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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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아르라고 멋들어진 단어를 갖다 부치지만 그건 대부분 조직 간 돈을 두고 벌이는 혈투나 음모, 배신을 다루고 있는 싸움 영화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밑바탕에는 사람들의 원초적인 욕망이 숨김없이 까발려진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해방감이 아닐까 싶다.

이 책 크리스마스 캐럴도 그 범주는 넘어서지 않는다.

단지 그 개싸움의 명분이 복수이고 대상들이 깡패나 조직폭력배 같은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라는 점만 다를 뿐...

그 밑바탕에 깔리는 정서는 똑같다.

작가는 아예 대놓고 개싸움을 벌이도록 무대를 마련했고 그 무대가 되는 곳이 범법 미성년자들을 보호감호하는 소년원이다.

교도소도 그렇지만 소년원 역시 다르지 않다.

도망칠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자 내가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원칙으로 움직이는 곳... 작가는 오로지 샤워장에서 벌어지는 죽음을 건 싸움 하나를 위해 이 무대장치를 마련한 듯하다.

소년원에 새로운 원생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일명 일진 패거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사람은 의외로 덩치가 크거나 험상궂은 인상의 소유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를 도와줄 세력조차 없는 그야말로 혈혈단신이라는 점이 의외

주일우는 자신과 쌍둥이이자 정신지체 장애 3급인 동생 월우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스스로 이곳으로 들어왔고 월우의 죽음에 일진 패거리가 관련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두 팀과의 숨 막히는 전쟁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곳에서 독불장군 같은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즐거움만 탐닉하고 있다.

이곳에는 일진 패거리와 일우의 목숨을 건 싸움을 말리거나 어떻게 해 줄 어른의 존재는 없다.

오로지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할 뿐...

모든 포커스는 일우의 복수와 일우의 폭주를 말리기 위한 일진 패거리의 싸움에 맞춰졌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일우와 같이 분명 도움의 손길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제대로 된 도움이나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미성년자이면서도 생활비와 월세를 걱정해야 하고 그런 일우와 월우의 처지를 이용해먹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건 그런 아이들을 도와줘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라는 점...

그리고 학교마저 제대로 졸업하기 쉽지 않은 주변 환경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쉽게 폭력에 노출되고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일우네 가족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이제까지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어쩌면 일우의 주먹질은 동생을 죽인 사람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주먹이 아닐까

읽는 내내 불편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데 영화에서는 일우의 전쟁을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하면서 살짝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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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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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광부와 그 지역구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국인 전용 카지노가 설립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 곳은 모두의 예상대로 지역 경제의 활성화보다 도박중독으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

지역주민 역시 떠난 사람이 많고 오히려 외지에서 돈을 좇아온 사람들이 터를 잡고 돈을 벌어가는 모양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하늘이 역시 평범하지 않다.

카지노와 인연이 깊은 아이이자 부모 중 누군가에 의해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였다.

지음은 과거 탄광촌이었다 이제는 카지노와 리조트로 연명하는 소도시였고 지음의 사람 중 카지노와 리조트에 한 명이라도 연관 없는 사람이 없다시피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카지노와 옆에 딸려 있는 리조트로 연명되다시피한다. 하늘이의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도박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러 와서 담보로 맡겨진 아이 하늘은 전당포의 주인인 할머니와 그 딸과 아들을 엄마와 삼촌으로 부르며 전당포의 2층에서 생활하지만 호적이 없어 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음이란 곳은 신기하기 그지없다.

특히 할머니의 전당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처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걸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 갈 때는 잠시만 맡긴다는 마음을 가지지만 이내 그게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면서부터는 소중한 물건에 대한 추억도 미안한 마음도 사라진 채 그저 빨리 돈을 받아 어서 그곳 카지노로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만 남아있다.

모두가 카지노에 영혼을 빨린듯한 모습을 한 채...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내주면서 하늘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입을 통해 할머니가 살아왔던 세월이라든지 왜 다른 광산촌이 아닌 이곳 지음에 카지노가 생기게 되었는지... 오랫동안 홀로 지낸 엄마가 하는 연애를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런 할머니라도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하늘이의 부모에 관련된 이야기...

하늘이는 자신이 왜 이곳 전당포에 맡겨졌는지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궁금하지만 할머니뿐만 아니라 엄마와 삼촌 역시 그 얘기는 입을 다문다.

그렇다고 할머니나 엄마와 삼촌이 하늘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호적이 없는 하늘이에게 할머니는 자신의 성을 붙여 줄 정도로 애정이 있었고 하늘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을 하는 가운데 자신이 전당포에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을 상대하는 걸 지켜보게 하고 가끔씩 심부름도 보낸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만큼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작은 도시 전체가 카지노에서 나오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고 그곳에 도박을 하기 위해 전국에서 온갖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생각하면 마치 그곳이 쥐를 잡기 위해 놓은 덫이나 파리 같은 해충을 잡는 끈끈이같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뭐든 중독된 사람은 어떻게든 그걸 계속하기 위해 방법을 찾을 것이고 그런 중독자들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어떤 위험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중독자들을 위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작은 숨구멍 이를테면 카지노와 같은 도박장을 설치해놓고 여기서 하는 도박은 합법이라고 선포한다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고 어차피 숨어서도 다 할 도박이라면 차라리 합법화하는 게 맞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얄팍한 계산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숨길 수 없다.

작은 탄광촌이었던 동네가 산업화를 맞아 쇠락해가는 과정과 카지노가 설립되면서 바뀐 지음 주민의 생활 그리고 마침내 무너져내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아이의 시선 그것도 누구보다 카지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아이의 눈을 통해 그리고 있는 카지노 베이비

가독성 좋고 특히 카지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눈에 띄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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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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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분야다.

일단 누구나 그 결말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점이 소설적 흥미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캐릭터로 입체화해서 그 사람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느끼는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점등으로 인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볼 때 그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도 인상적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도세자의 뒤주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장 많이 소설적 소재나 드라마화되었던 시대 중 하나가 바로 조선 중후기의 이 시기가 아닐까?

이 책 중금 역시 그 시기를 다루고 있지만 왕이나 유명한 신하 중심이 아닌... 양반의 신분도 아니고 그저 중인의 신분이면서도 내시를 제외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왕을 지켜본 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중금은 이른바 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왕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고 한다.

한 남자가 쫓기듯 신분을 숨기고 이름 모를 작은 바닷가에서 심마니로 생활한다.

그의 이름은 이재운... 중금이었던 자 이면서도 선왕이었던 경종의 국금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내려졌던 경종의 국금이지만 궁궐 안 속속들이 침투해있던 세력들에 의해 발각되어 역모의 죄를 물어 참형이 내려졌으나 친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훗날을 도모하며 은신하나 결국 발각되어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아들 이지견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훈련시켜 반드시 궁으로 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비의 유언이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유언을 따라 한양으로 와 결국 중금이 되어 궁에 입성한 이지견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가고 있는 중금은 우리에게 낯선 중금이라는 직책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지만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왕이나 고위층 양반의 시선이 아닌 일반 백성은 아니지만 이에 가까운 중인의 시선으로 정쟁을 지켜본다는 점이 기존의 소설들과 조금 다른 점이다.

폐위된 어미 희빈 장 씨의 소생이자 아비인 숙종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해 처음부터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경종은

연잉군을 미는 노론과의 힘겨루기를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

하지만 죽기 전 자신의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국금을 전하지만 이조차 뜻대로 되지 못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참형에 처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나 보위에 오른 영조 역시 노론 세력에 의해 자리를 차지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한 채 매번 자신의 뜻을 꺾고 신하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영민하고 똑똑했지만 자신의 기반이 약했던 세자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발이 묶여 뭐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아비를 곁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세자가 노론들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고 그런 세자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던 노론은 세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이런저런 모함을 하면서 부자지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부자지간은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그런 부자지간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중금 이지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왕의 국금을 지금 현재의 왕인 영조에게 가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볼 때 영민하고 강직해 다음 왕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세자에게 전하지만 이조차도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오랜 세월 보위에 올라 탕평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쳐 우리에게는 영조대왕으로 알려진 영조가 강력한 신권에 밀려 제대로 뜻을 펼치기는커녕 신하들과의 마찰에서 언제나 한 수 물리며 눈치를 봐야 했던 다소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사도 세자가 광증을 앓아 주변 사람을 해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닌... 아비를 위해 아비의 처세를 위해 스스로가 그런 죽음을 선택했다고 풀어놓은 작가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아비와 아들 간의 비극적인 사건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권력을 손에 쥔 노론 세력에 의해 정국이 혼란스럽고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목숨을 바쳐 국금을 지키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중금이라는 멋진 남자들의 의리와 신념을 그리고 있어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웠다.

가독성도 좋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좋아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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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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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 눈을 끌었던 건 1억 원의 가치를 지닌 비밀을 알려달라는 범인의 요구였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 그 정도의 가치를 가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우선 생겼고 범인이 그런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게 된 배경의 궁금함이 두 번째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실 단편은 좀처럼 탁월한 뭔가가 없으면 인기를 끌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런 비주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장편도 아닌 단편이라니... 출판사에서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모험을 강행할 수 있을까 하는 내 의심은 첫 번째 단편에서 완전 허를 찌르고 들어왔다.

부잣집 어린 딸아이를 유괴한 채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

그런데 이 유괴범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다.

얼굴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자신이 유괴한 딸아이의 집을 제 발로 찾아가 아이의 부모에게 1억 원을 요구하는 대범함이랄지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범인은 여느 범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돈을 받아 간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어서 빨리 딸아이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부모에게 그는 그들이 자신을 신고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알려지만 엄청난 대미지 때문에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비밀을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 부부의 입을 통해 드러난 비밀을 보면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한 건지 이해가 간다.

나를 버릴지라도 에서는 집으로 가던 길에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고 정신 차려보니 노인들이 대부분인 외딴 섬에 고립된 상황에 처한 한 소녀의 이야기다.

사실 섬 주민들 대부분이 소녀가 처한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했고 납치 당사자는 소녀를 감금하고 감시하면서 집안일을 시키고 좀 더 자라면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도록 짐승처럼 양육하고 있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상황이었다.

섬을 관리하는 사람들마저 이 상황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복잡한 게 싫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도 섬을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마치 기적처럼 누군가가 섬에 홀연히 나타나 단숨에 상황을 정리한다는 설정이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섬에 갇혀 제대로 일한 값도 못 받고 노예처럼 부려졌다 천신만고 끝에 구출됐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가끔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만 다를 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다 이를 해결한 사람과 방법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기발함을 보여준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나의 시간은 멈췄다에 서는 요즘 뉴스에 거론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갓 성인이 되자마자 500만 원이라는 방 한칸 얻기도 힘들 정도의 적은 돈을 가지고 강제로 사회에 나와야 한다는 현실을 호르몬의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하이랜드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는 주인공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가족을 얻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지만 그를 원하는 부부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입양을 했다는... 어찌 보면 너무 슬픈 현실이라 웃음이 난다.

이외에도 원자력발전소의 폭발로 방사능에 노출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라든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얻기 위해 평행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재능을 훔쳐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이 책에 실린 7편의 단편은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묘하게 조합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 지금 현실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단편에는 그 차이에서 오는 미묘함이랄지 아니면 현실을 타파하는 방식의 비현실성이 묘하게 어울려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어차피 상식으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을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 방식으로 해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 혹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섞어 놓은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는 가독성도 괜찮았고 이야기의 의외성과 참신함에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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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령 1
전형진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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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뭔가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하면 그 법은 그들이 막고자 했던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볼 때가 많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미국에서의 금주법과 우리 역사에서 몇 번 시행되었던 금주법이다.

미국 같은 경우는 금주법 시행 이후 알 카포네를 비롯한 마피아가 큰돈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금주법 역시 밀주를 만들어 유통한 일당과 그들의 배후에서 뒤를 봐주고 이권을 거머쥔 탐관들의 배를 불러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 책 금주법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조대왕이 노론과 소론으로 극렬하게 갈라진 조정 대신을 규합하고자 한 탕평책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이면에 금주법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선정을 베풀고 조정 대신의 화합을 도모하는 탕평책을 펼쳤지만 출신성분을 비롯한 여러 가지 걸림돌로 인해 지지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던 영조는 백성의 입으로 들어갈 귀한 쌀을 술로 빚는 일을 금지하는 금주령을 실시한다.

백성들의 구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누가 봐도 이는 단지 허울일 뿐 그 이면에는 당시 큰 권력을 지닌 노론 세력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의 돈줄을 죄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금주령으로 인해 정상적인 거래는 불가능했고 이로 인한 밀주가 성행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기회가 되었고 이 모든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계기가 된다.

누구보다도 이런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영조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강행하면서 당대의 명장인 장붕익을 내세워 노론 세력의 타파를 꾀한다.

그가 꿈꾸던 정치를 하기 위해선 반드시 득세하고 있는 노론의 기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무기가 바로 금주령이라는 계산을 한 결과였지만 오랜 세월 권력을 손에 쥔 노론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 책 금주령은 그런 두 권력의 다툼 즉, 영조와 노론과의 치열했던 정치경쟁과 그 밑에서 그들의 손발이 되어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붕익을 비롯해 금주령을 단속하는 기관인 금란방에 모여든 단 6명의 사람들은 밀주를 유통하는 검계 조직을 조사하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부패한 관리를 조사하지만 좀처럼 그들의 야합의 증거는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에나 그렇듯 그저 말단의 조직원들만 드러날 뿐...

그야말로 혐의는 차고 넘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간신히 어느 정도 그들의 관계를 입증할 증거가 모였을 즈음 금란방의 우두머리인 장붕익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조직은 와해되다시피하고 영조의 꿈은 물 건너 간 듯 보인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후 세자의 명으로 남은 이들을 불러 모아 새롭게 검계와 노론을 노리고 증거를 수집하면서 못다 한 전쟁이 다시 시작되지만 세자 역시 자리 보존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차하면 목숨까지 보장받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더군다나 힘이 되어 줄 아버지와의 사이는 노론의 선동과 획력으로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민심마저 등을 돌린 상태라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길 없는 상태였다

다음 왕이 될 사람이면서도 자신의 사람 하나 제대로 지켜줄 힘이 없는 세자와 그런 세자를 밀어내고 자신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보위에 올리고자 하는 노론과의 치열한 전쟁 아닌 전쟁을 대신한 것 역시 금주령을 둘러싼 검계와 금란방의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그저 비운의 세자로만 알려진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 그리고 노론과 소론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으로 만 기억했던 영조 시대의 이야기를 권력자의 시선이 아닌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며 부당한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나 하소연할 수 없었던 민초들과 그 사이에 끼여 고민하고 갈등하는 관리들인 금란방 식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훨씬 더 생생하고 생활감 있게 그려 낸 금주령

읽는 내내 어찌해볼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했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입체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역사와 허구의 소설이 만나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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