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혁신 - 혁신을 원한다면 반역자가 되라
이주희 지음 / EBS BOOKS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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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혁명과 혁신의 법칙 역사책추천 EBS 다큐프라임 강제혁신 서평

 

87년생이 말하는 라떼 이야기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는 내게 두꺼운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사주셨다. 앞으로 우리말과 영어를 공부하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정확한 뜻을 찾아보라는 의미로 준비한 선물이었다. 사전 보는 법을 배운 나는 틈틈이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을 넘겨보곤 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친구들 책상 위에 요상하게 생긴 전자기기가 올려져 있었다. 애들한테 물어보니 전자사전이라는 것이었다. 계산기 두드리듯 자판을 누르면 내가 원하는 단어를 한 번에 찾아주는 기기였다. 내가 갖진 저 두꺼운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이 수첩만 한 기기에 다 들어가 있다니. 너무나도 신기했다. 저것만 있으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전자사전을 사주지 않으셨다. 이미 사전이 있는데 전자사전이 왜 필요하며, 종이로 된 사전을 넘겨보며 단어를 찾아보는 습관을 지녀야 하고, 전자사전을 계속 보면 눈도 나빠질 수 있고, 때가 되면 건전지도 갈아 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냐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단어를 찾다가 언제부터 사전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모두가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간단한 검색으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본다. 인류의 삶을 바꿔놓을 무언가가 만들어져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옛것을 고수하려는 사람도 있다. 태도의 미묘한 차이가 미래를 바꾼다. 엄마가 전자사전을 사주지 않은 결과,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다. (뿌잉 ㅠㅠ)

 

화약혁명에서 찾은 혁신의 법칙

 

EBS 다큐프라임 <한양의 뒷골목>, <킹메이커>, <강대국의 비밀> 등을 만들고, 역사분야 스테디셀러 강자의 조건생존의 조건등을 쓴 EBS 역사 전문 PD인 이주희 PD 겸 작가의 신간 역사책 강제혁신은 권력과 혁신의 관계를 분석하고, 혁신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한 책이다. EBS 다큐프라임 화제의 인기 방영작인 <강제혁신>이 책으로 탄생하였다.

 

저자는 혁신의 비밀을 전쟁터에서 찾는다. 전쟁터야말로 빠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승패가 분명하며, 그로 인한 결과와 교훈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강제혁신은 승자와 패자가 나뉜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어쩌다가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에 집중한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화약혁명을 받아들인 자가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패자는 왜 화약혁명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화약혁명을 거부한 기득권

 

대포와 화승총 등으로 화약혁명을 받아들인 오스만 제국과는 달리, 맘루크 술탄국은 화력부대 없이 기병뿐이었다. 맘루크 술탄국은 화력무기을 불완전한 기술로 받아들였다. 초기 화력무기는 일단 크고 무거우며, 한 발을 쏘기 위해 42단계의 구분동작이 필요했고, 시간도 2분 이상 걸렸다. 또한, 총이란 비겁한 자들의 무기며, 총을 쏘는 것 자체가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6세기까지만 해도 군소 군주들 간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칼을 내려놓고 조총을 선택했다. 하지만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로 100년이 넘는 전란에 종지부를 찍은 뒤로는 더 이상 화약무기가 필요 없어졌다. 그러자 기득권을 가진 막부들로 인해 화약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다시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동아시아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신기술을 도입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 결과, 화약혁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쓰디쓴 패배를 맛보게 된다. 강제혁신저자는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생존경쟁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을 통해 이룬 화약혁명

 

반면 유럽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화약혁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던 와중 1618년 로마 황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신교와 구교의 마찰로 인해 30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화약무기를 급속도로 발전했다. 스페인은 느린 장전 속도를 보완하기 위하여 '테르시오'라는 군사 편제를 만들었고, 스웨덴은 무거운 화승총을 가볍게 개량하여 총병으로만 구성된 연대를 만들었다.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막부와 유신파 사이의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권력을 잡은 반역자인 유신파로 인해 신분제는 폐지되고, 사무라이는 몰락하였으며, 그 결과 빠른 근대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곧 화약혁명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새로 하기 이전에는 기존 것을 없애는 것부터 혁신은 시작된다. 강제혁신저자는 혁신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진화해야 하며, 기존 기득권으로부터 반기를 드는 반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강제혁신에 바치는 음악 선물 | 빅뱅 - 뱅뱅뱅(BANG BANG BANG)

 

수많은 기업이 혁신을 외치고, 혁신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혁신이란 마치 체계적인 계획 구상을 통해 탄생한 우수하고 고급스러운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강제혁신에서는 혁신의 역사는 우연과 좌충우돌의 역사이며, 혁신의 과정 자체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라 말한다. 한마디로 총성이 오고 가는 전쟁터라는 소리다.

 

전쟁에서는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말처럼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며, 역사는 승자로 인해 쓰이기 때문이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군을 쳐부수기 이전에 아군 내에 있는 기득권부터 이겨내야 한다는 걸 강제혁신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강제혁신에서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혁신을 이루고 싶다면 천재가 아닌 전사가 되어라."

 

 

참고 : 만약 당신이 스타크래프트 게임 유저라면 강제혁신을 굉장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무수한 저글링 부대를 막기 위해 마린 부대를 어떻게 배치하고 컨트롤해야 하며, 유닛의 사정거리와 공격력 업그레이드 여부에 따라 승패가 어떻게 좌지우지되는지를 분석하는 느낌이다. 전쟁사나 무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적극 추천하고픈 책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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