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 - 금을 삼키다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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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삼킨다는 뜻을 가진 탄금이란 단어가 낯설어서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책이었는데 알고 보니 형벌의 일종이라고 한다.

목 끝까지 금을 삼켜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형벌

얼핏 들으면 사치스러운 죽음이란 생각도 들지만 사람의 목구멍까지 금으로 채워 숨을 쉴 수도 물을 마실 수도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한다는 설명을 보면 사람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목에서도 금이 거론되듯이 책의 배경은 조선 전체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거대 상단을 둘러싼 애증과 증오 그리고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돈이 연관되어 있다.

현 임금의 동기인 대군의 힘을 등에 업고 미술품을 거래해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상단의 귀한 외동아들 홍랑이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민 부인에게 홍랑의 의미는 엄청난 치성과 노력 끝에 얻은 금지옥엽 아들로서만 아니라 자신의 보답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기에 목숨보다 더 귀중한 아들이었고 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가진 재물을 아낌없이 풀고 사람을 풀어 전국을 샅샅이 흩었지만 누구도 봤다는 사람 하나 없이 행방이 묘연해진 홍랑.... 한나라의 벼슬아치들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졌지만 아들의 행방을 찾는데 이 많은 돈은 한갓 무용지물일 뿐이었고 오히려 돈을 노리고 가짜가 득실한 채 세월은 하염없이 흘렀다.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진 홍랑에 대한 미스터리가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사실 상단 주 심열국에게는 또 다른 자식이 있었지만 그는 그저 이 상단의 데릴사위였고 아내인 민씨 부인이 그를 사모하고 원한 결과로 이뤄진 혼사였기에 둘 사이의 애정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민 부인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었다.

표독스럽기 그지없고 평생을 떠받들어 살아온 그녀에게 씨받이 여인의 몸에서 낳은 딸 재이라는 아이의 존재는 자신의 부정당한 사랑의 증표이자 귀한 아드님이신 홍랑의 앞길을 막는 눈엣가시보다 못한 존재였고 아들의 실종 후 모든 원한과 증오는 당연한 듯 그 아이의 몫이 된다.

아비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새어머니로부터는 괄시와 천대를 받으며 자랐지만 그런 재이에게 애정을 보여준 이가 홍랑이었기에 재이 역시 홍랑의 부재로 괴로워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괴로움을 지닌 채 세월은 흘렀고 이제 이런 집안에 홍랑임을 자처하는 이가 10년 만에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릴 적 기억은 깡그리 잊었다는 편한 핑계를 대며 이 집에 들어선 남자를 본 순간 새어머니 민 부인을 그대로 빼닮은 용모에도 불구하고 단박에 그가 자신의 아우가 아님을 알아채지만 아무도 그런 재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홍랑을 보고 단박에 자신의 아드님이 맞는다고 한 민 부인의 말이 이곳에선 곧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랑은 진짜 어릴 적의 그 홍랑이 맞는 걸까?

진짜가 맞는다면 그는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 누군가가 상단에 대한 원한으로 꾸민 짓일까?

만약 그가 진짜가 아니라면 그는 왜 이제서야 이곳에 나타나 진짜인 척하는 걸까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그로 인한 악연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새 어미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하고 아비로부터는 외면을 당해 19년의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자란데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사라졌다는 죄책감까지 천형처럼 안고 죽은 듯이 살아가는 재이도 안타깝지만 양반으로 태어나 돈에 팔려 상단에 들어와 양아들 노릇을 10년을 했지만 제대로 된 대접은커녕 사라진 아들의 말뚝 취급을 당하며 끝내 스러져간 무진도 애처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채 서늘한 눈빛으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홍랑조차도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기는 매한가지...

돈 때문에 해서는 안 될 짓까지 서슴없이 행하고 돈을 위해선 천륜조차 저버리고 얻은 결과로 누군가는 과연 행복했을까

생동감 있는 문장도 좋았고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지루할 틈 없었던 것도... 그리고 곁들여 애절한 사랑 이야기까지 담아 단숨에 몰아읽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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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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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관계가 경직되거나 하면 항상 화두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북한의 땅에다 우리의 자본이 들어간 곳 개성공단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 언제든 폐쇄할 수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처음에 이 개성공단이 조성될 때 수많은 반대가 있었고 지금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그런 개성공단에서 우리나라 사람 혹은 북쪽 사람이 상대방 측 사람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 사건은 어느 쪽에서 수사를 하고 그 결과는 누구의 법을 따르는 걸까?

그런 상황에 관한 이 소설을 읽다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고 어쩌면 지금까지 그곳에서 수많은 사건사고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묻히거나 간과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조사하고 캐내는 일을 하는 강민규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오래전에 본 외삼촌 원종대가 나타나 큰돈을 주며 의뢰를 부탁하는데 그 일이 평범하지 않다.

개성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언제부턴가 재고가 맞지 않는데 그게 무시하기 쉽지 않을 정로의 양이라는 것... 문제는 남한이라면 당연하게 CCTV를 설치하거나 혹은 의심 가는 사람을 조사할 수 있지만 관리자 몇몇을 빼곤 모든 일을 북한 사람이 처리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어떤 수사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

그런 이유로 군에서 이런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강민규가 개성공단에서 범인을 색출해 줄 것을 요구한다.

돈이 필요했던 민규는 일을 수락했고 그곳 개성공단으로 위장 취업했지만 첫날부터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뿐 아니라 공장을 총책임 지고 있는 법인장은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이고 공장 내부에선 북측 사람이 따로 불러 서슴없이 협박을 해온다.

이곳 북한에서는 남한의 모든 물건이 비싸게 거래되고 그런 거래만을 위한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공공연히 뇌물이 오가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모습과 별 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 민규는 당연한 의문 즉, 그렇다면 이렇게 큰 물자가 오고 가는 데는 당연히 많은 사람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함께 그런 그들을 비호해 줄 좀 더 높은 위치의 누군가가 있다는 얘기인데 그 사람은 누구고 출퇴근 시 철저하게 몸수색을 하는 이곳에서 과연 어떤 방법으로 빼돌렸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일부이긴 하지만 북한 내부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게 느껴질 즈음 살인 사건이 터져 분위기가 달라진다.

공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공장의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민규가 본격적인 조사를 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법인장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단숨에 그는 범인으로 체포되어 구금되는 일련의 상황이 조직적이고 즉각적으로 취해지는 데 그 모든 과정이 마치 짜인 것처럼 보인다.

이내 추방 명령이 떨어졌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겨 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을 수사하러 온 북한 측 요원을 설득해 사흘간의 말미를 얻는다.

이제 그 사흘 안에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염려해 모두가 침묵하는 상황에 서로 간의 알리바이를 대주며 적극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범인을 색출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

그 날밤의 진실을 비롯해 왜 그가 하필이면 개성공단 안에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진실을 찾는 민규

하지만 범인을 찾아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미 정해진 결론을 따라갈 수밖에...

북한 땅에 우리 자본으로 공장을 짓고 북한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받는 게 달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달러가 필요해서 남측을 끌어들이고 요구를 받아주지만 그럼에도 온갖 명분을 내세워 힘없는 인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모습에서 북한의 위선을 볼 수 있다.

달러가 필요하고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남측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역시 북한에서 가장 정치적 이념이 투철해야 할 고위층이나 중산층 이상만 가능하는 걸 생각하면 그들의 모습 역시 위선적이고 이중적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개성공단은 공단의 의미 그 이상의 존재가치를 지닌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다 정치적인 이유로 개성공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하고자 하는 데 이런 모든 문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지만 그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희생양을 내세워 덮어버리는 건 여기나 북쪽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살인사건의 범인 찾기에다 우리가 잘 몰랐던 개성공단 내부의 이야기와 그곳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등을 잘 버무려 놓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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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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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하는 차별을 없애고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것을 뜻하는 페미니즘에 조롱과 경멸을 담아 페미 충이니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그런 페미니스트를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오로지 여자들의 의무는 저버린 채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집단처럼 매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런 페미니즘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변형 왜곡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오랫동안 전근대적 사고로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거나 대물림 되어왔던 여러 가지 부당한 남녀 차별이 이제는 없어지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많아지면서 자신이 겪은 남녀 차별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페미니스트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런 여성들 사이에서도 서로 갈등하고 대결하거나 서로를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일단 고교 동창인 세연과 진경의 관계가 이런 대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진경의 경우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고 항상 인기 있는 사람이어서 늘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학교 전체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해도 자신의 얼굴을 숨겨주는 화장을 포기하지 못했던 세연과는 정반대의 아이였다.

그런 세연에게 손 내밀어 주고 친구가 되어준 진경이어서 고마운 마음과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녀가 부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그녀를 향한 질투와 늘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페미니스트 편집자가 된 후에는 자신의 그런 열등감이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한심해하는 마음으로 대처된다.

그녀의 눈에는 지나친 외모 가꾸기에 열중하는 것도 친구와의 오랜만의 만남보다 남자를 그리고 아이를 우선시하는 진경의 태도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 아니라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듯 보이는 진경의 모습이 의존적이고 자기 생각이라고는 없는 그렇고 그런 아줌마의 전형처럼 한심하게 보여 진경이 올리는 글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은정은 우리 주변의 흔한 워킹맘이다.

늘 일에 쫓겨 아이를 제대로 볼 시간조차 없는... 그래서 아이가 시부모랑 함께 갔던 스키장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도 자기 탓인 것처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가 일하지 않고 아이 옆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남편이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며 회피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르게...

이렇듯 여전히 사회에서는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책임으로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앞에 나서서 소리치고 자기주장을 하고 권리를 목소리 높여 부르짖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자들이 아름답게 꾸미거나 가정의 테두리에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식이 부족하다거나 나쁘다고 비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데 그런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상상 속에서 진경이 세연에게 하는 말에 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친 비난과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 보다 그 사람이 생각하고 변화될 시간을 좀 기다려주면 안 되냐고 모두가 똑같은 시선으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세연이 진경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각자 서로 다름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넘어 여성 연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이렇게 두 사람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을 등장시켜 그들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며 겪는 자기혐오와 불안,고민을 통해 페미니즘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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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엄마가 산다
배경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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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그렇듯이 엄마와 딸 사이엔 유독 진득한 뭔가가 있다.

나는 그걸 애증이라고 말하는데 어릴 때 잔소리하는 엄마가 짜증 났고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딸들이 아마 나와 비슷한 결심을 했으리라.

엄마 세대는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살았으면서도 늘 뭔가를 더 못 줘서 미안해하는...

그래서 그런 엄마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타박을 하면서도 늘 미안한 맘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나 역시 아이를 낳고 보니 더더욱 엄마가 안쓰럽고 고맙게 느껴졌다.

이 책 속의 모녀관계도 그렇다.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말로 표현해본 적이 없어 사랑한다는 말로 하지 못하고 애정표현에도 익숙하지 못해 걱정과 사랑을 본심과 다르게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는 걸로 표현하는...

아니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라 더더욱 애착관계가 깊게 형성되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서로에게 서로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미혼모로 혼자서 딸을 키우낸 엄마 순희에게 딸 연화는 공부도 잘하고 힘들다는 대기업에 척 붙어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존재였지만 그런 딸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덜컥 사표를 내고 집으로 들어왔으니 엄마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화를 내고 소리치기보다는 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연화에게도 할 말이 있는 것이 혼자서 자신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에 다니는 남들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지만 스스로 돌아보니 그저 그런 직장인일 뿐이라는 자각은 그녀로 하여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강제 휴식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엄마가 하는 하숙집으로 돌아와보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엄마는 딸에게 하숙집을 물려주고 뒤늦게라도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며 대학에 입학한다.

싫어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꾸역꾸역 엄마가 해오던 일을 대신하는 딸은 하숙생들의 아침밥을 해주고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엄마가 자신에게 하던 잔소리와 간섭하는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고 엄마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서 늘 부채처럼 느껴졌던 엄마를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비로소 엄마를 그저 자신의 엄마일 뿐 아니라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한 여자로 이해하게 되고 엄마의 결정을 지지하게 되는 과정이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져있다.

연화가 출산을 하면서도 엄마를 애타게 찾는 장면에선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을 듯한데 왜 그렇게 엄마를 찾게 되고 엄마를 봐야 안심이 되던지... 또 엄마 순희와 딸 연화의 서로 툭툭하듯 하는 대화도 극히 현실적이어서 마치 우리 엄마랑 하는 대화를 보는듯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밑바탕에는 애정이 묻어나는...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본 건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단순히 두 사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돈을 아끼기 위해 좁은 방에 여럿이 모여 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독수리 5형제나 오랜 꿈을 못 버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면서 하숙집에 사는 여자, 객지에 와서 돈을 벌기 위해 있는 이곳에 사는 남자, 여기에다 엄마 순희처럼 한순간의 실수로 미혼모의 길을 선택하는 여대생 등 팍팍하고 애달픈 각자의 사연까지 버무려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대부분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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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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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너머의 어둠 속으로 이름도 숨기고 몰래 숨어든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고 다니는 남자

비정한 도시의 뒷면에서 벌어지는 먹고 먹히는 관계를 냉정하고 일말의 감정 없는 톤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음산하다.

먹히는 사람들마저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늘 두려움에 쫓기듯 한 끼의 식사조차 여유롭게 하지 못한 채 사방을 경계하지만 그조차도 이내 잡혀서 어딘가로 끌려간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잡아서 처리하는 사람들 역시 알고 보면 먹히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다.

그 역시 재로부터 빌린 돈을 아버지 대신 갚기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처리하고 다니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담보 잡혀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어디로 갈 곳도 없는 처지

하지만 그런 그도 어릴 적부터 하던 이 생활이 드디어 끝이 나고 재의 손아귀에서 벌어나게 될 순간 마치 누군가가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지막 임무가 어그러져버린다.

절묘하기 그지없는 그 타이밍에 누군가의 의도가 숨겨져있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마저 떠올리지 못하는 남자가 답답하지만 13살 어린 나이에서부터 재에게 종속되어 그가 하는 명령에만 따르도록 학습되고 성장한 그의 이력을 보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온갖 궂은일에 익숙해지고 사람을 처리하면서 자란 그가 외견상 누가 보더라도 자신보다 약하고 싸움이라곤 못할 것 같은 재에게 한 번의 반항은커녕 그를 부정하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건 워낙 어릴 적부터 그에게 복종하며 자랐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심어져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삶 외에 다른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새 장속에서 길들어져 버린 새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 그의 처지와 가장 닮아 있는 게 책 속에 등장했던 투견이다.

여자든 남자든 나이 든 노인이든 젊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처리해야 하는 그의 처지가 끝없이 싸워 이겨야만 하루를 더 살 수 있고 한 번이라도 지면 그걸로 끝장인 투견의 삶은 다른 듯 같다.

이제 자신의 실패에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재는 B 구역으로 갈 것을 명한다.

화학약품 사고로 도시 전체가 마치 죽은 도시처럼 폐쇄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는 독성 약품에 노출되어 변형되어버린 채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들뿐인 곳

그곳으로 간다는 건 살아돌아오는 걸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자는 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처참한 모습은 남자에게 두려움과 함께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강한 열망을 심어주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그런 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갚지 못할 빚을 지고 또 그걸 갚기 위해 뭐든 파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절박한 처지의 사람들에게서 기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름 없는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돈 때문에 인륜마저 저버릴 수 있는 비정한 도시의 모습을 음울하게 그리고 있다.

한번의 실패 한번의 실수는 모든 것을 앗아갈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않은...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어서인지 짧지만 묵직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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