에드거 앨런 포에 비견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책 속에는 4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그중 책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작품인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어느 날 자신에게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할머니로부터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유산상속을 위해 카디프로 가는 여자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다소 이상한듯한 이모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친부모에 관한 이야기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왠지 그 화제에 대해서만은 피하는 듯한 할머니들의 태도에 의문을 갖고 변호사를 만나지만 그 역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고 신문을 확인하라는 말만 전해 듣는다.

마침내 알게 된 진실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사건에 대해 알려고 하면 할수록 진실이 은폐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진짜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환상을 보고 모두를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녀가 믿는 진실은 진짜일까?

두 번째 에피소드와 네 번째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상황임에 분명하지만 가족 내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이혼과 사춘기에 접어들어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맞은 소녀의 불안정한 심리에 대한 묘사가 와닿았다.

아빠로부터 버려졌다는 상실감을 들고양이를 돌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소녀는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또 다른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재혼한 가족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성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왜 이런 상황일 때 아이들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 왜 혼자서 모든 걸 감수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의문의 답을 주고 있다.

소녀 역시 아빠로부터 버림받은 충격에 모든 힘을 잃었던 엄마에게 또다시 상처를 줄 수 없어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크게 와닿았다.

네 번째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아빠 혹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혼자서 비밀을 숨기려는 아이들의 심리를 작가는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나 일상적인 표현으로 그 반전을 드러내 그 대비의 차가 더욱 충격적으로 느끼게 했다.

4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타인과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다시피 고립되어있어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그랬다.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대학이라는 낯선곳에 온 그녀...

사교적이지 못해 아무와도 교류가 없었던 그녀를 눈여겨 본 남자는 그녀에게 접근하지만 순진했던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현실은 지극히 차갑고 냉정하리만치 비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외부와 단절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폭력에 노출된 여자들이 느끼는 극심한 공포와 긴장감은 왜 여자들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줄 뿐 아니라 어디에도 말할 수 없어 혼자만 고민하는 모습에서 그녀들의 절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들이 느끼는 심리묘사가 탁월하고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음에도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했으며 여기에다 환상과 초자연적인 요소까지 섞어놓아 마치 어셔가의 몰락을 볼 때의 그 느낌... 뭔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공포스럽고 왜 그런지 몰라도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가독성이 좋아 작가의 작품을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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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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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수상 작가로 유명한 앤 타일러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다른 작품에 비해 드라마틱 하거나 엄청난 풍파와 험난한 여정으로 읽는 사람의 진을 빼게 하는 작품이 아니라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다고 할지...

그래서일까 작가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마저 조용하고 편안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인 것이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소설 속에서 온갖 우여곡절이 다 들어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윌라 역시 그렇다.

시대적 배경이 그런 만큼 1970년대의 그녀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당찼음에도 당시의 남자친구의 청혼을 그저 자신과 맞지 않는 부모님에게 대항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인다.

마음속으로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싶은 것보다 자신이 공부하고자 하는 언어학에 더욱 매진하고 싶은 마음이 컸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삶은 당시의 여느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자식들을 낳아 건사하면서 자신의 원했던 삶과 다른 삶을 살면서도 별다른 반발심을 가지지 않은 채 주부로서의 삶에 나름 만족하며 살았지만 그런 그녀의 삶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의 죽음으로서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삶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의 죽음 역시 그녀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고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는 듯하다 한 통의 전화로 변화가 찾아온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여자의 어린 딸을 잠시 보살피게 되면서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윌라는 낯선 이웃들과 함께 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감을 느낀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비롯해 누군가를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는 관계에서 오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고 나아가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얻으면서 윌라는 예전의 수동적이고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되어간다.

부유하고 누군가의 위에서 명령을 내리는 삶에 익숙한 남편의 눈에는 한없이 초라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윌라의 시선에서 그들은 이웃을 보살필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새롭게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오래전 꿈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하는 윌라

한 통의 전화로 인생의 2 막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윌라의 여정이 잔잔하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그려진 클락 댄스는 요즘 소설에 비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늘 한걸음 뒤에서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윌라가 조금씩 예전의 모습...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잔잔하지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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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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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집안에 서넛의 자녀를 둔 가정이 일반적이어서 엄마가 동생을 출산하거나 혹은 몸이 여의치 않을 때 많은 아이들 중 한두 명을 친척이나 친지에게 잠시 보내는 일이 그다지 드물지 않았다.

요즘같이 한 명 혹은 기껏해야 두 명 정도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서로 잠시 아이를 맡아두는 일이 큰 흉도 아니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고 내용을 살짝 훑어봤을 때 소녀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곧 출산을 앞둔 엄마의 손을 덜어주고자 소녀는 외가 쪽 친척 집에 맡겨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어른의 보살핌과 관심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복작이는 집... 언제나 무심한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잦은 출산으로 언제나 피곤에 지쳐있는 엄마

언제나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은커녕 관심조차 받아보지 못했던 소녀에게 친척 집에서의 하루하루는 낯설지만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낳았으면서도 한 번도 아이에게 관심 어린 손길을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에 비해 무심한듯하면서도 작은 것도 함께 하는 즐거움을 알려준 아저씨

아저씨는 그 당시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식사 준비를 함께 하며 가정의 일에 남녀 구별이 없이 함께 하는 다정한 남편이기도 했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이 한 대목의 글에서 소녀가 살아온 환경이나 집안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이유다.

소녀는 친척 집에 맡겨진 이후로 이제까지 자라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면서 혼란과 더불어 결핍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짧은 글이었지만 그 속에서 소녀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묘사가 참으로 섬세해 문장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곱씹어 읽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녀가 친척 부부가 가지고 있는 슬픈 비밀을 알게 된 순간 소녀는 어른들의 규칙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평온해 보이는 그 부부가 가지고 있는 슬픔을 어린 소녀는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순간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어린 소녀가 처음 낯선 곳에서 불안감을 느끼다 점차로 가족 같은 친밀감을 느껴지만 예정된 시간이 다 함에 따라 이별하는 슬픔도 배우게 되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진 맡겨진 소녀는 결말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치 불안정한 소녀의 심리처럼 독자로 하여금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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