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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ㅣ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진보 논객이자 미학자인 “진중권”과 <과학콘서트>의 저자이자 과학자인 “정재승”이 21개의 주제에 대해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진중권+정재승, 크로스; 무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를 읽고 감상글을 올린 지가 벌써 2년이 넘었다. TV 토론 프로그램으로 기획해도 꽤나 인기 있었을 “이벤트”였는지라 책도 인문 교양 서적으로는 드물게 10만 부 이상 팔렸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분명 2편이 나오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시리즈 2편이 나왔다. <진중권+정재승, 크로스 2;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웅진지식하우스/2012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지난 1권보다는 주제 개수를 하나 늘려 22개를 이야기하는 이 책,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 시대의 대표 입담꾼 - 논객(論客)이나 지성(知性)이란 말이 더 어울릴 수 도 있겠지만 두 분이 더 낯 간지러워 할 것 같다 - 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두 남자가 펼쳐내는 유쾌하고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책에는 “로또”, “낙서”, “라디오”, “트위터”, “컵라면” 들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주제에서부터 “오디션”, “레이디가가”,“트랜스포머”, “뽀로로”, “고현정”, “테오 얀센” 등 문화·연예계의 화제 꺼리들, “자살”, “학교짱”, “나는 꼼수다”, “아랍의 봄”, “4대강” 등 시사성 있는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22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구성은 전편처럼 각자 4~5페이지(삽화 포함) 분량으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에서의 해석을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떤 주제는 영 생소하기만 하고, 어떤 주제는 좀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주제도 있으며, 미학자와 과학자라는 서로 다른 입장임에도 같은 결론을 낸다 싶은, 즉 차별화된 시각이 느껴지지 않는 주제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전편 못지않은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글들이었다. 22개 주제를 다 소개할 순 없을 것 같고 그중 “UFO”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을 간단하게 소개해보자.
"UFO" 편에서 진중권 교수는 UFO를 믿고 싶어 하는 이유를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자, 외계인이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물으며 과거에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신의 역사로 돌렸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을 즐겨 외계인의 소행으로 돌린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피데이즘(Fideism)의 거의 본능적 욕구가 있는데, 오늘날에는 과학이 그런 믿음의 대상을 제거해버렸고, 그것을 보충해주는 것이 UFO 신앙이 아니냐면서 하늘에서 목격된 물체 중 일부는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 UFO가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글자 그대로 외계인의 전능과 선의를 믿음으로써 라엘리언 같은 신흥종교에 이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UFO의 실존을 진지하게 믿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며 또 믿는 척해주는 것’ 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의 UFO 신앙은 대부분 후자에 가깝다며, 이 넓은 우주에 달랑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는가 하고 물으며 글을 끝맺는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재승 교수는 자신의 UFO 목격담을 예로 들면서 비록 외계 생명체를 찾는 탐사계획(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이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해도, 외계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 지구가 ‘인간 같은 지적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주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뜻하고 확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UFO를 만들어 보냈다고 확대해석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진 않으며, 만약 실제로 먼 행성에서 지구까지 와서 우리를 몰래 관찰할 정도의 지적 생명체라면, UFO 같은 비겁한 방식으로 지구인과의 접촉을 시도하진 않으리라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 교수 역시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한동안은 유효했으면 한다고 말하는 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첫째, UFO에서 외계 생명체가 내려오는 순간, ‘외계인은 우리가 전문’이라며 인간을 대표한답시고 떠들 미국이 몹시 아니꼽다. 둘째, 현재 유엔은 외계 생명체와 협상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협상과 설득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외계 생명체에 대한 정치적 대응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셋째, 기독교 같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종교들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다. 넷째, 무엇보다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엔 진실을 전해줄 스컬리와 멀더가 없다.
그리고는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비행물체뿐만 아니라 호수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고, 원자력발전소 근처,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사고에도 어쩌면 확인된 것보다 ‘미확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면서 해결되지 않은 ‘의혹’이 많은 나라일수록, UFO를 목격하는 시민도 더 많은 듯하며, ‘미확인’과 ‘의혹’이 둥둥 떠다니는 나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는, 과학자답지 않은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서 가장 “백미(白眉)”는 마지막 서로를 평가(?)하는 글이었다. 즉 “진중권과 정재승”, 본인들을 23번째 주제로 등장시킨 셈이다. 각자 중반까지는 의례적으로 서로에 대한 칭찬(?)을 이야기하는데, 끝에 가서는 험담(?) 한 마디씩을 늘어놓는다. 정재승 교수는 진중권 선생이 맞는 말을 하면서도 대중에게 욕을 먹는 건 결국 나중에 자신의 말이 맞았다고 결론이 났을 때 멋있게 가만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고 “거봐, 내 말이 맞았지?” 하며 끊임없이 트윗글을 쏟아내기 때문이라는 만화가 강풀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그가 평소 스스로를 ‘장동건·원빈급으로 잘생겼다. 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취지의 트윗글을 종종 남기는데, 이게 ‘진심’이라는 것, 자신을 ‘조각미남’이라고 믿는 이 ‘각진 남자’는 자신의 외모를 평가할 때만은 평소 그가 보여준 고급스런 미적 취향을 전혀 발휘하지 않는다는 게 큰 흠이며, 심지어 호전의 기미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진중권 교수는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정재승 교수가 자기만큼의 미모(?)만 가졌더라도, 그는 지금 가진 것보다 몇 배의 사회적 영향력을 즐기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물론 핑계는 정재승 선생에 관한 글을 쓴다고 트위터에 올렸더니, 여러 트위터러로부터 그를 꼭 “미학적으로 디스”해달라는 간곡한 주문이 올라왔기 때문에 이렇게 평한다고 변명하지만 말이다. 정재승 교수 말대로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 이 책의 글들은 지난 2011년 3월 28일 <한겨레 21> 제853호에서 첫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 찾아 읽었던 글들이라 이 책을 통해서 “복습(復習)”을 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연재 당시에는 격주에 한번씩 감질나게 만나다가 이렇게 책으로 한꺼번에, 그리고 연재 지면에는 싣지 못했던 삽화들과 함께 만나니 더 새롭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쉽다면 1권 감상에서도 밝힌 것처럼, 그리고 진중권 교수의 마지막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미학(美學)”과 “과학(科學)”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시각에서의 “예술-인문학-자연과학의 통섭을 위한 본격적인 이론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정도 수준이 딱 맞을 것 같다. 괜히 어려운 이론이나 공식들 보다는 이 책처럼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더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즌 3도 나올까? 두 분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시즌3을 언급하고 있으니 분명 나올 듯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주기(週期)를 당겨 주기 바란다. 그 어느 때 보다 유행이 빨라지고, 그만큼 화제꺼리가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 두 분의 해석과 평가를 좀 더 빠르게 듣고 싶기 때문이다. <크로스 시즌3>도 조만간에 이렇게 감상글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