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받으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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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라는 책을 아무런 정보 없이 읽고는 후덜덜했던 기억이 있어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이번엔 또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기대가 컸다.

전작이 워낙 강해서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예상을 한 덕인지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인 빙의니 신들린 이야기 같은 소재를 이용해 작가 나름대로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오컬트적인 소재나 빙의같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소재로 다루는 작가라는 기억은 하게 될듯하다.

상갓집에 가서 재수 없게 살을 맞은 후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다룬 살과 달리 이번에는 대를 이어오는 저주에 대한 이야기여서 닮은 듯 다른 이야기이다.

1836년 섭주에서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처형이 결행된다.

처형당한 이는 장일손이라는 이름의 남자로 그의 죄명은 나라에서 금한 천주교를 믿은 죄라 하지만 진실은 그가 사술을 행해 원하는 사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는 사교의 교주이고 이를 아는 마을의 현령 김광신이 그를 즉결 처형한 것인데 장일손이 죽으며 그에게 어마어마한 저주를 내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현재 1976년 섭주에는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해주려 열심히 포교활동 중인 김정균 목사가 마을 사람들과 겪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의 중심은 마을 무당의 딸 묘화가 성령을 받았다 주장하면서부터 벌어지는 일이다.

그전까지는 모든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과 외면을 받는 걸로 모자라 묘화가 교회에 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조차 없도록 막았던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는 기적을 본 후로는 맹목적으로 그녀를 믿고 받들려는 사람과 이제까지 그녀를 꺼렸던 그대로 그녀의 기적을 절대로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마을에서 신임이 두텁던 목사 정균이 갈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 묘화와의 만남을 꺼리는 이상한 태도는 그들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것으로 작용하는데 그가 이렇게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동안 묘화는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꿈에 나타나 저주를 퍼붓고 그 꿈이 실현되어 한 아이가 죽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갈등은 폭발하기에 이른다.

묘화가 그 아이 즉 이미 죽었던 아이를 눈앞에서 살려내는 걸 본 사람들은 두려움과 함께 묘화를 신처럼 받들기에 이르렀고 정균은 더 이상 모른 척 외면 하수 없는 처지에 몰려서야 그녀와의 만남을 허락하지만 하필이면 그와의 만남이 그녀의 마지막이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면서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과정이 숨 가쁘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편가름과 갈등의 중심에 무당의 딸 묘화와 신의 아들이라 칭하는 목사 정균이 있는데 마치 신 구간의 종교갈등으로도 보일수 있지만 서로 극단적인 두 사람의 처지는 알고 보면 같은 처지나 다름없다는 게 이 이야기의 퍼즐의 한 부분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는 삶을 살고 있거나 살았던 경험이 있는...

서로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마치 양진영에 우두머리를 모셔두고 패가 갈려 전쟁하는 것처럼 묘화와 정균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왜 같은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았던 자신들이 이렇게 분노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분열하게 된 건지 연유도 제대로 모른 채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이야기하는 화자로 소설가를 등장시켜 이 마을에 내려오는 장일손의 저주와 그가 가졌던 악마적인 힘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시대적 배경이 막 선진화가 되고 있지만 시골에까지 미치지는 않았던 1970년대라는 점, 즉 아직까지는 마을 곳곳에서 토속 신앙의 힘이 작용하고 사람들 마음속에 무속신앙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을 때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과 달리 충분히 있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설명이 불가능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공포를 슬쩍 건드려준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역시 여름밤엔 공포물이 더위를 잊게 하는 데 최고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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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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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선 뭔가 호러물이거나 공포물을 연상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군가를 방문하기에 새벽만큼 부적절한 시간도 없을 것이거니와 누군가를 새벽에 맞는다는 건 나쁜 일이 생겼거나 혹은 나쁜 일의 전조와도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소설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성으로서 혹은 소수자로서 부당하게 당하는 일이나 너무나 당연한 듯 오랫동안 자행되어 부당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을 겪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간다.

여러 편의 단편 중 특히 룰루와 랄라와 베이비 그루피가 인상적이었는데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왜곡된 시각, 여성을 어떤 프레임에 가둬두고 꼭 그래야 한다는 관념을 이 사회는 묵언으로 강요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갓 들어간 직장에서 선배가 내리는 지시의 불합리에 관해 이야기하자 여자라서 그렇다는 식의 남자친구의 대답... 여자는 안정적인 걸 바라서 발전이 없다는 식으로 개인의 잘못을 여자 전체 집단의 문제라는 답변을 했지만 같은 일을 남자 상사가 지시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여자친구에게 하는 대답이란 게 그 남자가 지질해서라는 그 남자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답변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 여자에게 얼마나 많은 편견들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베이비 그루피에서는 무대 위에 선 사람을 동경하는 소녀들의 마음을 집단으로 그루밍해서 원하는 바를 취하고는 마치 자신들을 따라다니며 무대 위 모습에 열광하는 그 아이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대중 스타를 쫓는 그루피처럼 취급한다.

그리곤 하찮은 듯 쓸모가 다한 듯 취급하면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듯하지만 알고 보면 그 들 역시 그저 여자들과 그것도 자신들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는 어린 소녀들과의 유희를 원했을 뿐인 겁쟁이에 루저일 따름이었다는걸...

누구세요?에서는 직장에서 희망퇴직을 권고받고 온 날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처한 입장을 이해받을 수 있나 궁리하는 모습에서 현재 우리나라 여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남자들보다 좁은 취업의 문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서 겪는 만연한 성추행 그리고 같은 일을 하면서도 늦은 진급을 견뎌내야 하며 결혼을 해서도 어느샌가 모든 커리어 우먼이 슈퍼우먼이길 바라는 남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누구세요?에서도 직장을 다니며 커리어 우먼으로 경력을 쌓고 결혼을 해서도 각자 생활비를 내고 자신의 돈은 스스로 관리하기를 바라며 혼수는 반반 여기에 아이를 낳았을 땐 아이는 당연히 엄마의 손이 더 필요하므로 독박 육아라 생각지 말고 열심히 엄마로서 케어하고 육아 돌보미는 친정엄마가 무임금으로 때워 주기를 요구하는 남자는 뻔뻔함을 넘어 당당함마저 갖췄다.

그러면서 여기에 걸고넘어지는 것이 양성평등이며 페미니즘이다.

남자친구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당연하고 또 여자라는 이유로 특권을 누리거나 예외를 인정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설득하지만 자신은 절대로 손해를 볼 수 없으며 여친이든 주변 누구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건 뭐든 공짜로 쓰고 싶어 하는 그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남자였음을 그녀가 실직을 고백할 때 보인 반응으로 까발려준다.

새벽의 방문자들에서는 여성의 성을 사고파는 남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성을 사러 오는 남자가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만큼 우리 사회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성매매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성 매수자의 모습을 보고받은 허탈감이 그래서 납득이 가기도 한다.

소설집 전체에서 우리 사회의 여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위치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그래서 책을 읽는 게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거창하게 여성과 소수자들의 인권을 부르짖거나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우리 스스로도 묵인해버리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소설 속 주인공들이 처한 입장을 보면서 반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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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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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유명한 클럽에서의 일이 한창 화제다.

자고 나면 새로운 사실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안에서 이뤄진 일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선에선 이해가 가지 않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세상 이야기인 듯 이해가 가지도 납득이 가지도 않는 이야기들 천지다.

돈으로 안되는 일이 없고 돈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그곳... 강남

이 책에서도 그런 강남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데 읽을수록 이런 일이 설마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진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과 한편으로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 사실과 허구가 섞인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불야성을 이루는 강남 중심가의 한 고급 호텔 카르멘

그곳은 아직 오픈도 되지 않은 곳인데 그곳 펜트하우스에서 성인남녀 열 명이 적나라한 모습으로 살해당한 채 발견된 초미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누구도 모르게 처리되고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의 변호사 민규에 의해 설계당한다.

즉, 죽은 사람들의 사인을 자연스럽게 조작하고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자살로 위장하며 차례차례 순차적으로 해결해서 그 누구도 이들이 한날한시 같은 곳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없게 처리하는 것

그런 일을 하는 데 있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민규라는 인물은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 고시를 단박에 패스한 초일류 엘리트지만 감정 변화가 거의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카르멘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차분히 설계하지만 그의 레이더에 가장 문제적 인물이 눈에 들어온다.

기업가이거나 고위 공무원이 대부분인 사람들 속에 요즘 가장 핫한 힙합가수 몽키가 섞여있었고 이는 그의 작업이 번거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중의 관심 밖인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인의 죽음과 콜걸들의 죽음은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연예인의 죽음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를 자살로 위장하지만 몽키에게는 알려진 것과 달리 재력가 아버지가 있었고 그는 비록 혼외 자식이라 남들 앞에 떳떳이 내놓을 순 없는 아들이었지만 그의 죽음을 묵과할 수 없었다.

한편 이렇게 부유층끼리 모여 멤버십으로 노는 사람들과 그들이 자주 가는 장소와 그 인근의 경찰서와의 밀착관계는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런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재명이었지만 그는 비리 경찰임을 넘어서 도박증독에 빠져있다.

그런 그에게 민규가 속해있는 로펌이 사건을 설계하기도 전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듣고 돈 냄새를 맡아 사건 속으로 발을 디밀면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이 엉뚱한 인물을 사건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사건 현장이 있고 그 현장을 보고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설계자가 나와 처리하는 과정이 워낙 긴박하고 특이해 살인사건 현장을 보면서 반드시 드는 의문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걸 이 재명이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 들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건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고 사건을 새롭게 설계한다는 신선한 소재에다 초반의 강렬한 몰입과 속도감 있는 전개에 비해 검은 개들의 왕이라는 존재와 그 뒤에 존재하는 그 누군가가 나오면서 조금은 평범해져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민규라는 캐릭터의 독특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번 쓰고 버리기엔 조금 아까웠달까...

가독성도 좋았고 소재의 신선함, 개성 있는 캐릭터의 탄생만으로도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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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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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우주를 여행하기 위해 수십억씩 돈을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실함도 없고 여차하면 평생을 우주에서 떠도는 미아가 될지도 모를 일을 돈을 받고서가 아닌 자신의 돈을 들여서라도 가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는 뭘까?

어쩌면 평생을 안전한 길을 걷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기 이 책의 주인공과 나머지 사람들 역시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평생을 우주를 열망하고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연구원이자 가장인 이진우는 우연한 기회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하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최종 선발과정까지 가게 된다.

그가 처한 현실은 사실 녹록지 않은데 새로 온 팀장이 자신의 성과를 위해 이진우를 희생양처럼 삼고자 하지만 이를 뒤집기 쉽지 않은데 여기에다 우주인 선발과정 때문에 회사일에 지장을 준다는 핑계를 대고 있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간곡한 부탁으로 간신히 유예기간을 얻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우주인으로 선발되기 위해선 후보자들이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하는 상황인데 응모자 대부분이 직장인이라 현재의 직장에서 그들의 처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이상 회사일을 병행하기 힘든 구조인데다 모스크바 가가린 센터로 가서도 웬만한 사람은 이겨내기 힘든 훈련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힘든 경쟁을 거쳐 최종 후보 4명을 뽑아서 1년간 고된 훈련을 통해 단 2명만 뽑고 나머지 후보는 짐을 싸야 하는 다소 불리한 계약에도 서슴없이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각자 나름대로 절박하기도 하고 오랜 소원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불합리한 조건에도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걸까?

진우는 어릴 적 병으로 잃은 동생의 꿈을 위해 또 다른 후보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너무나 간절히 원해왔던 소원이기에 서로 물러설 수도 양보할 수도 없다.

치열한 경쟁을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오랫동안 같은 곳에서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같은 꿈을 꾸는 동료로서 서로에게 친근감이 들고 동료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필연이기도 한데 그래서 서로를 견제하고 의심하며 질시 어린 시선으로 점점 더 변해가는 모습이 더 치열하게 느껴지고 그만큼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 각자가 느끼는 고민과 갈등, 고뇌는 뒤로 갈수록 치열해지고 깊어지기만 하는데 이에 반해 러시아의 우주센터 사람에게 그들 후보자의 사정은 그저 그들의 사정일 뿐... 냉정하고 치밀하게 후보자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

이렇게 평가자와 평가받는 사람과의 관계는 극명하게 대립되어 보이는 데 사실 이런 차이는 익숙한 구도이기도 하다.

우주를 대상으로 할 뿐 평범한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줄 서기와 눈치 게임, 정치와도 같은 일이 이곳에서도 당연한 듯 벌어져 평가하는 상대 간의 알력에 따라 실력과 상관없이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후보자들은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어디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이 그저 힘없이 그들이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다.

그들 역시 제삼자에 의한 평가로 일생의 꿈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에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고민을 들어주던 동료에서 그 사람이 탈락하지 않으면 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의심하며 거리를 두게 되는 모습은 서바이벌 게임을 보는 것처럼 치열하고 긴장감을 주면서 한편 지극히 현실적이라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좀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마음과 심정이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가기도 했고...

이 책은 결과에 상관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니 몇 해 전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선발과정을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 그분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읽고서 납득이 갔다.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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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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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이자 전직 판사로 유명한 작가 도진기의 신작이 나왔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나 진구 시리즈 등 각종 범죄 사건을 흥미롭게 다뤘던 그가 이번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한 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어느 날 한 연인이 모텔에 투숙했다 새벽에 남자가 젤리를 먹다 질식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얼핏 보면 안타깝지만 피해자의 운이 나빴다고 볼 수 있었던 이 사건은 남자를 화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롭게 재수사를 하게 된다.

현대의 많은 사건이 그렇듯 이 사건에도 거액의 돈이 숨겨져있었던 것

죽은 남자는 거액의 보험을 들었었고 그 보험의 수령인이 가족이 아닌 그날같이 있었던 연인에게 돌아갔다는... 누가 봐도 충분히 의심할만한 사항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맡게 되고 죽은 남자의 연인이었던 여자는 살해 용의자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누가 봐도 그녀는 의심스러웠지만 문제는 시신은 이미 화장되고 없어 의심스러운 점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인데 이에 주인공 현판사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현대의 법정은 증거 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범죄엔 반드시 이를 증명할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는 심증과 의심만 갈 뿐 이를 증명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고 이에 두 배석판사 역시 무죄라고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서 국민의 법 감정과 실제 판결과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 사람의 행동이 충분히 의심스럽고 많은 부분에서 범죄를 증명할 수 있어도 만일의 하나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따라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이라는 법 조항은 변호사에겐 자신들의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이고 이에 국민들은 분노한다.

결국 이런 점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인식토록 하고 납득할 수 없는 판결에 분노하면서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게 하는 부분인데 사법부 입장에선 단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와선 안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 하니 그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해선 사법부가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그녀가 유죄라고 생각해 배석판사의 의견을 무시하는 판결을 하지만 그 스스로는 자신이 사법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편향된 판결을 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고등법원에서는 그의 판결이 뒤집어지고 현판사는 자신의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위기에 처한 게 된다.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몇몇의 사건이 재판에서 무죄판결이 나 국민들을 들끓게 하는 일이 있는데 작가는 어쩌면 판사도 사람이기에 그 용의자들에게 국민들의 뜻대로 죄를 물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재판에서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합리적 의심이 없어야 한다는 원칙을 위배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판사들의 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워낙 유명했던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해서 왜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명백해 보이는 이 사건이 사법부의 판단은 갈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그런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논쟁이 될 부분에 대해서 일반인의 시각과 사법부의 시각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뒤에서 엉뚱한 일탈을 하는 현판사는 그런 심경에서 나온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가독성도 좋았고 사건의 재해석이란 부분에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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