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의 고장난 시간
마가리타 몬티모어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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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아닌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막연하게 생각하면 너무 신나고 재밌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듯하다.

그래서 이런 타임슬립이나 타임워프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자주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타임워프나 타임슬립은 일회성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어느 시대로 혹은 언제 어떨 때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반해 이 책에서의 우나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는지를 모를 뿐 아니라 일회성 단발로 그치지도 않는다.

매년 자신의 생일인 12월의 마지막 날 밤 12시가 지나면 어딘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자신의 나이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새롭게 일상을 시작해야 하고 그 생활을 1년 하다 익숙해지면 또다시 다른 시간대로 타임워프한다.

매번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눈을 뜰 때 느낄 당혹감과 두려움을 매해 느껴야 한다면...

처음 워프를 한 후 우나가 느꼈던 혼란과 두려움의 감정이 십분 이해된다.

더군다나 눈뜨기 전엔 막 19세의 생일을 맞았던 소녀가 눈 떠보니 50이 넘은 중년이 되어있는데다 몸조차 살이 쪄서 자신의 몸이라 느껴지지 않는다면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1년이 지나 다시 눈뜨면 20대 혹은 30대가 되기도 하는 등 자신이 현재 몇 살인지도 모르고 눈뜬 곳이 어딘지도 모를 때의 그 두려움과 막막함을 매번 매해 겪어야 하는 우나

막연히 타임워프하는 능력이 생긴다면 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우나가 겪는 일은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친구라며 다가오기도 하고 눈 떠보니 낯선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라 주장하며 한 집에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우나가 왜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지 십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마치 세상은 다 아는 것을 자신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기분이 아닐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우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매번 새롭게 깨어날 때 곁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우나를 도와준다는 정도와 미래를 알고 있다는 장점을 살려 투자를 해서 재정적으로 넉넉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우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우나의 엄마는 우나가 겪는 혼란을 알면서도 알고 있는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나 역시 처음 워프를 한 이후 매번 워프를 겪으면서 조금씩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바탕으로 후회되는 부분이나 안타까운 부분을 바꿔보려 노력도 했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다른 쪽이 어그러지거나 오히려 처음보다 나빠지는 등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나는 서서히 깨닫는다.

누구도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며 우나는 비록 뒤죽박죽 시간이 뒤섞여 있지만 그 시간 역시 한 번뿐이라는 것을...

비록 남과 달리 순차적으로 살지는 않지만 지금 현재의 시간은 한 번뿐이라는 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타임워프를 하던 그냥 평범하게 시간을 보내던 한 번뿐인 인생... 지금 현재의 삶, 현재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삶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우나라는 다소 특수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겪는 일을 통해 들려주고 있는 우나의 고장난 시간은 타임워프라는 소재의 특성상 가볍거나 로맨틱한 스토리로 흘러갈 거라는 예상을 깨고 제법 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하고 무거운 건 아니고 적당히 로맨틱한 스토리와 타임워프를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을 적절히 섞어놓은 에피소드를 곁들여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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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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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자신의 눈앞에서 아빠가 죽는 모습을 본 충격으로 언제나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여자 케이틀린

그런 이유로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영혼의 반쪽임을 알아봤던 옛사랑 루카를 너무 사랑해서 그를 잃을까 두렵다는 이유로 그에게서도 달아났다.

그렇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그 결혼마저 실패로 끝나고 모든 것을 놔둔 채 그저 사랑하는 개 바크만 데리고 할머니가 사시는 플로리다로 돌아왔지만 할머니 집 역시 예전의 집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로부터 얻은 트라우마를 가진 채 성인이 된 여자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햇살을 향해 헤엄치기는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특별하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착했던 손녀와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평소 먹었던 식단을 모두 버린 채 채식주의자가 되고 운동을 열심히 해 활력이 넘치는 케이틀린의 할머니 나넷은 당연하고 나넷의 오랜 친구이자 영혼의 단짝인 빗시 역시 평범함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삶을 사랑하고 현재를 온전히 즐기는 그녀들을 보면서 일흔이 넘은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트레칭을 하고 수영으로 몸매를 다지고 새로운 연인을 사귀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의 삶과 다른 그녀들의 삶을 보면서 누가 그들을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중간에 그녀들의 나이가 언급됐을 때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다.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아이를 유산하고 배우자의 부정으로 이혼까지 한 케이틀린에게는 이런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녀를 평가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애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할머니들 곁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런 할머니를 위해 케이틀린이 낸 아이디어가 바로 오래전 할머니들이 젊었을 때 했던 인어쇼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특기를 살려 할머니들의 인어의상을 마련하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의 동료들과 연락을 취해

인어쇼를 하기로 하면서 옛사랑이자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있던 루카와도 재회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술술 긍정적으로 풀려가는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케이틀린이 받는 압박감 역시 커져가면서 오래전처럼 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한다.

사실 케이틀린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다.

아직도 아빠가 돌아가신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도 그날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날까 모든 것이 두렵다는 사실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언제나 괜찮은 듯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너무나 예민하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바크와 닮아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되기 직전 그녀가 입양해 온 개 바크는 모든 것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개였다.

사소한 소리에도 겁을 먹고 꼬리를 말며 으르렁거리고 낯선 사람이나 낯선 환경에 처하면 두려움으로 다리를 달달 떨어대는 모습이 안쓰럽고 애처롭기 그지없는 그런 개였다.

아마도 그런 모습...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면서 케이틀린은 자신을 연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바크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씩 변해 여느 개와 같아졌다는 걸 깨닫는 순간 케이틀린 역시 자신의 틀에서 한 발 벗어날 용기를 얻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부모로 인해 삶을 두려워하고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게 된 케이틀린에게 빗 시가 어떻게 죽을 건지만 생각한다면 행복한 이 순간을 얻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순간을 즐기라는 말은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자주 접한 말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을 살아왔던...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은 사람의 삶의 지혜가 곁들여진 말이라 더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할머니들의 에너지와 플로리다의 햇살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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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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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남과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그걸 깨닫는 순간 스스로를 경멸하고 수치스러워했다.

친구를 보면서 느끼는 설렘, 두근거림에 스스로도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가 알까 봐 본능적으로 눈길을 피하고 숨기는 루드비크의 모습은 자신의 성적 취향이 일반 사람들과 다름을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한 행동과 닮아 있었다.

요즘은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고 세계 어느 곳에선 법적으로 혼인도 가능하지만 이 책의 배경은 1980년대 그것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 국가인 폴란드라는 걸 생각하면 루드비크의 입지가 얼마나 좁았을지 짐작이 간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도 없고 한창 사춘기 시절 자신 안에 있는 욕망과 욕구 그리고 불만 같은 뭔가가 들끓고 들끓어 참고 참다 견딜 수 없어지면 공원의 어둡고 외진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 해결하면서 그가 느꼈을 비참함과 비루함... 그럼에도 한순간이나마 해방된 듯한 느낌은 그를 더욱 자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숨기고 숨기려 해도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게 드러나게 된 건 그가 대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간 농촌 특활 활동에서 야누시를 본 순간이었다.

단숨에 그에게 사로잡혀 그가 모를 때 그를 쳐다보면서 가슴 두근거림을 느끼고 그런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여느 연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좋아하면서도 금지된 자신의 사랑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다 그 역시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란 걸 알게 된 순간 마치 모든 걸 손에 넣은 것처럼 행복하고 또 행복해하는 모습은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면서도 그가 사는 곳이 폴란드라는 걸 생각하면 이 사랑의 결말이 눈에 보여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둘의 위태로운 사랑은 사실 결말이 예견되어 있다.

누구라도 짐작하는 것처럼 그건 그들이 사는 곳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핸디캡 때문만이 아니었다

둘은 너무 다른 성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자유연애가 인정되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살았다 하더라도 그 커플의 미래는 밝지 않았을 것이다.

루드비크는 현재의 폴란드 체제를 못 견뎌하고 있었다.

그가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과 학문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심한 이곳이 숨 막힐 듯 답답해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몽상가인 반면 야누시는 국가의 명령에 순응하면서 그 속에서 제 살길을 찾아 빨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지극한 현실주의 자이다

그래서 현체제에 대해 부정적이고 거침없이 비판하는 루드비크를 야누시는 이해하지도 이해할 마음도 없다.

그건 서로를 사랑하고 원하는 마음과는 별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차이는 곧 현실에서 부딪치며 갈등을 빚는다.

책 속에는 금지된 사랑에 괴로워하는 청춘의 모습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80년대 모습... 필요한 걸 하나 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야 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파도 진료소조차 갈 수 없어 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힘이 있는 누군가를 통하면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부조리한 세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 중반까지는 루드비크가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 계기와 이로 인해 그가 겪은 수많은 갈등과 고민에 대해 펼쳐졌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연인과의 갈등을 통해 당시 폴란드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단순히 퀴어 문학으로 취부하기엔 담고 있는 내용이 가볍지 않다.

흥미 위주로 쓰여있지 않다는 점도 그렇고 이중 제약에 힘들어하는 루드비크를 통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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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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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묻는 장례식을 치르면서 시작하는 스페인 여자의 딸은 우리에게는 뉴스로만 들었던 베네수엘라의 참담한 상황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는 어제의 가격과 오늘의 가격이 다를 뿐 아니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암거래 시장을 찾아야 하고 은행마저도 믿을 수 없다.

그마저도 쉽지 않아 생리대 1통을 사기 위해 아델라이다가 접선하듯 돈을 치르면서 이제 피를 흘리는데도 돈이 든다는 냉소적인 독백은 얼마나 그곳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이 안 좋은지 쉽게 설명이 된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여유로웠던 경제의 붕괴는 수많은 사람을 거리로 내몰았고 그 이후에 덮친 살인적인 물가는 평범한 생활을 하기 힘들게 했는데 그런 비교는 아델라이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조국이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혼란 속에서 오로지 엄마와 단둘이서 생활하며 지냈던 아델라이다의 마음속에서 진짜 조국을 버리게 된 시발점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온갖 약탈과 폭력으로 밖으로 나가기조차 힘들었지만 병원에 누워 계실지언정 엄마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조국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은 적었고 오로지 현재를 살아갈 뿐이었는데 엄마가 죽고 혼자 남은 순간 이후부터 그녀의 내면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는 비록 부유하진 않았지만 교사인 엄마와 둘이 생활하면서 늘 책을 가까이하고 직업 역시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인텔리였지만 혁명으로 바뀐 조국은 더 이상 지적인 대화나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로지 필요한 건 체제를 찬성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 즉 자기편만 필요할 뿐 반대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건 폭력과 죽음뿐인 세상

그들은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편을 갈라 서로 반목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눈앞에서 억울한 폭행을 당하거나 그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해도 끼어들 수 없고 모른 척 외면해야만 한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현장이다.

하지만 외면만이 이 혼란과 혼돈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럼에도 아델라이다가 조국을 버릴 결심을 한 건 아니었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집마저 혁명군과 그를 추종하고 따르는 사람들로 인해 강탈당하면서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순간 이웃집의 여자가 죽어있는 걸 발견하면서부터 그녀의 내면이 변화했다.

조국을 버리자...

스페인 여자의 딸로 불리던 여자가 집에서 죽어 있었고 그녀에게 발행된 스페인 여권을 보는 순간 그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오로지 이 지독한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기로 한 아델라이다 역시 쉽게 결정한 건 아니었고 자신이 살기 위해 그녀를 버리면서 죄책감을 가진 아델라이다는 끊임없이 자기혐오와 자기변명을 하며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오로지 살아야 하고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명목적인 믿음을 붙잡고...

조용하고 아름다웠던 조국이 약탈과 폭행으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는 아델라이다는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살며 그런 삶에 만족할 줄 알던 평범한 사람이기에 더욱 그녀가 겪는 폭력과 부당함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멀쩡하게 눈을 뜨고서 자신의 집을 빼앗기고 저항하는 그녀에게 폭행을 가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은 누구도 살아갈 수 없기에 그녀의 선택은 올바르지 않지만 누구도 욕할 수 없다.

스릴러 소설이 아님에도 아델라이다가 처한 상황의 긴박감 넘치는 묘사로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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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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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큰 사건이라곤 있어 본 적이 없는 작고 조용한 마을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엔 은행강도 사건이었다가 범인이 도망치다 한 아파트를 급습... 그곳에 있던 사람들 즉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을 인질로 삼는다.

이렇게만 보면 엄청난 대형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잡혀있던 인질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시시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었다.

문제는...

큰 사고 없이 인질이 쉽게 풀려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질이 모두 떠나고 경찰이 그 집으로 들이닥치기 전 총성이 울린다.

집에는 흥건한 핏자국이 있었지만 죽은 사람은커녕 당연히 남아있으리라 믿었던 인질범의 행방이 묘연한 것

이제 믿을 건 인질로 잡혀있던 사람들의 진술뿐이지만 이 사람들 도대체 협조를 안 한다.

그렇다고 진술을 안 하는 식은 아니고 경찰이 묻는 말에 엉뚱한 말을 하거나 꼬투리를 잡고 늘어져 경찰의 진을 있는 대로 다 빼면서 시간을 잡아먹는다.

인질로 잡혀있었던 사람들은 범인이 잡히지 않길 바라는 걸까?

우리의 시각에선 경찰의 질문에 이런 식으로 협조를 거절하거나 딴죽을 건다는 건 생각도 못 할 발상이지만 그들은 용의자가 아니라는 신분을 이용해 마음껏 경찰들을 농락한다.

이쯤 되자 범인의 정체가 몹시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까지 그를 도와주려 하는 걸까? 단지 그가 처한 상황이 불쌍해서라고 보기엔 그들이 떠안을 위험이 크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그저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경찰의 심문에 하나둘씩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

엇갈린 사람들의 심문을 통해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때론 직접적으로 그 현장에서의 상황을 보여주며 사건을 짜 맞출 수 있도록 단서들을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나 지금 떠안고 있는 고민의 상황이 드러나도록 해서 왜 그들이 범인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조사했던 경찰 父子까지 모두가 우리와 똑같이 혼자만 다른 건 아닐까 혼자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안 그런 척 가면을 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가 두려움을 안고 살면서 안 그런 척 위장하고 살아가는 것은 똑같았다.

오히려 그 아파트에서 인질로 잡혀있는 동안 서로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인질범은 더 이상 나쁜 악당이거나 반드시 잡아야 할 범인이 아니었다.

자신들처럼 어찌해 볼 수 없는 고민을 가진... 그래서 도와줘야만 하는 대상이 된다.

인질범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 곁으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지만 그들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일단 아파트를 둘러싼 많은 경찰과 취재기자들이 모두를 지켜보는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이 가능했을까?

어리숙한 범인 그리고 오히려 그런 그를 도와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이 시대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불안한 사람들은 작가 특유의 유머와 애정이 제대로 표현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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