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라산의 사자들 1
가이 가브리엘 케이 지음, 이병무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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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R.R. 톨킨 이후 최고의 판타지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는 “가이 가브리엘 케이”의 “알라산의 사자들”에 대한 첫 느낌은 두꺼운 양장본의 고전 소설을 연상케 하는 색다름이었다. 한 권으로도 충분한 분량을 큰 활자와 넓은 줄 간격으로 일부러 권수를 늘려 여러 권으로 나누어 출가하는 얄팍한 상술이 대세인 요즘 출판시장에서 80년대 고전 서적을 대하는 것 같은 작은 활자체에 빽빽한 줄 간격, 두꺼운 표지의 양장표지가 오히려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색다르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장르인 “역사 판타지” 소설이었지만 900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1권 405 페이지, 2권 489 페이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시작한 책은 불과 이틀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오히려 분량이 좀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만드는 재미와 몰입도가 뛰어났다.

 이 책의 배경은 현재 포르투칼과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와 흡사한 알라산 반도가 배경이다(책 초반 등장하는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출판사 소개 글에도 나와 있듯이 중세 이베리아 반도 남부를 장악한 이슬람 세력과 북부의 카톨릭교 세력, 그리고 유대인들을 연상하게 하는 국가들이 등장한다. 즉, 남쪽에는 사막의 전사들이자 신성한 별을 숭배하는 아샤르 교를 믿는 “알라산” 제국이 위치하고,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타그라 사막 북쪽인 과거 에스페라냐 제국이 자리 잡고 있던 지역에는 태양신 “야드”교를 믿는 발레도, 루엔다, 알로냐 국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두 나라에게서 이단의 취급받는,  하늘의 두 개의 달과 예언의 “고귀한 별들”을 숭배하는 방랑의 민족 킨다트 교인들이 등장한다.  책은  알라산의 마지막 칼리프 “무자파르”가 암살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무자파르의 죽음으로 칼리프제가 붕괴되면서 15년 동안 알라산은 수많은 도시들과 군주들이 일어섰다 쓰러졌고, 알라산의 북쪽도 야드 교도 왕들이 서로를 상대로 계략을 꾸미고 전쟁을 벌이는 혼란의 시대로 접어든다.  알라산과 발레도 국 중간 지점에 있는 도시 페자나의 푸른 눈이 매력적인 칸디트족 여의사인 예하네는 도시 유력자들이 알라산 지역을 평정한 카르타다 국의 왕자의 초대에 참석했다가 죽임을 당한 “해자(垓字)의 날” 참변에서 우연히 자신의 환자인 비단상인을 구하고, 알라산 남부 카르타다 국의 알말릭 왕의 부인과 태아를 위험한 난산에서 구했지만 오히려 형벌을 당한 자신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비단상인과 함께 페자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탈출하던 그날 밤 알말릭 왕의 최고 고문관이자 시인인 “아마르 이븐 카이란”과 발레도 왕국의 최고 군인인 “로드리고 벨몬테”와 차례로 만나게 된다. 예히나는 페자나의 동쪽 세라나 호수 근처 도시인 ‘라고사’에서 왕궁의 의사로 정착하게 되고, “해자의 날” 만행을 뒤집어 씌우려는 알말릭 왕을 살해한 후 추방당한 아마르와 역시 발레도 국 재상과의 마찰로 추방당한 벨몬테도 자신의 기사 150명과 함께 라고사로 오게 되면서 세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라고사 궁전에서 아마르와 로드리고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라고사 왕국의 용병으로 같이 근무하면서 산적토벌에 나서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진한 우정을 나누게 되고, 예히나는 용병부대의 군의로 참전하면서 두 남자와 우정과 사랑을 쌓게 된다. 라고사에서 카니발이 열리던 밤, 예하네는 아마르와 사랑을 나누지만, 라고사를 비밀리에 방문한 카르타다의 왕 알말릭 2세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그녀 곁을 지켜온 “아버지”같은 존재이자 집사인 벨라즈를 잃게 된다. 봄이 되어 발레도의 대군이 페자나로 남하하면서 성전(聖戰)은 시작되고 예헤나, 아마르, 로드리고는 페자나로 잠입해 예헤나의 부모님을 구출하게 된다. 발레도의 왕과 로드리고는 아마르에게 동료가 되어 줄 것을 제의하지만 아마르는 단호히 거부하고 둘은 서로의 종교와 국가를 위해 상반되는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로드리고는 발레도국의 대장이 되어 “야드의 기사”들을 지휘하면서 알라산 반도를 정복해 나가고, 아마르는 야드교의 침략에 맞서 알라산 남쪽 남부해협에서 건너온 사막 부족 칼리프 군대의 선봉장이 되어 전쟁에 나서게 된다. 마침내 둘은 서로의 적이 되어 만나고 예하나는 바람 부는 황혼 녘에 언덕에 서서 그 두 사람의 최후의 결전을 지켜본다. 두 사람의 결투의 결과와 마지막 에필로그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 책을 읽을 다른 독자를 위해 밝히지 않도록 한다^^

  낯선 인명과 지명으로 몇 번을 1권 앞부분의 “주요 등장인물”과 “지도”를 펼쳐 보게 만들었지만 익숙해지면서부터는 900 페이지의 분량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고 쉽게 읽힌다. 특히 책 중간중간과 마지막 결투장면에서 등장하는 “시(詩)”들은 두 영웅의 우정과 대결, 그리고 그들 사이의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마치 고대 유럽의 영웅 서사시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전의 맛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가상의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의 매력과 서사적 사건의 전개와 인물들 간의 관계묘사가 탁월한 역사소설 두 가지의 재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 출판사 책 소개 광고나 책 뒷 표지의 광고문구들의 휘황찬란한 찬사가 결코 과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그런 소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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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스윙 인생 홈런을 치다
마쓰오 다케시 지음, 전새롬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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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어렸을 적 장난감이나 동화책은 온데간데 없어졌지만 다행히도 초등학교시절 일기장 몇 권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가끔씩 그때의 누렇게 바랜 종이에 삐뚤빼뚤 글씨, 여기저기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일기장을 펼치면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라운 것 투성이었던 어린 시절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받아쓰기 백점 맞은 상으로 어머니께서 사주신 자장면을 먹고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자장면이고 다음에도 백점 맞아야겠다고 다짐하거나, 난생 처음 돈까스를 먹고는 자장면보다 더 맛있는 것이 돈까스라고 감격해하고, 인기 외화였던 “육백만불 사나이”보고 나도 나중에 커서 돈 벌면 저렇게 육백만불 사나이처럼 수술해야지 하고 소원도 빌어보고 , 태권브이와 마징가랑 싸우면 누가 이기냐로 옆집 형과 싸우고 코피 흘린 이야기 등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신났던 그 때의 일기장은 생생한 어린 시절 나를 만나볼 수 있게 하는 추억의 보물인 셈이다. 마쓰오 다케시의 “헛스윙 인생 홈런을 치다”에서는 나처럼 일기장이 아니라 실제 13살 시절 어린 “나”가 어른인 “나”에게 찾아오면서 겪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36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간신히 입사한 회사, 일주일 만에 찬란한 빛을 잃고 ‘루저’가 되어 버렸고 그런 상태로 5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27살 “시노자키 고헤이”에게 공원에서 만나자는 초등학생이 보낸 편지가 배달되고 누굴까 하는 마음에 공원에 나간 고헤이는 13살 어린 “나”를 만나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존재하는데도 보지 못하는 소중한 것을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찾아온 어린 “나”와 함께 살면서 어른 “나”는 어린 시절 가졌던 소중하고 멋진 꿈을 다시금 되찾게 되고, 남 탓만 하고 주위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책은 어린 시절 내가 어른인 나를 찾아온다는 판타지 소설 형식을 띄고 있지만 어린시절 자신의 꿈과 희망에 귀기울여본다면 자신의 인생을 다시금 가다듬을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그런 이야기를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리 인냥 포장하고 억지 감동을 강요하는 여느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마치 동화를 읽는 듯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읽기에도 전혀 부담 없이 쉽게 읽히고, 다 읽고 나서 잔잔한 감동과 함께 자연스레 어릴 적 내 꿈은 뭐였지 하고 반문해보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다시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았다. 장군, 과학자, 소설가, 교수 등 나이가 들면서 꿈도 수없이 많이 바뀌었지만 일기장 마지막 말에는 꼭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주문처럼 외우고 써온 그 마지막 문구처럼 나는 그런 어른이 되었을까? 이 책의 주인공처럼 나에게 어린 시절의 “나”가 찾아온다면 그 아이에게 나는 네가 꿈꾸던 그런 어른이 되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물어보니 그렇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는 걸 느낀다. 주인공처럼 인생이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 만큼은 아니겠지만 가슴 속에 간직해왔지만 잊고 지내왔던 어린 시절의 꿈,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한번씩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읽히지만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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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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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에게 선물 받아 책꽂이에 꼽아 놓고는 오랫동안 읽지 않았었다.

책 표지에 있는 온갖 미사여구의 광고 문구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음울한 잿빛의 표지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저 책을 읽으면 음울한 잿빛 표지처럼 우울함이 전염되어 한동안 책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애써 외면했었는데, 책꽂이에서 다른 책을 골라 꺼낼 때마다 따옴표 없는 책속 대화처럼 자신을 읽어보라고 내 귀에 소곤거리는 책의 속삭임에 결국 책을 집어 들었고, 다 읽고 난 후 이 서평을 쓰면서 내가 여실히 느끼는 것은 불길한 예감은 결국 맞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며칠 동안 꿈에서 책처럼 회색 재가 덮힌 벌판을 헤매고 다녔고 , 때늦은 3월 춘설로 가득한 아름다웠을 산과 들, 거리의 풍경이 책 속의 황량한 잿빛 풍경과 오버랩 되어 오히려 칙칙하고 어두운 회색빛으로 느껴지는 착시현상까지 느껴졌다. 책을 읽고 종종 감상에 빠져 여운이 오래가는 나에게 코맥 매카시의 “로드(The Road)"는 그래서 위험한 책이다.
 

 역자는 자신이 독자에게 불친절하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짐작컨대 원작 자체의 불친절함은 역자의 노력에도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도대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종말과 같은 상황에 처해졌는지, 배경 장소는 어디인지 등 소설의 배경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은 전혀 없고, 등장인물도 이름도 없이 그저 아버지인 “남자”와 아들인 “소년”으로 불리우며, 따옴표 없는 대사들은 책 읽는데 영 불편하게 만들며, 전체 줄거리도 전 지구 적 종말이 있을 걸로 예상되는 사건이 일어난 후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들이 겨울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여행하며 겪는 이야기 단 몇 줄로 간단히 표현할 정도이며, 에피소드들도 특별히 소개할 만 게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동안 며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우울한 상념이 꿈에까지 등장하게 할 정도로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에 가득한 생기 없는 죽음의 공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 그곳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삶들에 대한 감정이입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기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죽어버린 나무들과 풀들, 푸르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온통 회색 재로 덮혀 버린 숲과 벌판, 하늘과 바다, 끊임없이 내리는 차가운 회색 눈과 빗줄기. 불에 타버리고 비에 젖어 부서져 내리는 텅 빈 도시의 건물들과 집, 그 곳에서 미이라가 되어 뒹굴고 있는 시체들 등등 온통 잿빛 어둠만 가득한 배경 묘사는 마치 내가 그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머리 속에서 영상으로 재생된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장면에서는 괜히 같이 허기가 느껴지고, 음식을 찾기 위해 빈 집과 건물을 수색하는 장면에서는 꼭 음식이 발견되기를 응원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음식을 발견하여 과일 통조림을 먹는 장면에서는 그 달콤함이 입안을 맴돌게 하고, 다른 책이었다면 끔찍했을 길에 나뒹구는 시체들이나 인육을 먹는 장면들도 마치 그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구나 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등 책 읽는 내내 마치 내가 책 속 주인공인 것과 같은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따옴표가 없어 불편했던 대사들도 책을 읽어가면서는 마치 바로 옆에서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계속 맴돌면서 오히려 따옴표로 대사를 구분했었다면 오히려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겠구나 싶을 정도로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훌륭한 장치로 느껴지게 만든다. 과연 저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저런 삶이었다면 벌써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그렇지만 부디 죽지 말고 살아서 그들이 원하던 남쪽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운 바람이 결국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그들의 여정은 제목 “로드(The Road)"처럼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끝나 버리고, “320 페이지의 절망, 그리고 단 한 줄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 라는 광고 문구처럼 희망을 암시하면서 책은 끝을 맺는다. 
 

 우울한 상념은 며칠 내에 없어지겠지만 책에 대한 인상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봄 볕에 자취를 감추게 될, 벌판의 겨울 회색 빛 눈들의 흔적들을 보면서, 한적한 도로 갓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통조림들과 쇼핑용 카트를 보면서, 농촌 마을 어귀에 버려져 있는 다 쓰러져 가는 황량한 빈 집을 보면서, 내 손에서 떠나 책꽂이에 다시 꼽힌 책은 더 이상 자신을 읽어달라고 속삭이지 않겠지만 다른 책을 고르면서 이 책의 표지를 보면서 책 속 장면 장면 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로드”도 보려면 꽤나 망설일 것 같다. 책으로도 며칠을 상념에 빠졌었는데 머리 속 상상이 아닌 구체적 시각으로 접하게 된다면 그 상념이 더욱 깊어질 것 같은, 그렇지만 결국은 보게 될 것 만 같은 두려움에 오랫동안 책처럼 외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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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좌충우돌 하상백의 오늘요일 - 꿈이 이루어지는 하상백식 청춘사용설명서
하상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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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디자이너로, 스타일리스트로, 방송인으로 한창 유명세를 날리던 스물 다섯 살 젊은이가 누구라도 부러워 할 성공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훌쩍 런던행 비행기를 탔다.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해보지 않은 것보다 낫다”라는 젊은이다운 무모한 용기와 힘겹게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짜”를 찾아 런던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좌충우돌의 5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주머니 가득 “경험”과 “추억”을 채워 넣고 돌아온 그가 기나긴 세월이 흐른 후에도 가끔 이유 없이 미소 짓게 만들 유학생활의 추억담을 톡톡 튀는 개성과 젋음의 열정을 가득가득 담아 우리에게 공개했다. 패션 디자이너 하상백의 “알록달록 좌충우돌 하상백의 오늘 요일”이 바로 그 책이다. 

과연 그는 5년간의 유학생활 동안 그는 찾고자 했던 “진짜”를 얻었을까?
 

 “눈(Snow)"이라는 걸 25년 만에 책을 통해서 생전 처음 접해본 아프리카 청년 압둘라처럼 들은 적도 만진 적도 본적도 없는 신기하고 새로운 세계인 런던에서 직접 눈을 굴러가며 눈사람을 만들어보면서 눈을 알게 되듯이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들의 즐거움을 세인트 마틴 스쿨에서, 런던 뒷골목에서 클럽, 식당 곳곳에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패션디자이너 삶에 있어서 귀중한 자산이 될 소중한 배움들, 즉 기발한 생각이나 번쩍이는 아이디어보다 남의 것을 많이 보면 볼수록 나의 것을 더 지킬 수 있는 리서치, 다양한 취향과 개성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포기하지 말고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자신만의 “고집”,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마무리 짓는 “피니싱(Fihishing),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즉 리서치와 고집, 피니싱이 모두 가능해지는 가장 강력한 힘,”순수함“의 소중함을 배운다. 또한 그는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되짚을 수 있는 힘인 찬란한 재산 “경험”은 게으름과 자만에 의해 녹슬기 쉬우며 멈추지 않고 지속될 때만 “경험”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이제 어느덧 서른 다섯의 중년이 되어 버린 하상백, 그의 나이를 잊어버릴 정도로 신선하고 독특한 디자인 작품들을 선보이는 그에게 있어 런던 유학생활은 전과 후의 삶을 구분하는 분기점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 있어 삶의 분수령은 과연 언제였습니까? 그런 계기가 없었더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신 두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것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꿈을 향해 떠나보십시오.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가득 안고 돌아와 새로운 삶에 당당히 맞서 보십시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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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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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책 글자 하나하나, 사진 한 장 한 장을 꼭꼭 씹어서 가슴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그런 책을 만났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이 되는 주류, 즉 “안”쪽 삶이 아니라, 주류에서 비껴나 주목받지 못하는 “바깥”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스물 여섯의 사람과 사물, 풍경을 인터뷰한 최윤필의 “어느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글항아리. 2010.2.16.)이 바로 그 책이다. 그저 그런 인터뷰이겠거니 하고 편히 누운 자세로 책을 펼쳐 들었다가 책 첫머리의 허리우드 극장 “김은주” 사장 인터뷰를 읽고 “오호”하는 감탄사에 일어나 앉게 되고, 두 번째인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이일재” 선생의 인터뷰를 읽고는 그분의 열정과 삶에 옷깃을 여미게 되었고 마지막 최근덕 성균관장의 인터뷰까지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더니, 다 읽고 나서도 진한 여운에 책 머리말과 인상 깊은 인터뷰들을 다시 펼치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작가는 이 들을 주목받지 못하는 “바깥”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스물여섯가지 - 사람 뿐만 아니라 퇴역마와 같은 동물, 우표, 막걸리, 책 등의 사물, 수도원 같은 건물 또는 공동체적인 삶, DMZ 와 같은 풍경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하다 - 삶들은 성공하지 않은 주변의 삶일까?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클래식 영화만 상영하지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은주 사장, 비록 국내에서는 3등이지만 세계에서 11번째로 세계 14좌를 등반한 휴머니스트 산악인 한왕용, 전국 각지의 동네를 떠돌면서 동네 주민들과 어우러져 “동네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감독 신지승, 도미솔 레파라 같은 3도 화음만 구사할 줄 알고 숙취에 약속된 공연도 불참하는 “찌질이” 음악가이지만 그저 음악이 좋아 노래 부르는 인디밴드 타바코쥬스, 삶의 고단함으로 연극무대를 떠나 택배기사를 하고 있지만 반드시 무대로 돌아가겠다는 연극배우 택배기사 임학순 등등 스물 여섯 하나하나의 삶은 결코 좌절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안”쪽의 그 어떤 삶보다도 치열한, 결코 좌절이나 실패가 아닌 꿈과 희망을  더욱 가꿔나가는 현재 진행 중인 삶이다. 

  특히 마치 님웨일즈 “아리랑”의 공산주의 혁명가 “김산”을 연상시키는 직업혁명가 이일재 선생의 삶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1923년 대구에서 태어나서 일제시대 항일 노조운동, 해방 후에는 공산당 활동과 대구 총파업을 주도하고 팔공산 빨치산 활동을 했으며,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만인 1988년 가석방으로 석방된 이후에도 각종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온, 자신의 신봉하는 사상에 한 평생 삶을 올곧이 바쳐온 그의 삶은 인간적 회한을 물어보는 작가의 질문에 “없어 그런건”라는 간단한 답변과 아직도 프롤레타리아 승리의 믿음을 확신하는 그의 고집스런 믿음, 긴 옥고로 구완와사(안면마비)가 더 욱 악화되었지만 굳게 다문 입과 아직도 형형한 송곳 같은 눈빛의 그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의 “그러나 그대들이여, 사람이 사람을 돕는 그런 때가 도래할 때 우리를 기억해다오 관대한 마음으로”라는 마지막 구절처럼, “아버지의 삶에 백 퍼센트 공감하지 않지만 그 삶의 가치는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그의 아들의 말처럼 그의 사상과 삶은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혁명가로서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그의 삶은 두고두고 후배들이 기억해야 할만한 그런 가치있는 삶이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1등의 이름이나 자극적인 몇몇 단어들이라야만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래서 억지로라도 1등 곁에 얼씬거려야만 버틸 수 있다는,“누가 이런 이야기 읽기나 하겠어?”라는 주변의 우려에 일부 동조하지만 작가의 그런 생각은 분명히 틀렸다. 신문연재 당시에도 기사를 읽고 녹차를 보내온 독자나 연재된 글들을 모티브로 동화를 써도 괜찮겠냐고 묻는 동화작가와 같은 “바깥”의 독자들이 아주 없지 않았다지만 이 책의 출간되면서부터 나처럼 꼭꼭 씹어서 가슴에 간직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아주 많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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