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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평점 :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 1910~1937).
2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생(生)을 살다간 그의 이름 앞에는 “천재시인”,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한국 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시인” 등 참 많은 호칭들이 붙어 다닌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문인들 중에서 그 시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의 이름이 항상 목록 맨 앞을 차지 - 수십 번을 읽어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지만 - 하고 있다고 하며, 조선총독부 내무부 건축 기사, 기생 금홍(錦紅)과의 자유 분망한 애정 행각, 베일에 쌓인 의문스러운 죽음 등 그의 파란만장한 삶 또한 탄생한 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화제꺼리가 되고 있다니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명성(名聲)은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화제성 때문인지 이상의 문학과 삶은 영화 <금홍아 금홍아(1995)>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8)>, 연극 <오감도(2010)>와 <이상 12月 12日(2010)>, 소설 <이상은 왜?(2011)>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이번에 그를 새로운 소설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로 <훈민정음 암살사건>의 작가 “김재희”의 신작 <경성탐정 이상(시공사/2012년 7월)>이 그 작품이다. 처음 책을 받아 들고서는 추리소설(推理小說)이라니 일견 엉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천재(天才)라는 호칭이 당연한 수식어로 붙는 그만큼 명탐정(名探偵) 배역에 어울리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그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져 있는 소설가 “구보(丘甫, 본명 박태원, 1909~1987)”가 이상과 콤비를 이루고 1930년 대 실존했던 예술가들과 인물들이 등장한다니 추리와 역사가 함께 어우러지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 절로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책을 받자말자 흥미와 기대감으로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가 “구보”는 선배 문인 염상섭에게서 “구인회(九人會)” 가입 제안을 받고 아침부터 상섭이 근무하는 신문사에 방문하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온 시인 “이상”을 만나 통성명을 나눈다. 기다린 끝에 나타난 상섭은 구인회가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모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경무국 형사들을 도와 까다로운 범죄를 해결해왔다면서 둘에게 일종의 입단 테스트 겸해서 창경원에서 발생한 미녀변사사건(일화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해결을 지시한다. 졸지에 탐정 역할을 하게 된 이상과 구보는 첫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고 구인회에 정식 입단하게 된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심령회(心靈會)에 얽힌 살인사건과 그림 도난 사건, 평양권번 출신 신인 여가수의 죽음, 구한말 하와이 이민자들의 사진결혼에 얽힌 의문의 여인 “레이디 황”의 정체, 나비 수집가의 과거에 얽힌 살인사건과 함께 밝혀지는 조선총독부 지하 미로의 비밀 등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이상은 구인회 선배인 “김기림”의 요청으로 동경(東京)으로 떠나고, 몇 개월 후 이상의 부음(訃音)이 날라 온다.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으로 슬퍼하던 구보에게 이상의 연인 “금홍”이이상이 남긴 가방을 전달해오고, 가방에 담겨 있는 이상의 편지들과 “데드마스크(Dead Mask)"로 이상의 죽음에 뭔가 숨겨진 수수께끼가 있다고 확신한 구보는 동경으로 가서 이상의 행적을 조사한다.
이 책은 1930년대 경성판 “셜록 홈스와 왓슨” 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와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우선 탐정 이상과 조수 구보라는 콤비 설정이 같고, 옷차림과 생김새로 직업이나 이력을 추리해내는 방식도 흡사하다. 또한 복잡한 암호들을 척척 밝혀내고, 이상이 안락의자 탐정에 머무르지 않고 셜록 홈스처럼 범인들과 격투를 벌이기도 하며, 숙적(宿敵)이자 여러 편에 걸쳐 이상과 대결했던 숙적(宿敵) “류 마치” 자작도 셜록 홈스의 숙적 “모리어티” 교수를 연상시키며 최후 또한 똑같이 닮아 있다. 그런데 비록 셜록 홈스에서 모티브를 따오기는 했지만 작가는 작가 특유의 소설적 상상력으로 독특하고 생명력 있는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먼저 책에는 1930년대 경성의 거리 모습과 시대상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경성 거리를 달리는 전차와 사화 <여가수의 비밀> 편에서의 시내 골목 골목들, 백화점, 아편굴, 창경원, 이상과 금홍이 운영했던 다방(茶房) “제비” 등 당시의 경성 거리를 머릿 속에서 그대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시각적인 묘사가 뛰어나며, 또한 모던 보이로 불리던 신세대 남성과 여성들의 모습과 당시의 카메라와 자동차, 자전거 등등 시대상 또한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염상섭과 김유정, 김기림 등 <구인회> 문인들과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자 교육가였던 간송 “전형필(1906~1962)”, 세계적인 나비박사 “석주명” (1908~1950), “떳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라는 유행가로 유명했던 자전거 선수 “엄복동(1892~1951)” 등 당시의 실존 인물들이 전혀 이질감 없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던 이상의 미스터리한 삶들, 즉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로 총독부 건물 지하에 금괴와 비밀 문서가 숨겨져 있는 미로를 설계했다는 이야기 - 소설과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이를 모티브로 했다 - 와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관을 담은 글 또한 찾아 볼 수 없었던 이상이 갑작스레 동경으로 넘어가서 사상 불온 혐의로 구금되어 불과 2개월 여 만에 세상을 떠난 그의 미스터리한 죽음 - 소설 <이상은 왜?>에서도 이 죽음을 다룬다 - 또한 소재로 등장시켜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나 몇 몇 점에서는 아쉬움이 든다. 우선 추리소설로써의 트릭과 플롯은 기발하거나 특별한 반전(反轉)이 없는 평이한 수준에 머무른다. 특히 주요 증거로 등장하는 “시반(屍班)”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내가 비전문가서인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또한 193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서나 등장하는 용어들도 눈에 띄는데, 대표적인 예가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을 지칭하는 “오타쿠(御宅, otaku,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라는 용어를 들 수 있겠다. 이 용어가 처음 쓰인 때가 1970년대부터고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1983년이라고 하니 1930년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셈이다. 그리고 이상과 구보의 대화 중에서도 현대 과학기술을 암시(暗示), 즉 고층 빌딩용 엘리베이터에 대한 언급이나 혈액으로 많은 범죄사실을 밝혀낼 것이라는 언급들도 작가의 재치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역시나 당시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묘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어쩌면 논란꺼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오화 그녀는 살아있다” 편일 것이다. 책에는 조선황실과 연관이 있는 의문의 여인으로 “레이디 황”이 등장하는데 스포일러라 밝힐 수는 없지만 그녀의 정체가 참 충격적이다. 아마도 몇 몇 분들에게는 불쾌하거나 발칙한 이야기로 느낄 수 도 있겠지만 그냥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 쯤으로 눈감아주자. 소재만큼은 단순히 단편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기발하고 참신해서 작가의 후속작으로 기대해볼 만 한데 나 혼자 김칫국을 마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53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을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을 정도로 참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몇 몇 아쉬운 점도 있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고, 그리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장르 소설에 대한 나의 편파적인 사랑 때문에라도 별점은 만 점을 준다^^. 추리소설의 재미와 격변의 시대인 1930년 대 경성을 살다간 실존 인물들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있는 시대 소설로써 그리고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결합한 팩션 소설의 재미를 함께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어딘가 아쉽다. 여느 추리소설 탐정 콤비 못지않게 훌륭한 궁합을 보여준 이상과 구보의 콤비 플레이는 이대로 끝나는 걸까? 마지막 페이지에 비밀이 담겨 있으니 놓치지 마시기를^^
그리고 사족 하나. 이 소설은 1936년 이상과 구보가 구인회 동인지를 편집했던 창문사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진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고 그만 빵 터졌다. 시인 이상이야 몇 몇 사진들로 익히 봐왔는데 구보 박태원 선생의 얼굴은 이 사진으로 처음 봤는데 아니 이건 요새 <나는 가수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김연우”와 완전 똑같지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진들을 검색해봤더니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궁금하신 분들은 꼭 확인해보시길^^ 그리고 혹 이 책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구보 선생 배역을 꼭 김연우씨가 맡게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