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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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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을 즐겨 읽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장르소설이란 “이전에는 ‘대중소설’로 통칭되던 소설의 하위 장르들을 두루 포함하는 말”로 장르로는 “SF·무협·판타지·추리·호러·로맨스 소설”(네이버 지식백과사전 발췌) 등이 있다고 한다. 순수 소설과 비교하여 너무 “흥미” 위주여서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경원시 - 원래 장르소설의 전(前) 명칭인 “대중소설(통속소설)”이 순수 소설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며 이 말에는 “멸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 하는 분들도 있지만 특유의 장르적 흥미와 재미 때문에 베스트셀러 목록 상단을 늘 차지하며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안 그러면 아비규환(원제 McSweeney's Mammoth Treasury of Thrilling Tales /2012년 7월)>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 이름과 작품을 들어봤을 영미권의 장르소설 스타작가 20인의 단편들을 한데 모은 소설집이다. 이 책을 받아들고서 살짝 걱정이 먼저 앞섰다. 75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읽었던 여러 작가들의 작품 선집(選集)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만 보면 충분히 개성 넘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지만 한데 모아놓으면 서로의 강렬한 개성과 색깔이 잘 어우리지 못하고 그저 나열식 밖에 되지 않는, 차라리 한 작가만의 단편 모음집보다 못한 소설집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책 표지를 열었다.

 

 

영미권의 스타작가 20인을 한자리에 모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여기에 모인 19인의 작가 못지않게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 - 이 단편집의 마지막 수록 작품인 <화성에서 온 요원; 행성 로맨스>의 작가이기도 하다 - 이다. 저자 섭외부터 디자인 콘셉트까지 책의 기획을 총괄했다는 그는 책 말미에 실린 “제작노트”에서 앞서 말한 “장르소설”의 정의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장르소설 작가에 대한 폄하를 꼬집는다. ‘문학’을 숭배하는 신성한 전통은 소위 ‘장르’ 작가들을 늘 홀대해왔고, 범죄·공포소설은 ‘펄프픽션’이라서 선정적이고 허섭스레기 같은 대중지에나 게재될 뿐, 자존심 강하고 명망 높은 잡지들에는 감히 실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장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 지으려는 시도는 뚜렷한 근거와 이유가 없음에도 완강하게 이어지고 있고, 이 작품집은 이런 편 가르기와 선입견에 반대해 최고의 작가들이 던지는 도전장이며, “지금은 잊히고 만 단편소설의 초기 장르를 부활시키고, 위대한 작가들이 위대한 단편을 쓰던 전통을 복구하는 것”이이 책의 목표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나름 야심차지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 포부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작품을 수록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고 선택하지 기획자의 의도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뭏튼 기획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속살을 들여다보자.

 

 

책에는 장르소설 모음집에 걸맞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되어 있는데, <안 그러면 아비규환>을 잠깐 소개해본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표제작(表題作)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이기도 하지만 책 속 단편들 중에서 “데이브 에거스”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오다>와 “셔먼 알렉시”의 <고스트 댄스>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닉 혼비” 인데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 높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SF"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열 다섯 살 소년이 우연히 중고 전자제품 가게에서 낡은 VCR를 구입하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밴드 연습 때문에 좋아하는 NBA 플레이오프를 시청할 수 없었던 소년은 엄마를 졸라 낡은 VCR를 한 대 사게 된다. 그런데 주인이 가장 중요한 녹화와 재생이 안 된다는 것 아닌가. 계속 물어보면 가격을 올리겠다는 주인의 협박(?)에 서둘러 사가지고 나온 소년에게 주인은 신경 쓰지 말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집으로 와서 설치하고 시험작동을 해보니 웬걸 작동이 잘된다. 안심한 소년은 농구 경기 예약 녹화를 해놓고 연습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녹화 테이프를 재생해보는데 아뿔싸 공 테이프를 넣어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테이프를 넣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소년은 VCR 리모컨의 빨리 감기 버튼을 눌렀는데 현재 시청하고 있는 지상파 TV 프로그램이 빨리 감기가 되는 것이 아닌가. 녹화해 놓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 방송“을 빨리 감기로 시청하던 소년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6주가 지나면 모든 지상파 TV, 모든 채널에서 해주는 프로는 뉴스 하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을 알게 된다. 마치 9/11이 일어난 직후 며칠간과 비슷한 상황 말이다. 그러더니 화면에 백악관 집무실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 비장한 모습으로 연설을 하고, 그 후에는 사람들이 보따리와 어린애를 안고 집집마다 빠져나와 지하로 피신하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보여준다. 그러고는 몇 시간 더 뉴스를 하더니 그 다음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지상파 TV가 끊긴 것이다. 혹시나 해서 계속 빨리 감아 보지만 TV에는 검은 화면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즉 6 주 후에 세상이 끝나 버리는 것이다. 소년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동급생 소녀 ”마사“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미래를 보여주는 TV 이야기를 한다. 이 단편은 세상이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년이 세상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용기를 내서 평소라면 절대 엄두도 못 냈을 제일 예쁜 여자애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녀와 자게 된 이유를 소개하는 어쩌면 응큼한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처음의 걱정을 잊게 만들지만 역시나 계속 읽다보니 각 편의 재미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들쑥날쑥 편차가 있다. 그래서 몇 몇 작품은 읽고 나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어떤 작품들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금은 지루한 작품들도 없지 않았다. 그런 작품들은 과감히 건너뛰고 -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 첫 문장과 이야기가 구미를 당기는 작품들과 기존에 만났던 작가들 - 사실 이 책의 작가들 중 만나본 작가는 “닐 게이먼”, “스티븐 킹”, “마이클 크라이튼”, “로리 킹”, “마이클 셰이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작가의 1/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 위주로 골라 읽었는데, 헤아려 보니 13편 정도는 읽은 것 같다. 어떤 작품이 그랬는지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작가들이라고는 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이 몇 되지 않았고,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 모든 작품들의 재미를 올곧이 다 읽어내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처음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소문난 잔치에도 제법 먹을 것이 많다" - 물론 다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 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롭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장르 소설, 특히 영미권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진수성찬”과도 같은 책일 테고, 다양한 장르소설들의 재미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이 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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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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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추억 깃든 음식 하나 둘 쯤은 있기 마련이다. 소풍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소풍날이 되면 내일 비올까 싶어 밤에 몇 번씩 잠을 깨어 창문을 내다보던 초등학생들에게는 엄마가 싸주셨던 김밥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北)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에게는 어릴적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고향 음식이, 가난했던 시절 수도 없이 먹어 성공하면 절대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성공하고 나니 다시금 그 맛이 그리워 찾게 된다는 어느 여배우의 수제비가 바로 그런 음식들일 것이다. 이렇게 추억과 사연이 있는 음식의 맛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각인(刻印)이 되어 세월이 한참이 흘러도 결코 잊어지지가 않고 엊그제 먹은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음식은 식재료와 양념 본연의 맛과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는 걸까? 음식과 이야기가 한데 잘 어우러진 음식 소설인 <달팽이 식당>으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는 일본작가 “오가와 이토”가 또 다른 음식 소설을 선보였다. 제목부터 음식으로 맛보는 감동이 느껴지는 <따뜻함을 드세요(원제 あつあつを召し上がれ/북폴리오/2012년 8월)>가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추억과 사연 있는 음식에 관한 7편의 짤막한 소설이 실려 있다. 첫 편인 <할머니의 빙수>에서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유는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할머니, 셋이서 살고 있는 여자 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조금 전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시고, 엄마는 할머니 뒷바라지를 2년 가까이 계속해왔지만 과로로 회사에서 쓰러지면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된다. 엄마와 마유는 자주 찾아가 음식을 권해보지만 할머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드시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마유가 캐러멜을 꺼내 입에 물려 드리려 하자 할머니의 입가가 느슨해지며 “후”라는 소리를 낸다. 마유는 후지산을 보고 싶어 하신다 생각하고 침대 창가의 커튼을 열었다가 순간 깨닫는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후”가 바로 몇 년 전에 가족 모두 빙수를 먹으러 갔을 때 할머니가 빙수를 보시면서 “마유, 꼭 후지 산 같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말이다. 마유는 부리나케 빙수를 사가지고 오고 할머니는 그제서야 입을 벌려 빙수를 드시고 손녀딸인 마유에게 먹어보라고 스푼을 내밀기까지 하셨다. 할머니는 지금 몇 년 전 여름, 가족끼리 갔던 빙수 가게의 그 정원,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책에는 음식에 얽힌 소소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다만 표지 그림의 이야기인 애완용 돼지와 프랑스로 음식 여행을 떠난 남성을 그린 <폴크의 만찬>만은 꽤나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전작인 <달팽이 식당>을 읽지 않아 이 작가의 경향이 원래 이런가 싶어 다른 독자들의 감상을 읽어보니 전작에서도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었다고 하니 전혀 의외의 글은 아닌 듯 싶은데,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툭 튀어나오는 이 단편은 어째 음식의 감동을 “따뜻함”으로 표현한 이 책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점 하나, 이 단편에서 돼지는 과연 “진짜” 돼지일까 아니면 뚱뚱한 동성 연인에 대한 비유적 표현일까? 아무래도 후자가 맞을 것 같은데 삽화들은 “진짜” 돼지가 그려져 있으니 그것 참 요상하기만 하다.

 

이렇게 튀는 단편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무난한 이야기들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금세 읽을 만한 소설 - 물론 분량이 161 페이지로 보통 소설의 반도 채 되지 않았고 이야기도 가벼운 음식 에세이 수준에 그치긴 하지만 - 이었다. 작가는 책에 나와 있는 문구(P.38)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기분 나쁜 일도 괴로운 일도 그때만큼은 전부 잊을 수 있다고 이 책의 일곱 편의 단편 - 위에서 말한 “이상한” 단편도 프랑스 정찬에 대한 세세한 묘사만큼은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 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너무 짧은 이야기라 작가가 말하는 음식의 행복을 올곧이 읽어내기가 어려웠지만 전작을 재미있게 본 분들이나 음식 이야기를 즐겨 읽는 분들, 그리고 가벼운 읽을꺼리를 찾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다 읽고 나니 문득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따뜻한 된장국이 그리워졌다. 그저 된장 풀어 야채 넣고 끓인 평범한 된장국이지만 특제 조미료인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들어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된장국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 된장국을 먹으러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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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이야기 샘터 외국소설선 8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샘터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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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칼지(John Scalzi)”의 <노인과 전쟁> 시리즈는 2부인 <유령여단>을 2010년 9월에, 시리즈 완결편인 3부 <마지막 행성을 2011년 9월에, 그리고 시리즈 외전(外傳)인 <조이 이야기(원제 Zoe's Tale/샘터/2012년 8월)>를 올해인 2012년 9월에 읽었으니 묘하게도 지난 3년간 매 해 9월에 한 권 씩 만난 셈이 되었다 - <노인의 전쟁>은 소장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 출판 시기가 7~8월 무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양 SF 소설에 부담감을 갖고 있는 내가 매 해 찾아 읽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는 시리즈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조이이야기>는 본 시리즈와는 별개의 주인공이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외전의 경향과는 다르게 시리즈 완결편이자 시리즈 주인공인 “존 페리”가 화자(話者)였던 <마지막 행성> 속의 이야기를 “존 페리”의 딸인 “조이”의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점 - 그래서 원제도 “Zoe's Tale"이다 - 에서 색다르다. 1년여 만에 다시 만난 <노인과 전쟁> 시리즈의 외전인 이 책을 받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스토리는 <마지막 행성>의 줄기, 즉 “허클베리” 행성에서 민정관으로서 8년여를 한가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보냈던 “존 페리”와 아내 “제인 세이건”, 그리고 그들의 수양딸인 “조이”가 우주개척연맹의 명령으로 개척단을 이끌고 “로이노크” 행성으로 떠나고, 로이노크 행성에서의 고난스러운 개척활동 끝에 가까스로 정착을 했지만 사실은 우주개척연맹의 음모로 인류의 개척 활동을 반대하는 범우주연맹 “콘클라베”의 대함대를 격멸하는 데 본의 아니게 앞장선다는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다. <마지막 행성>에서는 이 과정을 “존 페리”의 시각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면, <조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는 열일곱 살 소녀 “조이”의 시각으로 상황들을 묘사한다. 그렇다고 <마지막 행성> 스토리를 재탕한데 그치지 않고, 존 페리의 시야가 제대로 못 미쳤던 사건들을 조이의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 마지막 편에서 남았던 의문들을 완전히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전편에서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로이노크 행성의 “늑대 인간”과의 이야기나 책에서 그저 간략하게 묘사하고 넘어간 콘클라베 동맹의 가우 장군에게 암살 시도를 알리러 간 조이가 겪은 일들, 그리고 그녀를 외계 종족 “오빈”이 신(神)으로 숭배하는 이유, 신의 종족인 “콘수”가 오빈에게 지능만 부여하고 의식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 - 조이의 친 아버지인 “샤를 부탱”이 오빈 종족에게 의식 프로그램을 제공했었는데, 2부인 <유령여단>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 조이가 로이노크 행성으로 돌아왔을 때 외계의 침입을 방어할 콘수의 기계를 가져오게 된 사연들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처음부터 이런 외전을 염두에 뒀던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작품 후기격인 <감사의 말>을 보면 <마지막 행성>을 얼렁뚱땅(?) 마무리했다고 독자들에게서 꽤나 질타를 당했다니 말이다. 결국 작가는 독자들의 성화 - “제대로 써” - 에 등 떠밀려 이 외전을 쓰게 된 셈인데, 오히려 이 외전이 마치 <마지막 행성>과 요철(凹凸)처럼 아귀가 딱 맞물려 이야기의 완성도를 더 높였으니, 작가로서는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판이고, 실제로도 지면을 통해서 감사의 말을 드리고 있다. 사실 <마지막 행성>을 읽었을 때는 저런 사건들에 대해 별로 의문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 이렇게 말하니 내가 <마지막 행성>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고백이 되어 버렸다 -,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지막 행성>을 다시 훑어보니 이 책이 아니었으면 놓치고 말았을 의문과 비밀들이 수두룩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이야기가 서로 보완되어 완성도가 한층 올라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있는 이야기를 다시 그려낸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지만 작가에게는 꽤나 힘들었나 보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그려낸다는 게 쉽지 않으며, 특히 열일곱 살 소년 소녀의 말투와 시각을 담는다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춘기 소녀의 시각과 말투를 그려낼 자신이 없어 오죽하면 지인의 충고대로 어린 애인을 둘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잠시 했다면서, 아내를 비롯한 주변의 십대 소녀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그네들의 말투와 행동, 사고방식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십대 소년 소녀들의 즉흥적이고 톡톡 튀는 행동과 말투를 담아내려고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절로 알 수 있었다. 물론 나 또한 십대 소녀의 생각이나 경험에는 문외한인지라 제대로 표현해냈는지를 평가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떻게, 즉 <노인과 전쟁> 시리즈를 다 읽고 읽어야 할까 아니면 별개로 읽어야 할까? 앞의 2부와 3부는 별도의 스토리 전개로 시리즈에 상관없이 읽어도 이해가 되었는데, 이 책은 아무래도 시리즈를 다 읽고 난 후이거나 적어도 <마지막 행성>을 읽고 나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마지막 행성>과 <조이이야기>에서 서로 생략된 사건과 이야기들이 아귀를 딱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전을 끝으로 “존 스칼지”의 <노인과 전쟁> 시리즈는 진정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책은 <노인과 전쟁> 시리즈 애독자들에게는 본 시리즈보다 한층 무르익은 글솜씨와 스토리 전개,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치, 그리고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까지 외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차고 넘치는 재미와 감동으로 “특별 선물”이 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또한 <노인과 전쟁> 시리즈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애독자였기에 이 책에 대한 평점은 별 다섯개 만점을 주고 싶다. 그나저나 내년 9월에는 더 이상 <노인과 전쟁> 시리즈를 만날 수 없어 아쉬움마저 든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아직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읽지 못한 1부 <노인의 전쟁>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굳이 <노인의 전쟁>을 내년 9월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 올 가을이 가기 전에 챙겨 읽을 예정이다. 바람이 있다면 내년에는 “존 스칼지”의 또 다른 작품인 <신의 엔진>이 꼭 출간되기를, 그래서 내년 9월에는 그 작품으로 징크스(?)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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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김봉석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1
김봉석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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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讀書)를 즐겨 하다 보니 한 편 두 편 작성해서 올린 감상글(讀後感)이 어느새 500 여 편을 넘어섰다. 아직은 내 글을 읽으면 얼굴이 다 화끈거리고, 제목에 “서평(書評)”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영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었을 당시의 재미와 감동을 복기(復棋)해보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해서 가끔씩 과거 글들을 꺼내서 읽곤 한다. 내 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서평들도 즐겨 찾아 읽는데, 좀 더 잘 쓰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제대로 책을 읽었는지 하는 공부 차원에서 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감성을 견줘보고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꽤나 크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특히 추리소설에 대한, 그것도 전문 평론가의 서평이라면 그 재미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평론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기(예담/2012년 8월)>은 추리소설 마니아로서, 그리고 어쭙잖지만 장르소설 위주의 “서평”을 올리고 있는 나에게는 “공부”와 “재미”,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었다.

 

작가는 들어가는 글인 “프롤로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초대”에서 먼저 자신이 하드보일드 세계에 입문한 과정부터 설명한다. 작가는 아동문학전집에 끼어 있던 홈즈와 뤼팽, 연이어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 동서추리문고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하드보일드에 결정적으로 빠져들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본 프랜시스 코폴라의 <대부>를 보고나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이 후로 점점 하드보일드에 빠져 들어 세상이 얼마나 거대하고 폭력적인 것인지,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자신이 그 안에서 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그 하드보일드 ‘픽션’들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하드보일드의 정의와 개념,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 이 부분은 출판사 소개글이나 다른 분들 글에서 많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생략한다 -, 말미에서 하드보일드는 냉정하게, 이 세상의 법칙을 알려주며, 결코 외면하지 말고, 환상에 빠지지 말고 살아가라는 충고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이 여전히 ‘하드보일드’에 매료되어 있는 이유이고,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무자비한 세계를 미스터리를 통해 들여다보고,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라며 프롤로그를 끝맺는다. 작가의 연배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추리소설에 입문한 과정과 똑같아서 살짝 놀라기까지 했는데, 작가처럼 <대부>에 그리 경도되지 않았다는 점은 다르다고 하겠다. 내가 <대부>를 봤을 때는 세월이 흘러 “낡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주윤발”의 우수어린 눈빛과 미소, 현란한 쌍권총 액션에 넋을 놓게 만드는 “홍콩 느와르”가 대세(大勢)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같았지만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섰다고 할까?

 

본문에 들어서면 38 편의 소설들을 5개의 챕터(Chapter)로 나눠 소개한다. 각 챕터의 제목만으로도 작가가 인지하고 있는 하드보일드 세계를 잘 보여주는데, 작가는 현실이 가히 “개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외면할 수 없”으며(1장), “약해져도 좋”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아라”고 말한다(2장). 그리고 “학교는 진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며 “인생은, 고통에서 배우는 것에서 배우는 것”이고, (3장), “구차해도 좋다. 자신만의 길을 가라”며 살아가고 살아남는 방법을 이야기하며(4장) - 어쩌면 2장과도 일맥상통하다 -, “거대한 벽”을 만나면 싸우거나 즐기거나 혹은 피하라고 충고한다(5장). 각 챕터에는 2~3 페이지 분량으로 제목과 주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주제에 걸맞는 책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을 싣고 있다. 이 글들에는 작가가 이 세상을 얼마나 비정(非情)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지 잘 드러나 있는데, 출판사 홍보글에서 이 책이 “서평집의 외형을 띠고 있으나,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신랄하게 파헤치고, 잔혹한 세상에서 취해야 할 삶의 방식을 탐색하는 내용”을 담은 “일종의 처세서”라는 표현이 딱 제격이라 하겠다.

 

책 속에 소개하고 있는 소설들 면면을 보면 작가의 이런 시각에 걸맞게 하나같이 음습하고 어둡고 폭력적인 책들이지만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하는 책들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첫 번째 챕터인 <개 같은 세상, 그래도 외면할 수 없다 : 비정한 세계를 보는 눈>에서는 “우리 이웃의 범죄와 악인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 좌파 소탕이라는 명분하에 마약을 용인했던 미국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돈 윈슬로”의 <개의 힘>, 공포가 지배하던 공산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아동 연쇄살인을 그린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 관계없는 타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악의를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없는 독>, 자신의 딸을 죽인 아이들에 대한 어머니의 복수를 그린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순도 100퍼센트의 찌질이들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아웃사이더들의 유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그린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볼루션 No.0>, 자신과 다른 “특별한” 존재를 말살하려는 거대 권력의 음모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이런 책들을 소개하면서 이 세계는 다면적이고, 아름다운 동시에 비참한 곳이며,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좋지만, 세상은 결코 당신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조언하고 싶다고 말한다. 즉,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다가 뒤통수를 맞고 대체 왜 이런 거냐며 울부짖기보다는 애초에 세상은 더러운 곳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자신을 추스르며 걸어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따라서 배신을 당하고, 이유 없는 악의에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나동그라졌다가도, 견디고 일어설 수 있는 내공을 위해 일단은 머리로 알고, 그 다음은 세상과 부딪치면서 맷집을 기르라면서 아무리 힘든 시련도 두 번째 겪고, 세 번째 만나면 조금은 수월해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뺏어날 가능성이 크고, 최소한 아무것도 주지 않을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제노사이드>의 저자 “가네시로 카즈키”의 말을 그 해법으로 제시한다.

 

벗어나라. 바깥에서. 달리는 거다. 누구의 편도 아니고. 어떤 조직의 하수인도 아닌 독립적인 자신이 되어라. 그게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선배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순해 빠진 신입생들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하고 일갈(一喝)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따뜻하고 관대하지 않다고, 세상 호락호락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칠 거라는 그런 충고 말이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오는 충고이고, 이런 교훈을 범죄소설인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이끌어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지만 작가의 생각에는 살짝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온갖 질병과 불운으로 가득차 있는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은 더 큰 불행이 아니라 바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정하고 음습한 어둠만 가득 찬 세계라도 어느 한 구석에는 희망의 작은 불씨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바로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물론 작가가 이런 희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환상에 빠져 냉정하기만 한 세상의 법칙에 외면하지 말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하드보일드 소설이 잠깐의 졸음과 미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생을 깨우치는 스님들의 죽비(竹篦)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들을 소개하다 보니 감상글이 심각(?)해졌지만 이 책, 책 속 책들의 서평들만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특히 하드보일드 소설 입문서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서 말한 “공부”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와 주제 전달, 감상과 철학을 적절하게 녹여낸 서평의 진수를 만나 한 수 배웠다는 점과 다소 낯설었던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었던 점을 들 수 있겠고, “재미”는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추리소설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책 속의 38권의 책 들 중 읽었거나 또는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헤아려 보니 14권에 이르니 나도 “준” 마니아급은 될 것 같다. 물론 하드보일드의 상위 장르인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과 계속 출간될 추리소설들은 앞으로도 내 독서 목록과 감상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굳이 심각하게 읽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작가의 말들을 한번쯤은 상기시키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고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은 나에게 어떤 것일까? 작가의 “나의 힘”처럼 강렬하면서도 명쾌한 단어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데, 그냥 “나의 최고의 즐거움(遊戱)” 라고 할까? 써놓고 보니 참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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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한 동물원 "세렝게티 동물원"

 

여기 "이상한“ 동물원이 있다. 이름은 TV 다큐 <동물의 왕국>의 단골 무대인 “세렝게티 동물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다. 겉모습만 보면 고릴라, 코끼리, 곰, 악어, 호랑이 등 여느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동물들을 빠짐없이 구비(?)해놨고, 편의시설이나 유락시설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모습들인데 뭐가 이상한 걸까? 이 동물원의 인기 동물인 “고릴라” 우리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고릴라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킹콩”일 것이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가슴을 쳐대는 그 모습 말이다. 그런데 실제 고릴라들은 으르렁대거나 가슴을 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잘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자리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전혀 구경꺼리가 없는 심심한 곳이 바로 “고릴라” 사육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동물원에서는 고릴라들이 마치 연기(演技)라도 하듯이 구경꾼들을 향해 수시로 으르렁대고 가슴을 쳐대며, 구경꾼들이 던져 주는 바나나를 척척 받아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한 시간에 한번은 우리 가운데 있는 높이 12m 짜리 철제 탑 - 이름도 킹콩이 기어 올라갔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 을 기어 올라가 포효하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한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당장 달려가 구경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고릴라 뿐만이 아니다. 이 동물원의 곰들은 비닐 공을 수시로 몸으로 터뜨리고, 하마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둥에, 그것도 철제 기둥에 머리를 시시때때로 쳐박곤 한단다. 거기에 구경꾼들이 뜨문뜨문해지면 으르렁대던 동물들이 끼리끼리 모여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아니 이건 동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것도 앵무새나 구관조가 사람을 따라하는 그런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아니고 또박또박 단어를 발음하고, 적절하게 감탄사나 추임새도 섞어서 말이다! 이 무슨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가? 제1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한겨레 출판/2012년 7월)>은 바로 이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유쾌하고 즐거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세렝게티 동물원의 정체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들

 

중소기업에서 과장으로 재직하던 “나(김영수)”는 몇 달 전 회사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바람에 그만 실직하고는 집에 들어 앉아 마늘 까기 알바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종이학과 공룡알 접기, 인형 눈깔 붙이기를 하다가 본드를 불기까지 하는 등 소소한 재택 알바를 전전하던 나는 부업 브로커 “돼지 엄마”의 소개로 혹독한 체력시험을 거쳐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직하게 된다. 부푼 꿈을 안고 첫 출근하던 날, 엉뚱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것은 고릴라 탈과 털옷이었다. 고릴라 옷을 입고 고릴라 우리에 들어간 나는 고릴라 세 마리를 만나게 된다. 긴장과 두려움으로 안절부절하는 나에게 고릴라 한 마리가 다가와서는 어깨를 툭 치면서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사람 말을 말이다! 나는 그 순간 기절하고야 만다. 앞서 말한 이상한 동물원 “세렝게티 동물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들이 동물 옷을 입고 동물 연기를 하는 것, 그렇다 보니 여느 동물원의 동물들보다 더 관객들의 기호에 맞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고릴라 연기(?)에 적응한 나는 고릴라 동료들과 친해지면서 퇴근 후 술자리를 기울이는데, 그들이 터놓는 사연들 또한 나 못지않게 기가 막히고 기구하기 짝이 없다. 먼저 대장 만딩고는 남파 간첩이었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경찰과 자신을 배신한 동료에게 쫓기고 있는 그런 신세이고, 대기업에서 오물처리반 - 동료와 부하직원들을 자진 사직하게 만드는 - 에 있다가 같은 신세가 되어 퇴직하고 동물원에 온 “조풍년” 과장,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고 결국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몇 년 째 공부 중인 “암컷” 고릴라 “앤”이 그들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고릴라 우리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소생”이라는 이상한 말투를 쓰며 자신도 이 동물원에서 동물로 근무했다는 여행사 직원인 그는 고릴라들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동물원을 탈출하여 대자연(大自然)의 품으로 돌아가 실제 동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가 싶은데 벌써 몇 몇 동물들이 그의 제안에 따라 자연에서 동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장 만딩고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동물원 우리로 찾아오는 옛 간첩 동료의 눈을 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프리카 케냐로 떠난 대장 만딩고는 매일 밤 고릴라 동료들과 다른 동물들에게 전화를 해온다.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이다. 그러자 동물원 동물들이 동요를 하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몇 몇 동물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동물원에 비상이 걸리고, 사육사 - 동물 탈을 쓴 사람을 관리하는 이상한 사육사들이지만 - 들이 나서 보지만 동물들의 “탈출”은 계속 늘어만 간다. 제목 그대로 “굿바이 동물원” 하면서 말이다.

 

이 책, 참 재미있다.

 

동물원 동물들이 사람이 동물 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이라니 이런 기발한 상상이 또 어디 있을까? 요즘이야 분장술과 SF 효과가 워낙 발달해서 최근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을 보면 도저히 사람과 침팬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지만 영화가 아닌 실제 동물원이라면 표가 나는 게 당연할 텐데 작가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렇다면 고릴라, 곰은 사람 체형과 비슷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개미핥기나 하마, 기린, 악어는 어쩔건가. 역시나 작가는 아무런 부연 설명이 없다. 하긴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사람이 동물 연기를 가능한지 안한지를 따질 독자가 누가 있을까. 동물원은 작품의 장소적 배경이자 “루저(looser)"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사람답게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 동물” -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 - 들이 초원과 밀림으로 가서 동물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도 실현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그냥 참 기발하다고만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동물원에 대한 설정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 동물”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참 재미있고 기발하다.

 

그런데 이 책, 한편으로는 참 슬프다.

 

주인공인 김영수는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다. 마늘의 매운 알리신 성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초라하고 처량한 신세에 대한 한탄이 눈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울고 싶을 때는 마늘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평생 세 번 우는데,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마늘을 깔 때란다. 그는 마늘도 맵지만 사는 건 더 맵다고 말한다. 실직하고 집에 앉아 마늘을 까는 지난 몇 달을 돌아보면 코끝이 찡해지고, 화장실 같은 곳에 숨어서 남몰래 울고 싶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정리해고 소식을 부장에게서 듣던 날 울고 싶은 마음에 숨어서 울고 싶어 회사 화장실을 갔었다. 그런데 화장실에는 이미 자신처럼 숨어서 울고 있는 사람으로 꽉 차 있어서 울지 못하고 나왔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마늘은 울고 싶은 그를 울리는 참 좋은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슬픔은 주인공 뿐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실직 때문에 통장을 하나 둘씩 깨먹었고, 마지막 하나 남은 통장 만큼은 지키기 위해 남편처럼 마늘을 까고 봉투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그만 본드에 중독되고 만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은 오죽할까? 고릴라 동료 조풍년씨 사연 또한 서글프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와 후배들을 사직케 하는 “오물처리반” 활동을 하던 그를 아내와 딸은 무섭다며 곁을 떠나버린다. 그런 아내와 딸을 붙잡지 못하고 집에 남겨진 그의 어깨는 슬픔에 영 처량하고 무겁기만 하다. 대장 만딩고는 자신을 배신한 선배 간첩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회 칼을 들고 찾아가지만 이 선배 간첩은 칼침을 여러번 맞았는 데도 죽기는 커녕 그에게 달려든다. 그러면서 그에게 자네의 칼은 전혀 무섭지 않다고,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돈이라고 말한다. 북(北)에서의 공작금이 끊기고 남한에 정착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그 선배 간첩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거꾸로 그에게 쫓겨 숨어 살아야 하는 만딩고의 삶은 생각만 해도 슬프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도 이 책, 가슴 찡하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

 

고릴라들이 위험천만한 12m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는 이유는 꼭대기에 설치된 부저를 누르기 위해서다. 그 부저를 눌러야만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조풍년 씨는 그 빌딩을 오르다가 그만 떨어져 허리를 다친다. 그런데 고릴라 동료들인 만딩고, 앤, 그리고 주인공은 번갈아 가면서 조풍년씨에게 할당된 부저를 대신 눌러준다. 자신들도 수당을 받아야 하는 근근한 처지이지만 다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동료의 부저를 눌러주는 것이다. 모두가 다 떠난 텅빈 고릴라 우리에 나는 남아 있다. 그래도 이 동물원은 가족의 생계 수단임과 동시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본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뱃속에 있는 3개월 된 애기 때문에 본드를 과감히 끊어버린 아내가 찾아온다. 고릴라 우리로 다가온 그녀에게 고릴라 탈을 쓰고 있던 나는 손을 내밀고, 평소에 고릴라 구경을 좋아했던 아내는 그 손을 만지며 즐거워한다. 그 고릴라가 사실은 남편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부부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옛 고릴라 동료들은 내색하지 않고 박수를 쳐준다. 그리고 세렝게티 초원에서 고릴라들과 어울려 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만딩고, 그처럼 동물원을 탈출하여 대자연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동물들, 그리고 미처 다 소개 못하는 여러 감동 코드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가슴 한 켠에 찡한 울림과 함께 입가에는 웃음이 절로 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책, 낄낄거리고 웃다가도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책이다.

 

오랜만에 웃기면서도 슬프고, 감동적인, 책 한 권으로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책을 만났다. 이 책과 비슷한 외국 소설을 꼽아보자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떠오르는데, 나는 <공중 그네>보다 <굿바이 동물원>에 훨씬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비록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긴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들 이웃, 아니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읽는 내내 감정이입되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따라 때론 웃다가도 때론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되고, 마지막에는 가슴에 아련한 슬픔과 함께 감동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소시민들 - 1%의 최상위 계급들에게는 영 찌질하고 못난 사람들 이야기겠지만 - 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들에게 이 책은 즐거움과 함께 가슴 깊이 새겨진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은 <굿바이 동물원>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모두들 동물원에 가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원의 그 많은 동물 우리 중에서 제일 먼저 고릴라 우리를 찾아갈 것이다. 예전에는 바나나나 던져 주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철망에 바짝 다가가서 말 한마디를 건넬 것이다. 당신이 사람 동물인 것 안다고, 힘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고릴라가 움찔하는지, 즉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그러나 고릴라가 움찔하지 않으면 어떠랴. 어쩌면 그 말은 고릴라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하는 말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 험하고 고달프기만 현실에서 결코 쓰러지지 말고 힘을 내라는 자신들에 대한 격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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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6 0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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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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