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사생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5
장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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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의 시니컬한 문장이 은근히 웃긴 소설이지만 마지막엔 절대 웃을 수 없는 무서운 이야기.
‘사기는 걸리면 친 사람 잘못 안 걸리면 당한 사람 잘못‘(p.195)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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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서 들을, 이왕이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것을 찾다가 우연히 유투브에서 문지혁 작가가 운영하는 '문지혁의 보기드문 책'이라는 채널을 발견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epiphany를 설명하는 강의였는데, 작가의 단정한 외모와 차분한 목소리, 무엇보다 진지한 강의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어디선가 본(아마도 자목련님의 글?) <초급 한국어>의 저자였고, 지난 달 두 권을 연속해서 읽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문지혁', 바로 작가의 이름과 같다. 자신의 이야기와 허구가 섞인 '오토픽션(autofiction)'으로 <초급 한국어>(2020)는 작가가 뉴욕의 한 학교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경험을, <중급 한국어>(2023)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문지혁이 헤어졌던 연인과 결혼해 불임으로 고생하다가 어렵게 딸을 낳고,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글쓰기 수업을 한 경험을 담고 있다. 


두 소설 다 좋았지만 그래도 더 재미있었던 작품은 <중급 한국어>이다. 이야기는 글쓰기 수업의 커리큘럼(1장'자서전'에서 시작하여 '합평'을 거쳐 11장 '작품집 만들기'로 끝나는)에 따라 진행되는데, 수업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지혁의 일상-결혼생활과 육아,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과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독자 또한 자신의 과거와 일상을 의미있게 되짚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제임스 조이스, 안톤 체홉, 프란츠 카프카, 롤랑 바르트, 레이먼드 카버 등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주제에 맞는 글쓰기 연습을 하는 수업은 마치 나도 학생이 되어 강의를 듣는 거 같았고, '유년', '사랑', '대화', '환상', '일상', '죽음과 애도', '고통'과 같은 작품별로 제시된 주제어를 보며 '역시 소설은 삶과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급 한국어>는 '나의 모국어, 어머니께', <중급 한국어>는 '나의 첫 외국어, 채윤에게' 바치는 책으로 채윤이는 문지혁 작가의 딸이다. <중급 한국어>에는 딸을 낳아 키우는 일상의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는데, 나는 십여 년 전 나의 어설픈 육아를 돌아보면서 '그래 맞다...아이를 키우는 일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얼마나 어려웠던가...영어나 일어가 아닌 아랍어나 러시아어를 배우는 것처럼 얼마나 낯설고 힘들었던가...' 생각했다. 


두 소설의 제목은 한국어 교재 같아 딱딱하고 지루할 거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각 소설 당 두 번, 총 네 번을 나는 큰 소리로 웃었고 문학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그 수업이 따뜻하고 즐거웠다.

한 예로 '사랑'을 주제로 한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남자 주인공을 쓰레기라 하며 불륜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을 혹평한다. 이에 소설 속 지혁은 이렇게 말한다.


[소설이라는 실험실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소설의 인물들은 옳고 바르고 정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실패하고 어긋나고 부서진 인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초에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장이 아닐까요? (p.93,94)]


문학 강의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삶을 통해 문학 작품을 들여다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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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3-05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급 한국어>가 더 좋았어요!!
리뷰도 써야 하는데....

coolcat329 2024-03-06 09:41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을 너무 안 읽어서 늘 한국의 작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좀 더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어요. 자목련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답니다.😁 좋은 하루보내세요!

새파랑 2024-03-06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국어도 잘 못하는데...

곧 <고급 한국어>도 나오는 건가요? ㅋ

문학을 소재로 하니까 재미있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4-03-06 14:52   좋아요 1 | URL
지혁이 외국인에게 초급 한국어 가르치는 걸 보니 한국말이 외국인에게 정말 어렵겠더라구요. ‘은는/이가‘ 조사 붙이는 거부터 그들에겐 너무 헷갈리는 거죠. <초급 한국어> 읽으면서 우리나라 말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 책 재밌습니다.👍
 
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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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하든 그 이면에는 ‘반대어‘가 있기에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삶을 기꺼이 살겠다는 마지막 안진진의 선언이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삶에 완벽이란 없기에 그 불완전함, 모순을 껴안고 살아갈 때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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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3-05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분명히 읽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내용은 생각나지 않네요.ㅋㅋ

coolcat329 2024-03-05 12:10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두번 째 읽는 건데 처음 읽는 기분이었어요. 어쩜 안진진 이름 빼고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는지 참...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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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가 되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앤드루 포터.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한 깊은 회한과 그리움이 15편의 이야기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이만큼 쓸쓸했던 책이 또 있었던가... 패배감에 젖은 모든 중년에게 앤드루 포터가 보내는 위로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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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3-05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앤드루 포터,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 참 좋았답니다.
 
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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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1000쪽이 넘는 책이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세계문학 중 가장 가독성이 좋았다. 긴 문장도 쉽게 이해가 되니 이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분신인 필립이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많은 굴레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얻기까지의 긴 여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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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2-07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 작품은 가독성이 다 좋아요! <인생의 베일>도 엄청 재미납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페인티드 베일>보다 책 <인생의 베일>이 더 재미나다는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4-02-07 15:55   좋아요 1 | URL
<인생의 베일> 읽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 책도 성장소설이네요. 참 재밌죠!

페크pek0501 2024-02-07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굴레에서 1과 2, 그리고 인생의 베일도 완독한 1인입니다. 몸의 광팬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댓글 적어요.^^

coolcat329 2024-02-07 16:00   좋아요 1 | URL
페크님 몸 팬이신 거 알아요😁 영문학사에는 조금 뒤쳐져 있는 듯 싶으나 우리 독자들은 거의 모두가 몸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믿고 읽는 작가네요.

Falstaff 2024-02-07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작 도전하셔요! 절묘하게 대중문학의 선상에 딱 줄을 타고 있어 더 매력적인 M입니다. 기막힌 균형감. 요즘 나왔으면 밀리언 셀러도 충분했을 겁니다.

coolcat329 2024-02-07 22:07   좋아요 1 | URL
네! 단편집 빼고 다 가지고 있어요. 단편들도 좋다고 하는데 일단 있는 책들 다 읽어보겠습니다.😊

은오 2024-02-08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머싯몸 좋아하는데 이건 사놓고도 분량의 압박 때문에 손이 안 가네요 ㅠㅠ ㅋㅋㅋㅋㅋㅋㅋ 쿨캣님이 재밌다고 하시니 저도 읽을 계획을 좀 세워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진짜 서머싯몸이라 금방 읽을 것 같긴 한데요!

coolcat329 2024-02-08 13:57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진짜 가독성이 짱!입니다. 지루할 법도 한 이야기가 참 이상하게 재미있고 술술 읽힙니다.

레삭매냐 2024-02-15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무려 천쪽~
전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긴 소설은 읽기 쉽지가
않더라구요.

coolcat329 2024-02-15 10:32   좋아요 2 | URL
근데 가독성이 엄청나게 좋아서 분량이 별로 부담되진 않았어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할 얘기가 많았나봐요.

물감 2024-02-2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제 몸의 장편은 이거 하나 남았습니다. 쿨캣님 뒤를 따라가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