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열 번째 여름
에밀리 헨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해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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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남녀 간에 우정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서로가 가장 친한 친구 이상이면서도 자신들의 감정을 모른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인데... 이건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이고 이런 이야기가 먹히는 걸 보면 사람들이 은근 친구에서 연인으로 가는 설정을 좋아하고 선호하는 것 같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얼마나 진부하지 않게... 그리고 어떻게 그토록 자신의 감정을 모른 채 지내 올 수 있었나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만 제대로 해 준다면 괜찮은 로맨스 소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에 나오는 두 사람 즉 파피와 알렉스 커플은 두 사람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연인 관계처럼 보인다.

뉴욕에서 잘나가는 잡지사에 근무하는 파피는 언제나 에너지 넘치고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그야말로 적극적인 행동파이자 에너자이저... 그리고 여행 가는 걸 누구보다 즐기고 사랑한다.

이에 반해 알렉스는 보수적인 기질이 강하고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준 것처럼 누군가를 케어하고 보호하는 일에 능한 선생님이다. 물론 여느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처럼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에 끝내주는 몸매는 덤

얼핏 봐도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성향의 두 사람이지만 우연히 같은 대학에서 만나 귀향길에 카풀 한 걸 계기로 서로 점점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새 여름휴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보내는 사이가 된다.

여행을... 그것도 여름휴가를 매번 같이 보낸다는 건 친구 사이에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도 두 사람은 각자에게 연인이 있는 상황에서도 이 전통은 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런 그들을 이해해 줄 연인은 없었고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아직도 싱글이지만 자신들은 절대로!! 네버!! 이성의 감정이 없는 오로지 친한 친구이자 여행의 단짝이라고만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도 그럴싸한 것이 10년의 세월을 늘 함께 휴가를 보내고 같은 방에서 자도 아무런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에게는 꾸준히 연인이나 썸을 타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렇게 절대로 깨어질 일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2년째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파피는 그토록 좋아하던 여행이 어느 순간 재밌지도 설레지도 않는다는 걸 깨닫고 친구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언제부터 즐겁지 않은지... 마지막으로 즐겼던 때가 언제인지 거슬러 올라가다 불현듯 그 이유를 깨닫는다.

이후 조심스레 알렉스에게 연락을 시도해 다시 한번 두 사람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지금 현재 슬럼프에 빠진 파피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알렉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좌충우돌적인 올해의 휴가와 과거 10년간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거슬러 내려오는 방법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왜 그들이 멀어지게 된 건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언제나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알렉스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무너져 내리던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두려워해 사랑을 멀리하고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걸 즐거워하던 파피는 학창 시절의 괴롭힘이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트라우마가 되어 어떤 사람과 진지한 관계가 되는 걸 겁내하고 있었다.

결국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 가 아니라는걸...

서로를 사랑한다면 내면의 상처를 숨겨서는 안된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두 사람만의 경험을 쌓아갔던 과거의 추억 이야기가 무엇보다 좋았다.

유쾌하며 달콤한... 로맨스의 전형을 따라간 이야기

뜨거운 요즘 같은 때 읽으면 좋을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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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와 헤이즐이 절대 사귀지 않는 법
크리스티나 로렌 지음, 김진아 옮김 / 파피펍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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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이엔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는 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문제 중 하나다.

나 같은 경우는 절대로 친구 사이가 될 수 없다는 쪽인데 두 사람 중 누군가는 감정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둘 사이엔 언제든지 성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조쉬와 헤이즐이 절대로 사귀지 않는 법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 사이 즉 서로에게 온갖 꼴을 다 보인 관계였지만 어느 한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헤이즐은 감정에 솔직하고 다소 엉뚱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발랄한 여자다.

그런 헤이즐의 절친인 에밀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오래전 대학 때 자신이 첫눈에 빠졌던 조쉬와 10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아뿔싸!!

조쉬가 에밀리의 오빠였다니...

자신의 온갖 흑역사... 술을 먹고 조쉬에게 구토를 했던 일을 비롯해 조쉬의 룸메이트랑 거사를 치르는 장면을 들켜버린 일 등등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일을 전부 다 알고 있는 남자가 바로 조쉬였다.

더군다나 그는 대학생 때부터 완벽하게 보이던 모습이 이제는 성숙미를 더해 섹시함까지 갖춘 그야말로 꿈같은 남자가 되어 헤이즐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헤이즐이지만 남자들은 그런 헤이즐의 겉모습만 보고 다가왔다 이내 떠나가며 상처를 준 경험뿐이어서 어느새 연애는 쉽게 해도 사랑에는 소극적으로 변해버렸고 자신이 조쉬와 오랫동안 함께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사귀는 사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게 그런 결심만으로 된다면 세상의 연애 중 절반 이상은 쉬워질 터... 언제나 자상하면서 친절하고 사려 깊은 조쉬의 모습에 헤이즐은 점점 빠져들게 된다.

조쉬 역시 2년을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쳤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충격에 의기소침해 있는 자신을 데리고 나가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소개팅까지 주선해 주는 헤이즐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엉뚱하고 술을 먹으면 귀여운 사고를 치기 일쑤인 말썽꾸러기 헤이즐이 귀엽게 보일 뿐 만 아니라 씩씩하고 유쾌한 겉모습 뒤에 남자들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는 여린 마음의 그녀가 신경 쓰이고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의 섹시함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 후로 더 이상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두 사람의 삽질은 한동안 계속된다.

이 두 사람의 연애는 과연 어떻게 될까?

친구사이로만 알던 남녀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를 이성으로 자각하다 한순간에 사고를 치지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고민하던 중 별 볼일 없던 연애도 한순간에 불타오르게 할 수 있는 연애의 최강 치트키인 라이벌이 등장해 갈등을 고조시키다 서로의 진짜 감정을 확인한다는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고 섹시했다.

아무래도 어른들의 로맨스다 보니 성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런 부분까지 적당히 야하고 적당히 달콤해서 오랜만에 만족스럽게 본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문장도 감각적이며 대화체 위주로 되어 있어 톡톡 튀는 듯한 젊은 감성의 이 로맨스 소설은 일단 조쉬가 한국계라는 점도 더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외국인이 쓴 로맨스 소설에서 한국 남자가 최강의 섹시하고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 되는 날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에서 우리의 위상이 높아진 걸 이런 데서 느낄 줄이야...

엉뚱녀 헤이즐과 완벽한 매력남 조쉬의 엉뚱하지만 달콤한 로맨스...

달달하고 로맨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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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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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아쉬움, 미련, 후회와 같이 뭔가 못다 한 것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만약 그 마지막의 대상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알고 있고 단 한 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가장 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니 그런 순간이면 사랑한다 고맙다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어쩌면 사고로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정부터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단단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도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이 책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승과 저승의 끝인 기차역에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사람과 남은 사람이 만나 못다 한 말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설정이고 책 속에서는 4편의 죽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곧 결혼을 앞둔 오랜 연인의 이야기이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쉽게 사람과 친해지지 못해 외톨이 생활을 하거나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듯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자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은 여자 역시 그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사는 넉넉지 않은 형편의 그녀를 아이들은 따돌리거나 놀리기 예사였고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잃고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었던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기차역 이야기에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다는 열망에 열차에 오른 후 삶의 희망을 찾는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이 죽으려고 한 날 우연히 손을 내밀어 준 그녀의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열차 사고로 그녀를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사고가 났던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의 아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실린 두 번째 에피소드 아버지에게였다.

아버지의 옷에 묻은 기름이나 허름한 옷차림이 늘 부끄러웠던 아들은 그런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종합상사에 들어갔지만 현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사수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계속 지적을 당하고 사소한 잘못에 비웃음을 받으며 몇 개월을 보내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새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결국은 회사를 뛰쳐나오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도 사람과의 교류가 쉽지 않아 그곳마저도 때려치운 채 근근이 버티던 중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고향집에서 들은 아버지에 대한 평가는 그가 생각했던 거랑 완전히 달랐다.

언제나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와서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계셨을 뿐 아니라 주변에서 아버지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이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깨달은 후 남자는 기차를 타 아버지를 만날 단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고 그 만남에서 자신이 그토록 외면했던 아버지가 자신이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다시 일어설 거라는 걸 믿고 계셨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과 더불어 다시 한번 더 도전해 볼 용기를 얻게 된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남은 사람의 슬픔과 후회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와 위안을 주고 있다.

설정 자체만 보면 진부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 가슴 아픈 사연을 보다 보면 그 사람들의 사연에 공감이 가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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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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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자살을 기도한 사람도 어쩌면 너무나 살고 싶었을 것이라는 어느 정신과 전문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너무 슬펐다.

그 사람이 그토록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 곁에 있어 준 사람이 없다는 것이... 누구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펐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조금은 특별한 삶을 경험했던 듯하다.

소설의 내용이 자전적인 부분이 많다는 후기를 보면서 왜 일본에서 이 작품이 인터넷 소설로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지금 현재의 삶이 힘들거나 괴로운 사람들이 볼 때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고교를 졸업했지만 지금 하는 일도 없고 친구조차 한 명 없이 이 세상에 혼자인 듯 살아가면서 하루하루가 의미 없었던 아이바... 그는 그저 죽고 싶다는 마음뿐 이었다.

삶의 의욕도 없고 의미도 없이 살아가다 죽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려던 차에 사신을 만나고 그 사람과 죽음의 계약을 하지만 죽음이 3년 후로 미뤄졌을 뿐 당장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그 대신 3년 후 완벽한 죽음을 보장받았고 그에게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장치 즉 시간을 24시간 전으로 돌릴 수 있는 시계를 손에 넣었을 뿐이었는데 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한 소녀의 생명을 구하면서부터 아이바의 삶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소녀 이치나세는 이제 겨우 중학교 3학년이지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너무나 강해 아이바는 한 눈을 팔 틈도 여유도 없다.

잠시 한 눈을 팔면 어김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그녀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죽음을 이토록 절실하게 막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누구도 그 아이를 도와주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도 그 아이 곁에 없다는 데서 자신과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는 아이바는 어쩌면 그녀를 구하면서 자신을 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20번이 넘는 이치노세의 자살을 되돌리면서 그 아이로부터 스스로 죽고자 하는 마음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아이바는 그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같이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바다도 보고 축제도 가면서 오롯이 두 사람의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두 사람은 이제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이제 겨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이지만 아이바에게는 이미 죽음의 시간이 예약된 상태...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고 있는 아이바는 이제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해진 이치나세 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게 하기 위해 그녀가 자신을 떠나도록 밀어내면서 노력하지만 갓 부화한 새끼가 엄마의 뒤만 쫓듯 자신을 몇 번이나 죽음으로부터 구해주고 자신의 곁에 있어준 아이바를 마음 깊이 각인하고 있는 이치나세는 어떤 말과 행동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바 역시 그녀가 스스로 떠나는 걸 보는 것도 자신이 그녀의 곁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에게도 이 세상에 오직 이치노세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아이바와 겨우 고등학생이 된 이치노세가 그토록 죽음을 원한다는 사실이 솔직히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쩌면 가장 순수해서 더 쉽게 상처받았고 더 깊이 절망하고 힘들어했는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과 절망에 괴로워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는 오래전 그 어떤 조건이나 제약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바라봤던 첫사랑이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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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길을 잃다
엘리자베스 톰슨 지음, 김영옥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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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맨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아무래도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난 데서 오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말랑말랑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해서 평소보다 더 감수성이 폭발하는 것도 낯선 여행지에서 쉽게 사랑에 빠지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여행지가 여자들이 로망으로 간직하는 파리라면...?

제인 오스틴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여행 가이드 해나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별다른 불만이 없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을 버려둔 채 마음대로 살던 엄마 말라와는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런 엄마가 긴급하게 연락을 취해오고 해나는 불길한 예감을 하게 되지만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는 사건이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엄마와 자신에게 남긴 집을 정리하던 중 있는지도 몰랐던 증조할머니의 파리 아파트 문서를 발견했으며 그 아파트가 이제 두 사람의 소유라는 말라의 말을 듣고 믿을 수 없어 하는 해나

매사 충동적이며 자유분방하고 감정에 솔직한 엄마 말라는 당장같이 파리의 그 아파트로 가보자고 하지만 언제나 신중하고 계획적인 해나는 선뜻 찬성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파리 아파트의 상속세를 걱정하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해나를 끌고 파리로 가게 된 건 순전히 말라의 추진력 때문

하지만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증조할머니의 아파트의 문을 연 순간 그 집과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집안에서 발견된 증조할머니 아이비의 다이어리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증조할머니의 연애사를 보게 되었다는 것...

늘 할머니로만 기억했던 증조할머니의 젊은 시절 뜨겁고 아름다웠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면서 해나는 점점 더 그 집에도 할머니의 사연에도 매료되고 결국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로맨스 소설의 요소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떤 계기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에게 끌리고 그런 끌림이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리고 평탄하던 연애는 라이벌의 등장 혹은 어떤 갈등 요인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면서 괴로워하다 극적인 화해와 더불어 해피엔딩~

이렇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플루트일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놨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메마른 가슴에 설렘을 안겨주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간절히 바라게 되기도 하는 데 이 작가는 과하지 않은 감정의 표현과 담백한 문체로 시대를 넘어선 두 여자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두 사람에게는 수십 년의 세월 차가 있음에도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지를 몰라서 애태우고 고민하는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달콤한 로맨스에다 극 중에서 너무나 다른 성격 때문에 늘 갈등을 빚는 해나와 말라 모녀의 심리 역시 제대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화해하는 과정까지 큰 무리 없이 이끌고 있다.

로맨스나 모녀 사이의 갈등을 제외하고서도 내용 중에 파리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기인 1930년대를 아이비의 다이어리를 통해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데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대의 가장 빛나던 예술가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츠제럴드 등등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걸 보면 당시의 자료나 인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듯 보이는 데 작품과 잘 어우러졌을 뿐 아니라 작품을 돋보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예술이 찬란하게 꽃 피던 시기에 급작스럽게 맞은 전쟁 중에 예술가들과 당대의 지성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연애관은 지금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 지도 흥미롭게 비교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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