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픽션 호러픽션 1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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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월 중순 들어 비가 잦아지면서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2012년 여름은 그 어느 해 여름보다 덥고 힘들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산, 바다, 계곡 등 피서지(避暑地)마다 사람들로 넘쳐 났다고 하는데 시간과 돈의 제약 때문에 이번 여름휴가도 결국 집에서 보내고 말았다. 에어컨, 선풍기, 수박 등 더위를 식혀줄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해보지만 그때만 잠시 시원할 뿐이고, 이런 방법들도 결국 돈이 필요- 에어컨과 선풍기를 연일 틀어댔던 터라 벌써부터 전기요금 고지서가 두려워진다 - 한 방법들이니 알뜰족 들에게는 부담되는 방법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값싸면서도 효과가 확실한 피서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 소설과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여름은 공포 영화와 소설의 계절이라고 잘 만든 공포 소설과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그 무서움 때문에도 그렇고 여느 장르 소설들보다 강력한 재미와 몰입감 때문에 더위를 싹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포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장이 옥죄어 들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책에 고개를 쳐박고 눈길을 절대 돌릴 수 없게 만드는 공포소설만의 치명적인 “마력(魔力)”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여운이 오래 남는 성격이라 공포 소설을 읽으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여서 꺼려하긴 하지만 올여름은 공포소설이라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무더워서 올여름에는 일부러 공포소설 몇 권을 선택해 읽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인 <호러픽션(양국일, 양국명 공저 / 청어 / 2012년 7월)도 그래서 선택한 책으로 올여름 읽은 공포소설 중에서는 세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우연찮게도 세 권 모두 한국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앞서 두 권 중 한 권은 은근하고 오싹한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긴 했지만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진 않았고 다른 한 권은 공포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무서움의 정도가 너무 밋밋했던, 두 권 모두 “공포소설”로만 한정짓는 다면 다소 실망스러웠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작가들이 10년 가까이 공포소설을 집필해 온 중견 작가들인데다가 제목부터 아예 “공포(Horror)"를 표방하고 나온 작품이니 만큼 극한의 공포로 무더위를 확 날려줄 것으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어서 책을 받자마자 공포소설답게 음산한 표지를 열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종종 공포소설들을 보면 작가들이 책 속 글귀를 통해서 공포의 정의와 의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서문인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들의 생각을 먼저 밝히고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고 있다. 작가는 공포소설에는 기존의 모든 것을 뒤엎고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거대한 힘이 있으며, 자신이 공포소설을 쓰는 이유를 공포는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늘 함께 하는 “동반자”와도 같은 것이기에 공포라는 장르로 구축할 수 있는 이야기는 끝이 없으며, 공포라는 장르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도 무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공포소설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열편의 작품이 한데 묶었으며, 자신의 공포소설에 대한 꿈과 열망, 도전으로 탄생한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공포와 재미 면에서 자신 있다는 얘기일 텐데 과연 속 내용은 어떨까?

 

 

책에는 열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변형된 인간들이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을 공격하고(<침입자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는 괴물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일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으며(<괴물이 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할머니는 관 속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제사상을 바라보고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사자와의 하룻밤)>, 한편 성폭행 당해 죽은 누이를 대신하여 형제가 만월(滿月)이 뜨는 밤이면 성폭행범들을 살인하고(<만월의 살인귀>), 악명 높았던 전직 건달은 자신이 운영하는 모텔 지하에서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잘라내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르며(<묵도의 밤>), 부산 해운대로 MT를 간 대학생들은 인근의 흉가(凶家)에 들어갔다가 그 집에서 숨어 살고 있던 연쇄살인범을 맞닥뜨리게 된다(<유령의 집에서>). 또한 사업실패로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을 생각하는 한 남자는 일주일전 자신의 살인을 의뢰했다며 파란 옷을 입은 자살 주식회사의 킬러들에게 쫓기고(<자살 주식회사>), 예지몽을 꾸는 한 남자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호텔의 한 여자 투숙객이 자살하는 장면을 꿈꾸고는 그녀의 죽음을 막기 위해 나서며(<꿈속의 그녀>), 한 여학생은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학생을 떼어내기 위해 이리떼가 출몰하는 산 속 깊은 곳으로 있지도 않은 장미를 꺾어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지만 아침에 자신의 우체통에 꽂혀있는 핏빛 붉은 장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붉은 장미>).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원귀(寃鬼)들이 흉가에 출몰하여 사람들을 살해하는 작품(<향전>)도 있다. 이처럼 작가는 서로 다른 상황과 느낌의 열 편의 단편들을 통해 다채로운 공포의 향연(饗宴)을 펼쳐 보이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꽤나 이색적이고 상황과 이야기도 꽤 무섭지만 20~30 페이지의 너무 짧은 분량에 상황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모두 담아내려고 한 탓인지 무서울 만 하면 바로 끝이 나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역시 공포소설은 중반까지 세세하고 치밀한 심리와 상황 묘사를 통해서 공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중반 이후 속도가 급 빨라지면서 종반에 확 몰아치며 결말 나버리는 공포소설만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재미일 텐데, 이 책 에서는 분위기 조성이 생략된 채 주로 사건의 전개와 결말 위주로만 진행되고 있어 그런 공포 분위기를 한껏 맛보기에는 그 분량이 너무 짧았다. 편 수 를 줄이고 좀 더 살을 붙여서 대 여섯 편 만 실었다면 어땠을까? 특히 좀비 소설을 연상시키는 <침입자들>이 그런 면에서 참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이렇게 단편으로 끝낼 께 아니라 좀 더 긴 호흡과 상황 설정으로 장편으로 펼쳐 낸다면 여느 외국 좀비 소설 못지 않은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블랙 유머가 가미된 <자살 주식회사>와 사이코 패스 연쇄살인범이 인상적인 <묵도의 밤> - 잔인한 장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긴 하지만 -, 갈수록 늘고 있는 여중고생 성폭행 사건과 함께 미성년자 범행에 대한 법적 모순을 짚어낸 <만월의 살인귀>,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고전적인 공포의 진수를 보여준 <향전> 만큼은 소재와 공포 분위기 면에서 기발하고 색다른 공포를 맛 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선하고 기발한 공포와 재미를 맛볼 수 있었고, 앞서 읽은 두 책 보다 확실히 무섭기는 했지만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은 아닌 기대에는 다소 못 미친 작품이었다. 물론 예전보다 어지간한 공포스러움에는 무뎌진 내 개인적인 취향 탓일 테고 꽤 무서웠다는 평들도 있으니 무서움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은 이상 공포 소설 몇 권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단 한 밤 중에 읽으면 더위와 함께 그날 밤 꿈자리(熟眠)도 날아갈 판이니 환한 대낮에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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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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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어 선생님께서는 시인(詩人) 윤동주(尹東柱, 1917~1945)를 부를 때 이름 앞에 감탄사 “아!”를 두 개 붙여 “아! 아! 윤동주!” 라고 불러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첫 번째 감탄사 “아!”는 발표(1948년)된 지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전혀 그 빛이 퇴색하지 않고 오히려 갈수록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는 그의 시(詩)에 대한 경탄의 의미이고 두 번째 “아!”는 이런 천재 시인이 29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차가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의 의미라고 하셨다. 특히 그가 생을 마감한 시기가 감수성이 가장 풍부했던 20대 후반이어서 형무소 생활 속에서도 시작(詩作) 활동을 결코 멈추지 않았을 텐데, 당시의 시가 한 편도 전해지지 않는 것은 일제(日帝)가 저지른 가장 큰 만행 중의 하나라고 흥분하시곤 했다. 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그가 연희전문에 다니던 무렵 시들과 일본 유학시절의 작품들을 모아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수감생활 동안 그가 썼었을 시는 한 편도 수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른이 채 되지 않았을 정도로 젊었던 그가 수감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빨리 유명을 달리했던 이유가 일제의 생체실험 때문이었다는 설(說)이 거의 정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윤동주의 마지막 1년 동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 팩션(Faction) 소설로 유명한 작가 “이정명”은 신작 <별을 스치는 바람 1,2(은행나무/2012년 6월)을 통해 윤동주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마지막 1년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그 정점으로 치달을 무렵 어머니와 헌책방을 운영하던 열일곱살 청년 “나(와타나베 유이치)”는 학도병(學徒兵)으로 징집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看守)로 부임하게 되는데, 온 지 석 달 만에 선배 간수이자 문서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 도잔”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형무소장은 나에게 이 일이 절대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며, 스기야마 살인사건을 조사하라고 특명을 내리고, 간수장은 스기야마의 검열 일을 나에게 맡으라고 명령한다. 죄수들에게 숱한 폭력을 휘둘러 악명이 높았던 스기야마의 죽음을 조사하던 중 의외의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의 시신 윗도리 주머니에서 발견된 “잘자요”라는 시 한편도 그렇고, 우연히 만난 인근 병원 간호사는 스기야마가 자신이 연주하고 있던 강당의 이 낡은 피아노를 조율(調律)했으며, 그는 결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맗한다. 또한 그가 남긴 검열 기록장에서 여러 편의 시들과 문구들을 확인한 난 형무소 내 젊은 시인(詩人)으로 알려진 조선인 창씨명 “히라누마 도주”를 소환하여 그를 조사한다.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 “윤동주”였다. 그가 털어놓는 스기야마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간호사의 말대로 그는 절대 악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윤동주와 스기야마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스기야마를 죽인 범인은 누구였을까?

 

 

책은 이처럼 후쿠오카 형무소 간수인 “스기야마”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화자인 “나”가 죽음에 얽힌 비밀을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쯤 윤동주가 등장할까 기대했었는데, 윤동주로 짐작되는 창씨명 “히라누마 도주”로만 등장할 뿐 그의 조선 이름 석 자는 1권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중반까지는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책의 재미와 감동은 윤동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악명 높은 간수로만 알려졌던 스기야마가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도 윤동주의 시와 글을 사랑하고, 그와 조선인 죄수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본격화된다.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은 윤동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책의 화자(話者)인 나도 아닌, 윤동주의 시와 글 때문에 가치관과 신조가 송두리째 변화한, 출판사 홍보 문구처럼 “영혼이 구원받은” “스기야마” 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좋아해서 시와 소설, 에세이 등을 총칭한 문학(文學)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처음에는 이 책에서 윤동주의 시와 글 때문에 악질 간수에서 윤동주의 시와 글을 사랑하고 그를 보호하려 했던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스기야마가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에 하루 아침에 야쿠자 생활을 접고 피아노 조율사(調律師)가 되었고, 노몬한 전투 - 영화 <마이 웨이>에서 징용으로 끌려갔던 주인공 장동건이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전쟁이 바로 이 전투이다 - 의 전쟁 영웅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동료를 밀고하고 살아남았던, 그 기억을 마음속의 빚으로 간직하고 살았던 어쩌면 누구보다도 여리고 상처 많은 사람이었다는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소장의 명령으로 글을 처음 배워 기계적인 검열을 해오던 그에게 윤동주의 시와 글은 마치 젊은 시절 그가 길거리에서 들었던 피아노 선율보다 더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 주었고, 그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는 마침내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자 더디기만 했던 읽는 속도가 점점 속도를 내더니, 결국 윤동주가 죽고 스기야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꼼짝없이 책에만 붙잡혀 있고야 말았고, 다 읽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과 감동에 책 표지를 몇 번을 쓸어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앞서 언급한 국어 선생님 때문에 외우다시피해서 책을 읽으면서는 대충 읽었던 책에 실린 윤동주의 시들이 “다르게” 느껴졌고, 결국 시와 함께 다시 읽다시피 한 이 책, 자연스럽게 그 시들에서 책에서의 윤동주와 스기야마의 관계가 오버랩되면서 처음 읽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그제서야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픽션(fiction) 임은 알고 있지만 이처럼 문학 - 여기서는 윤동주의 시와 글이다 - 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영혼을 구원하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 국어선생님의 감탄사 “아!”의 의미를 이제서야 올곧이 이해하게 만든 감동적인 책이었다. 전작들이 재미에 치중했던 장르소설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재미는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감동이 재미의 부족함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개인적으로는 이정명 작가하면 제일 먼저 이 책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릴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작품도 작가의 전작들처럼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감동적인 영상이 그려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두 번을 읽고서 제대로 된 감동을 느꼈던 것처럼 한 번 읽고 말 그런 책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여러번 읽게 될 것 같은 이 책, 그래서 책 속에 실려 있는 윤동주의 시들과 소설 속 가상의 인물 스기야마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의 마지막은 국어선생님처럼 윤동주의 이름을 부르고 끝을 맺는다.

 

"아!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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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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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미나토 가나에”를 지난 6월 <왕복서간>에 이어 2개월 여 만에 다시 만났다. “위키백과”에서 그녀의 작품을 검색해 보니 일본 현지 출간일 기준으로 <왕복서간(현지 2010년 9월 출간, 6번째 장편)>보다 전인 2010년 1월에 출간된 그녀의 4번째 장편소설이다. 출간시기를 확인해 본 이유는 데뷔작이자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고백(2008년 8월 출간)>이 그녀 자신도 큰 부담을 느꼈었는지 어느 인터뷰에서 "오 년 후에는 <고백>이 대표작이 아니길 바란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말한 “5년”이 지난, <고백>을 뛰어 넘는 대표작이 될 수 있을 지 궁금해서였다. <고백> 이후 2년이 채 되지 않은 작품이니 이 작품은 아직은 <고백>의 멍에 - “2년차 징크스”라고도 불리는 “소포머 징크스(Sophomore Jinx)" - 를 벗지 못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느 책을 선택하든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작가이니 만큼 이번에는 추리소설로써 어떤 식의 재미를 선보일지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쿄 시내에 위치한 고급 빌라에서 회사원 “노구치 다카히로”와 부인 “나오코”씨가 사망했다는 신고가 경찰서에 접수된다. 경찰은 당시 현장에 있던 여 대학생 “스기시타 노조미”, 노구치의 부하 직원 “안도 노조미”, 사망사건이 있던 날 노구치 자택에서 출장 디너를 제공할 예정이었던 레스토랑 직원 “나루세 신지”, 아마추어 작가이자 나오코와 불륜관계였던 “니시자키 마사토”, 이렇게 네 명의 젊은이에게서 사건의 정황을 듣는다. 사건은 노구치가 아내 나오코를 칼로 살해하고, 이를 본 니시자키가 노구치를 금속 촛대로 머리를 가격하여 살해한 것으로 결론이 나고, 니시자키는 십년 형을 언도받아 수감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네 명은 서로간의 관계와 자신들의 과거사, 그리고 경찰 진술에서 밝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독백(모놀로그) 형식으로 털어 놓게 되고, 마침내 사건의 숨겨진 진상이 하나 둘 씩 드러나게 된다.

 

 

 

2008년 등단 이후 4년 동안 9편의 작품을 발표해 이제 중견 작가 반열에 올라선 “미나토 가나에”는 데뷔작인 <고백>에서 일치감치 완성한 그녀만의 정형화된 틀을 계속해서 반복해오고 있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권수는 몇 권 되지 않지만 그동안 읽은 그녀의 작품들의 형식이나 글의 전개가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즉 서두에 사건을 제시하고, 단순할 것 같은 사건이 관련 인물들이 사건에 대해 털어 놓으면서 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조금씩 그 얼굴을 들어내고, 결말에 이르러 예상을 뒤엎는 반전(反轉)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한 후 마무리하는 형식 말이다. 작가가 소설의 일반적 서술 경향인 “3인칭 시점”을 피하고 “1인칭 시점” - 주로 등장인물들의 고백 형식인데 <왕복서간>은 특이하게 서로 주고받는 “편지” 형식이지만 1인칭 시점 임에는 변함이 없다 - 을 고집하는 이유는 고백 형식이 등장인물의 내밀한 심리를 가장 잘 그려낼 수 있을뿐더러 사건의 진상을 전지적(全知的)인 입장에서 한 번에 다 드러내지 않고, 등장인물 각자의 상반된 시각과 심리를 통해서 블록을 끼워 넣듯 점증적으로 전체적인 얼개를 완성해 나가는데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구성은 독자의 예상을 작가가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한, 그래서 결말에서 그렇게 의도된 예상을 뒤엎는 반전으로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하는 장치로써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그녀만의 경향은 양날의 검(劒)이 될 수 있어서 이런 경향 때문에 그녀의 신작들을 꾸준히 선택하는 충성스러운 독자들도 있겠지만 몇 권 만에 금세 식상함을 느껴 실망하게 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에서 데뷔작인 <고백> 이상의 놀라움과 충격을 선보이지 못한다면 그런 실망감은 더욱 커지게 될 테고, 결국 “미나토 가나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는 혹평(酷評)으로 이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떨까?

 

 

앞서 말한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 점증적으로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는 구성은 여느 작품들 못지않게 탁월하지만 그녀의 장점인 반전의 충격은 영 밋밋하고 심심해서 솔직히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는 별로 느낄 수 가 없었다. 물론 작가 스스로가 “저는 러브 스토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손을 마주 잡는다,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듯이 작가가 들려주고자 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곱씹어 볼 만 하지만 - 그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언급할 만한 꺼리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올곧이 공감할 수 가 없어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 이 책의 본령은 역시 추리소설이 아닐까? 노구치 부부 살인 사건 자체가 단순하고, 반전도 범인이 뒤바뀌거나 또는 숨겨진 살인 의도가 있겠거니 하고 쉽게 예측해볼 수 있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차라리 전에 읽은 <왕복서간>처럼 감동 코드라도 있다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추리소설도, 그렇다고 연애소설도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이 되고 말았다.

 

 

전문 문학평론가도 아닌 어쭙잖은 감상문이나 쓰는 주제에 감히 충고해 본다면 이제 그녀도 소재와 형식 면에서 <고백>의 틀을 과감히 깨는 “파격(破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작가가 자신 만의 문학적 경향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틀 안에 갇혀 주제의식의 변화 만을 가지고는 <고백>을 뛰어넘는 성취와 재미를 선보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그러기에 앞으로 그녀가 선보일 작품들은 가장 성공한 자신의 첫 작품에 계속해서 비교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을 계속해서 읽을 팬으로써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고백>을 뛰어 넘는 걸작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소망에 주제 넘는 충고로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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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브
김진우 지음 / 북퀘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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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판타지, 추리, 액션, 공포 등 우리나라 장르 소설들도 이제는 대형 서점에 별도 코너를 차지할 정도로 저변(底邊)이 많이 넓어졌고, 성취와 재미 면에서도 외국 유명 소설들 못지않게 뛰어난 작품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꽃들이 만발(滿發)하거나 풍성한 열매들을 수확하는 수준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우리” 읽을거리가 자꾸 많아지는 것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팬으로써는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개화(開花)는 커녕 벌판에 듬성듬성 싹을 틔우는 정도에 그치는 장르가 바로 SF(Science Fiction) 소설인 것 같다. 하긴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클라크” 등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SF 작가의 작품들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하니 장르 자체가 인기 없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SF 부흥을 위한 활동은 꾸준히 이어왔다고 하는데, 웹진이나 동아리 중심으로 신인 작가들을 꾸준히 배출해오고 있고, 십 수 년이 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도 여럿 있다고 하니 우리 SF 소설 장르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오랜만에 “우리” SF 소설인 <애드리브; 사.라.지.는.것.은.없.다.(김진우 저/북퀘스트/2012년 8월)>을 읽었다. 그동안 서양과 일본 SF 소설들은 여러 권 읽었는데, 우리 작품은 작년(2011년) 2월 단편집인 <브로콜린 평원의 전투> 이후 근 1년 반 만에 만난 셈이다. 이 작품을 선뜻 선택한 이유는 “공상 음악 소설”로 불릴 만큼 독특하고 기발한 소재도 좋았지만 작가가 1989년에 데뷔하여 근 20년 넘게 활동해 온 베테랑 작가였기 때문이다. 작가 이력을 보니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척박하기만 한 우리 SF 소설 분야에서 2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니, 그 내공(內攻)이 가히 완성의 경지라는 노화순청((爐火純靑)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받자마자 새 작가를 만난다는 낯섦과 설렘을 함께 느끼면서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책은 1부「1999년」과 2부 「2901년」로 구성되어 있는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다 특히 2부에서는 다양한 SF적 설정이 소개되어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힘들지만 주요 등장인물과 설정 정도만 간단하게 소개해보자.

 

1부의 주인공인 “사타리”는 학창시절 자신의 이모가 운영하는 피아노 교습소에 밤마다 찾아와 몰래 기타를 연습하던 한 소녀에게서 기타를 배운 후 기타의 매력에 흠뻑 빠져 기타리스트의 길에 들어섰지만 군대를 제대한 후 기타 연주를 반대하는 이모 슬하에서 벗어나 낮에는 공장 일에, 밤에는 무명의 인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낡은 빌라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청년이다. 같은 또래의 천재 여무용가의 음악 반주 -자신의 스승격인 소녀도 이 여무용가의 반주를 맡았었다 - 를 맡으면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가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활동을 접고 아프리카로 떠났다가 사고로 죽으면서 사랑도 허무하게 끝이 나고, 설상가상으로 그 또한 작업 중에 손가락 둘을 잃고 만다. 사실상 기타리스트의 삶도 끝나야 정상이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고 더욱 활활 불타오른다. 여무용가의 아버지가 죽은 딸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참가할 기회를 마련해 준 음악 페스티벌에서 사타리는 밴드 멤버인 “고다우”와 함께 공연을 하지만 어디선가 무대로 날아온 새들과 난해하기만 음악 때문에 야유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온다. 친구인 고다우는 어디선가 사고를 당해 사타리를 찾아와 그의 품에서 죽고, 사타리 또한 그의 유골을 들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어느 벌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게 한다. 이렇게 천재 음악가 사타리의 음악과 삶은 제대로 빛을 발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일까? 아니다. 900 년 후 19만 6775년 전부터 현재까지 활동했던 음악가 4만 3250명 중에서 30세기의 인류가 선정한 10인의 음악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는 음악의 신(神)으로 추앙받는다.

 

그로부터 900 년 후인 2901년, 여러 번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의 삼분의 이가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고, 그런 와중에 음악이 세계 종교가 되어 버리고 음악가들이 권력을 쥐는 일련의 과정 끝에 음악을 강압하는 “연방”과 반대로 음악의 자유를 주장하는 “반연방”으로 나뉘어 치열한 전쟁을 치른다. 또한 수많은 음악가들은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 전설의 음악인들의 음악을 직접 녹음하고, 한편에서는 음악가들이 죽음의 음악 연주 대결을 펼치는 “레퀴엠(Requiem)"을 벌이는 그런 세상이다. 그런 미래의 지구에 전 우주(宇宙)를 떠돌아 다니며 각 행성의 음악을 채집하는 신(神)적 존재가 찾아온다. 바로 900 년 전 사타리의 기타 연주를 직접 녹음하러 온 것이다. 연방의 수뇌부는 이 사실을 극비에 붙이고 어린 소녀 모습의 신적 존재에겐 사타리가 이미 먼 과거의 존재라는 것을 숨기고는 그녀가 타고 온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괴비행체 ”해파리“를 이용해 반연방을 몰아붙인다. ”해파리“ 때문에 고전하던 반연방 수뇌부는 신적 존재를 알아내고는 과거에서 사타리의 제자였던 ”오한음“을 데려와 사타리로 속여 기타 연주를 하게 하여 음악을 녹음시켜 신적 존재와 해파리를 지구에서 떠나게 만든다. 이렇게 전쟁은 반연방의 승리로 끝나고, 음악전문잡지 “무궁동”은 창립기념 이벤트인 “30세기의 인류가 선정한 10인의 음악가” 콘서트를 연다. 1위를 차지한 사타리의 연주 동영상이 상영되면서 콘서트는 최고조에 이르는데, 이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이처럼 책은 1부에서 현대 시대의 천재 기타리스트 “사타리”의 음악과 삶을 소개하는 “음악소설”로, 2부에서는 음악이 세계를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그린 “SF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주(主) 소재인 “음악”은 이 책에서 세계 종교로 추앙받기도 하고, 음악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하면, 음악 때문에 양 진영으로 나뉘어 지구의 헤게모니를 위해 전쟁을 벌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음악이 전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이자 비밀로까지 그 개념이 무한 확장되는 작가의 상상력이 “공상 과학 소설(science fiction, SF)이 아닌 “공상 음악 소설(music fiction, MF)”이라는 출판사 소개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참 독특하고 기발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음악에 문외한이다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음악들이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높은 수준이라고 느껴지는 데는 그만큼 작가의 구성력과 상상력이 뛰어난 데도 있을 테고, 음악 작곡가, 기타리스트,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음반도 발표한 작가의 이색 경력이 잘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고 SF 설정 면에서 꽤나 충실하다. 우선 시간여행(時間旅行, Time Travel)에 대한 설정에 대해 소개해보자. 2901년 미래는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 물론 음악애호가들이 과거의 음악가들의 연주를 녹음해오는 데 주로 이용되지만 예수의 죽음이나 싯다르타 해탈의 순간도 빈번한 시간여행이 이뤄질 정도로 인기가 높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 시간여행이 자주 행해지다 보면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는 “노이즈”도 자주 발생하는데, 자칫하다가는 시공간이 왜곡되어 미래 세계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이를 통제하는 연구소를 설치하여 관리감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인물을 미래 시간대로 데려오는 것은 어떨까? 이또한 심각한 노이즈를 초래할 수 있어 금지되는데, 다만 노이즈를 최소화하는 경우, 예를 들어 죽기 직전이라던가 또는 행방불명 등으로 그 시간대에 영향이 거의 없는 경우는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미래 시간대로 넘어온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자연발화(自然發火) 해버린다. 즉 시간대를 거슬러서는 생존할 수 가 없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람이 죽어도 그 뇌(腦)를 복제하여 네트워크 상의 생명체로 다시 살 수 있다든지, 시체를 다이아몬드 - 주로 레퀴엠 연주 대결에서 패배한 음악가들이 죽으면 그 시체를 가지고 다이아몬드를 만든다. 이 다이아몬드는 음악가 생전의 명성이 높을 수 록 암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 로 만드는 등 다양한 SF 설정이 등장한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차치하고 말이다.

 

이야기 구성과 전개 또한 꽤나 치밀하고 탁월하다. 서로 900년이나 되는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시간과 공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 연결되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1부에서 아침 특정 시간만 되면 울리는 정체불명의 노래인 “원 웨이 오어 어나더”라는 곡이나 사타리가 연주할 때면 모여드는 “유령”의 정체들, 그리고 반대편 빌라 옥상의 의문의 여인, 사타리 공연장에 등장하는 새 떼들이나 애완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사라져 버리는 기이한 현상들은 2부에서 비로소 그 정체가 밝혀지고, 1부에서 등장했던 사타리의 제자 “오한음”이 2부 말미에서 잠깐이지만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등 서로 별개일 것 같은 이야기들과 설정이 블록처럼 서로 끼어 맞춰져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어쩌면 음악 소설인 1부가 본편이고 2부는 일종의 외전(外傳) 격으로 볼 수 있겠고, 반대로 1부는 2부 이야기를 위한 설정집이고 2부에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고 볼 수 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은 1, 2부를 모두 읽었을 때야 비로소 그 가치와 재미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부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음악 소설이지만 2부의 SF 파노라마가 펼쳐졌을 때 1부의 가치 또한 그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등장인물들과 이야기 자체도 꽤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1부는 사타리라는 천재 음악가의 성장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하며, 2부 또한 헐리우드 SF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펙터클하다. 특히 음악가들이 연주로 데스매치를 펼치는 “레퀴엠" 장면은 칼과 총이 난무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음색과 선율, 연주 테크닉으로 결투를 벌인다니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머릿 속에서 극과 극을 치닫는 선율과 함께 환희에 빠져 혼을 실어 열정을 온 몸으로 발산하는 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질 정도로 시청각(視聽覺)적인 면에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가 막힌 장면이라고 하겠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호불호(好不好)는 개인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것 같다. 사타리가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장면들도 그렇고, 아무리 시청각적 효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활자로 읽게 되는 음악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다소 유치하게 보일 수 도 있는 SF적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 등 때문에 이 책, 대중 소설이라기보다는 음악과 SF, 둘다를 함께 좋아하는 소수 마니아들만을 위한 소설로 남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 열광하는 나는 마니아라고 할 수 있을까? 음악적 소양이 평범에 그치고 있어 책에 등장하는 음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마니아의 반열에는 들지 못하겠지만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 그리고 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작가의 상상력과 글 솜씨에 홀딱 반한 “팬(Fan)" 정도 쯤으로 해두자^^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니 감상이 너무 길어졌지만 나의 편협한 우리나라 작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가치와 재미 면에서 별점 만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아울러 이런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담은 우리 SF 소설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며 서둘러 이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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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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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귀신, 심야버스 괴담, 옥수역 귀신, 홍콩할매 등등 요즈음 들어 도시 괴담(怪談)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그 수(數)도 더욱 많아지고 있지만 수많은 괴담 중의 대표 주자는 뭐니뭐니해도 “학교괴담(學校怪談)” 일 것이다. 학교괴담 속 학교에서는 자정(子正)만 넘기면 음악실의 피아노가 저절로 울리고, 복도에는 과학실 해골 모형과 유관순 누나 동상(銅像)이 걸어 다니며, 바람 한 점 없는 데도 교실에는 커튼이 태풍을 만난 듯 펄럭이고, 복도와 교실 뒷 편에 걸려 있는 그림 속 얼굴의 눈들은 붉게 타오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동묘지가 그렇게 많았었는지 모든 학교는 공동묘지 터 위에 지어졌고, 졸업 앨범에는 수 십 년 째 같은 얼굴의 학생이 찍혀 있는데, 이를 알아보는 학생 또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갇혀서 수업을 받게 된다. 이처럼 한두 가지 씩은 꼭 들어봤을 학교괴담의 기원은 어디일까? 그 기원은 각종 요괴 이야기가 발달했던 일본의 문화가 일제강점기 때 정비된 근대학교 제도와 접목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고, 일본의 귀신 이야기 대부분이 물건에서 요괴가 탄생하는 것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 점도 그 근거라고 한다. 또한 한 때 유행했던 “분신사바” 괴담도 일본에서 비롯된 것이고, 마을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무덤가를 형성하였던 우리 조상들의 전통으로 볼 때 무덤가 위에 학교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고 우리 이야기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학교괴담, 넌 어디서 왔니?”, 2012/7/12, 한국콘텐츠진흥원 발췌) 최근에는 우리 전통 문화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니 이제 우리 문화화(文化化)되고 있는 듯 한데 아뭏튼 학교괴담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 위에서 열거한 학교괴담 한두 가지 씩은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학창시절의 추억(追憶) 때문은 아닐까?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기쁨과 슬픔, 우정과 질투, 자유와 속박, 성공과 좌절, 상처와 치유 등 서로 상반된 감정들을 같이 맛보고 나누며 학창 시절을 함께 지냈다는 동질감 때문에 학교괴담에 더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괴담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역시나 서언(序言)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 이번에 소개할 책은 이런 학교괴담을 소재로 한 “방미진” 작가의 <괴담;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문학동네/2012년 7월)>이다.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일 등과 이 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 등이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산비탈을 깎아 만들어 찻길에서 학교 정문까지 언덕길이 길게 이어지는 어느 고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연못에는 위와 같은 괴담(怪談)이 떠돌고 있었다. 그저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유치한 농담쯤으로 여길 수 도 있는 이 괴담이 본격적으로 떠돌게 된 데는 “서인주”라는 여학생이 시체로 발견되고 난 후 부터였다. 사인(死因)은 자살로 판명 났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괴담은 확대 재생산되어 떠돌아다니고, 아이들은 인주와 단짝이었던 지연과 연두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같이 성악을 전공했었기에 셋이서 어울려 다녔지만 타고난 음색에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던 인주를 시샘한 연두와 지연이 인주를 따돌리는 그런 관계였다. 여기에 자신의 제자이자 부유한 환경에 속물 근성의 어머니를 두고 있는 연두와 지연을 경멸하는 음악 선생님, 남자 하나 여자 둘이라는 트리플 연인 관계인 치한과 보영, 미래, 어릴적 부터 엄마의 과잉보호를 받는 언니 연두를 미워하는 연지, 인근 대학에 다니는 천재화가이자 연못에서의 인주의 죽음을 목격했던 치한의 형 요한, 연두를 스토킹하는 남학생 등 많은 인물 군상들이 서로에게 악의와 질투, 애정과 질시 등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품어내며 이야기를 엮어간다. 인주는 과연 자살한 것일까 아니면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뜬소문에 불과했던 연못괴담이 진짜로 이루어진 것일까?

 

24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 페이지 당 20 줄 내외의 듬성듬성한 줄 간격이라 한 두 시간이면 뚝딱 읽어낼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다 읽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이런 류의 학교괴담은 정석(定石)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여고괴담>에서처럼 입시경쟁에 내몰리면서 서로가 친구가 아니라 적(敵)이 될 수 밖에 없는 삭막한 학교 현실 속에서의  갈등과 시기, 미움, 질투,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비롯된 공포 상황의 연출을 기대해볼 텐데, 책 중반이 넘도록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주의 죽음과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인 연두, 지연의 관계에서 서로를 미워하고 질시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고, 주문(呪文)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위의 문구들과 음악실에서 죽은 인주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없진 않지만 그리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지도 않고 - 음악실에서의 상황은 친구의 죽음과 괴담을 연관시켜 생각하는 연두와 지연의 상상으로도 볼 수 있다 -, 결말에 이르러 드디어 드러나게 되는 괴담의 실체도 원인과 결과가 모호한 결말로 마무리되고 만다. 특히 결말에서 괴담이 이뤄져 둘째, 이 등, 두 번 째 아이가 사라졌는데, 그걸 의도한 아이들 기억에만 남아 있고 그들의 존재가 완벽히 사라진다는 설정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 교육의 모순과 심각성을 강조하는 사회파적 추리소설 경향을 따르던지, 아니면 반대로 학교 교육의 문제점은 그저 원인이나 배경 정도로만 설정하고, 공포에 포커스를 맞춰 원인과 상황 연출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그려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텐데 두 가지 모두를 담아내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로만 느껴졌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의 서평들 중 호평(好評)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오래되어 지금 학생들의 심리와 정서에 올곧이 감정이입하지 못한 내 이해력과 공감의 부족과 자기 맘대로 기대치를 설정해놓고 그 기대에 못 미친다고 금세 실망해버리는 나의 변덕스러움을 탓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쉽지만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할 만한 공포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책이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니 이 글 때문에 책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는 없길 바래본다. 지금 학생들의 심리와 정서를 잘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분들과 학교괴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 봐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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