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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난리
서하늘 지음 / 인디펍 / 2020년 9월
평점 :

[마음난리] 그는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마음난리》의 저자 서하늘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20년 5월 13일이다. 그 전에 나는 [글 쓸 때]라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모임 홍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가장 먼저 연락을 주신 분이 바로 서하늘님이다. 5월 13일 [글 쓸 때] 첫 정모를 진행하던 날, 우리는 처음 만났고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뒤로 그는 한 번도 정모에 빠지지 않았으며, 그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몇 주가 지나 7월경 [글 쓸 때] 4번째 정모를 진행하던 날, 그는 불현듯 제주도로 떠난다고 말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마음잡고 글을 써보고 싶으며,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가벼운 여행이나 편안한 휴식을 위해 떠나는 여행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저히 이 길이 아니면 답이 없으며,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전진만할 것 같은 투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말로 떠났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다. 돈 떨어지면 죽는다. 나에게 남은 것은 내 몸과 노트북이 전부다. 이 책이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일단 쓰자.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서하늘의 《마음난리》 - 108쪽
그리하여 탄생한 그의 첫 책이 《마음난리》다. 실은 4번째 정모를 진행하던 날, 나를 포함한 모임 회원 분들은 원고의 일부분을 미리 읽은바 있다. 서하늘님은 준비한 원고를 회원 분들에게 나눠주면서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동안 그가 쓴 글을 주변 지인들한테 보여주면, 다들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으며, 그런 시선 때문 블로그에 올린 상당수의 글은 비공개되어있다고 했다. 그런데 글쓰기 모임을 통해 어둠 속에 있던 글을 용기 내어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글 속에 담긴 서하늘님의 모습은 그동안 모임을 통해 봤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 다른 사람이 글 속에 들어가 있었다. ‘정말 이 분의 이야기가 맞는 건가?’ 입술이 말라오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서하늘님이 진작 말씀하셨던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모임장으로써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그의 글은 처절했으며 거침과 가식이 없었다.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다 보니 섣불리 위로하기 어렵다고도 한다. 위로를 바라고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누구든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서하늘의 《마음난리》 - 117쪽
《마음난리》는 서하늘님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독한 가난과 아버지로부터의 가정폭력, 실패로 돌아간 자살시도,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돈, 본인에 대한 신랄한 평가까지. 그의 글에서도 느껴지듯, 그가 주변 인물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티며 살아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 제목처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의 몸과 마음 어느 한 구석도 성한 곳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견디며 그의 감성을 토해내고 있다. 글쓰기라는 방법을 통해서.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은 우리를 지독하게 괴롭힌다.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감정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배설이다. 지저분한 옷장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옷장에 있는 모든 옷을 꺼내야하듯, 내 안의 감정을 모두 뱉어내면 그 안에서 불필요한 감정은 걸러지고 진짜 감정만이 남는다. 그 감정과 대면할 수 있는 용기. 그 순간 발현된 용기는 부족한 나를 더욱 성숙시켜준다고 나는 믿는다. 서하늘님이 바로 그런 과정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얼굴과 몸, 내 이름과 목소리, 내 경험과 역사를 사랑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다. 잊히지 않는 수치와 모욕, 떨칠 수 없는 우울과 분노를 모두 털어내고 새로 시작하고 싶다. 모두 쏟아내고 다 잊어버리고 싶다.
서하늘의 《마음난리》 - 143쪽
궁금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는 왜 글쓰기를 선택했을까? 본인의 감정을 글 안에 담아 남들과 공유하려고 하는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잠 못 이루는 밤을 이겨내기 위해 술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고, 몸속에 쌓여있는 화를 분출하기 위해 샌드백을 칠 수도 있고, 머리와 가슴 속의 복잡한 감정을 그림이나 랩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의 인생에서 글쓰기는 무엇이며, 글쓰기 전과 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고 싶었다.
내 생각은 그렇다. 내가 서하늘님의 글을 처음 읽었던 당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던 심장 박동수를 나는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 일을 겪은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심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잠시 누그려야할 필요가 있다. 말은 생각보다 느리고, 글은 말보다 느리다. 천천히 조금씩 느리게 자신의 과거를 기록하고, 엉켜있던 감정을 글이라는 형태의 한 줄로 나열해보는 것이다. 그런 글을 책으로 엮어 내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떠나보내려는 마음이 아닐까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되고 보니 지난 일은 점점 지난 일이 되어가는 것 같다. 들끓던 분노와 증오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뜨거운 위로보다 그냥 차분하게 듣기만 해줘도 고맙겠다. 실수와 실패로 가득한 보잘 것 없는 이 삶을 글로 쓰고 굳이 책으로 내려는 이유다.
서하늘의 《마음난리》 - 147쪽
《마음난리》를 읽으면 착잡해지고 숙연해진다. 그는 지금 괜찮은지 걱정도 된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세상에 나 홀로 떨궈진 기분이다. 그러다 책 막바지로 가면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나는 《마음난리》의 148쪽에 있는 내용이 그의 솔직한 진심이라 생각하고 그러길 바란다. 자기연민 에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처럼 스스로 불쌍히 여기기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용과는 달리 밝은 색의 책 표지가 어두운 곳에서도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 같다.
《마음난리》를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나는 과연 이토록 깊은 속내를 담아 글을 써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내 주변에 이토록 상처받은 이들을 포용하고 지쳐줄 능력이 있는가. 멀리서나마 그를 응원하고 그에게 작은 도움을 전달할 방법을 생각하다 예전에 들었던 근 20년 전 신해철 방송이 떠올랐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의 코너 중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가 있었는데, 그 방송의 일부다. 4분짜리의 짧은 영상에 내 마음을 실어 그에게 바친다.
삶이 힘들 때 생각해 볼 이야기 - 010630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사연(낭독 : 신해철) : 삶이 힘들 때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글을 올리네요. 전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놈의 성적이 저의 발목을 붙들더군요. 환경을 바꾸고자 편입을 한 번 해볼까 생각하고 서핑을 하고 다녀봤죠. 우씨. 내 성적보다 높았어요. 결국은 편입도 어렵다는 결정이 나고 말았죠. 벌써 성적에서 밀리고 들어가는데다 몇 명 뽑지도 않잖아요. 그런데 경쟁률은 엄청나니까. 거의 가망 없잖아요. 내 삶이 너무 힘들어서 무언가의 변화가 필요한데 돌파구를 찾기가 너무나도 힘이 드네요.
해철님. 너무 힘듭니다. 너무 힘들어서 혼자서 서럽도록 울었습니다. 그냥 너무나도 서럽더군요. 내가 왜 이렇게 방황을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힘겨워 해야 되는지. 내가 너무나도 미워지고 원망스러웠나봅니다. 제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제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너무 힘들고 지치는 걸까요? 제 능력으로는 그 길을 가면 가시밭길인데. 굳이 가려고 해서 그 가시에 찔리고 찢겨서 그런 건가요? 너무 힘듭니다.
해철님. 저의 방황이 어떻게 해야지 끝이 날까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절 원망하고 자포자기하는 것 밖에는 아직 없네요. 절 살아나고 어두운 터널을 뚫고 더 환하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주세요. 해철님. 도와주세요.
신해철 : 제가 뭐 어떻게 도와 드려요. (웃음) 근데 한편 저는 그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한번 그렇게 생각해보셨습니까? 그 가시밭길이나 찔리고 힘든 길이나 그 어두운 터널이나 이런 것들은 결코 앞으로도 한 번도 나아지지 않고 앞으로 인생살이 60년 동안 계속 그렇게 가야된다고 생각해보셨어요? 전 생각해봤거든요. (웃음)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게 나아질 거라 믿는 것. 그래서 앞으로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위안이 되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는 거.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일 텐데.
저 같은 경우는 주로 그런 방법을 자주 써요. 이건 앞으로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평생 내 주위에 꼬리처럼 날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 뭐 어떻게 합니까. 그냥 끌고 다녀야죠 뭐. 그리고 가시밭길이 끝나면은요. 그럼 이상한 덤불길이 하나 나오고요. 덤불길이 끝나잖아요. 사람이라는 게 꼭 이상한 게. 진흙탕길이 꼭 나와요. 인생살이에서.
그리고 저는 그거 생각하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세모라는 문제에 너무나도 시달리고, 거대한 세모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고 있잖아요. 주위에 동그라미 네모 이런 문제는 너무 작아서 문제도 안 돼요. 세모만 없어지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데 세모가 없어지면 인간이 어떻게 되냐면 옆에 있던 조그마한 동그라미 있잖아요. 그거 세모 다섯 배만큼 커진다. (웃음) 이번에는 그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돼요.
살다보면 내 주위에 모든 문제가 다 클리어(clear)하게 해결이 되고, “야 나는 정말 이젠 해피(happy)해도 되겠다.”라는 순간은 절대로 절대로 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희망 주는 사람들은 나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은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요. 있긴 있겠지. 그리고 그런 일은 오지도 않고, 와도 좋지도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될 것은 34살짜리 제가 지금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아직 결론은 못 내린 문제인데. 제가 생각할 때는 그래요. 가시밭길 일 때도 웃을 수 있는 방법. 뭔가 묘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진흙탕길인데 친구랑 막 뛰굴뛰굴하면서 재미있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외려 그 가시밭길과 진흙탕길은 우리 살아가는 이상 평생 눈앞에 계속 끝없이. 이거 재수 없다. 위로하는 거야 뭐야 이게. (웃음)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질 거라고 포기하면요. 편하잖아요. 그냥 뚫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