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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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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길이 많이 미치지 않은 깊은 숲속에서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새를 연구하는 논문을 준비 중인 조는 외딴 집 근처에서 제대로 된 복장도 갖추지 않은 채 맨발인 여자아이를 만난다.

자신을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하는 아이는 처음부터 조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고 그 아이의 말에서 정보를 얻어 보호자에게 인계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신상에 대해 절대로 말하려 하지 않는 아이로부터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소녀의 몸에 누군가에 의한 멍과 상처를 본 순간 자신도 몰랐던 보호본능이 생기게 되고 아이에게 제대로 된 보호자를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지역 경찰에서조차 주변에 아이를 찾는 신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조의 말은 묵살당해 어쩔 수 없이 소녀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아이를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울 뿐만 아니라 영리함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고 애정을 느끼지만 이웃집 계란 장수인 게이브의 조언처럼 그 아이를 곁에 두면 둘수록 조가 고발당할 위험만 커질 뿐이란 걸 알면서도 경찰에게 인계되는 걸 극도로 거부하는 소녀를 외면할 수 없어 고민하는 조

얼사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거리를 두던 게이브마저 점점 이 작은 소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이 세 사람은 마치 한 가족처럼 친밀감과 애정을 갖게 되지만 처음부터 불안했던 얼사의 처지가 극도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그 아이를 알아보고 뒤를 쫓아오면서 마치 한편의 동화 같았던 이야기에 서스펜스와 스릴러적인 요소가 스며들어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처음부터 맹렬하게 자신을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 주장했던 얼사의 말을 믿었던 건 아니지만 조와 게이브가 사방에 알아보고 누군가 그 아이를 찾는 사람이 없는지 세심하게 온라인 사이트를 둘러봐도 그 아이를 찾거나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다는 점에서 다른 도시에서 왔거나 어쩌면 정말로 다른 별에서 온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 시점에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켜주는 미행자의 존재는 얼사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던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새삼 맞았음을 깨닫게 해준다.

막다른 길에 있는 외딴집 근처의 깊은 숲에 불쑥 나타난 소녀의 존재만큼 이질적인 건 없고 소녀의 행색을 보면 누구라도 미아거나 범죄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가 범죄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건 서로 처음 마주친 순간 얼사가 보인 태도 때문이었다.

처음 보면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겁에 질린 태도가 아닌 너무나 태연하게 자신이 지구가 아닌 저 멀리 보이는 별에서 온 존재라고 말하는 소녀를 보면서 누가 범죄 연루 가능성을 알 수 있었을까

게다가 처음부터 5가지 기적이 일어나면 떠날 거라는 걸 입버릇처럼 말한 대로 그 아이 주변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발병으로 인해 우연히 검사했던 자신의 몸에서 암조직을 발견하고 가슴과 난소를 절제하면서 여성성을 잃어버렸다 생각하는 조에게 남자친구의 배신은 더더욱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우연히 엄마와 아빠 친구와의 불륜 장면을 본 충격에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 게이브가 얼사를 돌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 것부터 주변 모든 것이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기적 같은 일을 깨달으면서 얼사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던 만큼 그 아이가 숨겨온 비밀이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졌을듯하다.

숲에서 새와 자연을 사랑하며 연구하는 조와 스스로를 별에서 온 아이라 칭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서로의 운명을 변화시키게 되는 존재가 되는 과정이 환상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진 숲과 별이 만날 때는 한편의 동화같이 느껴졌다.

공허했던 조에게 가득 찬 행복감을.... 사람들과의 관계조차 어려워했던 게이브에게 사람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그리고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긍정적이고 용기가 있었던 얼사에겐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가족이 생기는 기적의 과정을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펼쳐준 마법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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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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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불처럼 뜨겁게 모든 것을 태우는 복수를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은 몬테 크리스트 백작이랑 어딘가 닮았다 였는데 작가가 존경하는 대작가 뒤마에게 오마주로 이 소설을 썼단다.

몬테 크리스트 백작의 주인공은 믿었던 친구를 비롯해 모두의 배신으로 철저하게 나락으로 떨어져 어두운 감옥에 십수 년을 갇혀지내는 형벌을 받았기에 탈옥한 후 보물을 찾아 그 돈을 디딤돌 삼아 모두에게 복수하는 모습이 공감이 갔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 역시 믿었던 사람들... 친척을 비롯해 부하직원 그리고 선의를 베풀어 준 대상 모두의 공모 아래 한순간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후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몇 년의 노력 끝에 끝내는 모든 것을 불로 태워버리듯 복수한다는 설정이 닮아있다.

단지 차이점이라곤 주인공이 남자에서 이 책에선 여자로 그것도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라는 위치만 다를 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한 은행의 설립자이자 존경받았던 인물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순간 이 집안의 상속자인 고인의 손자가 위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장례식은 엉망이 되고 피 흘리고 의식이 없는 아들을 병원으로 싣고 가는 고인의 외동딸이자 상속녀인 마들렌은 평정을 잃고 이후 그녀의 모든 관심은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의 치료에 쏠려있다.

그리고 그런 마들렌과 그녀의 아들 폴에게 고인의 거의 모든 재산 즉 집과 돈, 은행의 지분이 상속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삼촌과 그녀와 결혼을 해 은행을 물려받을 것을 당연시 여겼다 뜻밖의 거절로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던 은행장 귀스타브는 그녀에게서 모든 재산을 뺏어올 궁리를 한다.

그녀가 아픈 자식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라곤 없고 오랫동안 자신의 집안을 위해서 일해왔던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믿으리라는 그들의 자신감은 맞아떨어졌다.

평생을 부유하게 살아왔지만 돈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나 몰랐고 순진했던 마들렌을 속이는 건 너무나 쉬웠고 그녀로 하여금 은행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줘 그녀가 가진 재산을 비롯해 은행의 지분을 팔게 한다는 이 계략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들어맞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년이 채 안 된 시간에 상속받은 재산 거의 전부를 잃어버린다. 심지어는 폴의 몫인 재산까지도...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후였고 자신에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렇게 된 거라는 걸 알기에 어디에도 호소할 수도 없었다.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마들렌이지만 이제 아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평생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폴은 모든 의욕을 잃고 살아가다 우연히 듣게 된 한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듣고 새로 삶을 살아갈 의지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 사고의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입을 떼어 그날 사고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서 마들렌을 새로운 충격에 빠트린다.

그리고 그녀가 받았던 그대로 그들에게 하나씩 복수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그녀를 함정에 빠드린 것보다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함정을 파 그들이 가지고 있다 생각했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져 있는 화재의 색은 평범하면서도 순진했던 한 여자가 어떻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냉정한 복수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폴의 사고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훨훨 태우는 듯한 복수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의 복수에 가장 도움이 될 사람을 포섭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그들 한사람 한사람 누구 하나 빠트리지 않고 복수하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고 어쭙잖은 용서 따윈 없는 모습에서 마지막까지 시원함을 선사하고 있다.

1930년대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유럽의 분위기... 파시즘과 나치즘의 태동, 정부의 지독하리만치 쥐어 짜낸 세금에 시민들이 반대해 들고일어나 파업을 선언하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에서 언제나 그렇듯 부자와 권력자들은 탈세를 밥 먹듯이 하는 당시 상황과 한 가문의 상속녀의 몰락과 복수의 과정을 엮어놓은 화재의 색은 배경이 30년대일 뿐이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다.

스릴러 작품으로 먼저 만나본 작가지만 탁월한 필력과 스토리텔링은 장르를 막론하고 어필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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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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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투르게네프의 단편선인 파우스트는 문장이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이 많아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인 파우스트와 내용도 그렇지만 분위기도 많이 다르다.

여자들의 사랑과 파멸, 희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파우스트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우연히 들른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한번 보고 첫눈에 반한 여자와 세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세 번의 만남은 두 사람의 만남 자체도 평범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해 읽으면서 그녀의 존재 자체가 환상이 아닌가 싶을 즈음 마침내 그녀의 실체와 함께 그녀의 이야기가 밝혀지는데 그 사연이란 건 그가 가졌던 환상에 비해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그녀의 비극이 더욱더 두드러져 보였는데 읽으면서 그 유명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두 번째 이야기이자 책 제목인 파우스트는 주인공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하고 있다.

청춘이 지나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우연히 영지로 돌아온 남자가 오래전 자신이 청혼을 했다 그 모친에게 거절당했던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마 전 엄청난 인기를 끌고 화제를 몰고 왔던 모 드라마처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그 드라마처럼 그가 사랑에 빠진 상대 역시 이미 결혼을 해서 세 아이까지 둔 유부녀였다는...

설정만 보면 신파 드라마 같지만 그런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문학적이며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그 속에 심오한 철학과 사랑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는지가 삼류 소설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인지를 가른다고 볼 수 있는데 파우스트는 통속적인 소재를 가지고 그 속에 인간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파멸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이지만 엄마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아서 이날까지 시와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그녀에게 자신이 빠져있던 소설 파우스트를 읽어주면서 점점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드는 남자

그는 그녀가 자신으로 인해 소설 파우스트에 빠져들고 마침내 자유에의 열망과 열정을 깨달아가는 모습에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속절없이 끌려들어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이미 죽었던 엄마의 유령

진즉부터 딸의 그런 면 즉 예술적인 감성이 뛰어나고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어 쉽게 깊이 빠져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엄마이기에 모든 것을 가르쳐도 예술적인 부분은 억압하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세 편 모두에는 현실적인 내용에다 환상이 뒤섞여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모호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오래전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 생각나게 했다.

특히 마지막의 이상한 이야기는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는 데 대놓고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한 남자와 그런 그를 따라나선 어느 부잣집 고명딸의 일탈을 그린 이 이야기는 가장 짧으면서도 이해가 쉽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었던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그녀가 원한 건 진정 자기희생이었던 걸까?

그녀는 진짜 그에게서 신의 모습을 본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종교적 신념이나 관념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거침없이 버리고 따를 수 있는 건지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오랜만에 읽은 문학작품이라 그런지 읽으면서도 쉽지 않았고 모호함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제껏 읽은 책과 다른 색다름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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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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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게 진짜 기억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혹은 스스로가 만든 기억일까

어떤 일을 할 때 문득 떠오르거나 혹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번쯤 있었다면 그건 스스로가 경험했던 걸 무의식에서 떠올린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말처럼 전생의 기억인 건지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익숙한 개념인 전생을 소재로 해서 작가 특유의 과학적 개념과 철학을 섞어 이번에도 독특한 작품이 나왔는데 여전히 폭넓고 거침없는 사고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이다.

작가의 전작들에서 자주 언급되거나 소재로 다뤘던 소재에다 이번에는 성경에 있는 창세기와 신화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에 인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게 또 언제나 그렇듯이 그럴듯하다.

친구와 우연히 들른 공연장에서 퇴행 최면 즉 전생 최면의 대상자가 된 르네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공연장을 뛰쳐나왔다 강도와 몸싸움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르네가 한순간에 살인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퇴행 최면에서 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걸 발견하고 공연을 했던 오팔을 찾아가 다시 한번 퇴행 최면을 하게 되면서 전생을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특정적인 점이 과거의 경험에서 온 것이라는 걸 깨닫고 전생의 나와 현재의 나가 무관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르네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사람들과 경찰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조금씩 퇴행 최면에 익숙해진 르네는 최초의 방으로 가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게도 아틀란티스를 보게 된다.

그곳 아틀란티스는 소유의 개념이 없고 일을 하는 사람도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평생 갈등을 겪는 일이 없는 그야말로 평화롭고 조용한 유토피아였지만 르네는 그들이 곧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릴 운명이라는 걸 알기에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전생인 게브를 통해 알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해 주고 운명의 날을 피할 수 있도록 배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정신적으로는 성숙하지만 기술의 개발이나 물건의 개념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게브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통 원해 배를 만들어 위기에 대처하도록 하고 그 배를 방주라 하는 부분에서 성경의 내용과 연결된다.

매일 밤 퇴행 최면을 통해 전생을 여행하면서 르네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모든 전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전의 삶에서 가장 원했던 걸 다음 생에서 가지고 태어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다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단서를 쫓아가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의 의식의 확장... 여기에다 작가 특유의 박학다식함을 보태서 주장을 뒷받침하고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가질만한 근본적인 내용을 왜 그런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가만의 작풍은 여전히 신비롭고 매혹적이지만 아쉽게도 신선한 맛은 없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기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이론이나 지식, 세계관이 이 책 기억에서도 여전히 작품 곳곳에서 나오거나 예를 들고 있어 다소 식상하다는 점이 아쉬울 뿐... 언제나 그렇듯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지 늘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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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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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번화가 뉴욕에는 여전히 수동으로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곳이 53곳이 있었고 그중 한 곳이 바로 5번가 12번지였다.

그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사람 디팍은 신분 차이가 엄격한 인도에서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의 가문 남자들로부터 위협을 받아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온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지만 기회의 땅인 미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인도에서 전도 유망한 크리켓 선수였던 디팍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왔기에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맡은 엘리베이터의 안전운행에 모든 걸 걸었고 오랫동안 그의 정성은 보답받는듯했지만 동료의 뜻밖의 사고로 이 모든 일이 어그러지기 시작할 뿐 아니라 사고가 없었다면 절대로 몰랐을 주민들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기다렸다는 듯 주민대표의 주도로 신식 엘리베이터의 도입을 추진하는 주민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디팍

하지만 모든 주민이 다 이 계획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고 오랫동안 디팍의 보살핌을 받아왔던 클로이 역시 이 계획에 분노하면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9층의 그녀 클로이는 사고로 다리를 잃고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여전히 밝고 긍정적일 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추진력도 있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지만 사고 이후로 누군가 자신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도움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클로이가 공원에서 한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평소의 그녀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산지

그는 인도에서 투자자를 찾아 미국으로 온 남자이자 디팍의 처조카로 고모의 오해로 인해 디팍의 집에 머물고 있다 뜻하지 않게 디팍 동료 대신으로 야간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일을 맡게 되지만 그는 인도 굴지의 호텔의 대주주

엄청난 갑부인 그가 고모부의 일을 도와 수동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일을 승낙한 이유는 첫눈에 반한 클로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함이라는 로맨틱한 이유가 있었다.

오래된 전통의 건물이자 부유층들만 사는 이곳 5번가 12번지에는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가 계기가 되어 서로 간의 민낯이 드러나고 갈등이 드러나는가 하면 사람들의 편견을 보란 듯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사람의 달콤한 로맨스도 곁들여져 있다.

그런 반면 자신이 그들에게 그 오랜 세월 애정을 기울이고 오랫동안 봉사한 만큼 주민들 역시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여느 종업원 대하듯 쉽게 저버리지 않을 거라 믿었던 디팍의 믿음은 자신들이 불편하지 않을 동안만 지켜질 믿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 그들에게 헌신해왔던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씁쓸하게 그려진다.

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자신들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보살핀 디팍의 친절과 봉사를 당연한 듯 여겨 고마움을 모를 뿐 아니라 그가 자신들과 다른 유색인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는 도난 사건 소동은 여전히 미국 내 유색인종을 바라보는 편견을 보여주고 있다.

느닷없는 사고로 다리를 잃은 클로이 역시 자신은 굳건한 의지로 이겨내고 있다 믿었지만 스스로 사랑에 위축되어 있었다는 걸 산지의 고백으로 깨닫게 되면서 자신 역시 사랑할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걸 깨닫기도 하는 등...

모두가 알게 모르게 각각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그녀, 클로이는 등장하는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클로이와 산지 그리고 디팍의 아내이자 사랑을 위해 가족과 조국 모두를 버리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랄리가 보여주는 인생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모습은 이 책을 더 사랑스럽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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