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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사이드 클럽 ㅣ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평점 :
그 오래전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이 그토록 바라던 불로장생의 꿈이 실현 가능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수이사이드 클럽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세상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른 나이에 남보다 빠른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던 레아가 한순간에 감시 대상이 되고 주변인으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된 건 오래전 사라졌던 아빠의 모습을 발견한 뒤부터다.
길거리에서 아빠의 뒷모습을 발견한 순간 정신없이 도로를 뛰어든 결과 그녀가 자살을 원한 것처럼 되어버렸고 그녀 스스로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의심의 눈길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레아는 누구에게도 아빠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사는 세상은 라이퍼와 비라이퍼로 나눠져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수명이 결정된 사회
정부에서는 인구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라이퍼가 스스로 영생을 포기하는 걸 묵과할 수 없기에 라이퍼인 레아의 문제를 좌시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직장과 집을 오가는 어디에서든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이 생겼을 뿐 아니라 그런 이유로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상사로부터 불신임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한순간에 그녀가 수십 년간 쌓아올린 커리어가 무너지게 생긴 레아는 아빠를 고발하지 않고서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비밀 클럽 수이사이드 클럽의 내부로 들어가 정부에서 원하는 정보를 주고 자신은 감시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수이사이드 클럽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던 레아는 그곳에서 건강을 위해 금지된 음식 즉 기름지고 지방질의 음식을 먹고 샴페인과 같은 술을 마시며 재즈음악을 들으면서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그 조직이 상당히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로 이뤄졌을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제대로 수사를 하기 힘든 위치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레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혜택 즉 곧 실행된다는 소식만 암암리에 퍼져있는 제3의 물결... 좀 더 완벽하게 불로불사에 가까워질 수 있는 그 혜택을 누구보다 빨리 얻을 수 있는 선택된 사람들일 확률이 높은데 왜 그들은 죽고자 하는 건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레아는 좀 더 젊게 살고 이대로 오랫동안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강했기에 반드시 제3의 물결에 합류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했고 그런 이유로 죽음을 원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와 반대의 입장인 안야는 유명한 성악가인 엄마와 유럽에서 건너와 우연히 미국의 변화 즉 제2의 물결의 혜택을 본 후 완전히 몰두해버린 엄마로 인해 여태까지 고통 아닌 고통을 받고 있었다.
탱탱해진 피부와 장기이식으로 인한 젊음으로의 회귀는 엄마로 하여금 거기에 중독되다시피하게 했고 그런 이유로 모든 돈을 쏟아붓게 만들었으며 사랑하던 음악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이식한 장기로 인해 죽지도 않고 오랫동안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로 지내는 엄마를 보는 건 안야에게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지만 라이퍼에겐 죽는다는 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사는 것에 지치고 죽지 않는 삶을 버거워하는 안야에겐 수이사이드 클럽이 위안이 된다.
그런 안야를 알게 되고 오랫동안 체제에서 벗어나 도망자로 살았던 아빠를 다시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레아
사실 레아도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항심이 강하고 충동적이며 누구에게 구속되는 걸 싫어하는 아빠를 그대로 닮았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같은 충동이 일어날 때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는걸...
클럽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죽음을 촬영하면서 스스로 원한다고 생각했던 라이퍼로서의 삶에 대해 의문과 회의감을 느끼는 레아는 라이퍼가 아닌 사람들의 삶을 접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인간의 오랜 욕망 중 하나인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삶... 즉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고 있는 수이사이드 클럽에서의 삶은 솔직히 부럽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건강과 미용을 위해 육식을 금하고 마치 우주인처럼 셰이크나 정제된 음식을 먹고 음악 같은 취미생활마저 정부에서 권하는 걸 하는 삶을 살아야 영원불멸의 삶을 살수 있도록 선택된다면 그냥 비라이퍼로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라이퍼의 삶이 선택받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형벌처럼 족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모든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원히 사는 삶에 대해 권태와 무기력을 느껴 죽음을 원하는 클럽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어쩌면 모든 것이 무한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찰나의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스릴러적인 요소보다 디스토피아에 더 중점을 둬서인지 진도가 팍팍 나가는 건 아니었고 레아를 비롯한 캐릭터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