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저넌에게 꽃을 (아트 리커버 에디션)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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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지능의 한 남자에게 뇌 수술을 통해 보통 사람들 같은 지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것은 그에게 기회였을까 아니면 악마의 유혹이었을까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빵 가게 종업원 찰리는 자신이 똑똑해지면 친구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고 읽고 쓰기도 잘 할 수 있을 거란 단순한 기대를 가지고 뇌 수술을 하게 된다.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른 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를 모르고 읽었을 땐 요즘같이 의학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 위험할 순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된 옛날이라는 걸 알고는 놀랐다. 시대를 생각하면 이 책이 왜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들을 줄줄이 수상했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의아했던 부분들이 납득이 되기도 했고...

일단 책의 주인공이자 뇌 수술을 통해 7살 정도의 지능에서 급격하게 지능이 높아져 보통 사람들의 지능을 단숨에 뛰어넘어버린 찰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거슬렸다.

수술을 시행하기 전에는 그가 자기결정권이 없으므로 보호자로 되어있는 엄마와 여동생에게 수술에 대한 모든 걸 알리고 동의서를 받은 것 까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후 수술을 통해 나날이 지능이 높아지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음에도 그들은 찰리의 면전에서 예전의 찰리를 마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실험실의 동물처럼 취급하며 자신들이 실험을 통해 재탄생시킨 것 마냥 동료들에게 자랑거리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찰리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찰리의 분노처럼 그가 아이큐 70일 때도 180이 되었을 때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에겐 찰리가 아무리 똑똑해졌어도 자신들의 실험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보통의 사람도 아닌... 자신들이 만들어 낸 그 무엇이라 여기는 오만함이 역겹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같은 뇌 수술을 거친 실험실의 쥐 앨저넌을 제외하곤 이 실험을 성공시킨 예가 없었음에도 단지 자신들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찰리를 선택한 그들의 이기적인 이유... 즉 이 실험이 혹시 실패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찰리를 선택했을 뿐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이후에 발생할 모든 문제에서 회피하고자 한 그들의 마음이 보여 더욱 화가 났다.

단지 다른 사람들처럼 좀 더 알고 싶고 좀 더 똑똑해지고자 했던 찰리의 마음은 정말 욕심이었을까

밝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긍정적이던 찰리가 뇌 수술 후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면서 점점 더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모습을 보기가 괴로웠다.수술 후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듯 하다.

게다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찰리가 남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해 자신과 가족을 괴롭히다 결국은 찰리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며 자아 분리까지 겪는 찰리를 보면서 찰리에게 뇌 수술은 뭐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저 지금보다 좀 더 잘 읽고 잘 쓸 수 있도록 조금만 머리가 좋아지고 싶다는 찰리의 소원이 이런 일을 당할 만큼 큰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그 사람을 경원시하고 꺼려 해 찰리로 하여금 이런 소원을 품도록 한 사람들의 잘못이었을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조금씩 준비하는 찰리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고 모든 기준을 지능이나 성적에 맞추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지금 읽어도 충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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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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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지금 삶이 힘들거나 불만족스러울 때만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詩도 있을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갈림길에서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 하는 일생이 걸린 큰 고민을 비롯해 매일매일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아마도 작가는 사람들의 이런 안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후회하느라 현재의 삶을 놓쳐버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20대에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었다는 작가의 이력을 보고서 왜 이런 책을 쓰게 된 건지 이해하게 되었다.

30대의 노라는 모든 일에 있어 의욕이 없다.

성공적인 커리어는커녕 일하던 악기점에서도 해고되고 혼자인 그녀의 유일한 반려묘마저 자신의 부주의로 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버린 날 더 이상 이 세상을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죽음을 결심한다.

하지만 눈 떠보니 낯선 공간에서 그녀를 맞이하는 건 오래전 그녀가 모든 것에 희망적이었던 때 자주 찾았었던 도서관의 사서 엘름 부인이었고 그녀의 안내로 노라가 후회되는 선택을 되돌려 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사실 노라의 삶은 언젠가부터 후회의 연속이었다.

약혼자 댄과의 결혼을 이틀 앞두고 파혼을 선택한 일 오빠랑 함께 한 밴드에서 음반회사와 계약을 앞두고 손을 놔버린 일 그리고 수영선수로 올림픽 출전도 가능했지만 중간에 그만둬버린 일등...

다시 한번 그때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노라는 가장 먼저 사랑하는 남자 댄을 거절한 것부터 되돌아가 그와 함께 하지만 그 삶은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차례차례로 평소 자신이 후회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보는 노라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후회했던 삶은 그녀가 원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하고 기대했던 그 사람들이 꿈꾸던 삶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다시 사는 삶의 모습 역시 조금씩 달라져간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되고 몇 번의 삶을 되돌아가 산 노라뿐만 아니라 그녀를 통해 독자들 역시 점점 완벽한 삶이란 뭘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한다.

일견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삶 속에서도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을 뿐 아니라 나름의 굴곡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여태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해 자책하고 스스로를 미워했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는 노라

누군들 살면서 그 순간의 선택을 후회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현재의 삶을 망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어찌해볼 수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 역시 많다.

작가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후회와 미련으로 하루하루 죽어가던 노라를 통해 누군가의 기대나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게 아닌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읽으면서 누군가가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현재 당신은 잘 살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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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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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의 이야기를 가장 심도 있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제시 버튼의 신작 컨페션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으로 살고 싶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군가의 엄마로서 혹은 누군가의 아내로서의 여성이 아닌 오롯이 본인 자신으로서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컨페션은 전작들처럼 긴 호흡으로 주인공들의 삶에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섞어 놓아 그녀들을 따라가면서 숨겨진 이야기의 뒷면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자신이 태어난 직후 떠나버린 엄마의 존재를 항상 그리워하며 알고 싶어 했던 로즈는 어느 날 아빠로부터 은둔하고 있는 소설가인 콘스턴스 홀든과 엄마가 연인 사이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와 함께 엄마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역시 그녀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를 찾으면 엄마의 행방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에 그녀에게 접근하고 싶어 한 로즈는 출판사 측의 오해로 구직자인 척 신분을 숨긴 채 로라라는 이름으로 홀든 앞에 나선다.

2편의 소설 출간 성공 후 은둔한 채 오랜 세월 신간을 내지 않았던 콘스턴스의 소설을 타이핑하는 일을 맡게 된 로즈는 연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일을 하면서 점점 그녀에게 매료된다.

세 사람의 여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는 컨펜션은 로즈와 그녀의 엄마 앨리스의 시점으로 1981년과 2017년을 나눠 전개되고 있다.

두 여자의 중심인 콘스턴스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처음부터 명확하게 알고 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입이었다면 앨리스와 로즈 모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게 뭔지 알지 못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방황하는 타입이었다.

자기 신념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이 뚜렷한 자기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게 앨리스에겐 연인 간의 사랑으로 로즈에겐 애정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두 사람이 콘스턴스에게 매료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시선을 받고 주목을 받았던 스무 살의 앨리스가 어떻게 콘스턴스를 만나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두 사람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게 1981년의 이야기라면 2017년의 이야기는 그런 앨리스의 딸 로즈가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로즈에게는 몇 년째 사귄 연인이 있었고 그 연인은 수년째 사업 구상 중이다.

매번 누군가를 만나고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부잣집 아들이라 남들이 하는 집세 걱정 한 번 한적 없고 경제생활을 하지 않아도 늘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있어 여유롭게 놀고먹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연인을 보면서 로즈는 불만이 쌓여가지만 단 한 번도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이 그저 참기만 할 뿐이었고 누구보다 그녀가 똑똑하고 지금 하는 일보다 나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로즈의 아빠와 절친은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고 자신이 갈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그저 머물러있기만 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던 로즈는 콘스턴스의 곁에 머물며 자신 속에 있던 다른 존재인 로라가 되면서 비로써 조금씩 변해가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은밀한 욕망과 연인 간의 질투와 질시 그리고 숨겨진 비밀을 생생한 캐릭터, 섬세한 심리묘사와 함께 조각조각 섞어놓아 하나의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낸 제시 버튼의 컨페션은 읽으면서 어떤 비밀이 튀어나올지 조바심을 가지고 읽게 만들었다.

이 세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긴 호흡으로 통해 보여주는 컨펜션은 여성이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아름답고 비밀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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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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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라고 하면 어딘지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어디론지 떠나고 그곳에서 찰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오토 질버만의 여행은 다르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여유를 찾고 안식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부터의 도피, 국가와 사람들로부터 도망이었고 그런 이유로 여행 내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다 끝내는 내면이 무너져내린다.

이성과 도덕심을 갖춘 평범했던 한 남자가 서서히 내면에서부터 무너져내리다 끝내는 자신을 놔버리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여행자는 읽는 내내 주인공인 질버만이 느꼈던 감정의 생생한 묘사로 인해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철저히 혼자라는 데서 오는 불안과 외로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중산층 사업가였던 질버만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단지 그가 유대인이었고 하필이면 독일에서 살고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건 지울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도 익히 알다시피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점거한 후 사회적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웃이었던 사람도 동료였던 사람도 심지어 친구였던 사람들조차 냉정하게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그가 가진 재산을 빼앗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질버만과 오랜 친구이자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사업의 동업자가 된 베커가 사업 계약을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 이미 이 둘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분명 동업자 관계이지만 사업주는 질버만인데 그의 돈을 가지고 계약을 하러 가는 베커에게 도박을 하지 말라고 사정을 하는 모습은 여느 동업자 관계와도 다르다. 게다가 질버만을 대하는 베커의 태도 역시 오만하기 그지없다.

단순한 이 장면에서 이미 질버만의 앞으로의 처지가 보이는 듯하다.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 관계였던 베커뿐만 아니다.

그가 가진 집을 사러 온 또 다른 동료는 눈앞에서 보란 듯이 가격을 후려칠 뿐 아니라 그마저도 그의 긴박한 상황을 보고 더 깎으려 한다.사방 모두가 그의 적이다.

게다가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 와 폭력을 행사하는 나치당원들의 횡포 앞에서 아내조차 두고 빈 몸으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질버만이 느낀 무력감과 억울함 그리고 폭력 앞에서 굴복하듯 도망친 자괴감을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연민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말도 안 되는 폭력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그를 도와주거나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데서 오는 절대적인 외로움은 그를 병들게 했다.

친구도 가족도 그에게는 우리가 아닌 그들이었고 그들에 속하지 못한 질버만은 같은 유대인에게서도 위안을 얻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과 자신을 다른 부류로 나눠 그들을 원망하고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려 하며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킨다.

그는 아리아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했고 유대인 사회에 속하는 것 역시 스스로 거부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택한 것이 그가 가진 돈으로 이 곳 저 곳 독일 전역을 떠도는 것이었다.마치 어디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듯이...

질버만이 여기저기 역을 떠돌면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묘사도 그렇고 다양하게 만났던 사람들의 묘사 역시 그렇게 생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작가의 이력이 한몫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저자 역시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으며 가족과 함께 독일을 탈출해 유럽의 여기저기를 떠돌았던 이력이 있었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으로서 받은 박해와 온갖 부당한 폭력 그리고 어디에도 손 내밀 곳 없었던 그 막막함과 두려움의 묘사를 질버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참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여행자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 개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런 폭거 앞에서 저항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역사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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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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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해가는 거리에 LP만 판매하는 뮤직 숍이 있었다.

이곳에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도 혹은 제목은 모르지만 찾고 싶은 음악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특이한 건 자신이 무슨 음악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딱 맞는 음악을 찾아주는 주인이 있었다.

그의 이런 능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안겨주게 된다.

연인의 배신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쇼팽 대신 아네사 프랭클린의 음악을 권하고 육아에 지친 아내와 그런 아내를 보며 같이 힘들어하는 남자에게 아이가 들으면 쉽게 잠들 수 있는 음악을 권하는 식으로...

어쩌면 그가 하는 행위는 단순히 음반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음악을 처방해 주면서 위로와 위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랭크는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줄 알고 그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를 찾는 사람은 많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이미 LP에서 CD로 바뀌고 있었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그의 고집으로 인해 가게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이런 틈에 이 거리를 개발하고자 부동산 개발업자까지 등장한다.

그들로 인해 거리의 사람들은 어수선해지고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협박 같은 낙서 테러가 가해지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프랭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곳 유니티스트리트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있었던 주변의 상인들과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했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프랭크가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고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을 두려워해 다가오는 사랑을 거부하는 소심한 사람이라는 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사랑에 소극적인 이유는 몇 번의 아픔을 거친 탓도 있지만 그 근본에는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랭크의 엄마는 그에게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산을 남겼지만 본인 스스로가 누구에게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탓에 자신의 자식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않았고 어린 프랭크로 하여금 언제나 마음 한편 이 빈 듯한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잦은 사랑의 실패를 본보기로 보여줘 프랭크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잘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일사를 본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졌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고 부정할 뿐 아니라 마침내 스스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땐 어처구니없게도 거리를 두고 짝사랑만으로 만족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녀로 인해 하루하루가 즐겁고 그녀만 생각하면 기쁨으로 충만하면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프랭크

리사 또한 자신이 가진 상처 때문에 프랭크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데 그런 둘의 모습은 요즘 연애하는 세대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어필하는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곁으로 다가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모습은 아주 오래전 내 또래의 연애와 닮아있어 더 공감이 가기도 했다.

마치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음악을 소개하고 그 음악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따뜻하고 예쁜 이야기인데 그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까지 곁들여진 뮤직 숍은 시대적 배경인 1988년의 분위기를 제대로 그려내 나로 하여금 마치 그 시절로 들어간듯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이제는 웬만한 음악은 전부 음원으로 듣는 요즘 LP를 듣다 점점 CD로 변화했을 때 느꼈던 그 당시의 느낌이나 추억이 생각나게 했다.

프랭크가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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