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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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엔지니어이자 작가인 네빌슈트의 소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을 읽었다. 소설이라면 무조건 열린 마음으로 보는 나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 고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목도 그렇고!

그렇지만 읽다보니 유쾌한 내용이 아니어서 깜짝 놀랐다. 이건 정말 표지의 배신?


서술자인 노엘은 변호사다. 그는 진이라는 영국 여자의 재산을 관리하게 되는데 이유인즉슨 진의 삼촌이 죽기 전에 혈육인 조카들에게 재산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 중 진의 오빠가 전사하면서 꽤 많은 재산이 진에게 왔고 진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30세 중반이 되기 전까지는 모든 재산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연금식으로 지급받기 때문에 그것을 인계해주고 관리하기 위해서 노엘이 필요한 것이다. (복잡;;)

그래서 노엘은 진을 만난다. 진은 속기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평범한 사원이다. 하지만 알고보니 진은 전쟁 중에 포로 끌려갔던 경험이 있었다. 1930년대의 일이다. 일본은 말레이반도를 습격했고, 그 때 영국인들을 붙잡아 남자는 포로수용소에 집어 넣고 여자들은 방치했다. 방치했다기 보다 빙빙 돌려가며 학대했다. 동양인들에 비해 처참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걷게 했다. 말라리아나 과로로 줄줄이 급사하는 가운데 진과 몇몇은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 마을의 도움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의 끈기와 성실, 그리고 자비와 용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국으로 귀환된 후에도 여전히 삼년동안 살았던 마을을 생각한다.

진이 여러날을 걸으며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며 겪은 일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일은 그네들을 몰래 도와주던 호주 군인 조의 죽음이었다. 조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채 처형당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조가 살아있었다. 조 역시 간절히 진을 만나고 싶어했다. 그들은 전쟁 후 6 년째 빙빙 돌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잘 됐다. 만났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랑이야기로만 본다면 이 소설은 재미없다. 이 소설은 전쟁포로였던 진 패짓이라는 한 여자가 억대의 재산을 물려받고나서 한 행동들을 집중해서 봐야 한다. 3년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버려진 전쟁포로를 돌봐주었던 말레이의 한 마을에 우물을 파서 여성들의 일거리를 줄여준 진은 호주로 건너가 호주 여성들을 돕는다. 그녀는 마치 슈퍼우먼처럼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뿜뿜 풍기면서 살아간다. 진의 그런 용기있는 행동들이 너무 멋있으면서도 돈이 있으니까 가능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돈이 있다고 다 그렇게 베풀고 나누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진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멋져서 누구에게든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1권이 더 재밌다. 1권은 가슴이 늘 쫄깃거린다. 포로가 된 영국여자들이 마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일을 걸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말레이반도 곳곳을 걸어야만 했을 때 진이 일본군 병사들과 대적하면서 이뤄낸 결과는 대단했다. 결국 일본군이 진과 사람들을 버린 것이긴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서도 홀로 도망치지 않고 병자와 아이를 돌보며 끝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가진 것을 이용해서 은혜를 갚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2권으로 가면 갑자기 조의 생존 소식을 알게 되고 조 역시 극적으로 살아나면서 6년이란 시간동안 회복하고 오해를 풀고 진을 찾아 영국으로 오는데 이 과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읽을만 하다. 읽으면서 재밌었고, 알게 된 것도 많고. 북반구와 남반구를 넘나들고, 10년의 세월을 넘나들고, 세대와 인종의 차이를 넘나드는 이 소설이 참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노엘의 사랑은 영화 [인턴]이 생각났다. 젊은 날의 눈부심이랄까, 젊은 매력과 활기에 대한 동경이랄까. ㅎㅎ

두 권이라 좀 부담은 있지만 가볍게 읽어보기에 괜찮은 소설이다. 작가 네빌슈트는 1899년생인데 전쟁에 참여하는 엔지니어였으므로 무기도 만들었고 이름도 숨겼다. 네빌 슈트는 필명이다. 주인공이 여자인 것이 작가에겐 다소 어려운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진의 심리묘사는 그렇게 잘 됐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서술자가 중년 남성인 것은 대단히 어울리는 설정이었다. 어쩌면 그도 진 패짓 같은 눈부신 젊은이를 만났을런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력을 알고나면 이 소설의 배경이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읽은 책 중에 좋은 책이 참 많다. 이 세상에는 진처럼 용감한 여성이 많아지면 좋겠고, 조처럼 지고지순한 사랑과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진 젊은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엘변호사처럼 정직하고 믿을만한 법조인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신 전쟁은 절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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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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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무슨 힘이 있습니까?

시에 무슨 힘이 있습니다.

시는 용기를 주는 찬란한 나의 편입니다."

- 김승희


유명 드라마에서 소개되면서 갑자기 인기를 얻게 된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풀꽃1> 을 기억한다. 풀꽃 시인이라고 불리는 나태주 시인이 (주) 넥서스의 문학 브랜드 앤드(&)에서 에세이를 출간했다.

나태주 시인이 건 슬로건은 '나를 살린 시들이 이제 너를 지켜주기를!'

이게 무슨 말이지. 시인이 죽을뻔했나.

궁금했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엄청 흥미가 갔던 책이다


하얀 바탕에 이름모를 풀이 불쑥, 그렇지만 겸손하게 솟아있는 깨끗한 책. 시인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자연에 대한 여러가지 심상을 언어로 풀어 시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가 일평생 만난 시 중에 가슴을 울린 명시 114편을 간단한 감상과 함께 남겨두었다. 그것이 이번에 나온 시 에세이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다.


구성은 이렇다.

시의 전문이 삽입돼 있다. 그리고 이 시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짧게 넣어두었다. 당연히 저자의 생각이다. 그 속엔 수록된 시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시인과 저자와의 에피소드도 있다. 길지 않아서 지루하진 않지만 그 바람에 아쉽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너무 요약해서 해주는 기분일까?

상대적으로 소설이나 인문학서보다는 시집을 안 읽는 나에게 가끔 이런 류의 에세이는 명시를 발견하게 해주는 보물섬 같은 책이다. 110개 넘는 시 중에서 내가 고른 한 개의 시는 천양희 시인의 <마흔 살이 되는 해는> 이라는 시다. 마흔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건지 화자의 저 초연을 닮고 싶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희한하게 저 시를 한 번 쯤 필사해두고 싶었다. 명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들도 많지만 전혀 모르는 시들도 있어서 어떤 시는 소리내서 읽어보기도 했다. 소리내서 읽으면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는 또 다르게 다가오니까.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후루룩 읽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책이다.


가슴이 마구 따뜻해 지던 책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다. 나태주 시인이 그랬듯이 좀 울적할 때 시를 읽어보자. 요즘처럼 뭔가 내 맘대로 안 될 때는 시를 곁에 두어야겠다. 구차한 설명 없이 나와 글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나를 좋은 영혼으로 인도할 것이다.


시는 남을 생각나게 한다. 늘 나와 내 가족만 보고 달려가게 만들던 비루한 삶 가운데 '함께' 라는 찬란함을 선물해준다. 길지 않은 시구들을 읊다보면 희한하게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보인다. 별 생각없이 보낸 하루 속에서 마주친 남을 생각하게 한다. 생각이 많아지면 지혜가 나오는 법이다.


시는 세대를 연결한다.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세대, 그보다 더 윗 세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세대가 스러지고 난 후의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 한다. 시는 그런 것이다. 과거가 노래가 되고, 미래가 꿈이 되는 것이 시다. 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시를 좋아한다. 시는 아름다운 역사서니까.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든지 추천하고 싶은 책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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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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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돼서 읽는 이솝의 우화들!



어릴 때 이솝우화 안 읽어본 사람 있을까? 초등학교 때 탈무드와 함께 교훈을 목적으로 누구나 읽어봤음직한 책을 마흔이 다돼서 새롭게 읽으니 느낌이 아주 남달랐다.

어릴 때는 그저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재밌는 이야기에 불과했더라면 다 커서 읽는 이솝 우화는 기원전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문장가 이솝이 인간세상에서 느낀 여러가지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이야기하는 촌철살인의 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솝은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해학과 재치는 2500년이 지나서도 사랑받을 수 없게 생겨먹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살이는 다 거기서 거기고, 인간은 여전히 너무도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도 극찬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이솝우화] !

이번에 현대지성에서 출간된 책은 특별히 아서래컴의 그림으로 함께한다. 아서래컴은 그림형제의 동화삽화를 그려 주목받게 된 영국 일러스트레이터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이 사람 역시 일러스트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림체가 확실히 남다르긴 했다.

이 책은 358개의 우화가 실려있다. 글과 함께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글인지 설명을 달아놓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솝이 직접 써 놓은 것인지 옮긴이가 첨부한 것인지 궁금했다. 358개가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겸손과 정직과 성실 등을 가르치는 상당히 계도적인 글들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188번글 <모기와 사자>에는 '이 이야기에는 특별한 교훈이 없다' 고 나온다. 그런 말도 무척 신선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교훈은 없을지 몰라도 삶의 지혜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자와 싸워서 이겼다고 자만하며 날아가던 모기가 거미줄에 걸려 끝내 죽어가면서도 '내가 사자와도 이겼는데 거미에게 지다니 분하다.' 고 했단다. 어쩌면 인간도 죽을 때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잘난체 하는 동물일지도. 사실 이솝 우화는 짧지만 여운이 길다. 자꾸만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상황에 빗대보고, 읽다보면 등장하는 동물이나 인물들과 은근히 닮은 주변사람들을 기억해내게 된다. 재밌는 작업이다.

또, 동양의 시각과 비슷한 이야기들도 눈에 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 이나 '소탐대실' 격인 이야기도 재밌었다. 어릴 때 <콩쥐 팥쥐> 와 <신데렐라> 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것도 그런 맥락이겠지. 어쨌든 인간세상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세만 부리던 자는 권력의 맛에 미끄러져 추락해버리고, 남을 속이며 이득을 취하려던 사람은 언제든 가장 손해보는 지경에 이른다. 실제로 어른이 돼서 보니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또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쁜 사람들이 언제나 승리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또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에 하나는 <사자의 왕권> 이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촉각을 세우는 이유는 대선 주자의 승패에 따라 국가들의 이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야기 말미에 이런 글이 있다.

"나라에 정의가 있어서 모든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면 , 힘 없는 자들도 평화롭게 살아가게 된다." 정의는 정말 승리할 수 있을까?

하여튼 재밌다. 정말 재밌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읽어보면 좋겠다. 모든 이야기가 같지 않지만 반드시 다르지도 않고, 지금 당장 와닿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모종의 지혜가 내 삶에 스며들게 된다. 이야기는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분명한 힘이 있다. 이 짧고 작은 우화들이 그런 힘을 발휘할 때는 언제일지 모두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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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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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다양한 죽음 속에는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하루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겪을지도 모를 오늘이,

지금 내 옆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것은 집도, 돈도, 명예도 아니다.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p.13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김새별 . 전애원 지음청림출판


얼마 전에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 라는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특수청소업체가 따로 있다는 사실과 감히 상상도 못했던 극한 노동의 실태도 알게 되었다. 아무 이미지도 첨부되지 않았지만 글만으로도 얼마나 참혹하고 더러운지 상상이 돼서 한참을 불편했다. 그렇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할까. 눈물도 쏟았다. 읽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고.

왠걸? 비슷한 책이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유품정리사라는 직업명까지 붙었다. 사실은 별 기대없이 받아들었다. 이런 특수직업들이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글감인가? 싶어서. 그런데 약간 느낌이 달랐다.

우선 나는 이 책이 더 슬펐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돈을 먼저 찾던 비정한 자식들, 자식을 위해서 병을 숨겨온 부모의 모습들이 상상이 되면서 몇 번씩 코끝이 시큰해졌다. [죽은자의 집 청소] 가 좀 담담하게 다가왔다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좀 더 감성을 건드렸다. 근데 작가가 억지로 짜낸 감성은 아니었다. 그저 전달할 뿐이다. 아님 내가 상상력이 뛰어난가;;

울음 참느라 혼났다. 죽음이 절대 막을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요즘 생각이 많다.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는 죽음' 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저자의 이력도 신선하다. 저자 김새별은 유품정리사로 망인의 생전 집을 깔끔하게 비우고 정리하는 특수 청소업체를 운영 중이다. 오래 전에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고 우연히 그의 시신을 염하는데 참여했다. 그리고 장례지도사가 돼서 일하다가 유품정리사가 된 것이다. 뭔가 차곡차곡 준비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죽음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담담하게 진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라면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만큼 훌륭한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충도 많다. 악취와 해충의 습격처럼 1차적인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주위 사람들의 뜻모를 배척과 천대가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왜 소금을 뿌리고, 왜 화를 내? 이게 무슨 현대판 갑질과 횡포인지!!!

시체가 지독히도 어지럽히고 간 자리를 치우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는 아닐진데 주위의 강팍한 시선과 멸시와 비난 등을 꿋꿋하게 견뎌야 하는 직업이라니. 금전적 이득만 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일. 그러나 이 업체 사람들은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들이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마는 아무래도 꺼려하는 업종은 있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이 일만이 나의 적성이라고 생각하고 오진 않았겠지만 사장님의 마인드가 훌륭해서인지 이 회사의 직원들 역시도 하나하나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여러가지 일화를 소개하지 않는 것은 독자들이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인데 고양이 무서워하는 직원은 좀 웃겼다.

비정한 죽음이야 없어야겠지마는 어떤 죽음이든 터부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편견없이 치워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성스러운 일이다. 이 책이 많이 읽혀지고 알려져서 유품정리사를 천대하는 풍조가 사라지길 바란다. 이 책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저자가 유키즈온더블록 프로그램에서 알려진 것처럼 더 많은 매체에서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인식 및 처우가 개선돼서 이렇게 어렵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빛이 나길 진심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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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퍽10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1
빅토르 펠레빈 지음, 윤현숙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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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의 창조자들이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안다는 거야.

그들은 그냥 자기들 형상대로 그녀를 만든 거야.

p.428


세계가 열광한 러시아의 신세대 작가 빅토르 펠레빈의 SF소설 [아이퍽10]을 읽었다.

나는 원래 SF를 좋아하기 때문에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러시아 SF는 처음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그리고 받았는데 두둥-

너무 어려웠다!!!!! 히읽!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자 책을 이끌어가는 중심은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다. 그는 아쉽게도 사람이 아니다. 경찰 문학 알고리즘이다. 그는 경찰이니까 범죄를 수사하고 결과물은 소설이다. 그는 소설을 243개나 쓴 대작가이다. (알고리즘이라는 게 함정 ; )그는 돈 많은 미술평론가 마루하 초에게 고용된다. 마루하초는 고환달린 여성이다. 그는 '석고' 라는 미술 분야의 전문가다. 마루하 초는 돈이 많아서 가장 비싼 섹스 가젯인 아이퍽10을 사용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희한했던 것은 기존 내가 읽었던 SF보다 훨씬 자유의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스스로 업데이트는 물론 미래를 설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은 뭐 껌씹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또, 다른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그 프로그램에 스스로 삽입될 수도 있다. 너무 놀라운 혁신이 아닐까.

내가 가장 충격받은 것은 섹스봇이었다. 이제 인간 간의 성애가 위험하고 더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전염 가능성이 낮고 폭력성이 낮은 섹스봇과의 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엄마라는 존재도 별로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알고리즘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지만 시류인가? 정말 미래사회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에이즈가 없어질 것이고, 낙태-라는 합리적이긴 하지만 비인간적인 행태- 가 불필요 하게 될 것이고, 강간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미 소설 속에서는 그런 사회가 도래했다) 좋은 점만 보자면 한 없이 좋은 것이 최첨단 시대지만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성애란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으로 아직도, 여전히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까지 가서 살고 싶지가 않다. 으윽.

작가 빅토르 펠레빈은 인간의 탐욕을 AI 사회에 비춰서 말하고자 했는데 그 재능이 아주 천부적이었다. 신예이면서도 대단히 은유를 즐기며, 적절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신랄한 문장들을 자주 구사할 줄 아는 작가였다. 인간 본성의 고전적 개념에 의거해 알고리즘을 만들었지만 인간도 몰랐던 인격체로 업그레이드 돼 인간을 공격하게 될 거라는 다소 허황돼 보이는 공상과학적 클리셰를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공포로 바꾸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일이 실제로 도래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쇄하다' 라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될 수도 있는 세대, 모든 문장이 네트워크에 걸려있는 시대. 무서워. 개인정보따윈 없겠군)

아직 읽지 못할 독자를 위해서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잔나라는 캐릭터가 바로 그런 캐릭터였다. 두려웠다. 알고리즘이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른 것으로 모습을 바꾸고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이야기자 두려운 스릴러였다. 결국 알고리즘이 인간처럼 자유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살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호러였다. 그렇지만 작가는 영리하게도 이것이 소설일뿐이라고 한 번 더 포장해 두었다. 정말 영리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 시대는 벌써 왔다. 이제 그것이 실체를 띄느냐, 아직도 둥그런 스피커 속에 존재하느냐는 어찌보면 그저 시간싸움일 뿐이다. 그러나 나를 꼭 닮은 , 마치 인격체인양 보이는 로봇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드는 세상을 발전된 세상, 나아갈 미래라고 믿고 싶지가 않다. 모든 문명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데까지만 발전하는 게 제일 좋다. 선을 분명히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권 문제는 이미 대두를 넘어서 고착화되고 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계의 권리 또한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늘상 희생되어야만 하냐는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다. 기계의 인권까지 보호해 주어야 하나? 나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따뜻한 SF를 원한다. 나는 아직까지는 따뜻한 감성의 동양적 SF를 사랑하는가보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현실이라면 직시해야겠지. 아무튼 어려웠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다음에 찬찬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작품! (두 번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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