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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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래전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이 그토록 바라던 불로장생의 꿈이 실현 가능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수이사이드 클럽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세상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른 나이에 남보다 빠른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던 레아가 한순간에 감시 대상이 되고 주변인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된 건 오래전 사라졌던 아빠의 모습을 발견한 뒤부터다.

길거리에서 아빠의 뒷모습을 발견한 순간 정신없이 도로를 뛰어든 결과 그녀가 자살을 원한 것처럼 되어버렸고 그녀 스스로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의심의 눈길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레아는 누구에게도 아빠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세상은 라이퍼와 비라이퍼로 나눠져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수명이 결정된 사회

정부에서는 인구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이퍼가 스스로 영생을 포기하는 걸 묵과할 수 없기에 라이퍼인 레아의 문제를 좌시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직장과 집을 오가는 어디에서든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이 생겼을 뿐 아니라 그런 이유로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상사로부터 불신임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한순간에 그녀가 수십 년간 쌓아올린 커리어가 무너지게 생긴 레아는 아빠를 고발하지 않고서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비밀 클럽 수이사이드 클럽의 내부로 들어가 정부에서 원하는 정보를 주고 자신은 감시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수이사이드 클럽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던 레아는 그곳에서 건강을 위해 금지된 음식 즉 기름지고 지방질의 음식을 먹고 샴페인과 같은 술을 마시며 재즈음악을 들으면서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그 조직이 상당히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제대로 수사를 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레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혜택 즉 곧 실행된다는 소식만 암암리에 퍼져있는 제3의 물결... 좀 더 완벽하게 불로불사에 가까워질 수 있는 그 혜택을 누구보다 빨리 얻을 수 있는 선택된 사람들일 확률이 높은데 왜 그들은 죽고자 하는 건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레아는 좀 더 젊게 살고 이대로 오랫동안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강했기에 반드시 제3의 물결에 합류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했고 그런 이유로 죽음을 원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와 반대의 입장인 안야는 유명한 성악가인 엄마와 유럽에서 건너와 우연히 미국의 변화 즉 제2의 물결의 혜택을 본 후 완전히 몰두해버린 엄마로 인해 여태까지 고통 아닌 고통을 받고 있었다.

탱탱해진 피부와 장기이식으로 인한 젊음으로의 회귀는 엄마로 하여금 거기에 중독되다시피하게 했고 그런 이유로 모든 돈을 쏟아붓게 만들었으며 사랑하던 음악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이식한 장기로 인해 죽지도 않고 오랫동안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로 지내는 엄마를 보는 건 안야에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지만 라이퍼에겐 죽는다는 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사는 것에 지치고 죽지 않는 삶을 버거워하는 안야에겐 수이사이드 클럽이 위안이 된다.

그런 안야를 알게 되고 오랫동안 체제에서 벗어나 도망자로 살았던 아빠를 다시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레아

사실 레아도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항심이 강하고 충동적이며 누구에게 구속되는 걸 싫어하는 아빠를 그대로 닮았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같은 충동이 일어날 때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는걸...

클럽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죽음을 촬영하면서 스스로 원한다고 생각했던 라이퍼로서의 삶에 대해 의문과 회의감을 느끼는 레아는 라이퍼가 아닌 사람들의 삶을 접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인간의 오랜 욕망 중 하나인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 즉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 수이사이드 클럽에서의 삶은 솔직히 부럽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건강과 미용을 위해 육식을 금하고 마치 우주인처럼 셰이크나 정제된 음식을 먹고 음악 같은 취미생활마저 정부에서 권하는 걸 하는 삶을 살아야 영원불멸의 삶을 살수 있도록 선택된다면 그냥 비라이퍼로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라이퍼의 삶이 선택받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형벌처럼 족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모든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원히 사는 삶에 대해 권태와 무기력을 느껴 죽음을 원하는 클럽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어쩌면 모든 것이 무한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찰나의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스릴러적인 요소보다 디스토피아에 더 중점을 둬서인지 진도가 팍팍 나가는 건 아니었고 레아를 비롯한 캐릭터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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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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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를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고 밤낮없이 경계를 서는 이곳에 2년간 경계병으로 의무를 다 하기 위해 온 남자 조셉 카바나

벽 위에서의 근무 중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12시간 동안 혼자서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경계를 서야 하는 것이다.

만약 끊임없이 벽을 넘어 이곳으로 오기 위해 시도하는 상대를 놓친다면 그곳을 지켜야 했던 경계병들은 벽을 넘어온 상대의 수만큼 이곳에서 상대가 넘어온 바다로 추방되고 그것은 곧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걸 의미하기에 한시도 경계의 눈길을 놓쳐선 안된다.

이렇게 음산한 모습을 그리고 있는 더 월의 배경은 섬 전체를 둘러싼 장벽을 두고 지키려는 자와 넘어오고자 하는 사이의 목숨을 건 투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켜내지 못하면 자신이 쫓겨나야 하는 만큼 서로에게 절실한데도 카바나가 지키는 벽의 모습은 조용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그래서 웃음기 없이 엄격하게 규율을 강조하는 대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바다를 보며 경계를 서는 모습은 긴장감이 별로 없었는데 이런 분위기가 변한 건 카바나가 몇 번의 휴가를 얻고 보초를 서는 것에 익숙해질 즈음 궂은 날씨를 틈타 상대가 침입해오면서이다.

상대 역시 생존이 달린 문제다 보니 그만큼 절박하기 마련이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만 상대의 침입을 눈치챈 카바나의 빠른 판단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이로 인해 팀은 훈장을 받게 되지만 당연하게도 카바나 일행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드러나는 벽이 가진 의미와 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언젠가부터 줄어든 한정된 자원을 두고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 이로 인해 섬 전체를 둘러싼 벽이 생겼으며 이런 환경을 만든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은 부모 자식 간을 멀어지게 만들었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출산을 기피했으며 2년간 벽에서 보초를 서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지키려는 자도 벽을 넘어서려는 자도 기성세대도 현재의 세대도 모두가 벽을 세우고 서로를 향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암울하기 그지 않지만 지금의 우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부터 자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가 서로를 향해 무역의 벽을 높이 세우기 시작했고 빈부의 차이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빨리 변해가는 세상으로 인해 세대 간의 벽도 두꺼워져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섬 전체를 둘러싸 콘크리트로 벽을 세워 바다로부터 오는 상대를 목숨 걸고 지키는 모습이 난민이나 이민자를 향해 세운 날카로운 경계 같기도 하고 고갈된 자원으로 인해 추위에 떨고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을 해야 하는 모습은 한정된 자원과 자연을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사용하는 우리의 미래를 향한 경고로 보인다.

카바나 일행이 추방되어 상대의 입장에 설 것이라는 건 당연히 예상한 결과였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석유가 없고 전기가 없어 어둠과 추위 속에 떨면서 바다를 떠도는 모습도 그렇고 그런 이유로 음식조차 익혀 먹지 못해 아주 오래전 원시시대를 사는 사람처럼 날 것으로 먹어야 하는 모습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낯설게 느껴졌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늘 우리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전기나 불이 없다면 이런 방식의 음식 섭취는 당연하다. 그렇게 보면 카바나 일행이 처한 상황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나마 남은 걸 차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총을 겨누고 약탈하는 해적의 등장은 작게 남은 희망의 불씨마저 꺼트릴 정도로 암울하게 느껴지는데 단순히 그들이 처한 모습을 그린 것만으로도 소설 속 미래의 모습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수 있다.

소설에서는 물리적으로 콘크리트로 벽을 세워 외부로부터의 모든 접근을 막는다는 설정이지만 지금 현재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그렸다는 걸 알 수 있기에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카바나처럼 언제든 내가 상대가 될 수도 있음을...작가가 말하고자하는 건 이런게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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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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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100 단어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세상에 산다는 건 얼마나 답답할까

게다가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제재를 가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여자들의 팔에 족쇄를 채우고 100 단어 이상의 말을 하면 전기 충격이라는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 여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그런 강요된 여자들의 침묵으로 그들은 뭘 얻고자 하는 걸까 들여다보면 아주 오래전처럼 여자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여자들에게서 자긍심을 뺏고 일자릴 뺏음으로 해서 경제적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저 남자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기를 바란다.아주 오래전의 중세처럼...

그러기 위해선 여자들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자기주장을 할 수 없도록 단어를 제약하면서 남자들이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게 한다.

이 모든 게획을 추진한 사람들은 교활하게도 남녀가 서로 편을 갈라 싸우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맡은 언어인지 프로젝트의 커다란 성과를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던 날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손목에 그날 쓸 수 있는 단어의 양이 정해진 족쇄 즉 카운터를 차고 모든 연구에서 손을 떼고 강제적으로 가정주부로서의 삶만 살 수 있게 된 진 맥클렐런 은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한동안 믿을 수 없었다.

그전부터 이렇게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 즉 남자는 바깥에서 일을 하고 여자들은 집을 가꾸고 요리를 하고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는 일만 허락받았던 그 오랜 옛날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종교지도자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듣기엔 터무니없는 소리라 생각해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친구 재키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보기엔 그 결과가 너무 참담했다.

십대의 아들인 스티븐이 언젠가부터 학교 과목에서 배우기 시작한 종교과목은 그 내용이 진이 보기엔 심하게 남녀 불평등적인 내용일 뿐 아니라 성의 역할이 왜곡된 형태였지만 그 수업을 선택하지 않으면 될 거라고 쉽게 무시했었고 어느새 스티븐은 그 내용에 심하게 몰입되고 세뇌된 상태가 되어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친구 재키가 수차례 한 경고대로 그들은 처음엔 학생들의 수업에 조금씩 그런 내용을 가르치기 시작하다 이에 반응하고 호응하는 남자들이 많아지자 단숨에 여자들의 모든 것에 간섭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입까지 막아버렸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아이마저 제대로 말을 배우기 전부터 침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못 견딜 즈음 이 모든 사태를 불러일으킨 대통령의 형이 쓰러져 말을 못 하는 상황이 되고 언어인지 전문가인 진의 도움이 필요해진 정부는 그녀에게 조건을 들어 프로젝트를 완성시켜주길 원한다.

하루아침에 여자들을 강제로 침묵시키고 중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일도 자유도 심지어 선거권도 아무런 권리는 없는 상태로 만들어 남자들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든 세상이라는 설정은 확실히 신선할 뿐 아니라 도발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들에게 많은 제약을 하고 남자들의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여느 종교가 생각난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주장 역시 남자와 여자는 태초부터 다르게 태어났기에 맡은 역할도 다르다는 것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눈에 그들의 주장은 그저 남자들을 위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초반은 당당하고 똑똑했던 진이 지금 상황에 얼마나 좌절하고 힘들어하는지를 보여줬다면 중간으로 갈수록 왜 이런 상황이 초래하게 된 건지 그 이유에 대한 고찰과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단지 진의 고민이 너무 길었던 것인지 제목에서 보여준 여자들의 강력한 반격이나 의지가 생각보다 소소할 뿐 아니라 너무 뒤에 가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심지어는 여자들의 힘이 아닌 많은 부분을 남자들의 도움을 얻어서 이룬 성과라는 부분도 맘에 걸렸다.

그런 이유로 책 초반부는 신선한 소재로 단숨에 책에 몰입하게 했고 진이 협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던 중반부에서는 그녀가 곧 뭔가 방법을 찾아내 반격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면 그 이후에는 별다른 한 방이 없이 다소 늘어지다 마지막의 결과 역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치밀한 작전으로 완벽한 뒤집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울 책이지만 신선한 소재와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 책으로만 본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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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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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독특한 소설이었다.

한 남자가 끊임없이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이렇게 저렇게 교배를 시도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터부시 되는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근친상간도 종족과 인종 따위도 모든 것을 무시한 채 그들이 각자 지닌 특별한 능력에만 초점을 맞춰 남자가 가진 능력과 여자가 가진 능력을 서로 교배하면 어떤 능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까에만 모든 관심과 초점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남자의 이름은 도로

그는 왜 이렇게 이상한 일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건지를 알려면 그가 가진 특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는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변이를 일으키면서 자신을 비롯한 모두를 죽게 한 후 그저 영혼만이 살아남아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아서 수천 년을 죽지 않고 살아왔다.

어쩌면 그는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는 인식조차하지 못한 외로움과 혼자라는 절대적인 고독을 피하고 싶어서...

수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면 자신의 자식이나 그 자식의 자식들도 다 죽는데 혼자서만 살아있는다는 건 생각만큼 행복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권력자들은 영생을 꿈꿨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수천 년을 떠돌면서 자신과 같이 죽지 않는 사람을 만들고자 이런저런 조합을 끊임없이 시도하던 그의 눈에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능력을 지닌 아냥우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토록 만들고자 한 사람과 닮아있으면서도 보다 더 완전체에 가까운... 어쩌면 그의 아들이자 그런 그를 사랑했던 아이작의 말처럼 도로의 완벽한 짝인지도 모르지만 도로는 수천 년을 살면서 지혜도 수천 년이 쌓인 건 아니었던 듯 그런 그녀를 다른 사람과 같이 노예처럼 취급하고 명령하는 결정적인 어리석은 행동으로 둘 사이를 완전히 틀어지게 만든다.

그 여자 아냥우는 도로만큼 긴 세월을 산 건 아니지만 그녀 역시 수백 년을 죽지 않고 살아왔으며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하는 치료사이자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성애가 강한 여자였다.

도로와 만나고 그가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만들자는 유혹에 혹한 것도 잠시 그가 취하는 인간적이지 못한 방법에 거부감을 가지고 저항하지만 도로는 누구의 저항도 용납하지 못하는 잔인한 지배자였기에 그의 명령대로 그의 아들인 아이작과 결혼한다.

도로의 결정적인 실수는 아냥우를 자신에게 복종하고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치는 그가 만든 종족들과 같은 취급을 하고 그녀를 그녀 자체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실수로 인해 오로지 전 세계에서 단 한사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과 영원히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를 잃어버린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사람들을 교배시키고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소모적인 일을 지치지도 않고 싫증 내는 일도 없이 하고 있는 도로를 보면 그는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영원한 삶도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라면 그런 삶은 오히려 형벌이 아닐까 싶지만 수천 년을 그런 식으로 살면서 조금씩 마모되어 버려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도로는 자신이 텅 비어버린 빈 껍데기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아이작이 그에 느낌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SF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에 유일하게 둘뿐인 자신들을 몰라보고 서로를 미워하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모습이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하지만 긴 세월을 거치면서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노예를 사고팔고 흑인을 대하는 너무나 잔혹한 모습을 통해 인종차별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그리고 흑인이든 백인이든 인종을 불문하고 인간이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자유의 모습을 야생종으로서 끝까지 살아남아 변할 것 같지 않은 도로를 변화시킨 아냥우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일단 소재도 독특하고 흥미로워 도대체 이 남녀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왜 온갖 장벽을 넘어 SF계의 그랜드 데임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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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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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익히 소문은 들었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몰랐던 삼체

이번에 3부 완간 기념으로 다시 나온 삼체 1을 읽었는데 솔직히 쉽지 않은 내용이라 진도가 죽죽 나가지 않았지만 어려운 부분을 대략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 이후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가 심오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디지털화 기계화가 대세를 이루면 늘 반사적으로 아날로그를 찾고 또 첨단화된 문명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또 문명화의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을 인간을 위하고 모두가 잘 살기 위함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과 그 외 살아있는 것과 차이가 없음을... 그저 지구라는 환경을 같이 빌려 쓰는 존재들이라 믿는다.

그래서 인간이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하는 모든 자연훼손에 저항하고 거부하며 더 강한 반대를 하는 사람은 인간을 지구라는 환경에 빌붙어 살면서 모든 것을 빼앗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 삼체는 그런 사람들... 즉 인류에게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을 뿐 아니라 지구에 사는 다른 모든 생명체를 위해서라도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구가 아닌 저 먼 우주의 외계에서 온 생명체의 힘을 빌려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세력과 이들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싸우는 세력 간의 긴 전쟁을 다루고 있다.

소재만 봐도 평범하지 않지만 1권에서는 그들 즉 반인류파가 인류를 쓸어버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만든 치밀한 전략을 이제서야 겨우 그 실체를 파악한 사람들의 경악과 충격 그리고 공포를 느끼며 허둥대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다음 편에서 더욱 치열해진 그들을 맞아 어떡해서든 인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맞붙어 치열하게 대립하거나 아니면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는 모습이 담겨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왕먀오에게 누군가가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은 그도 알고 있는 과학의 경계라는 학술단체에 대해 묻고는 그 단체에 속한 사람들 중 몇몇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중 그도 알고 있던 양둥이라는 물리학자의 자살은 왕먀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그 단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접촉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 거대 전쟁과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왕먀오의 눈에는 다른 평범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숫자 즉 카운트다운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은 이 세계에서 평안한 잠을 잘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는 이제 인류의 사활을 건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왕먀오가 만난 양둥의 엄마 예원제는 문화혁명 당시 눈앞에서 아버지가 인민들에 의해 맞아 죽는 것을 봐야만 했고 믿었던 남자의 배신에 의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며 수백 년을 살아온 수많은 나무가 몇십 분 만에 사람들에 의해 벌채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장에 있었다.

그래서 어느덧 인류에게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존재 의미도 모르는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외계에서 온 회신은 그녀로 하여금 거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금의 인류 즉 모두에게 해를 끼치고 심지어 동족에게도 해가 되는 벌레 같은 인류를 우리보다 앞선 문명을 가진 외계인의 도움으로 쓸어버리고 새로운 지구를 만들자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 즉 과학자들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버린다.

그 결과가 연이은 물리학자들의 죽음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디스토피아를 다룬 여느 영화나 소설이 생각나지만 그런 것과 삼체는 방법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들이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인해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거나 이에 대적할만한 능력으로 인간 중심 세계를 뒤집거나 혹은 핵의 폭발 혹은 핵 전쟁과 같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부른 대참사로 인해 재앙을 맞는다면 삼체에서는 아예 존재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외계인을 끌어들여 인류와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일단 다음 편을 읽지 않아서 진짜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를 침공할지 그리고 그 존재가 등장할지 궁금하고 뒤편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우주의 온갖 법칙과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논리의 허점을 짚어내 분위기를 바꾸는 능력이 있는 스창이라는 인물의 활약상도 기대된다.

어쩌면 문명과 발달된 과학도 벌레를 퇴치하지 못했다는 스창의 말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복선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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