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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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고발 소설을 특히 잘 쓰고 그런 부분이 내 취향을 적중시킨다.

하지만 우연히 손에 든 에도 시대물을 읽고 난 뒤에는 현대물 그뿐만 아니라 시대물도 잘 쓰는 작가구나 하는 감탄했지만 그때만 해도 내게 있어 작가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잘 쓰는 작가이면서 시대물도 잘 쓰는 작가였을 뿐이었다.

오로지 모든 관심은 새롭게 출간되는 사회파 미스터리에 관심과 초점을 맞췄을 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간격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작가의 시대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현대물 사회파 미스터리 역시 애정 하지만 그 순위가 바뀌었다고 할까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기보다 잘 되면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런 표시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기회가 오면 상대를 꺾기 위해 노력을 하고 돈에 대한 갈망도 권력이나 신분 상승에 대한 욕심도 변하지 않았디.

단지 문명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겉모습이 변하듯 진화했을 뿐...

작가의 시대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현대인의 철저하게 학습된 겉모습과 달리 좀 더 인간적인 본성에 충실하고 꾸밈이 적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잔혹한 부분이 두드러지는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다 자신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인간이 아닌 요괴나 그 무엇의 존재가 한 짓이라는 미신을 맹신하는 당시 사회적 관습이나 분위기가 인간이 만든 사건과 더해져 더욱 기괴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한 게 바로 작가의 에도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이번 편에는 3편의 중단편으로 되어 있는 데 2편과 3편의 이야기는 사실상 연결된 이야기라 두 편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에서는 오랫동안 아이를 원해도 가지지 못한 부부에게 아기를 점지해 주는 그림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신묘한 능력을 가지거나 종교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닌 자신들과 같이 장사를 하는 장사치라는 점이 사뭇 이채롭다.

그렇게 신통한 능력을 가진 그림으로 원하던 아기를 출산한 한 부부의 아이가 느닷없이 죽음을 맞았을 뿐 아니라 그가 그린 그림에서 변재천 님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하면서 분위기가 수상해진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아이가 하나뿐이라면 그 부부의 불운이라고 넘어갔을 텐데... 문제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아이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그림 속의 인물인 변재천 님이 사라지면서 아기 역시 목숨을 잃었다는 건 충분히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는 수수께끼였다.

이 이상한 수수께끼를 욕탕의 물을 데우기 위해 온갖 것들을 모으는 일을 하는 기타치의 손에 우연히 들어온 그림 몇 장과 어리숙한듯하지만 관찰력이 있는 기타이치콤비로 인해 풀게 된다.

2편과 3편에서는 가족 간에 화목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주변에 원망을 살 일이 없는 듯한 가족이 몰살하는 사건들이 등장하고 그 사건에 한 사람의 수상한 여자가 나온다.

자칫하면 집단 자살 사건으로 묻힐 뻔한 걸 여기서도 기타이치의 눈에 한 여자가 들어오면서 사건은 자살이 아닌 타살 사건으로 전환되지만 얼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지방 관리들로 인해 왜곡 변질된다.

그들에게는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무슨 목적이 있었는지와 같은 사건의 인과관계는 필요 없고 오로지 범인의 색출만이 중요할 뿐이었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어쩌면 단순할 수 있는 사건을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사건이 뒤틀리고 변질될 수 있음을... 그래서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괴이한 사건으로 남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세 에피소드는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밑바닥에는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라는 추악한 감정이 숨어 있었고 그걸 당시 시대 상황과 관습에 맞춰 흥미롭게 각색한 건 역시 작가의 기량이 아닐까 싶다.

언제 봐도 믿을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 미야베 월드 2 막은 나로 하여금 시리즈 전부를 소장하고 싶게 하는 구매욕을 불러오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얼른 다른 이야기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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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가출 에놀라 홈즈 시리즈 8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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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셜록 홈즈

여러 시리즈가 나오는가 하면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재해석한 드라마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정도로 홈즈는 탐정계의 아이돌급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홈즈에게 재기 발랄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면서도 통찰력과 관찰력이 있고 여기에 행동력까지 갖춘 여동생이 있다면? 그래서 그 여동생 역시 명탐정으로 활약하는 오빠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치는 탐정이라면 어떨까 하는 재미난 가정을 해서 나온 시리즈가 바로 이 시리즈 에놀라 홈즈 시리즈이다.

소설 중 주인공이 십 대의 어린 소녀라는 점도 그렇고 당시의 관습과 악습을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하게 활동한다는 점에서 특히 십 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인기는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이다.

이번 우아한 가출은 시리즈의 8번째 이자 2번째 시리즈였던 왼손잡이 숙녀가 재등장했다.

당시에는 터부시하는 왼손잡이로 태어나 많은 억압을 받았고 에놀라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세실리

타고난 왼손잡이를 강제적으로 오른손잡이로 만들려는 이런저런 교육으로 인해 자아가 분열해 이중인격을 가지게 되지만 그런 세실리의 상태에 대해 아버지이자 집안의 독불장군인 유스타스 경은 하나도 관심은 없다.

그저 엄마의 미모를 닮은 세실리를 어떡하든 유력한 집안에 시집보내 자신의 신분 상승에 도움이 될 지에만 혈안이 되어있을 뿐... 그래서 왼손잡이가 될 때 반항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이 되는 세실리를 방안에 가둬버린다.

세실리의 상태를 알게 된 에놀라는 몰래 밧줄과 화살 등을 이용해 집 밖으로 구출해 내고 이를 알게 된 유스타스 경의 추격을 받는다.

게다가 유스타스 경이 옳지 않은 방법으로 집안을 단속하고 가족을 구속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자들이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집안의 모든 일은 가장인 유스타스 경의 의지에 따르는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 홈즈는 딸 세실리를 찾는 의뢰를 받아들인다.

이를 보면 타고난 지능과 지식을 갖췄으며 당대의 유명한 탐정인 홈즈조차 시대의 관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가 여자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겪는 부당한 일에 대해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실리가 그 집에서 어떤 일을 당했고 이제 다시 그 집으로 끌려가면 또다시 원치 않는 결혼을 해 평생을 구속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아는 에놀라는 멍하니 두 손 놓고 그녀를 보내줄 수 없어 오빠인 홈즈를 설득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에 에놀라는 유스타스 경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명백한 범죄의 증거를 찾아 그 집안으로 몰래 숨어들어간다.

여자가 개인의 재산을 가지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은 당시의 사회상에 맞서서 이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자 노력하는 에놀라의 좌충우돌 고군분투가 이 시리즈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완벽하게 일의 마무리를 짓거나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대로 하는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사람들의 통념과 관습에 지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커리어 우먼을 보는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쩌면 이런 대비 즉 19세기를 살면서 21세기의 오늘날의 여자들을 보는 느낌이 이 시리즈가 갖는 매력이 아닐까

십 대의 에놀라가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에놀라를 보면서 세실리처럼 스스로 변화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억압받는 처지의 여자들이 서로를 도와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에놀라를 보는 것 역시 이 시리즈를 읽는 매력 중 하나

너무 무겁지 않고 좌충우돌 사고를 연방으로 저지르는 에놀라의 매력을 즐기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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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창 탐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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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캐릭터를 내세워 수많은 시리즈를 내고 늘 색다른 소재로 작품을 내는 나카야마 시치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기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버금가게 많은 책을 내는 작가이자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내놓은 작품마다 개성이 강하고 주인공 캐릭터 역시 반드시 선한 쪽에 서는 게 아니라 악당이 주인공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선악을 넘어 경계가 없다.

아니 어쩌면 작가는 기존의 작가들과 다른 성질의 캐릭터... 이를테면 비웃는 숙녀 시리즈의 주인공이나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와 같이 다른 작품 속에서라면 주인공이기보다 빌런으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낼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아니면 아예 보란 듯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통념을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에 독자로 하여금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 인면창 탐정 역시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심령적인 그 무엇도 아닌 창... 그야말로 오래된 상처를 의인화했다.

게다가 이 창은 숙주의 몸에 기생하면서도 당당하다 못해 거리낌 없이 욕을 하거나 모멸감을 주는 말로 찍어누르기 예사고 당하는 입장인 사람은 또 그대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분명한 상하관계인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상처가 보통이 아니다.

우선 겉으로 봐도 여느 흉터와 달리 마치 사람의 모습을 한 인면창이라는 점도 그렇고 한순간에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과 직관력은 물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줄 아는 넓은 혜안마저 지니고 있으니 이에 반해 평범함에 머물러 있는 숙주인 인간이 인면창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단 인간이자 숙주인 미쓰기 롯페이는 상속 감정사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지방의 토호이자 부호인 혼조 집안의 상속 감정 일이 들어왔고 이에 사쿠마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폐쇄된 지역이라 여전히 남존여비 사상이 뚜렷했고 가부장적이며 오랜 관습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그 혼조가를 이끌던 총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내 혼조가를 비롯해 그룹 전체에 혼란을 가져왔고 이제 얼마 되지 않는 유산상속문제로 집안이 시끄러워질 찰나 미쓰기가 버려지다시피한 산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광물을 발견하면서 갑자기 전체 판도가 달라졌다.엄청난 돈이 걸린 일이 된 것이다.

하지만 놀라워한 것도 잠시 서로 소원한 걸 넘어 서로 경원시했던 형제들이 하나둘씩 처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유산상속을 둘러싼 살인사건이라는 다소 평범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맛깔나고 재밌게 표현한 것만 봐도 작가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이 두 콤비가 티키타카 하는 걸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사건의 핵심을 찌르고 있고 사건의 본질을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가 가볍거나 경박하진 않다.

유산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심과 집안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저질러지는 온갖 악행들은 혼탁하기 그지없다.

그런 탁하고 음침하기 그지없는 본질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만 이 영리한 작가는 오히려 인면창과 미쓰기의 가벼운 대화로 그런 무거움마저 상쇄시켜 가독성을 높였고 독자로 하여금 너무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을 수 있게 했다.

결정적으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인면창의 본질을 보여주면서 이 미쓰기라는 인물에 대한 평도 달라지게 한 것 역시 작가의 의도라고 본다면 역시 이 콤비는 앞으로도 활동을 계속할 거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다음 편이 얼른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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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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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글자도 놓치지 마라

모든 것이 복선이며 단서다!

라는 소개 글을 보자마자 아... 이건 바로 서술 트릭을 이용한 작품이구나 생각해서 나는 속지 않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글을 곱씹듯이 읽어내려갔다.

어딘가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범인이 누군지 찾겠다 생각했지만 역시!!!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한 건 물론이고 속을 확률 100%의 반전 미스터리라 장담한 출판사의 의도대로 완벽히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범인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나도 모르게 앞으로 다시 돌아가 문제의 지점을 다시 읽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진짜 범인을 찾아낸 사람도 있겠지만은... 마지막에 가서 범인이 드러난 순간에 느꼈던 허탈감과 당혹감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범인의 정체에 무릎을 치게 된다.

사실 이야기의 전체를 아우르는 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살인사건 혹은 사건이 중심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은 소설 속 대부분은 전쟁이 끝난 후의 일본의 분위기를 갓 중학생이 된 남녀 학생 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리의 문학작품 소나기의 일본 버전이랄지..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풋풋한 감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슬쩍슬쩍 비치는 어른들 세계의 잔인함이나 비정함이 서로 대비되어 별다른 잔인한 묘사가 없으매도 그 냉정한 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은 전쟁이 갓 끝난 후 무너진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선 방탕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실존 인물이 자 소설 속에서 자신의 회사를 좀 더 능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이나 소련까지 건너가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익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고시바 이치도 회장이라면 세상을 흥청망청하며 마음대로 낭비하듯 살아가는 사람이 주인공 세 사람 중 하나인 가오루의 삼촌이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중 이치조 회장과 연이 닿은 여성인 아이다 미치코는 뚜렷하게 뭔가를 하지않지만 그 존재감이 분명해서 그녀의 이후 횡보가 궁금증을 불러오게 하는 데 소설 속에는 베를린에서의 일화 이후엔 홀연히 사라졌다.

작가는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결정적인 뭔가를 쥐고 있는 히든 키라는 걸 모두가 눈치챌 수 있도록 했지만 도대체 어디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좀처럼 꼬리를 잡을 수 없도록 했을 뿐 아니라 쉽게 착각하도록 곳곳에 엉뚱한 단서를 던져 놓았다.

이렇게 여기저기에 작은 단서를 놓고 사람들을 유인해 단서를 눈앞에 두고서도 단서인 지 모르도록 하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앞으로 가 다시 확인하게 하는 게 바로 서술 트릭이 가진 매력이자 힘이고 그런 트릭을 멋지게 활용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게 한다.

살인사건이 없다면 순수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서정적인 묘사와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풋풋한 감정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는 흑백합은 그 대비의 차이가 큰 만큼 밝혀지는 진실이 크게 다가온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본다면 확실히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내용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이지만 그런 내용을 오히려 서정적인 필체와 묘사로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건을 중심으로 본다면 다소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품고 있는 내용만큼은 절대로 심심하지않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강하게 뒤통수를 맞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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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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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도 그런 글이 있지만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을 성염색체 단 2가지 유형으로 즉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건 과연 맞는 걸까

솔직히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명제 앞에 머리가 띵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2가지 성염색체에 의해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온 건 아닐까

그 둘 사이에 또 다른 유형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주장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런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는 건 잘못된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걸 오류로 인정한다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 외사랑 역시 그런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때 다른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는 게이고의 초기작 중 하나로 오래전 읽었을 때도 엄청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해마다 11월 세 번째 금요일이면 대학 때 같은 팀으로 활동했던 미식축구부원들이 모이는 날이다.

쿼터 백이었던 데쓰로와 친구들이 술자리 모임을 파하고 돌아갈 즈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당시의 매니저 히우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폭탄 발언을 듣게 된다. 자신은 언제나 여자인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남자였다는 고백

목소리부터 모든 것이 남자로 변한 히우라의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히우라는 자신의 현재 쫓기는 중이며 누군가를 살해했음을 고백하면서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히우라가 자수하게 되면 이제까지 그녀가 남자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건 물론이고 사람들의 호기심에 노출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남녀를 떠나 자신들의 친구가 그런 형편이 되는 걸 두고 보지 못한 데쓰로와 아내 리사코는 히우라의 자수를 막고 히우라를 돕기로 결심하지만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었던 히우라는 잠적한다.

그런 히우라를 찾기 위해 행적을 조사하면서 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 즉 그런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뿐 더러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비록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지만 완벽한 남자 혹은 여자로 바꿔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런 추적을 데쓰로만이 아닌 경찰 역시 하고 있어 어느새 모두가 그들을 쫓는 중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문제까지 드러날 처지가 되면서 자칫하면 그들이 공들여 쌓은 네트워크가 붕괴되고 말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히우라는 모습을 드러내 데쓰로에게 그만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미 많은 것이 드러난 상태일 뿐 만 아니라 또 다른 친구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면서 일대 반전을 맞는다.

사실 처음 시작은 모두가 여자로 알고 있던 친구가 남자가 되어 모두에게 나타난다는 소재에 그저 흥미를 가졌을 뿐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까지 거기에 대해선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토록 깊은지에 대해 자각하지 못했었고 요즘은 젠더 문제에 있어 예전보다 훨씬 더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오픈된 상태라 이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해결점은 찾지 않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쓴 게 1990년대지만 자신이 가진 정체성과 다른 육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왜 사람을 남녀로만 구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부분이다.

남녀가 아닌 어떤 성을 가졌던 어떤 모습을 하던지 그저 겉으로 보이는 걸로 구분 짓지 말고 인간으로 대하면 되지 않나 하는...

다소 어둡고 복잡하고 딱딱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여기에 소설적 재미를 넣고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사람들로 하여금 재밌게 읽으면서 그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 아닐까 싶다.

역시 개인적으론 작가의 요즘 작품보다 예전 작품이 더 좋다는 걸 다시 깨닫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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