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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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논객이자 미학자인 “진중권”과 <과학콘서트>의 저자이자 과학자인 “정재승”이 21개의 주제에 대해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진중권+정재승, 크로스; 무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를 읽고 감상글을 올린 지가 벌써 2년이 넘었다. TV 토론 프로그램으로 기획해도 꽤나 인기 있었을 “이벤트”였는지라 책도 인문 교양 서적으로는 드물게 10만 부 이상 팔렸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분명 2편이 나오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시리즈 2편이 나왔다. <진중권+정재승, 크로스 2;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웅진지식하우스/2012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지난 1권보다는 주제 개수를 하나 늘려 22개를 이야기하는 이 책,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 시대의 대표 입담꾼 - 논객(論客)이나 지성(知性)이란 말이 더 어울릴 수 도 있겠지만 두 분이 더 낯 간지러워 할 것 같다 - 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두 남자가 펼쳐내는 유쾌하고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책에는 “로또”, “낙서”, “라디오”, “트위터”, “컵라면” 들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주제에서부터 “오디션”, “레이디가가”,“트랜스포머”, “뽀로로”, “고현정”, “테오 얀센” 등 문화·연예계의 화제 꺼리들, “자살”, “학교짱”, “나는 꼼수다”, “아랍의 봄”, “4대강” 등 시사성 있는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22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구성은 전편처럼 각자 4~5페이지(삽화 포함) 분량으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에서의 해석을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떤 주제는 영 생소하기만 하고, 어떤 주제는 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주제도 있으며, 미학자와 과학자라는 서로 다른 입장임에도 같은 결론을 낸다 싶은, 즉 차별화된 시각이 느껴지지 않는 주제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전편 못지않은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글들이었다. 22개 주제를 다 소개할 순 없을 것 같고 그중 “UFO”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을 간단하게 소개해보자.

 

 

"UFO" 편에서 진중권 교수는 UFO를 믿고 싶어 하는 이유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자, 외계인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물으며 과거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신의 역사로 돌렸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을 즐겨 외계인의 소행으로 돌린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피데이즘(Fideism)의 거의 본능적 욕구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과학이 그런 믿음의 대상을 제거해버렸고, 그것을 보충해주는 것이 UFO 신앙이 아니냐면서 하늘에서 목격된 물체 중 일부는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 UFO가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글자 그대로 외계인의 전능과 선의를 믿음으로써 라엘리언 같은 신흥종교에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UFO의 실존을 진지하게 믿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며 또 믿는 척해주는 것’ 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의 UFO 신앙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며, 이 넓은 우주에 달랑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는가 하고 물으며 글을 끝맺는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재승 교수는 자신의 UFO 목격담을 예로 들면서 비록 외계 생명체를 찾는 탐사계획(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이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도, 외계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 지구가 ‘인간 같은 지적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뜻하고 확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UFO를 만들어 보냈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진 않으며, 만약 실제로 먼 행성에서 지구까지 와서 우리를 몰래 관찰할 정도의 지적 생명체라면, UFO 같은 비겁한 방식으로 지구인과의 접촉을 시도하진 않으리라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 교수 역시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한동안은 유효했으면 한다고 말하는 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째, UFO에서 외계 생명체가 내려오는 순간, ‘외계인은 우리가 전문’이라며 인간을 대표한답시고 떠들 미국이 몹시 아니꼽다. 둘째, 현재 유엔은 외계 생명체와 협상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협상과 설득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외계 생명체에 대한 정치적 대응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셋째, 기독교 같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종교들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다. 넷째, 무엇보다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엔 진실을 전해줄 스컬리와 멀더가 없다.

 

 

그리고는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비행물체뿐만 아니라 호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원자력발전소 근처,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사고에도 어쩌면 확인된 것보다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면서 해결되지 않은 ‘의혹’이 많은 나라일수록, UFO를 목격하는 시민도 더 많은 듯하며, ‘미확인’과 ‘의혹’이 둥둥 떠다니는 나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는, 과학자답지 않은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서 가장 “백미(白眉)”는 마지막 서로를 평가(?)하는 글이었다. 즉 “진중권과 정재승”, 본인들을 23번째 주제로 등장시킨 셈이다. 각자 중반까지는 의례적으로 서로에 대한 칭찬(?)을 이야기하는데, 끝에 가서는 험담(?) 한 마디씩을 늘어놓는다. 정재승 교수는 진중권 선생이 맞는 말을 하면서도 대중에게 욕을 먹는 건 결국 나중에 자신의 말이 맞았다고 결론이 났을 때 멋있게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고 “거봐, 내 말이 맞았지?” 하며 끊임없이 트윗글을 쏟아내기 때문이라는 만화가 강풀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그가 평소 스스로를 ‘장동건·원빈급으로 잘생겼다. 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취지의 트윗글을 종종 남기는데, 이게 ‘진심’이라는 것, 자신을 ‘조각미남’이라고 믿는 이 ‘각진 남자’는 자신의 외모를 평가할 때만은 평소 그가 보여준 고급스런 미적 취향을 전혀 발휘하지 않는다는 게 큰 흠이며, 심지어 호전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진중권 교수는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정재승 교수가 자기만큼의 미모(?)만 가졌더라도, 그는 지금 가진 것보다 몇 배의 사회적 영향력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물론 핑계는 정재승 선생에 관한 글을 쓴다고 트위터에 올렸더니, 여러 트위터러로부터 그를 꼭 “미학적으로 디스”해달라는 간곡한 주문이 올라왔기 때문에 이렇게 평한다고 변명하지만 말이다. 정재승 교수 말대로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 이 책의 글들은 지난 2011년 3월 28일 <한겨레 21> 제853호에서 첫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 찾아 읽었던 글들이라 이 책을 통해서 “복습(復習)”을 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연재 당시에는 격주에 한번씩 감질나게 만나다가 이렇게 책으로 한꺼번에, 그리고 연재 지면에는 싣지 못했던 삽화들과 함께 만나니 더 새롭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쉽다면 1권 감상에서도 밝힌 것처럼, 그리고 진중권 교수의 마지막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미학(美學)”과 “과학(科學)”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시각에서의 “예술-인문학-자연과학의 통섭을 위한 본격적인 이론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정도 수준이 딱 맞을 것 같다. 괜히 어려운 이론이나 공식들 보다는 이 책처럼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더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즌 3도 나올까? 두 분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시즌3을 언급하고 있으니 분명 나올 듯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주기(週期)를 당겨 주기 바란다. 그 어느 때 보다 유행이 빨라지고, 그만큼 화제꺼리가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두 분의 해석과 평가를 좀 더 빠르게 듣고 싶기 때문이다. <크로스 시즌3>도 조만간에 이렇게 감상글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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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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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의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를 신작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원제 Robe De Marie/다산책방/2012년 7월)>로 다시 만났다. 전작이 추리소설로서의 스릴과 재미는 만점이었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잔인한 장면들, “유니크”하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캐릭터 등 아쉬움도 들어서 “피에르 르메트르”에 대한 판단은 후속편으로 유보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판단을 할 기회가 2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전편(P.536) 보다는 줄어든 분량(P.372)이지만 표지만큼은 전편 못지않게 매혹적인 이 책, 기대반 걱정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외무부 국장 부부의 여섯 살 난 사내아이 “레오”의 보모인 소피는 레오 어머니의 권유로 부부의 집에서 잠을 자고는 수많은 다른 아침과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 특별히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눈물에 젖고 목이 꽉 멘 상태로 깨어났다. 남편인 “벵상”이 죽고 난 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그녀에게 눈물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은 레오의 몸에 전혀 움직임이 없다. 발가벗긴 채 세우처럼 웅크리고 있는 레오의 두 손과 두 발목은 한데 묶였고, 머리는 무릎 사이에 처박혀 있었으며, 아이의 목에는 자신의 신발 끈이 묶여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조였는지 살 속 깊이 파인 가느다란 홈처럼 보인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그만 아이를 죽여 버린 것이다. 서둘러 집을 빠져 나온 소피는 자신의 집으로 가 소지품을 챙기고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는 기차역으로 간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가방을 분실한 소피는 자신의 가방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 했던 젊은 여인 “베로니크”와 실랑이를 벌이고, 소피는 사과하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 식사와 술을 함께 하게 된다. 술이 과했는지 잠시 정신을 잃었던 소피, 그런데 소피 옆에 베로니크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지 않은가. 레오처럼 베로니크도 소피가 무의식 중에 살해하고 만 것이다. 소피는 베로니크의 신분증과 현금을 훔쳐 서둘러 도망쳐 나오고, 금세 잡힐 것이라고 장담하던 경찰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몇 년을 숨어 산다. 그러나 경찰의 1급 수배 대상으로 불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소피는 출생증명서를 위조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맘을 먹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가불하러 온 자신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하는 아르바이트 매장 점장을 살해하고야 만다. 결국 소피는 현역 군인인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아슬아슬한 도피 생활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소피가 벌여온 살인 행각이 소피의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가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음모”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줄거리는 책의 첫 장(章)인 <소피> 편만 요약한 것이다. 분량이 150 여 페이지 남짓 되는데 소피가 아이와 여인을 잇달아 살해하고 숨어 사는 과정과 심리묘사가 꽤나 재미있고 스릴 있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 출근길에 버스에서 읽다가 책에 푹 빠져서 정류장을 놓칠 뻔 했다-. 그런데 장의 말미에서 소피가 도피 생활을 종지부 찍기 위해 낯선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이 나와서 이렇게 끝나 버린다면 남은 200 여 페이지 분량을 무엇으로 채우려고 그러나 하는 걱정이 들 무렵 작가는 <프란츠>라는 장으로 변경하여 장의 제목과 같은 “프란츠”라는 남자의 일기를 소개한다.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남자의 일기가 거듭되면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소피의 살인과 도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소피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정신질환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프란츠라는 남자가 수 년 동안 스토킹하면서 그녀에게 약물을 몰래 먹여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빠뜨려 버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죽게 만든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지 누구라도 저런 음모에 빠진다면 “실성”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프란츠라는 남자는 왜 이렇게 소피를 나락에 빠뜨리려고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들 즈음 다시 한번 장이 바뀌고, 그 이유가 밝혀지고 그렇다면 소피는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다가 죽고 말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또 장이 바뀐다. 이렇게 반전과 시점전환이 절묘한 타이밍 - 살짝 지루해지면서 궁금증이 증폭되는 시점을 작가는 마치 타이머로 계산이라도 하듯 정확하게 맞춘다 - 에 일어나다 보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몰입감이 강력하다. 전작에서도 이야기의 전환점으로 동시에 지루해질 찰나에 새롭게 긴장감을 불어 넣고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장치로 반전을 활용하더니 이 책에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반전과 이야기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주인공 소피와 그녀를 나락에 떨어뜨린 프란츠라는 인물 설정과 심리 묘사 또한 탁월해서 추리소설로서의 서사구조와 플롯, 인물 설정 두 가지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재미와 스릴을 선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도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전작보다는 수위가 덜하고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잔인하진 않아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던 점도 괜찮았던 점으로 꼽고 싶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프란츠가 소피를 스토킹하고 그녀를 정신질환에 빠뜨리는 과정이 꽤나 사실적이지만 그렇다 해도 몇 년 동안이나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고, 너무 치밀하게 그린 나머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소피가 자신에게 가해진 음모를 알아채는 장면에서도 몇 년을 약물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그녀가 그냥 지나쳐 버릴 수 도 있는 사소한 발견으로 단번에 추리해내는 장면이나 모든 음모를 알게 된 소피가 프란츠와 대결하는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결말 - 원제는 <웨딩드레스>였는데 번역 제목에서 <그 남자>가 삽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 들도 다소 억지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아쉬움들은 책의 재미와 스릴이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으니 굳이 유념해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판단을 유보했던 작가 “피에르 르메르트”에 대해서 후속작을 읽었으니 이제는 약속(?)- 저 혼자 약속하고 저 혼자 지킨단다^^ -대로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내 판단은 이 작가,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은, 아니 “반드시 만나봐야 할 작가” 이다 . 그래서 출간 예정인 <세밀한 작업>과 <사악한 관리인>,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조바심이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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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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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1941).

사실 난 그녀의 작품이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저 “박인환”의 시(詩) <목마와 숙녀>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이름 정도로만,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녀의 대표 소설인 <세월(The Years/1937년)>도 소설이 아닌 “시(詩)”로 알고 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해 “철저히” 무지(無知) 했었다. 그런 그녀를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원제 The Hours / 비채 / 2012년 8월)이라는 소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묘하게도 그녀의 대표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말이다. 책을 읽기 전 그녀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문학적으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의 개척자로 평가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적 의붓오빠들의 성적 학대가 그녀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성(性)과 남성,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해서까지 병적인 수치심과 혐오감을 지니게 만들었고, 결국 1941년 강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작품보다 그 생애 때문에, 특히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인해 더욱 유명해져서, 그로 인해 생겨난 일종의 전설, 또는 편견은 아직까지도 그녀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네이버 캐스트, “버지니아 울프” 발췌. 2009.3.28.). 과연 이렇게 간단치 않은 삶을 산 그녀를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프롤로그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던 1941년 그녀는 남편 “레너드”와 언니 “바네사”에게 짤막한 편지 한 통 씩을 남기고 집 인근의 강으로 가 입고 있던 밍크 코트 주머니에 돌을 집어 넣고 강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가 흘러 내려간 강 다리 위에는 출정하는 군인들의 행렬과 그들을 지켜보는 소년과 엄마가 있었다.

 

본문으로 들어서면 1923년의 “울프 부인(버지니아 울프)”와 1949년 “브라운 부인(로라 브라운)”, 1999년 “댈러웨이 부인(클래리사 보건)”,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 여인의 어느 특별한 “하루”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펼쳐진다. 이 세 여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로라 브라운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애독하며, 클래리사는 연인인 “리처드”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을 쓰다가 자신의 언니인 “바네사”와 조카들의 방문을 받고 밤에는 불현듯 런던행 기차를 타기 위해 역(驛)으로 나오지만 남편에 의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는 쓰지 못한 기차표를 쥐고 말이다. 로라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을 위해 어린 아들과 케잌을 만들지만 자신의 일상에 돌연 짜증이 나서 아이를 이웃집에 맡겨두고는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도로변 모텔에 들어가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온다. 클래리사는 옛 연인이자 지금은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막상 파티의 주인공인 리처드는 영 불안정하고 위태위태하기만 하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세 여인은 묘하게도 서로 오버랩이 되고 그녀들의 심리는 마치 흔들리는 거울에 맺힌 상(像)이 두 개, 세 개 겹쳐 보이는 것처럼 불안하게 흘러가기만 한다.

 

유려한 문체, 세 여인의 심리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 등 “모던&클래식” 이라는 시리즈 명칭에 걸맞게 현대판 고전 소설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문학적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활자(텍스트)는 눈에 들어와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는데 이야기(서사)의 맥락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여인의 하루를 그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각자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주변 인물들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고, 특히 세 여인의 심리 변화들에 공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활자와 이야기가 서로 겉도는 느낌이 들어 몰입이 되지 않았고, 결국 기계적인 페이지 넘김만 이어지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야 말았다. 다시금 이해해보려고 앞 장의 “작품 소개”와 맨 뒷장의 “작품 해설”을 몇 번 씩 읽어봐도 머릿 속에 이미지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로라 브라운의 어린 아들 리처드가 클래리사의 연인 리처드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도 “작품해설”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책을 참 건성으로 읽은 것이다. 그래서 책을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볼까 하다가 차라리 활자가 아닌 영상으로 이 작품을 만나보면 더 이해하기가 쉽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 소개”에도 나와 있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스티븐 달드리”가 감독하고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3)>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책과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영화는 책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담아냈다. 영화도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 여인의 하루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것이나 각자에게 일어나는 일들까지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런데 책에서는 세 여인의 이야기를 페이지를 별도로 분할해서 교차로 보여준다면, 영화에서는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으로 보여준다. 즉 아침에 세 여인이 침대에 일어나는 장면을 연속 장면으로 보여주고, 버지니아 울프가 델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간다고 첫 문장을 읊는 장면에서 바로 현실의 클래리사가 꽃을 사러가겠다고 독백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이처럼 세 여인의 이야기가 마치 동시대에 일어나듯이 서로 얽히고 설켜 진행 - 도입부에 시대와 장소를 자막으로 안내하지만 이후로는 등장인물의 옷차림으로나 알 수 있을 뿐 시대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 된다. 이런 영화의 구성을 보면서 그제서야 세 여인의 이야기가 시간대만 다를 뿐 어쩌면 서로 같을 수 도 있다는, 즉 각자의 하루 일상에 서로가 오버랩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책보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가 좀 더 부각된다. 책에서는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려 했지만 남편 때문에 가지 못한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서 런던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하지만 영화에서는 기차 역사 내에서 남편과 거친 언쟁을 벌이고, 책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리처드와 클라래사의 불안정한 관계도 영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책보다 이야기와 갈등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이 책과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잡혔다.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세 여인이 느끼는 삶에 대한 무게와 고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표면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그 행복이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져 버리는 유리잔처럼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그저 나름의 피상적인 감상일 뿐 이 책은 성별(性別)에 따라, 자신이 처한 환경과 겪어온 삶에 따라 달리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읽고 나서도 다른 독자들의 감상이 어떤지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책과 영화가 될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이게 책 감상인지 영화감상인지 종잡을 수 가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아뭏튼 푹 빠져 들 정도로 재미있지도 않고, 공감도 쉽게 되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자꾸만 책을 들춰 보게 되고 영화까지 보게 만든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이 책과 영화를 한번씩 더 볼 참이다. 그런 후에야 좀 더 명확하게 이미지가 그려지고 책에 대해서 올곧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보게 될 분들은 꼭 영화도 함께 보시기를 당부드린다. 책으로 영화를, 영화로 책을 서로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 영화에서 분명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니콜 키드먼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등장해서 못 본 것인가 싶었는데,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로 제 7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03)을 수상했다고 하니 주연인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배역으로 나오는 것일까? 인터넷 검색하면 바로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다. 직접 영화에서 찾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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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 단 하나의 사건이 역사를 바꿨다
김종성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에 가정(만약)이란 없다”

 

 

워낙 유명한 말이니 뜻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도대체 이 말을 누가 했을까 궁금해서 한 시간 여 동안 인터넷 검색해보니 결과는 누가 한지 “모른다”였다. 인터넷에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역사란 무엇인가>의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명언을 남긴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 ~ 1975)” 등 근현대 유명 역사학자들이 이 말을 했다고 하고 있지만 그 출처를 명확하게 언급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저 말도 출처가 불명확해 “누가 말 했다더라” 라고만 알려져 있는 유명인들의 명언(名言)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뜬금없이 저 말의 출처가 궁금했던 이유는 이번에 읽은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단 하나의 사건이 역사를 바꿨다(김종성 저/지식의 숲/ 2012년 8월)가 바로 이런 역사의 금기(禁忌)인 역사의 가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벌어진 30 가지 사건을 소개하면서 그 당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상상해보는 이 책,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세상의 이치(?)라고 꽤나 즐겁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 <지나간 역사도 움직일 수 있다>에서 서두에서 말한 “역사란 가정이 없다”라는 의미는 역사에서의 가정이 지난 역사가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므로 무의미할 수 도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가정을 하지 않으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으며 이모저모로 가정해 봐야만 역사에 대한 지식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칠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응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은 개인의 역사에도 적용되는데,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끔 되돌아보고, 거기에 지난날을 분석하고 이것저것 가정해 보는 사람이 인생을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공동체의 지나간 역사를 꼼꼼히 따져 보고 이것저것 상상해본다면, 역사에 대한 우리의 통찰력은 한층 더 심오해지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은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고, 작가가 본문에서 제시하는 서른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를 추리해보면, 인간의 뇌파에 담긴 정보를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과거를 읽어낸다는 무속인 이상의 정보를 갖게 되어 우리 민족의 미래를 읽는 능력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역사에 대한 가정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올곧이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요약해볼 수 있겠다.

 

 

본문에 들어서면 작가는 조선시대 30가지 사건을 조선을 바꾼 반전의 “순간”, “죽음”, “여인”, “남자”, “세계사” 이렇게 다섯 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은데 다 소개할 수 는 없고 가장 궁금했던 "요동정벌"에 대해서만 담아본다.

 

 

우선 첫 번째 글이자 조선 건국의 출발점인 위화도 회군(1388년)에 대해 소개해 보자. 이성계(李成桂)의 “4대 불가론”으로도 유명한 이 위화도 회군 사건은 아직까지도 논쟁꺼리로 남아있는 유명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위화도 회군 사건을 처음부터 요동정벌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경우와 요동정벌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경우 이렇게 두 가지 경우의 수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먼저 요동정벌 명령이 없었다면 고려 왕조는 훨씬 더 장수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한민족 왕조의 평균 수명이 중국 왕조들보다 상당히 긴 점(고구려·백제 900년, 신라 천년, 가야 520년, 조선 500년), 고려가 요(遼),금(金),원(元) 등 강력한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외교력과 군사력으로 충분히 극복했을 정도로 체력이 튼튼했던 점, 그리고 고려 말기 신돈과 같은 개혁 사상가와 신진 사대부의 등장 등 왕조를 지탱할 만한 새로운 지배층의 등장으로 위기 극복한 필요한 능력을 보유했던 점 등 당시의 세 가지 상황을 설명한다. 이를 토대로 작가는 위화도 회군 같은 돌발 변수 없이 고려 왕조가 원(元)·명(明) 교체기를 극복했다면 고려 왕조는 훨씬 더 오랫동안, 적어도 17세기 명(明)·청(靑) 교체기까지는 유지했을 것이며, 임진왜란은 고려군과 일본군의 대결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성계가 요동정벌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경우에는 요동에서 패했거나 승리, 두 가지 중 하나였을 텐데 패했다면 이성계의 몰락으로 이어져 상대적으로 최영 정권의 공고화를 가져왔겠지만 승리했다면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는 이성계의 위상이 더 높아져 양 측의 무력 대결은 이성계의 승리로 귀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고, 결국 위화도 회군보다 고려는 훨씬 더 빨리 멸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성계가 회군(回軍)하지 않고 요동을 정벌했다면 만주 벌판이 우리 땅이었을 텐데 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 정확히는 10년 후인 1398년, 정도전(鄭道傳)이 추진했던 “요동정벌”은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작가는 조선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李芳遠)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1398년)에서 정도전이 승리해서 이방원을 죽였다는 가정에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원의 잔존 세력인 "북원(北元)"이 외몽골 지역에 여전히 위협적인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만주 동부 지역은 여진족 군소집단들이 지배하고 있어서 명의 지배력이 미친 만주 서부는 상당히 위험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당시에는 수도가 남경(南京)에 위치하고 있어서(북경(北京) 천도는 1421년) 주력부대가 수도 근처인 남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명은 요동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 뿐 더러 당시에는 북경의 연왕(燕王) "주체"(훗날 제3대 영락제)와 황태손인 주윤문(훗날의 해제)가 대립하는 관계여서 중앙군이 연왕의 관할지를 지나 요동에 파병하기란 불가능했고, 연왕 또한 황태손과 대치하면서 자기 세력을 약화시키는 싸움일지도 모르는 요동 전쟁에 군사를 동원하기가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런 정세를 종합해볼 때 조선이 요동을 공략한다 해도 명나라가 최선을 다하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정도전의 요동 정벌은 승리(!)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도전이 이방원을 꺾고 압록강을 넘었다면 발해 멸망 이후 상실한 고토 만주를 되찾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당시의 요동정벌의 승리 가능성만 언급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그 후로 요동을 우리 땅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답은 역시 작가의 글 속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북원은 15세기 초 사실상 멸망하고 만주의 여진족들 또한 세력이 흩어져 버리고 말며, 연왕 주체는 내전 끝에 1402년 세 번 째 황제(영락제) 자리에 올라 북경으로 천도해서 명의 전성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조선군이 요동을 점령했더라도 불과 십 수 해 만에 명과 부딪혀야 했을 테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철수해야 하지 않았을까? 다만 명과 조선의 관계는 사대(事大) 관계가 아니라 좀 더 불편한 관계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30가지 사건들 중 조선 건국 초반의 “요동 정벌”에 대한 가정만 소개했는데, 책에는 이외에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가정들이 많이 담겨 있다.

 

 

작가는 나가는 글 <앞으로는 어떤 반전이 일어날까?>에서 이렇게 서른 가지의 소재를 놓고 조선시대 역사를 이리저리 재구성해 본 이유는 각종 변수에 따라 조선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이런 작업이 꼭 조선 역사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역사가 어떤 변수에 의해 어떻게 발달하는가를 이해함으로써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전체 시기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통해 미래의 역사 발전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말한다. 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역사 속에서 지혜를 얻고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보다 더 밝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보며, 각계각층이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높인다면 그것 역시 국제 경쟁력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몇 몇 가정에는 살짝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의 작가 “김종성”님은 <오마이뉴스>의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코너와 전작인 <한국사 인물통찰(2010)>을 통해 역사 이야기를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풀어 써서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이렇게 책으로 다시 만나니 반가움마저 들었다. 어차피 이 책이 역사적 새 학설을 주장하는 논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역사 에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이 그저 재미있게 읽거나 또는 작가와 다른 생각이라면 눈살 한번 찌푸려주거나 아니면 책을 집어 던지는 정도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누구나 다 한번은 궁금해 했을 역사에서의 “만약”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 만큼은 나름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왕 이렇게 역사의 가정을 시도해 본 이상 이 책에서 언급한 30가지 이상으로 궁금해 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뤄보면 어떨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개항(開港)을 했다면” 과 같은 궁금증 말이다. 내용들이 “가상역사소설(또는 대체역사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역사 전문가가 가정해본다면 더 개연성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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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2011년 9월) 쯤 놀라운 추리소설 한 권을 만났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 “존 버든”의 데뷔작인 <658, 우연히>가 바로 그 작품이었다. 숫자 맞추기 트릭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치밀하고 정교한 트릭과 플롯,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올곧이 한 책에서 모두 맛볼 수 있었던, 트릭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놀이라도 하고 싶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후속 작품인 <눈을 뜨지마>가 언제쯤 출간될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가 어느새 조바심마저 나기 시작한 무렵인 꼭 1년 만에 드디어 기다리던 후속 작품이 출간되었다. 바로 <악녀를 위한 밤(원제 Shut Your Eyes Tight / 비채 / 2012년 8월)>이 그 작품이다. 그런데 제목이 이상하다. 영어 원제목(原題目)은 분명 “눈을 뜨지마” - 정확히는 “눈을 감아줘”가 맞을 것 같다 - 인데 한국어 제목은 표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신(裸身)의 여인 그림에 맞춰 다른 제목으로 바뀌어 버렸다. 뭐 어떠랴. 제목의 의미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새겨 보면 될 테고 기다리던 “데이브 거니” 시리즈 - 책의 주인공의 이름을 시리즈 명칭으로 땄다 - 이니 말이다. 이런 기다림 때문이었는지 전작보다 한층 두꺼워진 분량 - 전작이 588 페이지, 이번 작품이 무려 643 페이지이다 - 에 부담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책에 고개를 푹 박고 정신없이 책읽기를 시작하였다.

 

“맬러리 살인사건” - 전작인 <658,우연히>의 바로 그 사건이다 - 이 일어난 지 1년 남짓 지난 지금 “데이브 거니”에게 동료 형사였던 “잭 하드윅”이 또 다른 살인 사건 한 건을 의뢰해온다. 바로 넉 달 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 사건으로 응석받이 부잣집 아가씨 “질리언 패리”가 유명한 정신과의사인 “스콧 애슈턴” 박사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정신과의사의 정원사였던 멕시코 청년 “헥터 플로레스”로 추정되는데, 이 정원사는 자신의 오두막에 그 시체와 잘린 목을 버려두고는 오두막에서 140 미터 떨어진 숲 속에 그녀의 피가 묻은 칼 하나를 떨어뜨린 후 평소 불륜관계로 알려진 이웃집 유부녀와 함께 깜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신부의 어머니인 “밸 페리”가 하드윅을 통해서 사건 수사를 지금은 은퇴했지만 뉴욕 경찰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형사였던 거니에게 의뢰해온 것이다. 1년 전 자신 뿐만 아니라 아내 “매들린”까지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사건 때문에 망설였지만 2주 동안만을 조건으로 의뢰를 수락한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드러난다. 범인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사라졌을까? 젊은 신부와 범인은 어떤 관계였을까? 자른 목을 몸을 향하게 테이블 위에 놓아둔 의미는 무엇일까? 터무니없기만 한 살인 사건이지만 거니는 스콧 애슈터가 운영하는 성(性)이상자 전문 치료 학교이자 한 때 질리언도 입원했었던 학교의 졸업생들 중 실종된 여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던 중 거니가 자신의 작품을 고가(高價)에 사겠다는 미술품 수집상을 만난 자리에서 약물에 의해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고, 질리언의 시체처럼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놓여 있는 인형이 자신의 침실에서 발견되면서 1년 전 사건처럼 거니와 매들린은 신변에 큰 위험을 느끼게 된다. 아내를 피신시키고 다시 사건 수사에 뛰어든 거니는 하드윅과 함께 사건의 발단이 된 곳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모든 사건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이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결말 소개는 생략한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데이브 거니”,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전편보다 스케일과 기괴함 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사건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편처럼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끄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결혼식 날 목이 잘린 신부의 시체에, 신부의 피가 묻은 칼 한 자루 남겨 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결혼식 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수백 명의 하객(賀客)들이 운집해 있는 곳에서 벌어진 이 살인사건은 전작 못지 않게 난해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살인이다. 이때부터 탐정 거니와 범인, 엄밀히는 작가와 독자와의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추리소설 마니아 답게 책을 잠시 덮어두고는 이 사건이 어떤 얼개로 전개될까 추리해보는 데, 역시나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책 페이지가 거듭되면서 거니의 추리를 토대로 몇 번을 시도해보지만 역시나이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까지 60 여 페이지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범인의 정체나 수법이 밝혀지지 않는다. 과연 어떤 식으로 결말을 내려나 싶어 불안감마저 들기 시작할 때 드디어 뇌리를 망치로 쿵 때리는 것처럼 강력한 반전과 함께 결말로 이야기를 휘몰아 가는데 그 속도가 눈과 머리가 미처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그 세기(강도) 또한 엄청나다. 결국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이야기는 끝이 나버리고, 다 읽었는데도 영 어리둥절하기만 해서 100 여 페이지 전으로 다시 책을 넘겨 찬찬히 뜯어보고 나서야 모든 결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의 트릭과 플롯도 전편 못지않게 치밀하고 정교하며, 어떤 면에서는 그 세기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반칙은 아닌 것이 결국 범인은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이라는 법칙을 따르고 있고, 트릭 또한 시간(알리바이)을 역전시키는 고전적인 기법을 따르고 있는데, 다 읽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결국 작가와의 두뇌 싸움에서 보기 좋게 져 버린, 기분 좋은 패배를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트릭을 밝힐 수 는 없지만 저번 작품에서도 제목에 힌트가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원제인 “눈을 감아줘”라는 말에 힌트가 있다. 책 뒤 표지에도 적혀 있는 것처럼 드러난 물증에 눈을 감고 증언에 귀를 닫아야만 비로소 진실이 보이는 반어법적인 제목에 말이다. 트릭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정교한 지는 직접 느껴들 보시기를^^

 

이번 작품에도 주인공 “데이브 거니”는 친구인 하드윅이 “셜록”이라고 놀릴 정도로 천재적인 두뇌 솜씨를 발휘하지만, 저번 작품보다는 한층 더 한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작품에서 남편이 놓치고 있는 단서들을 콕콕 짚어 내어 남편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어 앞으로 “부부 탐정”으로의 활약까지 기대하게 만든 아내 “매들린”은 이번 작품에서는 전혀 수사에 참여를 하지 않고 거니를 꽤나 힘들게까지 한다. 남편의 은퇴 후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평온한 안식을 꿈꾸던 그녀의 바램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뻔 한 지난 번 사건의 충격 때문에 이번에도 끔찍한 살인 사건을 맡아버린 남편에게 크게 실망을 하고 사사건건 불편한 시선과 멘트들을 건네더니만 결국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욕설까지 퍼붓고야 만다. 읽으면서는 일견 남편을 이해해주지 않고 심적으로 힘들게 하는 매들린이 야속(?)하게까지 느껴졌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녀의 걱정과 우려가 결코 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범인이 건넨 약물을 탄 와인을 마시고 한나절 동안 기절해 있어 연락불통이 된다면, 범인이 부부의 침실까지 들어와 끔찍한 협박용 인형을 남겨 둔다면, 남편이 범인에게서 총을 세 방이나 맞고 2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할 일련의 상황들을 직접 겪는다면 도대체 어느 아내가 좋아할 수 있을까? 결말에서 “나 하마터면 당신을 잃을 뻔 했어” 라고 말하여 그녀의 얼굴에 스친 절박한 무언가, 거니가 이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어떤 것이 이 사건 내내 아내 매들린이 느꼈던 심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부탐정”은 커녕 가정이 깨지지 않은 것을 다행히 여겨야 할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현역 형사들과 검사의 시기와 질시는 전편보다 더 심해졌지만 거니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아내 매들린의 이런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다만 전 편에서는 자식을 잃었던 아픔도 거니에게는 크나 큰 “트라우마” 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렇게 자주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긴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도저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을 해결하고, 아내와 현역 형사들과의 갈등을 견뎌내는 데도 거니에게는 무척 벅찼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전편보다 주인공 데이브 거니에게는 더 힘들고 어려웠던 사건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대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읽히는데, 워낙 분량이 많다 보니 잠깐 잠깐 지루한 대목들이 없지 않으며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 보니 인물 이름이 헷갈려서 몇 번을 앞 페이지를 들춰보곤 했다. 간단한 등장인물 목록이 한 장 정도로 서두에 실려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한 트릭과 사건의 결말에서도 너무 종반에 휘몰아치듯 일괄 해결하는 바람에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아 끝 부분을 다시금 읽게 만든 점 등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이런 아쉬움도 재미로 모두 용서가 되지만 말이다^^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니 역시 감상글이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고 말았다. 아뭏튼 결론은 전편인 <658, 우연히> 못지않게 스릴과 재미 만점의 소설이라는 것이다. 좀 더 비교하자면 트릭은 전편이 좀 더 기발했고, 사건과 반전의 충격과 세기는 이 책이 좀 더 세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정도 재미와 스릴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올해 들어 읽은 추리소설 - 스릴러, 액션 등 유사 장르 모두 포함하여 -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뭐 그렇다고 연말에 시상식을 할 건 아니지만 말이다^^ 데뷔작과 속편을 연이어 빅 히트 시킨 작가 “존 버든”의 후속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 작가 소개글을 찾아보니 이런 이 작가, 나이가 칠순(1942년)이다. 요즘이야 “백세장수(百歲長壽)” 시대라지만 이건 후속 작품보다 작가의 건강을 바라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기도합니다. 위대한 작가 존 버든이 부디 장수하시기를” 라는 스페인 독자처럼 말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한 스무 편 정도까지는 계속될 수 있도록 작가가 건강하길 바란다면 너무 욕심일까?^^ 아뭏튼 1년 후 쯤에나 다시 만나게 될 데이브 거니 시리즈 3권은 즐거우면서도 꽤나 고통스러울 기다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벌써부터 드는 것 만큼은 어쩔 수 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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