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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평점 :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분야다.
일단 누구나 그 결말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점이 소설적 흥미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캐릭터로 입체화해서 그 사람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느끼는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점등으로 인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볼 때 그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도 인상적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도세자의 뒤주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장 많이 소설적 소재나 드라마화되었던 시대 중 하나가 바로 조선 중후기의 이 시기가 아닐까?
이 책 중금 역시 그 시기를 다루고 있지만 왕이나 유명한 신하 중심이 아닌... 양반의 신분도 아니고 그저 중인의 신분이면서도 내시를 제외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왕을 지켜본 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중금은 이른바 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왕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고 한다.
한 남자가 쫓기듯 신분을 숨기고 이름 모를 작은 바닷가에서 심마니로 생활한다.
그의 이름은 이재운... 중금이었던 자 이면서도 선왕이었던 경종의 국금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내려졌던 경종의 국금이지만 궁궐 안 속속들이 침투해있던 세력들에 의해 발각되어 역모의 죄를 물어 참형이 내려졌으나 친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훗날을 도모하며 은신하나 결국 발각되어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아들 이지견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훈련시켜 반드시 궁으로 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비의 유언이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유언을 따라 한양으로 와 결국 중금이 되어 궁에 입성한 이지견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가고 있는 중금은 우리에게 낯선 중금이라는 직책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지만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왕이나 고위층 양반의 시선이 아닌 일반 백성은 아니지만 이에 가까운 중인의 시선으로 정쟁을 지켜본다는 점이 기존의 소설들과 조금 다른 점이다.
폐위된 어미 희빈 장 씨의 소생이자 아비인 숙종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해 처음부터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경종은
연잉군을 미는 노론과의 힘겨루기를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
하지만 죽기 전 자신의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국금을 전하지만 이조차 뜻대로 되지 못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참형에 처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나 보위에 오른 영조 역시 노론 세력에 의해 자리를 차지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한 채 매번 자신의 뜻을 꺾고 신하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영민하고 똑똑했지만 자신의 기반이 약했던 세자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발이 묶여 뭐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아비를 곁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세자가 노론들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고 그런 세자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던 노론은 세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이런저런 모함을 하면서 부자지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부자지간은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그런 부자지간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중금 이지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왕의 국금을 지금 현재의 왕인 영조에게 가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볼 때 영민하고 강직해 다음 왕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세자에게 전하지만 이조차도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오랜 세월 보위에 올라 탕평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쳐 우리에게는 영조대왕으로 알려진 영조가 강력한 신권에 밀려 제대로 뜻을 펼치기는커녕 신하들과의 마찰에서 언제나 한 수 물리며 눈치를 봐야 했던 다소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사도 세자가 광증을 앓아 주변 사람을 해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닌... 아비를 위해 아비의 처세를 위해 스스로가 그런 죽음을 선택했다고 풀어놓은 작가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아비와 아들 간의 비극적인 사건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권력을 손에 쥔 노론 세력에 의해 정국이 혼란스럽고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목숨을 바쳐 국금을 지키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중금이라는 멋진 남자들의 의리와 신념을 그리고 있어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웠다.
가독성도 좋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좋아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