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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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교수형을 당한다 해도 나는 그녀를 가져야만 했다. 

나는 그녀를 가졌다." (p.70)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제임스 M. 케인(James M. Cain 1892~1977)이 1934년 발표한 첫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두 번 영화로 만들어져 역시 성공을 거두었는데, 1981년 만들어진 두 번째 영화에서는 잭 니콜슨이 부랑자 프랭크 역을 맡은 점이 눈에 띈다. 1975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범죄자이자 날건달인 맥머피 역을 맡아 '악마처럼 입을 쫙 벌리고' 웃는 명연기를 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가 여기서도 양아치 부랑자 역을 맡았으니 말이다. 그가 맡은 맥머피나 프랭크 역 둘 다 적당히 나쁜 짓도 하면서 되는 대로 사는 그런 양아치 같은 족속들인데, 독자 입장에서 이 두 인물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악함과 순수함이라는 상반되는 속성을 잭 니콜슨이 갖고 있으니 정말 매력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프랭크 1인칭 시점으로 빈털털이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프랭크가 캘리포니아 도로변에 위치한 식당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돈도 없으면서 무작정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그에게 그리스 이민자인 식당 주인 닉은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가게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닉의 제안에 망설이던 프랭크는 그 순간 닉의 부인 코라를 보는데, 다음 페이지에서 프랭크는 '주유소에서 바람 빠진 타이어를 고치고 있'(p.12)는 닉의 직원이 된다. (전개가 정말 빠르지 않은가!)

코라는 아이오와 출신 미녀로 돈 때문에 닉과 결혼했을 뿐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던 차였는데, 프랭크는 이런 코라의 상황을 재빠르게 알아채고 코라를 유혹한다. 두 사람은 닉이 없는 틈을 타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첫 키스에 피가 뿜어져 나오는'(p.20) 격정적이면서도 기이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들의 미래 대충 짐작이 가지 않는가?

닉이 없는 틈을 타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이런 생활을 견딜 수 없다며 닉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어리석은 두 남녀의 사랑이 범죄로 이어져 결국엔 파멸로 치닫는 과정이 간결한 대화와 함축적인 묘사로 빠르게 전개된다. 


이 소설을 두고 케인은 1927년 실제로 뉴욕에서 일어났던 치정 살인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썼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덕적으로는 충분히 끔찍하지만 살인이 사랑 얘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남녀가 있고, 그런데 일단 저지른 다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떤 두 사람도 그렇게 끔찍한 비밀을 공유하고는 같은 지구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는 얘기야." (p.175 작품해설)


서로를 향한 욕정을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이라 믿고 벌이는 어리석은 범죄들, 신문 기사나 영화, 소설에서 자주 보는 치정 살인의 모습이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만 제거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과 자신들의 사랑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가져다 주는 것은 서로를 향한 지독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 뿐이지 않은가.


마지막 장, 프랭크의 담담한 고백에서 내가 느낀 것은 지독한 허무함이었다. 입술을 깨물어 피를 터트릴 정도로 격정적이었던 욕정은 '나는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p.169)는 허무한 얘기로 끝나니 말이다.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힌 두 남녀의 범죄를 통해 공황기 시절 미국의 어두운 현실을 냉철하게 보여준 짧고 강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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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0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순수한 것이 타락하면 가장 나쁜 것이 된다는 라틴어 속담이 떠오릅니다. 순수함과 타락은 동전의 양면인건지...🤔

coolcat329 2023-02-06 19:56   좋아요 1 | URL
오 그런 속담이 있군요. 어린아이 처럼 사리분별 못하고 자신의 본능 만을 좇아서 그런 걸까도 싶습니다. 🤔

새파랑 2023-02-06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저런 내용이군요. 20페이지만에 저런 전개라니 ㅋ 요즘 트렌드에 맞는 작품인거 같습니다 ^^

coolcat329 2023-02-07 13:04   좋아요 1 | URL
작가가 3만 5천 단어로 압축해서 썼다고 하네요.😚

물감 2023-02-07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종 눈에 들어오던 제목이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포스트맨과 벨2번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coolcat329 2023-02-07 18:18   좋아요 1 | URL
책을 다 읽어도 제목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작품해설에 설명이 나와있더라구요.
실제 사건 속 아내가 남편 죽이기 전에 남편 명의로 5만달러 보험 가입했는데, 우편배달부에게 보험 증서 배달할 때 초인종을 두 번 울리라 했대요. ㅎㅎ
재밌죠?
 
여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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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은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 1873~1954)의 자전적 소설로 1928년 발표되었다. 이 전에 900페이지가 넘는 <분노의 포도>를 읽어서 쉬어 가는 의미에서 176페이지의 얇은 이 책을 골랐는데, 웬걸 도대체 무슨 말인지 책장이 안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대여섯 장을 겨우 넘겼을 때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돈 주고 산 책이니 읽기로 결심하고 뒤에 나온 작가의 연보를 먼저 읽어 보았다. 


콜레트는 아버지의 파산,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 팬터마임 배우로 활약, 동성 연인과의 동거, 양아들과의 연애, 여성 작가 최초로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여성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명성과 명예를 다 얻은 그녀는 '우리의 콜레트'라 불릴 만큼 프랑스 문화와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진 것만 봐도 그녀가 프랑스에서 어떤 위치의 작가인지 알 수 있다. 


작가 콜레트의 드라마틱한 삶을 알아보고 읽으니 처음보다는 책장이 잘 넘어갔지만 의식의 흐름으로 써나간 문장은 아름답지만 모호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인 '나'는 프로방스 지방의 별장에서 고양이, 개와 함께 살며 글도 쓰고, 부업인지 취미인지는 모르지만 포도 나무도 키우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다. 그녀는 화가, 시인, 작가 등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내는데 그 가운데 파리에서 온 서른 다섯 살의 실내 장식가 비알도 있다. 비알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둘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고 두 번의 이혼을 겪은 40대인지 50대인지 잘 모르겠는 '나'는 또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갈등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확인한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것과 무관하게 살고 싶'(p.136)다며 그에게 20대의 엘렌 클레망과 결혼할 것을 권유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행동일 뿐 그가 떠나고 혼자 남은 그녀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가버려라! 나타나려거든 내가 알아볼 수 없도록 몰래 오기를. 창문으로 뛰어내려 땅을 디디고, 꽃이 되어 꽃을 피우고, 새나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소리가 되어 메아리쳐라......당신은 얼마든지 나를 기만할 수 있겠지만, 우리 어머니를 속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고통을 잊고 껍데기를 벗어던지길.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나의 어머니가 그러셨듯이 내가 당신을 붉은 선인장 꽃이라 부를 수 있도록. 아니면 불꽃처럼 힘겹게 피어나는 또 다른 강렬한 꽃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마귀를 쫓아낸 미래의 진정한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수 있도록. (p.173)


<여명>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드러난다. '나'는 늙은 나이에도 사랑(큰 아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비알이 떠나고 혼자 남은 '나'는 호기롭게 '가버려라!' 외치면서도 '나'는 어머니를 닮았기에 자신을 속일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가 돌아왔을 때 당당히 '꽃의 이름'으로 그를 부를 수 있기를 갈망하는 이 고백은 참으로 당차고 매혹적이다. 

'오로지 포기를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다'(p.33)는 어머니의 가르침처럼 그녀가 비알을 다른 여자에게 보낸 것은 그 사랑을 성취하려는 이기심이며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삼십 년 동안 지겹게도 자신을 괴롭혔던 사랑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데, 이제는 좀 편안하게 일상을 즐기며 살고 싶은데, 뒤늦게 찾아온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나'의 심리, 남자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가 흥미롭다. 


친애하는 남자여, 영원히 안녕, 그러나 당신을 환영합니다. (p.30)


오 남자여, 남자와의 우정이란 이다지도 어려운 것인지, 우리의 우정은 아직도 휘청거리고 있구나.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p.170)


왜 우리는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p.25)에 그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사랑에 상처받고 실패하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싶어한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일까?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프랑스 여성들은 유난히 사랑을 함에 있어서 솔직하고 정열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사랑이 끝나고 치유될 때마다 '매번 새로 태어난다'(p.19)는 문장을 읽으며 '아 나는 너무 사랑을 못 해봤네...왜 그렇게 몸을 사렸을까? 이렇게 늙을 몸인데...' 나도 모르게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ㅠㅠ 


사랑의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돌려서 표현한 소설이라 읽기가 쉽지 않았으나, 엘렌 식수가 "여성적 글쓰기의 대표적 예"라고 칭송한 것처럼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는 콜레트의 문장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얇지만 주옥같은 문장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밀도 높은 책, <여명>의 몇 구절을 옮겨본다.



나는 단지 혼자가 될 뿐이지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 P16

여자들은 행복한 사랑을 해본 횟수만큼 많은 고향을 가지며, 사랑의 고통이 치유되는 하늘 아래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 P19

종달새가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향하여 올라가듯 어머니는 끊임없이 시간의 사닥다리를 올라갔다. 시작의 시작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면서...... - P35

나이란 이 세상을 달리고 싶어 조바심내는, 자신이 아끼는 청년의 잘생긴 발을 바라보면서 던지는 달콤한 말이나 치명적인 눈물, 타는 듯이 꺼져가는 한숨과 함께 오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부유해지지 않고는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 P45

그들이 파리를 못 잊듯이, 남자인 당신은 내게 조국과도 같은 그런 존재인가? 존재의 근원인 남자여, 당신은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가? 그렇다 해도 안 될 건 없다. 그러나 나의 걱정거리인 한여름의 대수롭지 않은 사랑들은, 전등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 P84

남자의 우아함은, 그것이 비록 말뿐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우리를 사로잡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가! 한 남자가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겠노라 말할 때 그 남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여자의 허영심이라는 취향이 내게 아직도 살아 있는 모양이다. - P120

내가 캄캄한 밤, 고독, 동물 친구들, 드넓은 들판과 바다 같은 주위 환경에 의지하고 기댄다면 그것은 옛날에 내가 수없이 많이 노래한 여인, 홀로 곧게 살았던 여인, 잎이 다 떨어져도 자신만만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서글픈 장미 같았던 그 여인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 P165

새벽이 온다. 그 어떤 악마도 새벽이 가까이 오는 것을, 새벽의 창백함을, 새벽 푸른 빛의 미끄러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소중히 새벽을 품고 오는 반투명한 악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 얼마 전부터 리듬이 끊겨버린 내 삶의 윤활유가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 또 기다림......기다림이란 우아한 예절과 사양할 줄 아는 최고의 멋을 가르치는 그런 좋은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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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05 0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장들이 참 절절하달까요? 아 그런데 저렇게 나이들어서까지 평생을 남자와의 사랑에 나를 소진시켜야 하는건 소설속에서라면 몰라도 현실에서는 좀 싫을거 같아요. 프랑스 여성작가들이 사랑에 저렇게 절절한건지 아니면 프랑스인들 대다수가 우리보다 좀 더 그런지 그건 궁금하네요. ^^
그래도 콜레트의 저 사랑이야기를 들어보고싶은 마음이 막막 드는 리뷰였습니다. ^^

coolcat329 2023-02-05 11:28   좋아요 0 | URL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에 좀 진심인 거 같아요 ㅋㅋ 처음엔 책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작가의 세련된 필력에 끌려서 다 읽게 되었어요. 영화도 보고 싶어졌네요.

새파랑 2023-02-05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자전적인 느낌이 확 드네요 ㅋ
문장들이 완전 제 취향이긴한데
어려워보이긴 합니다 ㅡㅡ
역시 고전은 쿨캣님~!!!

coolcat329 2023-02-05 13:57   좋아요 1 | URL
자전적 소설이지만 모든게 다 사실은 아니에요. 어머니 편지도 각색했고 연하남도 실제 인물은 아닙니다.
근데 작가가 실제로 연하남과 연애를 많이 해 본 고수라 흥미롭습니나. 새파랑님은 프루스트를 읽으신 고수시니 이 책 저보다는 쉽게 읽으실 거에요.

자목련 2023-02-07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랑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제가 읽다가 멈춘 소설이었어요. ㅠ,ㅠ
올해는 완독을 목표로 삼아보겠습니다.

coolcat329 2023-02-07 13:0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첨부터 멈추고 싶었어요.ㅎㅎ 근데 3분의 1 정도 읽고 나니 적응 되더라구요. 자목련님은 충분히 완독하실 거에요~😊
 
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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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는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의 대표작으로 1939년 출간되자마자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940년에는 작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1930년대 말 미국 중부의 농부들은 가뭄과 모래 폭풍으로 인한 계속된 흉작으로 고통을 겪는다. 이에 지주와 은행은 고수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소작 제도를 없애고자 트랙터로 농가를 밀어버림으로써 기계화 농업을 실시하고, 소작농들은 평생 농사짓던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한다. 

소설의 주인공 톰 조드의 가족도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삶의 터전이었던 오클라호마 농가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66번 고속도로는 이주자들의 행렬로 가득하다. '66번 고속도로는 이주자들의 도로'이자 '도망치는 사람들의 길'(1권-p.243)이 된다. 

고된 여정 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톰의 형은 중간에 사라지며 임신한 여동생의 남편은 도망간다. 이러한 가족의 와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중심으로 뭉친 가족은 2000마일(3200km!) 8개 주를 지나 드디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조드 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캘리포니아는 과연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약속의 땅이었을까? 

아니다. 캘리포니아 농부들의 현실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 갈수록 낮아지는 과일 가격과 늘어나는 빚으로 더 이상 과수원과 통조림 공장을 운영할 수 없는 소규모 농부들 또한 대지주들의 횡포에 고통을 당하는 처참한 상황이었던 것. 게다가 '과일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런 캘리포니아에 조드 가족과 같은 수십 만의 농부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 오는 실정이니 돈 많은 농장주들의 횡포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다음 문장은 작가 스타인벡의 분노가 느껴져 적어본다.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감자를 바라본다. 도랑 속에서 죽임을 당해 생석회에 가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인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2권-p.255)]


<분노의 포도>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조드 가족의 험난한 여정을 통하여 1930년대 말 살던 땅에서 쫓겨난 농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잘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들의 고통 만을 담고 있지 않다. 작가는 이들의 고단한 여정을 통해 인간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또한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 공동체 정신 등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은 어떤 특정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녁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스무 가족이 한 가족이 되고,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슬픔은 모두의 슬픔이 되고, 서부에서 황금 같은 시절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꿈도 모두의 꿈이 되었다. 어떤 아이가 아프면 스무 가족에 속한 100여 명의 사람이 모두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천막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면 100여 명의 사람이 모두 밤새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침묵을 지키다가 아침에 기쁨을 함께 나눴다.(1권-p.406)]


'어쩌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모두가 그 영혼의 일부인지도 모'(1권-p.52)른다는 짐 케이시 목사의 말처럼 작가는 '나에서 우리로 변하는' 연대 정신에 인간의 희망이 있음을 이 소설에서 보여준다. 극한의 힘든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는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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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1-30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노의 포도가 저런 의미였군요. 전 표지만 보고 전쟁문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ㅋ
작품 명이 너무 유명해서 손이 안갔었는데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coolcat329 2023-01-30 11:43   좋아요 0 | URL
가독성이 높아 두 권이지만 새파랑님은 금방 읽으실 듯 합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레삭매냐 2023-01-30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분노의 포도
읽겠다고 사두긴 했는데...

또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coolcat329 2023-01-30 19:00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책장도 엄청날 거 같아요~~^^
이 책 당연히 읽으셨을줄 알았는데 꼭 찾아서 읽으시길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2
켄 키지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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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1950년대 비트 세대와 1960년대 히피 세대를 연결하는 작가'인 켄 키시(Ken Kesey 1935~2001)가 정신 병원에서 야간 보조원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62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듬해에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상연되었고 1975년에는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섯 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의 상을 받았다.


이야기는 한 정신 병원에 가짜 환자인 맥머피가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이런 저런 범죄를 저지른 잡범으로 교도소 작업 농장에서 일하다가 싸움을 일으켜 정신 이상 판정을 받아 정신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사실은 고된 노동을 해야하는 교도소 보다는 정신 병원이 더 편하고 자유로울 거라는 생각에 미친 척하고 병원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맥머피는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래치드라는 수간호사를 중심으로 '정밀한 기계처럼 운영'(p.52)되는 병원은 치료를 이유로 환자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또 다른 감옥이었던 것.


[사방 벽이 짓누르고 있는 듯 갑갑한 분위기가 감돈다. 너무 갑갑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곳은 정말 이상하다.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웃으려 하지 않는다. (p.87)]


이 병동에서 가장 오래 머문 환자는 '빗자루 추장'이라고 불리는 브롬든으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1인칭 화자인 '나'이다. 브롬든은 귀머거리, 벙어리인 척하며 병동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한다. 브롬든은 이 세상은 콤바인이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이 통치하며 '병동은 콤바인을 위한 공장'(p.72)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은 비정상적인 인간이 들어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완벽한 존재가 되어 나'가는 곳으로, 수간호사는 병원의 책임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냉혹한 인물이다. 래치드 수간호사는 항상 온화한 표정이지만 속마음은 경직되어 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고야 만다. 



[수간호사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다. 마치 그녀 자신이 원하는 표정을 조각하여 색칠을 한 것 같다. 여전히 차분하다. 자신감과 인내심이 있는 침착한 표정이다. (...) 오싹할 만큼 냉정한 표정의 얼굴, 빨간 플라스틱을 짓눌러 만든 것 같은 침착한 미소, 나약함이나 근심을 드러낼 만한 주름 하나 없는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이마, 도화지에 그린 것 같은 녹색 눈.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이따금씩 작은 패배를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자신 있게 기다릴 수 있지요. 왜냐하면 내 사전에 패배는 없으니까요. (p.189,190)]


맥머피는 이런 래치드 수간호사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수간호사가 환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휘두를 때마다 특유의 장난과 비아냥거림으로 맞서지만 콤바인이라는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그녀를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환자들은 병원의 비인간적인 운영에 불만이 많지만 제대로 저항할 수 없는데, 저항하는 사람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끌려가 전기 충격 치료를 받거나 더 심하면 뇌 전두엽 절제술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식물인간, 즉 '만성 환자'가 됨을 의미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환자들은 감히 수간호사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병원 규칙에 순응하며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맥머피는 이런 환자들에게 활력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기 위해 기꺼이 환자들의 앞에 서서 수간호사와 병원에 저항한다. 


이 소설은 바로 래치드 간호사로 대표되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신 병원과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맥머피의 대립을 통해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 작품이다. 사회가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해 문제가 있는 인간을 정신 병원에 가둬 자유를 억압하고 학대 함으로써 환자 스스로 병원을 떠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만드는 모습은 거대한 조직 안에서 희생된 수많은 개개인의 모습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간 맥머피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맥머피 역으로 197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잭 니콜슨과 (작년에 타계한) 역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래치드 간호사 역의 루이스 플레쳐의 연기가 보고 싶어 영화를 찾았으나 없어서 유투브로 주요 몇 장면을 봤는데, 정말 잭 니콜슨은 소설 속 맥머피 그 자체였고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의 래치드 간호사 역의 루이스 플레처도 잭 니콜슨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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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1-14 18: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것같아요! 영화 평점도 9.2가 넘네요< 뒤렌마트 희곡선>에서 ‘물리학자들‘ 생각도 나구요. 미드 <래치드>가 아마 이 간호사의 이야기를 확장해 만들었나봅니다.^^

coolcat329 2023-01-15 08:46   좋아요 1 | URL
어쩌다 래치드가 이렇게 냉혹한 간호사가 되었는지 넷플에서 프리퀄로 <래치드>만든거 같은데 평은 별로인거 같더라구요.
오 그러고보니 <물리학자>도 떠오를 수 있겠네요.
영화도 책도 다 명작입니다~~👍

새파랑 2023-01-15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제목이 익숙해서 읽어본거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안읽은 책이네요 ㅋ 역시 명작이어서 그런지 영화도 있군요 ^^ 역시 고전하면 쿨캣님!

coolcat329 2023-01-17 17:47   좋아요 0 | URL
영화도 있고 동명의 김건모 노래도 있어서 익숙하실 거에요~영화가 아주 유명하더라구요~^^

물감 2023-01-17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이런 제목들을 보면 고리타분한 5~60년대 한국영화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내러티브가 흥미진진하네요. 병원이 또다른 감옥이란 것도, 그곳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ㅎ

coolcat329 2023-01-17 17:51   좋아요 1 | URL
아 ~혹시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때문이 아닌지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3-01-27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한 번 보고
싶긴 한데 - 옛날 영화라
주저하게 되더라구요.

하긴 요즘에는 점점 더
영화에서 멀어지게 되네요.

coolcat329 2023-01-28 13:04   좋아요 1 | URL
저도 유툽에서 명장면만 봤답니다. 젊은 잭 니콜슨보며 역시 젊음이 좋구나...했네요. ㅎ
 
바다와 독약 창비세계문학 28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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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독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쟁 포로에게 실제로 자행된 큐슈 대학의 생체 실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1958년 발표되었다. 


사건 자체를 다루기 보다는 생체 실험에 가담하게 된 인물들의 심리를 통해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신(바다로 상징)의 침묵 앞에서 인간의 양심은 어디로 흘러 가며 그 끝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자신이 행한 반인륜적인 행위 그 자체보다 그런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추악하다고 느끼는 문제적 인물인 토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여러분도 역시 나처럼 한꺼풀을 벗기면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가.'(p.136)


엔도 슈사쿠(1923~1996)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역시 인간의 죄의식과 양심의 문제를 다루며 독자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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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1-02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슈사쿠 너무 좋습니다 ㅋ 이 책은 <침묵>이랑은 느낌이 약간 다른데 그것대로 좋더라구요 ^^

coolcat329 2023-01-02 13:24   좋아요 2 | URL
그 끔찍한 현장 묘사를 자제해 준 작가에 감사했습니다. 참 힘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3-01-02 15: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살발해서 다시 생각
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
다.

일본의 행동하는 양심
슈사쿠 선생의 수작이라
고 생각합니다.

coolcat329 2023-01-02 16:50   좋아요 2 | URL
정말 믿고 읽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mini74 2023-01-03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 찜입니다 *^^*

coolcat329 2023-01-10 11:58   좋아요 0 | URL
네~미미님 추천합니다.😁

물감 2023-01-1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오랜만에 인사드리네요, 잘 지내시나요^^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즐독하세요 ㅎㅎ

coolcat329 2023-01-10 12:03   좋아요 1 | URL
아~물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잘 지내셨나요? 제가 요즘 북플에 뜸해서 인사도 못 나눴습니다.
이렇게 잊지않고 새해인사 해주셔서 감사해요.😚


han22598 2023-01-14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새해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올해도 좋은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
엔도님 저에게 죄의식, 믿음, 신...등등 많은 것들을 가려쳐주신 작가에요 ㅎㅎ 이 책도 리스트에 올려두어야겠어요.

coolcat329 2023-01-15 08:47   좋아요 0 | URL
han님~저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먼저 인사 주시고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엔도 슈사쿠 소설은 정말 싫어하는 사람 못봤습니다. 얇은 책이니 꼭 읽어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