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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취하여라 - 교부들이 본 아가 ㅣ 가톨릭 성경 학교
안소근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7월
평점 :
도서를 서평 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다가 수줍은 표현들이 많았지만, 언젠가 연인에게 편지를 쓸 때, 한 글귀 정도는 적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는데요. 사랑이란 원래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불안감이 사라집니다. "이 여자, 이 남자, 내 거니까 건들지 마!"라고 경고하는 그런 느낌처럼요. 여러분, 아가서 정도의 플러팅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남의 연애편지가 제일 신기합니다.
"아가의 끝맺음으로, 사랑이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세며, 강물로도 사랑을 휩쓸어 갈 수 없고 재산으로 사랑을 얻을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는 사랑에 대한 아가의 관점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구약"을 이해하기에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큽니다. "아가서"는 구약 중에서 술술 읽히는 편이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표현된 사랑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불편한 마음은 어디에서 들어온 감정일까요? 저는 진솔하게 성찰해 봤습니다.
그 감정은 제 안에서의 사랑이란 감정을, 연인에게 사랑한다며 매일 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타인에게 들키기에는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사랑의 감정과 사랑을 고백할 때의 언어와 행위를 꽁꽁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들의 사랑의 언어를 들킨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남편이 여럿이며, 정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크게 낙인 받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성경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금욕을 가르쳐야 하고, 교과서처럼, 교양서처럼, 정숙한 신앙인이 바라는 대로 적혀서, 성스러움을 찬양하고, 숨이 넘어질 듯한 성령의 충만함처럼, 그들만의 커트라인이 구상돼 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인과 성적인 표현을 전하거나, 연애, 결혼, 임신에 관한 인간의 욕구를 강제적으로 부정시키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아! 우리들도 신부, 수녀처럼 살아야 하는가 보다."라고 혼자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인의 금욕은 지나침의 행위를 경고하는 차원의 것입니다. 그 이상과 이하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가서"를 읽으면 한국에서 유명한 수필인 <B 사감과 러브레터>가 생각났습니다. 그 책은 노처녀인 사감 선생님이 타인의 연애편지를 몰래 읽고 가슴 설레하는 장면을 목격당해서 수치스러웠다고 적혀진 소설이었지요. 저는 "아가서"를 단순한 성적인 호기심과 신경을 자극하는 음란한 장면이 아니라, "어쩌면, 이 사람이 내 사람일까?"라고 판단할 적에 기준으로 삼아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는 사랑의 편지를 적을 때 베껴 적어도 좋고요.
"아가서"는, 여러 학자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려고 크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육욕을 위해서 쓰인 걸까?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라면 "사랑에 취하여라"라는 도서에서 4부로 나뉜 여러 학자의 견해와 연구를 전해 들을 수 있으니 관심을 표현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앙인은 전부 다 알다시피, 성경 속 내용은 내가 필요할 때, 성경 책을 뒤적거리다가 눈에 들어오는 한 구절이 꼭 있습니다. 물론 그 부분이 "아가서"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성경에서는 중요 기관을 통해서 특별히 공인된 지시 사항이 없다면 더 이상 더하거나 뺄 것도 없는 완전한 경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마르코복음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 없는 것처럼, 색다른 느낌 때문에 의견이 분분한 '아가서' 역시도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단지 수줍은 마음입니다. 저는 육욕이 저질스럽고, 죄를 부르는 감정이 아니란 걸 소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아가서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의 분류로, 성적인 에너지라고 말하는 "리비도"와 "교회와 신앙인 사이의 믿음과 헌신"을 한꺼번에 바라는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이유가, 신앙인들의 건전한 사랑과 언어를 강조하는 바가 아닐는지,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성'의 교과서가 아닌,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교회, 그런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서 아가서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사랑에 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