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7
에드워드 올비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ginia Woolf?)는 196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664회의 공연 기록을 달성,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를 미국의 주요 극작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또한 토니 상 수상과 함께 1966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처드 버튼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져 올비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현실과 환상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두 쌍의 부부, 그들이 벌이는 술과 욕설이 난무하는 한 밤의 추잡한 난장극이다.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상만을 추구하며 거짓된 삶을 사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던지는 폭력적인 말과 행동, 그 이면에 감추어진 병든 마음들과 복잡하게 얽힌 심리가 독자의 마음 또한 불편하게 만든다. 


역자는 작품 해설에서 제목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제목이 극의 마지막에 가서는 '누가 거짓 환상 없는 삶을 두려워하랴?'(p.200)라는 묵직한 질문으로 독자와 관객에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즉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면서 삶은 원래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인간은 삶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에 도달하기 위해 욕과 조롱, 폭력도 불사해야 한다고, 욕설로 인한 마음의 상처보다 더 나쁜 건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이라고 작가 올비는 생각한 거 같다. 


총 3막의 구성 중 마지막 3막의 제목이 'The Exorcism'(귀신 쫓기)인 것만 봐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동안 조지와 마사 부부를 지배하고 있던 거짓된 환상(귀신)을 쫓는 행위를 함으로써 삶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해야 진정한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나는 이 희곡을 읽으면서 당연히 결말이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지와 마사가 주고 받는 언어 폭력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시끄러운 현관문과 마사의 웃음소리로 시작하여 그 모든 욕설과 폭력, 비방을 거쳐 엑소시즘의 단계에서 터질 것 같던 극은 조지가 마사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고 '누가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p.193)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마사의 '두려워'라는 고백과 함께 '침묵'으로 끝난다. 

술과 환상에 의지해 살았던 지난 거짓된 삶을 벗어 버리고 진짜 삶을 대면한 두 사람, 앞으로는 이상한 게임과 말장난, 거짓으로 점철된 삶이 아닌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부부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허상의 노예가 되지 말고 각자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해야 함을 욕설과 폭력이라는 불편한 수단을 사용하여 보여주는 '역설적인 드라마'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4-14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희곡 읽었는데 기억이 잘안나네요 ㅡㅡ 그런데 작품속에 버지니아 울프가 안나왔던게 인상적이었던것 같습니다~!!

쿨캣님 요즘 희곡 읽으시는군요 ^^

Falstaff 2023-04-14 06:47   좋아요 2 | URL
에드워드 올비가 처음 이 작품에 붙였던 제목은 ˝Who‘s afraid of Big Bad Wolf?˝
크고 나쁜 늑대를 누가 무서워하랴? 였습니다만 이 제목은 디즈니의 만화영화 아기돼지 삼형제 주제곡이라서 디즈니 쪽이 저작권을 주장해 사용하지 못하게 했답니다.
그리하여 올비가 언어유희 개념으로 간단하게 Big Bad Wolf를 Virginia Wolff로 바꿨다는군요.
본문의 영화, 저거 보고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명배우에 오른 배우라고 조잘대는 작자들은 전부 똥멍청이들일 겁니다. 정말 필생의 열연을 펼쳐 관람객으로 하여금 숭배를 하게 만드는 명 연기 중의 명 연기입니다.

coolcat329 2023-04-14 07:48   좋아요 2 | URL
정말 오랜만에 희곡 읽었어요. 위 골드문트님 말씀대로 일종의 말장난으로 노래에 버지니아 울프를 갖다 붙여서 버지니아는 전혀 안 나오지만 그녀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으니 만약 알았다면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
올비가 버지니아 울프 이름 써도 되는지 남편 레너드 울프에게 허락을 구했다네요.

coolcat329 2023-04-14 07:48   좋아요 2 | URL
골드문트님/저 유툽에 full movie가 있길래 봤는데 정말 엘리자베스 테일러 연기가 엄청났습니다. 당시 36살인가 그랬는데 오십 대의 덩치 큰 마사 역을 위해 10kg를 살찌우고 은발이 섞인 가발을 썼다네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명연기 맞습니다.

페크pek0501 2023-04-21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에 길들여져서 희곡을 읽기가 힘들던데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도 간신히 읽었죠.
그런데 희곡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니 꽤 재밌더라고요. 이건 소설과 다른 맛이었어요.

coolcat329 2023-04-21 15:58   좋아요 0 | URL
희곡은 오디오북이 실감나서 더 좋을 거 같아요. 특히 운전하면서요~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목가>(1997)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와 <휴먼 스테인>(2000)으로 이어지는 '미국 삼부작(The American Trilogy)'의 출발을 알린 작품으로 작가,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필립 로스는 1933년 뉴저지 뉴어크(Newark)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스는 초기 작품에서 주로 유대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뤘는데, 90년대 후반 발표한 '미국 삼부작'에서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네이선 주커먼(Nathan Zuckerman)이라는 화자를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과 그로 인한 문제들을 다룬다.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에 관해 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은 유대인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비극을 유대인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찾음으로써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비판한다. 이 점이 필립 로스를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었다고 역자는 말한다. 


<미국의 목가>는 미국 역사에서 혼란스러웠던 시기 중 하나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은 총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기억 속의 낙원', 2부 '몰락', 3부 '잃어버린 낙원'의 소설 속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목 '미국의 목가'는 반어적인 표현이다. 이 소설에 목가적인 평온함은 없다. 단지 목가적인 삶을 꿈꾸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한 순수한 인물이 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은 시모어 어빙 레보브(Seymour Irving Levov)로 일명 '스위드(Swede;스웨덴 사람)'라고 불린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파란 눈의 금발 머리, 건장한 체격의 그의 외모가 마치 '바이킹 가면'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만능 스포츠 맨으로 유대인 공동체의 자랑이자 희망으로 영웅 대접을 받는다. 

스위드는 해병대를 제대하고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적 번영 속에서 미스 뉴저지 출신의 아일랜드계 카톨릭 여성과 결혼하고 아버지의 장갑 공장도 물려받는다. 또한 집안 대대로 살던 유대인 공동체를 떠나 진짜 미국 주류들이 사는 외곽 지역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목가'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 나간다.  


화자인 주커만은 스위드의 동생인 제리와 동기로 학생 시절 그 역시 스위드를 숭배했는데, 세월이 흘러 노년의 유명 작가가 된 그에게 어느 날 스위드의 편지가 도착한다. 스위드는 편지에서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기리는 글을 쓰고 싶다며 주커만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두 사람은 몇 달 후 만난다. 그러나 정작 만났을 때 스위드는 세 아들과 가족에 대한 자랑만 늘어놓을 뿐, 편지 속에서 언급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충격적일 일들'(1권-p.35)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몇 달 후 주커만은 45주년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제리를 우연히 만나는데, 비극적인 사건으로 한 순간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스위드의 이야기와 함께 며칠 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시절 위퀘이크의 유명한 대표 선수였던 스위드가 우리가 상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운명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인가' (1권-p.141) 

주커만은 제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과거 모두의 영웅이 아니라 '얼마든지 괴롭힘을 당할 수 있는 평범한 남자'(1권-p.144) 로서 스위드의 삶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작가의 시선으로 '비극적 추락이라는 당혹스러움 안으로'(1권-p.142) 들어가 스위드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역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탄 내고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를 한 편의 '사실주의적 연대기'(1권-p.144)로 보여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가로서 큰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필립 로스는 <미국의 목가>를 통하여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국이 위태로운 행보를 이어가던 시기의 여러 사건들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과 반전 운동, 1967년 뉴어크 폭동, 1972년 개봉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 영화인 <Deep Throat>가 불러운 사회적 파장,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계기가 된 희대의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 사건(1972~1974)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부패와 위선, 폭력과 집단 광기, 계급과 차별 등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이런 미국 사회의 위기는 주인공인 스위드에게도 위기로 다가온다. 그는 미국의 꿈을 내면화한 인물로 유대인 사회가 아닌 진정한 미국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유대인의 태도를 버리고 '한 명의 평등한 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인간'(1권-p.139)이 되고자 했다. 동생 제리는 이런 스위드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지른다.


["미스 아메리카를 원했어? 그래, 형은 미스 아메리카를 얻었네.(...) 진짜 미국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고, 진짜 미국 해병대가 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이방인 아가씨를 품에 안은 진짜 미국 거물이 되고 싶었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미합중국에 속하기를 갈망했어?"(2권-p.73)]


<미국의 목가>에서 역사는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미국이 베트남 전에 참전하면서 스위드의 딸 메리가 반전 운동에 나서게 되고, 그로 인해 스위드가 바라던 완벽한 가정은 그야말로 '박살'이 난다. 1967년 흑인 폭동으로 삼대째 내려오던 뉴어크의 장갑 공장은 '최악의 도시에 남은 마지막 공장'(2권-p.59)으로 전락한다. 주커만은 스위드의 몰락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역사를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 아주 갑작스러운 것이다.'(1권-p.141) 라고 생각한다.

필립 로스는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공격 앞에서 인간의 꿈, 노력은 얼마나 무력하고 허망한지를 한 남자의 삶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준다. 스위드가 꿈꾼 '미국의 목가'는 '비극의 목가'였다. 마지막에 작가는 주커만의 목소리를 빌어 삶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래, 그들의 요새는 금이 갔다. (...) 이렇게 한번 벌어진 이상, 다시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 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이 뭐가 문제인가? 도대체 레보브 가족의 삶만큼 욕먹을 것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2권-p.288)]


<미국의 목가>는 삶과 죽음, 노년의 외로움과 상실에 대한 예리한 사유를 보여준 <에브리맨>(2006)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이다. 짧은 소설인 <에브리맨>에서는 못 느꼈던 집요함과 끈기가 느껴지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커만의 관찰과 묘사로 한 남자의 삶을 파헤치는 구성이기에 작가가 더욱 악착 같이 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계속 이어지는 긴 문장이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는데, 그런 흐름에 일단 적응이 되니 문장의 강렬함에 나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되었다.  


영화 'American Pastoral'(2016)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4-11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영화로도 있군요? ㅋ 저 필립로스 읽은지 오래되서 그런지 가물가물한데 쿨캣님 글 보니까 딱 기억이 나네요~!!

다음 작품으로 약간 결이 다른 <죽어가는 짐승> 추천합니다~!!

단편ㅡ장편ㅡ단편 흐름으로 읽으시면 좋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3-04-11 08:25   좋아요 1 | URL
네~영화가 있더라구요. 넷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짐승> 새파랑님 추천으로 사뒀는데 꼭 읽어보겠습니다. 필립 로스하면 새파랑님이 떠오릅니다. 😆

자목련 2023-04-14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에 <미국의 목가>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쿨캣 님의 리뷰.
언젠가 읽겠지요? ㅎ

coolcat329 2023-04-14 12:19   좋아요 0 | URL
저도 필립 로스 책들이 유난히 책장에 오래 있었답니다. ㅎㅎ
미국의 내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는 독서였어요. 자목련님 언젠가 당연히 읽으시겠죠!
 
케냐 야라 AA TOP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지난 번 구입했던 케냐 야라 AA TOP #5는 다크 로스팅의 묵직함과 과일향의 부드러운 산미가 좋았는데, 이번 케냐 야라 AA TOP #1은 라이트 로스팅의 깔끔한 단맛과 상큼함이 매력적인 커피입니다. 같은 원두이지만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맛과 향. 행복한 하루의 시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로 물든 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0
앤절라 카터 지음, 이귀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 동화 속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교묘하게 감춰진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 가부장적 가치관과 여성의 성 역할을 폭로하고자 ‘영문학의 마녀‘ 앤절라 카터(Angela Carter 1940~1992)가 독창적이면서 대담한 상상력, 매혹적인 문체로 새롭게 다시 쓴 열 편의 동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 - 강창래의 세계문학 강의
강창래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 편집 기획자이자 여러 강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강창래의 책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과 진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흔하면서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바로 문학의 정의를 둘러싸고 논쟁을 일으켰던 '채털리 사건'을 다루는데 그 시작이 매우 흥미롭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을 부패시키거나 타락시킬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 그 책을 출판함으로써 (...) 과학, 문학, 예술, 학문 및 기타 대상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처벌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1959년 영국에서 이 같은 법이 제정되자 1960년 펭귄 출판사는 상류층 부인과 사냥터지기의 혼외 정사를 적나라하게 다뤄 큰 논란을 일으킨 D.H.로렌스(1885~1930)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삭제 판을 출간한다. 그러자 정부는 이 소설이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펭귄 출판사를 고소했고 이는 재판으로 이어졌다. '재판 초기에는 이 작품이 음란물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이내 쟁점은 이 작품이 문학인가 아닌가로 바뀌었'(p.19)고, 여러 작가, 교수, 비평가, 성직자, 정치가들이 증인으로 나섰다.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선 문학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고 따라서 복잡한 논쟁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문학이라는 판결을 받는다. 문학이 무엇인지 속시원히 결론이 나진 않았지만.


이렇듯 책은 '채털리 사건'을 예로 들면서 문학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이어서 '지배층의 소유물'이었던 문학이 어떻게 대중의 '값싼 교양교육 도구'로서 자리잡게 되었는지 당시의 사회,문화를 통해 설명하고 지금 우리가 접하는 문학이 근대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한다. 

19세기 문학이 발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종교의 실패'를 말하는데, 그 이전까지 사람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려 사회를 통제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종교가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구조의 변화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p.54)기에 그 빈자리를 문학이 차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존의 문학 개념이 무너지고 또 다른 문학이 나올 때마다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이에 대한 진실을 알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하고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문학이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3장에서 6장까지는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순으로 각 나라의 문학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본다. 각국을 대표하는 근대 문학을 훑어보면서 주요 문학 사조의 특징과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등을 작품을 인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7장부터 9장까지는 모더니즘 시와 소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는데 이 책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특히 '8장 모더니즘 소설들'과 '9장 미국의 모더니즘'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조지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들을 살펴본다. 

나는 이 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소설' 2위나 3위로 꼭 꼽힌다는(1위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라고 함)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에 가장 큰 관심이 갔는데, 저자의 설명이 매우 친절해서 나 또한 강렬하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무엇보다 저자가 이 작품에 큰 애정을 갖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최고의 번역으로 문학동네, 공진호 번역의 <소리와 분노>를 추천한다.

<소리와 분노>는 4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의 시점이 다 다르고 시간의 흐름도 뒤죽박죽이지만, 1장과 2장만 잘 넘기면 3,4장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고 하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10장은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문학 이론을 다루는데, 다양한 문학 이론 중 해석학, 정신분석학, 해체론을 다룬다. 저자는 '이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게 하고 넓고 깊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문학 이론을 공부하면 작품을 읽은 뒤에 받은 충격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p.272)고 말한다.

후설, 하이데거, 프로이트,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데리다가 줄줄이 나오는데 솔직히 반 정도만 이해한 듯 싶다. 저자도 이 책의 목적은 깊이보다는 '전체의 흐름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p.344)내는 데 있고 사실 책 마감일을 넘겨서 여기서 마쳐야 한다고 솔직히 밝히는데 속으로 여기서 멈춰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문학의 본질과 가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왜냐하면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그 의미도 그 순간에만 무엇인가를 의미할 뿐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은 문학 외적인 것들과 끊임없이 작용하면서 변화하고 그 본질이 계속 변해왔기에 '문학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였던 저자의 서문을 소개한다. 문학 초보자로서 저자의 서문이 참으로 친절하게 다가왔다. 저자의 바람대로 앞으로 소설 읽기가 더욱 즐거워질 거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려운 평론이나 작품 해설마저도 아주 재미있는 글이 되면 좋겠다. 모든 독서에서 말이 잘 통하는 지적인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독자들이 직접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어떤 용어든 다른 분야에서의 쓰임새까지 알고 나면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