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와 독서법에 관한 다양한 책을 쓴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독서력>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교양서는 한층 광범위한 지식 체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준다. 한 권을 읽으면 보다 수준 높은 책을 두 권, 세 권 더 읽고 싶어진다."


지난 달에 전원경의 <예술, 도시를 만나다>를 읽고 유럽 역사, 그 중에서도 650년에 걸쳐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가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느꼈다. 오스트리아의 빈과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여행하며 알게 된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분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다채로워 더 알고 싶다는 독서욕을 유발했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의 역사>는 <무서운 그림>시리즈로 유명한 나카노 교쿄의 책으로 일본에서는 2008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은 앞으로 출간될 예정인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10월 25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에 맞춰서 이번에 국내에 출판된 듯 하다. 

사실 조금 가볍지 않을까 싶어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하다가 명화가 실린 책이라 소장 가치가 있을 듯 하여 구입했고, 거의 다 읽어 갈 무렵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말대로 좀 더 깊이가 있는 '보다 수준 높은 책'을 갈망, 올해 7월에 나온 합스부르크 가문 통사를 다룬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를 또 구입했다.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부르크가는 '스위스 북동부의 시골구석'(p.12)에서 시작되었다. 시골의 보잘것 없는 호족이었던 합스부르크가가 유럽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13세기 초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백작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부터 였고, 이때부터 650년에 걸친 화려한 왕조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7명의 선제후가 선거로 결정했는데, 이들은 '최대한 무능하고 자신들의 꼭두각시가 될 만한 남자'(p.16)를 찾았고 그렇게 선택된 인물이 바로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55세의 루돌프는 우연히 찾아온 이 행운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만큼 그 누구보다 야심만만한 인물이었다. 마르히펠트 전투(1278년)의 승리로 보헤미아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일대를 손에 넣었고, 이후 본거지를 스위스 산속에서 오스트리아로 옮겼다. 그는 오직 합스부르크가를 지키고 확장하는 데 남은 10년의 인생을 쏟아부었으니 합스부르크가의 왕조 성립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또 한 명의 영웅으로 15세기 말, 독일 왕 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1세(1459~1519)가 있다. '중세 최후의 기사'라는 칭호를 얻었던 그는 26년 중 25차례나 원정을 떠났고 항상 최전선에서 싸우며 영토를 부르고뉴, 에스파냐, 헝가리까지 확장, 국호를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으로 바꾸는 등 합스부르크가를 명문가로 끌어올렸다.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막시밀리안1세는 당시 최고의 신부감이었던 부르군트 공국의 마리아와 결혼했는데, 이 결혼을 통해 '애쓰지 않고도 합스부르크가에 막대한 부와 영토가 굴러들어왔던 것'(p.37)을 계기로 혼인 외교를 중시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녀들을 에스파냐 왕가와 결혼 시키는데, 이 이중 결혼의 조건은 '어느 한쪽의 가계가 단절될 경우 남은 쪽이 영지를 상속한다'(p.37)는 것. 

이 조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가문에 돌연사가 잇달아 일어나고 이로 인해 미남왕 펠리페의 아내이자 카를5세의 어머니인 후아나는 '광녀 후아나'라는 명칭까지 얻게 되니 출발부터 참 흥미롭다. 


아래 그림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가 막시밀리안의 요청으로 그린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화로 1519년 막시밀리안이 서거한 직후의 작품이다. 재위 내내 최전선에서 싸웠으니 말년에 얼마나 지쳤을까...그림으로도 그 피로감이 전해진다.



이 아름다운 아이는 누구일까? 순간 나의 눈을 사로잡은 10장에 나오는 명화 <라이히슈타트 공작>이다. 조지3세의 궁정 화가로 '모델을 실물보다 매혹적으로 그리는 재능 덕분'(p.176)에 전 유럽 왕족, 귀족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던 화가 토머스 로런스(1769~1830)의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보정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소년의 용모가 매우 뛰어나 이로부터 10년 뒤 186센티미터의 아름다운 청년이 된 그는 수많은 여성들을 한숨짓게 했다고 하니까. 


합스부르크가에 이토록 아름다운 인물이 있었다니 궁금하지 않은가?

힌트를 주자면 아버지는 '유럽을 뒤흔든 희대의 영웅'(p.177)이었고, 어머니는 합스부르크가의 황녀로 이 소년은 '혁명의 아들과 고귀한 순혈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p.177)이다. 


맞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니 조금 민망하지만) 바로 나폴레옹과 프란츠 2세의 딸 마리 루이즈 사이에서 태어난, 태어나자마자 바로 '로마 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나폴레옹 2세(1811~1832)이다.

그러나 소년의 일생은 짧고 불행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 유배되자 어머니 마리 루이즈는 아들을 데리고 빈 친정으로 돌아간다. '합스부르크가 입장에서 나폴레옹은 너무나 증오스러운 적'(p.184)이었는데, 그의 아들이니 아무리 합스부르크가의 피가 섞여있다 해도 마냥 예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메테르니히 재상은 그를 '작은 나폴레옹'이라며 귀찮아했고 자연스럽게 그는 '합스부르크의 고귀한 죄수'(p.185)로 거의 감금되다시피 한다. 게다가 어머니 마리 루이즈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남편 나폴레옹과 아들을 버리고 파르마에서 새 살림을 차렸으니 참으로 비호감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츠2세는 나폴레옹과의 관계를 끊게 할 의도로 그가 7세 때 라이히슈타트 공작이라는 작위를 내린다. 그러나 공작은 후에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숭배하며 아버지와 같은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폐결핵을 앓다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영웅과 고귀한 혈통 사이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태어나 크게 될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던 라이히슈타트 공작의 이 짧고 불행한 삶이 나는 참 인상적이었다. 저 아름다운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신기하게도(당연한 일이지만) 나폴레옹의 그 총명한 눈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얼굴은 나폴레옹을 몸매는 호리호리한 엄마를 닮은 듯 하다. 라이히슈타트 공작은 처음엔 쇤브룬 궁전 내의 합스부르크가 묘지에 묻혔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지배 하에 있던 프랑스를 회유하기 위해 공작의 유해를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옮겼다. 그래서 현재 '나폴레옹 부자는 파리의 앵발리드에서 영원히 함께 잠들어 있다'(p.192)니 아버지를 숭배했던 아들과 유일한 자식을 죽어서라도 만난 나폴레옹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인가...


저자 나카노 교쿄는 13세기 루돌프 1세부터 20세기 프란츠 요제프까지 12장에 걸쳐 알브레히트 뒤러, 베첼리오 티치아노,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에두아르 마네 등 유명 화가들이 그린 명화를 소개하고 명화 속 인물들의 다채로운 삶을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어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미술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는 합스부르크가의 이야기인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는 진입장벽이 낮은, 합스부르크가 입문서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이다.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중앙박물관과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협력하여 개최하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홍보 엽서가 책 속에 들어 있었다. 이 엽서를 가지고 오면 작은 선물을 준다고 해서 얼리버드로 할인 티켓을 사뒀다.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그림 구경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실 걸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인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11-02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포그 뮤지엄에 가봤지만
정작 가서는 윈슬로 호머의
그림들과 조각들 구경에
넋이 빠져서 미처 미소년
그림은 못 보았네요...

* 덧 : 조각가 이름이 이제야 기억났네요.
오노레 다미에 !!!

coolcat329 2022-11-02 19:15   좋아요 2 | URL
오! 포그 미술관에 가보셨군요~
저는 호머 그림하면 민음사 호손 단편집이 떠오릅니다.
표지가 호머 그림이거든요. 근데 재미가 없어 몇 년을 붙잡고 있다보니 표지만 매일 보네요.ㅎ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 중 조각도 있군요. 화가들이 다 쟁쟁하니 토마스 로렌스 그림은 묻힐 수도 있겠어요.

페넬로페 2022-11-02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650년동안 왕조가 유지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국립박물관 전시 저도 가보고 싶어요.
얼리버드는 아깝게 놓쳤어요^^

coolcat329 2022-11-02 19:46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면 조선왕조 오백년도 대단한 거 같아요.ㅎㅎ
전시회 내년 3월초까지니 기회되시면 가셔도 좋을 거 같아요. 고종이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선물한 갑옷과 투구도 전시되어 있다더라구요~

바람돌이 2022-11-02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합스부르크가 진짜 특이하죠. 유럽 대부분을 호령했는데 국민국가를 이룬 건 또 아니고.... ㅎㅎ
한동안 나가노 교코의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요즘은 좀 너무 가벼워져서 안들게 되더군요.그런데 쿨캣님덕분에 이 책은 또 살짝 관심이 가네요. ^^

coolcat329 2022-11-03 08:31   좋아요 1 | URL
네~나카노 교코 책 쉽고 명쾌해서 좋은데 다 읽고 나면 좀 가볍다? 라는 느낌이 있어요. 근데 참 재밌기도 해요~ 앞으로 나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시리즈(부르봉, 로마토프 등등 나올 예정)도 흥미로워 모아 볼까도 싶고요.

새파랑 2022-11-02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리에 꼬리를 무는 쿨캣님의 독서는 대단합니다 ㅋ 꼭 작은 선물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coolcat329 2022-11-03 08:35   좋아요 1 | URL
사실은 올해 제 독서 목표가 전쟁사와 관련된 책들 읽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합스부르크로 넘어왔네요. ㅎㅎ 작은 선물이 뭘까 저도 궁금합니다.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scott 2022-11-03 0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그림 구경하고 고 밥 먹고 커피 마실 걸 생각하시닌 쿨켓님의 행복한 모습이 마구 그려집니다 ㅎㅎ

깊어 가는 가을에 전시장 나들이 !
이보다 더 좋은 나들이가 없죠 ^^

coolcat329 2022-11-03 08:37   좋아요 1 | URL
아 더 추워지기 전에 갔다 와야하는데 말이요~~그러고 보니 가을과 전시회 참 잘 어울립니다. 스콧님 감사합니다~

mini74 2022-11-03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쿨캣님 혼자서 밥 막고 그림 구경하고 커피 마시다니 ㅎㅎ 이 책 고민중입니다 ㅎㅎ

coolcat329 2022-11-03 08:40   좋아요 1 | URL
미술에 관심 많으신 미니님 이번 전시회 보시면 좋을텐데 멀리 사시죠?
이 책은 제 수준에는 참 적절했으나 미니님에게는 조금 가벼울 수도 있을 듯 하네요. 근데 나카노 교코가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니 재미는 보장입니다.
아참! 저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미니님께 땡투하고 샀습니다. (샀다가 땡투안해서 취소하고 다시 샀다는 말을 굳이 하겠어요~ㅋㅋ)

mini74 2022-11-03 12:03   좋아요 1 | URL
앗 고민되네요 쿨캣님 리뷰가 너무 좋아서 ㅎㅎ 고맙습니다 ~~

라로 2022-11-03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볼드체로 인용하신 글, ˝교양서는 한층 광범위한 지식 체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준다. 한 권을 읽으면 보다 수준 높은 책을 두 권, 세 권 더 읽고 싶어진다.˝ 정말 제 경우에는 맞는 말인 거 같아요!! !! 책도 읽고 전시회도 가시게 되면 두 배로 오래 기억하실 것 같아요.^^; 암튼 언제 가실지 모르지만 다음에 전시회에 대한 글을 올리시면 이 리뷰를 기억할게요. ^^

coolcat329 2022-11-03 18:43   좋아요 0 | URL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도 큰 즐거움입니다. 다만 큰 맘먹고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게 문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