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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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빨리 집에 와....정말 큰일이 터져버렸어”

아내의 다급한 전화에 바쁜 걸음에 집에 들어왔더니 집 정원에 어린 여자아이 시체가 놓여 있다. 범인은 하나밖에 없는 중학생 아들.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바로 이런 가슴 철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범인도 책 초반에 등장하고 “악의”에서 멋진 추리를 선보였던 가가 교이치로 형사가 주인공을 의심하는 이유을 동료 형사에게 설명할 때는 실소가 날 정도로 유치하기도 했지만 - 주인공 집에 짐받이가 달려있는 자전거가 있고 주인공의 치매 걸린 어머니가 끼고 있는 장갑에서 오줌냄새가 나는 것만으로 의심을 시작한다 - 책을 단숨에 읽어낼 정도로 몰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저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생각이었다. 평범한 소시민이었기에 제대로 증거인멸을 하지 못한 채 근처 공원에 시체를 갖다 버리고,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아들 대신 치매 걸린 어머니를 범인으로 몰아가지만 경찰의 날카로운 질문에 식은 땀을 흘리는 주인공의 행동들이 어쩌면 나도 주인공처럼 평생 살인자의 낙인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아들을 위해서 저렇게 할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이미 범인이며 살인방법이 책 초반에 다 나와 버렸고 어머니를 범인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어서 그저 슬픈 가족 이야기겠구나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마지막 반전에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악의”에서는 처음에는 약하게 일다가 점점 강하게 몰려오는 파도처럼 단계별로 반전을 일으키더니 이 책에서는 한 방에 멍할 정도로 임팩트 강한 반전을 뒤에 배치해놓은 것이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이 제대로인 반전, 책을 덮고서도 여운이 길게 남을 그런 멋진 반전을 숨기고 있었다니.......책 띠지에 적힌 광고글처럼 결코 유쾌하지는 않은, 오히려 서글픔까지 드는 그런 반전이었다(반전의 내용을 밝히면 너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것 같아 생략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시리즈 캐릭터를 필요 최저한 밖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특징상 몇 안되는 시리즈 캐릭터인 가가 교이치로 형사의 개인사가 소개되는 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이다. 앞에서의 너무 큰 반전 때문에 소소하긴 하지만 마지막 가이치로 형사 아버지와 장기 두는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도 제법 기막히다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시리즈 캐릭터 “유가와 마나부”가 명석한 두뇌의 천재형 탐정이라면 교이치로 형사는 직감이 뛰어난 감성적 탐정이라 할 수 있는 데 개인적으로는 교이치로가 더 매력적인 것 같다. 국내에서도 꽤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위낙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고 작품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교이치로 형사가 등장하는 “붉은 손가락”과 “악의”는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와 완성도가 높고, 글을 재밌게 쓸 줄 아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인기가 결코 거품만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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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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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진보 논객이자 미학자인 “진중권”과 “과학콘서트”의 저자이자 뇌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인 “정재승”이 만나 “스타벅스”, “구글”, “셀카”, “쌍커플 수술” 등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희자되는 21개의 주제들에 대하여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설정, TV 토론 프로그램으로 기획해도 화제가 될 법한 이벤트를 책으로 엮어냈다. “무한한 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라는 부제로 나온 “정재승 + 진중권, 크로스”가 바로 그 책이다. 

 21개의 사회 현상에 대하여 미학자와 과학자의 시각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주제는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진중권은 제프리 쇼의 “읽을 수 있는 도시”의 체험을 예로 들면서 ‘체현된’ 인터페이스의 구축을 위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가상과 현실, 혹은 은유화 현실이 어지럽게 뒤섞인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실현을 이야기하고 정재승은 자신이 21세기 ‘생물학의 시대’에 가장 각광을 받는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것을 뿌듯해 하며 디지털 기술이 21세기 예술가의 창의력과 예술성을 더욱 고양시켜주는, 즉 예술가가 과학자의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또한 “셀카”에 대해서는 정재승은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가 만나면서 생긴, 즉 기술이 인간의 문화를 바꾼다는 유용한 예이며 폰카가 과학자들의 일상적 삶을 기록하려는 꾸준한 시도와는 달리 “정직한 삶의 기록”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를 기술적 한계와 자신의 예쁜 모습만을 담고 싶어하는 욕망의 구현을 예로 든다. 진중권은 “공식적”이고 “집단적”인 아날로그 카메라와는 달리 디카와 폰카는 “일상적”이고 “개인적”이며  “얼짱각도”는 자신의 이미지의 미적 이상화를 위한 추상화로써의 디지털 유미주의를 이야기한다. 색을 소리처럼 사용해 그림으로 연주한,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파울 클레”편에서도 이런 미학적, 과학적 시각이 잘 들어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사항들이 다 그렇게 경계가 분명하지만은 않다. “9시뉴스” 편에서는 진중권은 촌철살인으로 인기가 있던 MBC뉴스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문화적 아이콘으로 이해하고 찬사를 보내는 반면 정재승은 뉴스에 종종 전문가로 나오는 과학자들의 인터뷰의 비밀과 정치, 사회 문제에 비해 홀대받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한숨을 쉰다, “박사” 편에서는 진중권은 학벌 주의의 폐해에 대한 경험과 자신의 글을 소개하면서 박사학위를 따느니 곡예비행을 배우는 게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 반면 정재승은 박사과정의 열정적인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생물학적 나이가 허용하는 날까지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는 “박사”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희망한다. 특히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에서 진중권은 진보논객으로서 그만의 독설을 시원하게 날리기도 한다. 이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역할 구분이 분명하지 않는 점이 있다는 점을 의식한 탓인지 진중권은 에필로그에서 “디지털 시대에 새로 등장한 어떤 경향의 소산일 것이다. 최근에는 분과간 협력에서 분과의 경게 자체를 넘나드는 초분과적 연구의 경향이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애둘러 변명하고 있기도 하다.

21개나 되는 많은 주제를 3~4페이지의 한정된 지면에서 두 작가가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니 깊이나 전문성은 다소 미흡할 수 있겠지만 동일한 사물을 서로 다른 시각과 방향에서 바라보는 시도만큼은 탁월했다고 평할 수 있다. 물론 이 시도가 이 책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이 성공을 거둔다면 또 다른 많은 시도, 즉 종교가와 과학자, 진보와 보수, 남성론자와 여성론자, 동양철학과 서양 철학, 빈 라덴과 부시 전대통령 등등 흥미롭게 재밌는 크로스 오버적인 시도가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끝으로 이 책 이벤트에 응모하면서 받은 질문, 22번째 담론으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나는 “회귀”를 꼽았었다. 새 정부 들어 모든 것이 몇 십년 전으로 역행되어 버린 “과거 회귀현상”에 대해 두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할까?  진중권은 새로움이 주는 낯섬과 이해하는 데 걸리는 수고로움에 비해 우리에게 친숙한 복고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미학적 관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특유의 진보적 시각으로 독설을 시원스레 날릴 것이며, 정재승은 과거 그리스 조각상이나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과학적인 황금비율의 사례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새로움과 복고의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대뇌 부위가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제멋대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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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신사들
마이클 셰이본 지음, 이은정 옮김, 게리 지아니 그림 / 올(사피엔스21)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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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탐정 “셜록흠즈”의 말년에 대한 애처로움과 회상을 문학적 감수성과 추리소설적 재미를 더하여 그려낸 “셜록홈즈의 최후의 해결책”의 저자이자 플리처 상 수상 작가인 “‘마이클 세이본“이 이번에는 유대인 노상강도 두 명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그린, “순전히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썼다는 조금은 엉뚱한 소설을 펴냈다. 우리가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라도 멋스럽게 부르는 것처럼 노상강도를 지칭하는 “길위의 신사들(Gentlemen of the Road)” 이 바로 그 소설이다.

  허수아비처럼 호리호리하고 새다리처럼 연약한 정강이를 가진 프랑크인 “젤리크만”과 구리주전자 같은 광택나는 피부의 근육질 아프리카인 “암람”은 중동 아란 왕국 어느 선술집에서 내기 돈을 딸 목적으로 사기 결투를 벌이고 돈을 챙겨 도망가려는 중에 애꾸눈 코끼리 조련사 “마하우트”에게 딱 걸리고 만다. 마하우트는 두 사람에게 어린 소년을 맡기면서 이 아이를 외가쪽 친척이 살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으로 무사히 데려다주면 큰 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소년은 하자르 왕국의 전사왕(그 나라말로는 "베크“라고 부른다)의 아들로 부하장군 불잔의 쿠테타로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왕자 ”필라크“였다. 이 임무를 수행하느냐로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마하무트는 불잔이 보낸 추격단의 화살에 죽어버리고 엉겁결에 ”길위의 신사“(노상강도)”이자 유대인인 두 남자와 왕자 필라크는 아란왕국에서 하자르 왕국까지 이르는 긴 모험에 나서게 되고, 노르드인의 습격, 불잔에 대항하는 반군결성과 전쟁, 수없이 붙잡히지만 다시 극적으로 탈출하고 하자르 왕국의 황제 카칸과의 만남 등등 수많은 우여곡절과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필라크에게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아주고 다시 정처 없는 모험길을 떠난다.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중세 중동 국가인 하자르 왕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모험 활극으로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황량한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착각과 모래가 입안에 서걱 서걱 씹히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가 으뜸이다. 특히 어미가 짧은 현대 소설과는 달리 문장을 길게 늘여 쓰고, 곳곳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아랍어 단어들 - 책 말미에 “옮긴이 주”로 세세한 설명이 겻들어져 있다. 아쉬운 것은 생소한 단어가 나오면 책 말미를 계속 펼쳐 봐야 하는 불편함인데 차라리 단어가 나오는 책 하단에 표기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각 장(章)마다 등장하는 옛스런 삽화 등은 마치 “돈키호테”나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후기에서 작가는 유대인하면 떠오르는 비호감의 이미지. 즉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르며 펜싱 검이나 휘두르는 왜소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랜 기간 동안 각자의 조국을 위해 투쟁해온 감을 든 유대인 전사의 이미지와 수 천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유대인들의 길고 긴 모험의 전통을 결합시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냈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 못지않게 기발하고 색다른 두 주인공의 모험은 작가의 의도대로 꾸준히 사랑받는 장르인 모험소설의 재미와 새로운 유대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주인공의 삶과 모험을 다 담아내기에는 너무 짧은 분량은 읽다만 것처럼 너무 아쉽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두 주인공의 모험이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부디 다음 소설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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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 2012 마야력부터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
실비아 브라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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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이었던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종말론은 그 위세가 약해지지 않고 더욱더 기세를 떨치고 있고, 특히 마야의 예언을 바탕으로 한 “2012”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거두면서 이제는 누구나 마야의 달력이 예언했다는 2012년 지구 종말론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종말론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다. 굳이 종교나 예언가들의 종말론이 아니더라도 지구온난화 및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상기후 현상, 인도네시아 쓰나미, 중국과 아이티 대지진 등 수많은 자연재해와 이상 징후로 인해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인류에게 종말의 그날이 임박한 것일까? 세계적인 심령술사이자 에언가인 실비아 브라운의 “종말론(End of Days);2012 마야력부터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는 우리의 이런 의문에 대해 고대신앙과 세계 종교, 예언가들의 종말론에 대해 소개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종말에 대한 예언과 생각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에서 종말론이 지금 유행하는 이유는 지난 세기말 (상상의) 세계 종말의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 불안감이 잠재되어 있다가 마침내 끓어 오르기 시작하였고 또한 영성이 이세상에서 전례없이 무럭무럭 성장하면서 이제는 주변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종말에 대한 공포는 사실 우리가 처음이 아니며 B.C. 2008년경 아시리아 서판에서부터 최근까지 전시대에 걸쳐 종말에 대한 수많은 경고와 예언의 사례를 소개하는데 사례들을 보면 마치 종말론이 연례행사처럼 꾸준히 있어왔고 식상함마저 느껴진다. 책에서는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수많은 종말론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마야문명 등의 고대 신앙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 예수 재림, 휴거로 대표되는 기독교, 유명한 카톨릭의 파티마 예언, 불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등의 세계 유명 종교들의 예언. 잠자는 예언가 에드가 케이시, 노스트라다무스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예언가들과 위인들의 예언 -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아이작 뉴튼이 성경을 근거로 종말의 날짜를 계산해냈다는 점은 처음 들어본 사실이다. -, 기성종교들에게 이단 취급당하는 수많은 종파들의 예언에 이르기까지 “종말론의 백과사전”으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종말론을 쳅터 별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기도 한 마지막 장에서는 작가가 생각하는 종말과 지구 최후의 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종말에 대한 나의 예견” 장에서는 작가는 지금부터 앞으로 90년 동안 벌어질 주요 사건들에 대하여 전반 40년, 후반 50년으로 나누어 예언하고 있다. - 영매로서 2100년까지는 분명하게 보이는데 그 이후로는 마치 인류와 지구의 불이 꺼져 버리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상 작가는 2100년을 인류의 종말 시점으로 보는 것 같다 -, 몇몇 에언은 작가만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예언도 있지만 암치료제 개발, 과학기술의 발달, 지구 온난화에 따른 심각한 재난과 질병의 창궐에 대한 예언들은 작가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이 예견하고 있는 일반적인 예언들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울 것은 별로 없다, 작가의 예언 중 우리와 연관된 흥미로운 예언을 꼽아보자면 2020년이 오기 전에 미국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죽고 위임받은 부통령이 북한에 선전포고를 선언하지만 그의 노력은 무산되고 엄청난 소요가 일어나며 임기가 끝나기 전에 암살될 것이라는 예언과 2026년 강력한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물론 이 예언이 실현될지는 그 때에 이르러서야 알게될 것이다. 작가는 앞에서 살펴본 수많은 예언처럼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거나 지구 핵이 폭발하는 등의 그런 종말이 아니라 우리가 신성한 지구를 돌보지 않으면 지구는 더 이상 우리에게 피난처와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마지막 장인 “지구의 마지막 날”에서는 영적 성장과 저세상의 존재와 삶, 그리스도 재림과 휴거, 적그리스도의 정체, 천국 여행 등 종말론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 하면서 결국 종말, 즉 우리가 성스럽고 평화로운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날을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으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끝맺는다. 즉 맨 앞에서 물음이었던 과연 종말의 날은 임박했을까에 대하여 이 책은 종말은 분명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지구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영적 진화를 통해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고 답하고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많은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국 지구 종말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서 달려있는 것 같다. 인류의 종말은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한 갑작스런 결말보다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갑작스럽게 또는 아주 서서히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2012년 마야가 예언했다는 지구 종말은 1999년처럼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

쾅 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훌쩍거림으로 - T.S.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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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모든 날들 - 둘리틀과 나의 와일드한 해변 생활
박정석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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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해맞이(일출)를 본 적이 있다.

6월 중순임에도 쌀쌀한 날씨에 들고 간 외투를 걸쳐 입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이제나 저제나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고 있던 중 드디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위쪽 짙푸른 코발트 빛 하늘을 환하게 밝히며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자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금새 솟아오른 태양이 온 하늘을 밝고 연한 파란색으로 하늘빛을 바꾸어 놓고 같이 구경하던 관광객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지만 일출의 감동과 여운에 쉽게 발을 떠나지 못했고 결국 태양이 한참 솟은 후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서 내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해안가에 늘어선 이쁜 집들을 보면서 저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해맞이를 아침마다 맞이하겠구나 나도 훗날 내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저런 이쁜 집에서 아침 해맞이에 눈을 뜨는 그런 삶을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십 수년이 지났지만 내 삶은 아직도 여유롭지 못하고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 베란다 전망에 만족하고 사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힘들거나 지칠 때면 양양 해안가의 작은 별장처럼 이쁜 그 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그저 꿈으로 끝나버릴 내 희망을 먼저 이룬 부러운 사람이 생겼다. 파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의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그 풍경이 좋아 여기서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강원도 동해시 바닷가 작은 집에서 살았고 겨울 바다 추위를 피해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집을 짓고 3년째 살고 있는 작가 박정석이다.
 

 작가는 TV, 전자레인지, 인터넷도 없고 온수를 쓰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허름한 바닷가 낡은 오두막집, 창문을 열면 파란 바다가 한눈에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면 햇살, 바람, 바다 모든 것이 맑고, 파랗고, 고요한,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아름다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 부르고 싶은 그런 곳에서 여름, 가을을 보내고 처음 경험해보는 쓸쓸한 겨울 추위에 인근 마을 바다와 산 중간쯤, 바다까지는 걸어서 2킬로미터 정도인 곳에 집을 한 채 짓고 본격적인 시골생활을 시작한다. 대단한 것이라고는 식욕뿐이지만 언제나 생기로 터질 것 같은 첫 애완견이었지만 결국 실종되서 큰 아픔을 준 비글 “이달고” ,독일식 이름을 붙여가며 키우기 시작한 닭들, 이웃집 할머니와 함께 하는 봄 나물, 가을 밤 채집. 5월 오솔길 산딸기 채집, 그리고 감성돔 낚시에 푹 빠져 사는 미용실 원장님,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면서도 한결같이 묵호 거리를 지키고 있는 잡화점 아저씨, 잘모르는 남의 도움을 받아본 적도 청한 적도 없이 수줍어하는 동네 할머니들까지 3년여 만에 작가는 강원도 바닷가 작은 도시에 어느새 오래된 풍경처럼 자연스레 동화 되어 간다.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 누구라도 부러워 할 그런 삶을 감상적인 글들과 이쁘기만 한 사진으로만 담아냈다면 오히려 식상했을 그런 시골생활을 낯설고 불편한 점들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결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루 하루 일기장에 꼭꼭 눌러 쓰듯이 자신이 살아온 그 자체를 담백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어 오히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는 “어지간해선 안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라는 그녀의 어머니 말씀처럼 앞으로 그 곳에서 더 머물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바닷 바람 한번이면 그런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리는, 그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곳에서 앞으로도 그녀는 계속 머물 것 같다.
 

 나는 언제쯤 그녀처럼 삶의 고단함을 훌훌 털고 어느 여름 해맞이를 보면서 빌었던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바다 살이는 아직 이 도시에 미련이 많은 나로써는 언제쯤일지 기약을 할 수 가 없고 그저 여름 휴가철 잠시 머무는, 어쩌면 영원히 이루지 못할 소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멈출 수 없는 나만의 비밀스런 희망으로 앞으로도 계속 꿈꿀 것 같다. 

이번 여름에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최고의 학벌과 직장을 훌훌 던져버리고 오래전부터 꿈꿔온 시골 생활을 위해 5년 전 훌쩍 경상도 영주 산골로 들어가 살고 있는 선배를 찾아가봐야겠다. 그래서 그에게 언제가도 물어봤던 그 질문을 다시 해야겠다. 행복하냐고. 그럼 그는 언젠가처럼 행복하다 답하지 않고 그저 환하게 웃을 것이다. 행복은 결코 한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씩 계속 키워나가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의 환한 웃음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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